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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덩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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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없다. 어디선가 전쟁에 신음하는 병사들을 구하러 나타나는 히어로는 없다. 있다면 전투기 조종사 정도가 앵글에 잡히는데 그도 보편적인 전쟁 히어로 문법에서는 이탈되어 있다. 전체적인 서사는 관객의 시선을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 두어야할지 계속해서 헷갈리게 만든다. 해변에서의 일주일, 해상에서의 하루 그리고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 각각 다른 타임라인 속에서 교체 편집되어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다른 시간축 안에서 공존한다. 일주일은 너무 길며 하루는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다. 한편 하늘에서의 한 시간은 영겁의 지옥 같은 해상에 비하면 찰나처럼 지나간다. 연료 잔량을 체크하는 장면은 그 촉박함을 순간순간 알려준다.

결국 누구도 승리하지 못했다. 애초에 전쟁 영웅의 무용담을 다룬 고전적 전쟁영화를 답습하는 것은 놀란의 관심사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기존 전쟁영화의 서사를 완전히 반대로 뒤집어 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주요 타격지점을 정하고 전략적인 침투, 공격을 통해 뛰어난 용병술과 용맹을 겸비한 지휘자가 승리하는 쾌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도망가는 데 급급한 전사들의, 전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내밀한 심리를 포착한다. 전투기에서 추락한 조종사와 첫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노인 도슨, 배를 타고 탈출하려는 영국 병사와 프랑스 병사들의 다툼에선 생존과 공존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관찰이 아니라 일종의 체험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더 섬뜩하다.

​다른 공간, 다른 시점 그리고 다른 시간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교차점을 찾느라 관객들은 분주하다. 결국 비행기 연료가 떨어져 추락하고 탈출 작전이 성공리에 마감되며 영화는 순간 고요해진다. 초조와 갈등으로 점철되었던 긴장의 한 시간이 억겁의 세월처럼 길었던 바다의 시간과 화해한다. 바다에 빠지고 불에 타 죽은 전사들을 뒤로하고 탈출에 성공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산 자들이 받아든 신문은 하나의 영웅을 만들어냈다. 탈출작전을 진행하기도 전에 어이없게 사망한 청년을 매체는 단 하나의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그러나 관객은 알고 있다. 용맹한 전사들의 영토 탈환 작전이나 적국 독일에 대한 승리 따위가 아니라 그 처절하고 때로는 비겁하기도 했던 그들 모두가 영웅이라는 것을. 목숨을 구걸하며 끈질기게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남아 결국 ‘공존’해 돌아온 그들. 그래서 탈출작전 성공 후 배를 떠나보내며 남아 프랑스군을 돕겠다는 한 장군의 경례 장면은 무척 공허하게 다가온다. 기름 하나 묻히지 않은 말끔한 차림에 ‘고향’을 외치는 장군의 모습에선 놀란의 냉소적인 시선마저 느껴진다.

​영화는 대사가 아니라 필름 시퀀스 자체로 승부하고 있다. 대신 대사가 있어야할 곳에 한스 짐머의 음악이 채워진다. 한스 짐머의 음악은 영화의 서사와 에피소드, 주제 의식 전반을 한껏 명확하게 북돋운다. 조용히 구출작전을 위해 떠나는 배 앞에서 어둡고 비애에 찬, 역동적인 활시위를 당기며 때론 숨죽여가며 서스펜스의 이완과 수축을 반복한다. 어떤 부분은 영화적 상황과 걸맞지 않는 음악으로 시청각의 동기화를 산산이 파괴해버리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보다는 소설이 낫다고, 영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소설 기반이 아니나 소설로 쓰여지기엔 영화적 문법과 시각, 청각적 임팩트의 융합이 일궈낸 파동이 너무나 크고 따라서 변환 불가능하다. 다른 장르가 아닌 오직 영화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대중예술이 있다는 걸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장엄한 한스 짐머의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덩케르크 탈출 작전은 한 편의 전쟁 시나리오와 뮤직비디오를 합해놓은 듯 강렬하며 독창적인 에너지를 생성해낸다. 덩케르크는 인터스텔라의 우주 공간을 전장으로 치환해 인셉션의 시공간 퍼즐 기법으로 변주한 놀란의 쾌작이다.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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