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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마루나 EVO 200

진공관 앰프의 한줄기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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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의 미학

신문마다 코로나와 함께 실업 그리고 자영업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팬데믹이 초래한 불황의 늪은 왠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코스피와 부동산은 최고 상승률을 경신하고 있지만 실상 우리 주변에 그 과일을 맛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어차피 미래엔 평생직장이라고 여길만한 직업도 없을 것이며 모두 자본가의 필요에 따라 직업 노마드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하긴 지금도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매주, 아니 거의 하루걸러 한 번씩 마치 하루 두 번 끼니를 보채는 것처럼 마감을 해야 하는 나로서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난달엔 올해를 정리하는 글과 영상, 대본까지 월말에 너무 많은 원고가 밀려 며칠 꼬박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자판을 두들겼다. 그러다가도 널브러진 총 세 조의 오디오를 보고 있으면 뭔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 언제 어떤 이유로 이런 생활을 정리하고 박차고 일어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공존한다.

출근할 때마다 사표를 가슴에 품고 나간다는 여느 직장인보단 오히려 프리랜서인 내가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도 옳다. 요컨대 직장인은 실업의 자유를 원하며 실업자는 직장인의 안정감을 원한다. 그렇다면 만일 이런 삶이 끝이 난다면 오디오를 아주 간소하게 줄일 생각도 하게 마련이이다. 수입이 좀 두둑할 경우엔 업그레이드를 꿈꾸다가도 어느 땐 아무리 리뷰어라도 기기를 너무 잡다하게 운용하는 게 아닌가 하며 축소를 생각하기도 한다. 팽창이 있으면 축소도 있는 것. 축소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것만의 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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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빛

그렇다고 해서 티볼리 라디오를 만든 헨리 클로스처럼 “내 인생의 마지막 오디오는 라디오다”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그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용기 내어 한 마디 슬쩍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다. 하지만 거창하게 내 인생의 마지막 오디오 같은 말로 거들먹거릴 필요 없이 나이가 들면 진공관 앰프를 더욱 더 좋아하게 될 거라는 예측은 한다. 지금도 최신 기술이 집약된 나드 M33을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엔 프리마루나 EVO400이라는 진공관 인티앰프가 자리 잡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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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프리마루나는 처음 접한 건 리뷰 때문이었지만 이후 마음에 들어 구입하게 된 흔치 않은 케이스다. 흥미로운 건 입에 착 감기는 브랜드 이름이다. 그리고 무척 단순해 보이는 브랜드의 상징, 즉 로고도 눈길을 끌었다. 네덜란드 출신 프리마루나 대표인 헤르만 반 덴 둥거는 브랜드명의 어원이 ‘First Moon’에서 시작되었다고한다. 첫 번째 달이라는 뜻은 로고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흥미로운 건 이탈리아 지도에서 발견한 프리마루나라는 마을의 존재였다. 그리고 마을의 역사에서 이 마을 이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First Light’의 라틴어 ‘Primum Lumen’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프리마루나라는 이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름 아니라 너무 값비싼 장비로 가득한 어둠의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맛볼 수 있는 앰프. 진공관 앰프의 서광과 같은 존재, 바로 그것이 프리마루나의 숨은 뜻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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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 200

프리마루나의 인티앰프 라인업은 총 네 가지로 나뉜다. 막내 EVO100부터 시작해서 EVO200 그리고 EVO300, EVO400이 그 주인공이다. 이 네 개 모델을 또 다시 분류하자면 EVO100과 EVO200 그리고 EVO300과 EVO400 등 두 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면 편리하다. 상위 그룹에서 AC 오프셋 킬러 및 트라이오드/울트라리니어 모드 등의 기능을 생략한 것인 하위 그룹이다. 그리고 내부 선재 및 저항, 커패시터 등 소재 등급을 낮추어 가격을 낮춘 것이 EVO100과 EVO2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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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리마루나를 여타 흔하디흔한 진공관 앰프와 명확히 구분 짓게 만드는 기본 설계는 하위 그룹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특주 토로이달 트랜스포머와 인하스 제작 방식으로 한 땀 한 땀 제작한 출력 트랜스 등이다. 이는 이 가격대 진공관 앰프에서 프리마루나를 신데렐라로 만들어주었다. 더불어 다양한 진공관을 사용하는데 진입장벽을 낮춘 적응형 오토 바이어스 회로 및 신호 전송 경로를 기판이 아닌 케이블로 연결하는 설계도 음질적 매력으로 드러난다. 진공관 특성이 틀어질 경우 이를 LED로 알려주고 앰프를 보호하는 보호회로 또한 진공관 앰프에 대한 거부감을 한방에 날려주었다. 그리고 이런 기능은 EVO100과 EVO200에서도 만날 수 있다.

EVO200INT

이 중 EVO200은 EVO100의 한 단계 상위 모델로서 출력은 단 4와트 올라선 44와트 출력을 보여준다. EL34 출력관은 EVO100과 마찬가지로 채널당 두 알을 사용해 푸쉬풀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했다. 한편 EVO100과 달리 두 개의 12AU7이 위상 반전을 맡고 추가로 12AU7 두 발이 이 신호를 받은 후 출력관을 드라이빙하는 방식이다. 사용한 진공관은 동일하지만 사이즈는 거의 두 배로 커진 풀 사이즈를 자랑하는 EVO200. 또한 EVO200부터 드디어 최대 KT150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넓어진 후면 패널에선 총 네 개의 RCA 입력은 물론이고 EVO100에서 삭제했던 바이패스 입력도 추가했다.

셋업 & 시청

나윤선

EVO100으로 먼저 시청하다가 EVO200으로 넘어오면 일단 좀 더 여유가 느껴진다. 확실히 전체적인 다이내믹레인지가 넓고 좀 더 편하게 음악을 받아 넘겨주는 인상이다. 단 4와트 차이지만 소형기에서 중형기로 넘어가는 기점에서 보이는 변화는 명확하다. 좀 더 넓은 포용력은 볼륨에서도 드러난다. 에스칼란테 Pinyon에선 좀 더 높은 볼륨에서 적당한 음량을 확보해주었다. 일단 마이트너 MA1을 통해 나윤선의 ‘아름다운 사람’을 재생하면 절대 과거 진공관 앰프의 흐릿하거나 때론 너무 과장한 음상이 아니다. 또렷하고 비교적 정확한 사이즈의 보컬 음상이 손에 잡힐 듯 아른거린다. 깨끗한 배경 위에 솜털 같은 잔향도 풍부하게 해석해 공간을 적신다. 음상도 EVO100에서 반 발자국은 더 깊게 형성되면서 원근감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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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마루나의 모든 진공관 앰프는 매우 뛰어난 성능의 출력 트랜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스테레오파일 존 앳킨슨의 측정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인데 막힘없이 광대역을 소화한다. 예를 들어 파벨 하스 쿼텟의 스메타나 현악 사중주 ‘From my life’를 들어보면 시작부터 호쾌한 현악 앙상블이 빠르고 상쾌하다. 넓은 대역폭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뭔가 짓눌리거나 먹먹한 느낌은 찾을 수 없이 명쾌한 느낌을 잘 전달해준다. 대개 중역과 고역 사이 착색으로 인해 음색적 개성을 표출하는 진공관 앰프들도 있다. 그러나 프리마루나는 풍부한 배음을 내주지만 절대 과도한 착색을 유도하지 않고 생생하게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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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200의 주파수 응답 특성은 고역부터 저역까지 꽤 넓다. 하지만 넓은 것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꽤 평탄한 편이다. 따라서 여러 대역을 오가는 악기들이 서로 다른 유닛을 오가면서 재생되어도 음색이 틀어지지 않고 충실하게 재생해낸다. 예를 들어 아릴드 안데르센의 ‘Bryllupsmarsj’를 들어보면 중, 저역을 오가면 깔리는 오르간과 그 위 대역에 중첩되는 색소폰이 정확히 분리되어 들리면서도 조화로운 페시지를 끈질기게 이어나간다. 때로 급격하게 높은 옥타브로 치솟는 구간에서도 갈라지거나 피로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모든 블로윙을 풍부하게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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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인 촉감이 부드러우면서 적당히 팽팽한 탄력이 있기 때문에 리듬감 넘치는 곡들도 모두 잘 소화한다. 게다가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명확하게 떨어지는 소리의 형상이나 뚜렷한 골격, 적당한 두께감은 음악을 가까이에서 너무 분석하기보단 온몸으로 몰입해서 음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브라이언 브롬버그의 ‘King of pain’ 같은 곡에서 우드 베이스의 통 울림이 묵직한 무게감에 실려 공간을 높은 음압으로 메워준다. 얇고 빠르게 흩날리는 중, 저역이 아니라 적당한 스피드로 깊고 넓게 굽이치는 소리의 굴곡을 정확히 표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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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전동 볼륨은 여전히 촉감도 좋고 가까이 두고 쓸 때 돌리는 손맛도 좋다. 특히 다이내믹스 표현의 폭이 EVO100에 비해 넉넉해지면서 좀 더 세밀한 강, 약 세기 표현을 즐길 수 있다. 스펙만 보면 그저 출력 차이 같지만 실제 청감상 다이내믹스나 음장 형성 등 여러 면에서 상위 모델의 면모를 보인다. 예를 들어 ROON 기준 20레벨의 높은 다이내믹레인지를 보이는 마이클 스턴 지휘, 캔자스 시티 심포니 연주로 생상스 교향곡 3번을 들어보면 낮은 음계부처 차츰차츰 커지면 공간을 휘감는 사운드가 일품이다. 감상자를 향해 돌진하는 공격적 성격이 아니라 깊고 풍부하게 조망해주는, 전망 좋은 무대를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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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프리마루나 앰프들은 소리면 소리, 기능이면 기능 그리고 오랫동안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내구성과 보호회로 등 이 가격대에서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앰프는 이거 하나 정도면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 턴테이블이나 네트워크 플레이어, 그리고 작은 스피커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지. 게다가 일반적인 진공관 앰프에 비해 프리마루나 출력관의 수명은 두 배에 달한다. 약 5천 시간을 사용해도 신제품일 때의 90% 컨디션을 유지한다는 것. 실로 오랫동안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앰프며 그래서 프리마루나는 시스템을 축소할 경우 나로선 물러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프리마루나 EVO200은 진공관 앰프의 한줄기 빛이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EVO 200 Integrated Specifications

Power (Ultra-linear) 44 watts x 2 (EL34) (8Ω, 1% THD)
Inputs : 4x Stereo RCA, Stereo RCA HT Bypass
Outputs : 4 & 8 Ω / Stereo RCA Tape Out / 1/4″ Headphone
Freq. Response : 10Hz-65kHz +/- 1dB
THD : < 0.2% @ 1W
< 2% @ Rated Power

S/N Ratio : 86 dB, 95 dBA
Input Sensitivity : 275mV (EL34)
Power Consumption : 280 watts (EL34)
Standard Tube Complement : 4 – 12AU7, 4 – EL34
Dimensions (WxHxD) : 14.4″ x 8.1″ x 15.9″
Weight : 52.8 lbs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연락처 : 02-6338-8525 
공식 소비자가격 : 3,8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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