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wers & Wilkins 매칭의 변천
앰프의 성능을 가늠해보고 평가하는데 교보재가 되어주는 여러 좋은 스피커들이 있지만 B&W(Bowers & Wilkins)를 제외하고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오래 전 데카(Deca), EMI, DG, 필립스(Philips) 등 강호의 탑 클래스에 오른 레이블에서 사용했던 클래식 모니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니까 말이다. B&W의 매트릭스는 그렇게 시작부터 전설을 써 내려갔다. 우리가 들어온 또는 듣고 있는 앨범들 중에서도 B&W의 스피커로 모니터링해서 발매된 음반들이 부지기수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예전에 한번 B&W 매트릭스 801-3를 사용할 당시였다. 이후에 나온 플래그십 모델에 비하면 작지만 801-3만해도 덩치가 상당히 컸다. 특히 지금은 보기 힘든 비율을 가지고 있고 약 12인치에 달하는 베이스 우퍼는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작은 방에 설치하면서 이거 혹시 실수한 거 아닌가하는 마음에 앰프와 연결 후에야 그 소리에서 마음이 놓였다. 덩치는 크지만 정말 반듯한 밸런스와 어느 대역도 거슬리지 않은 모범적인 모니터 스피커의 소리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로 제어가 쉽지 않아 크렐 대출력 앰프 등을 동원하지 않으면 완벽한 제동이 어려웠다.
이후 B&W는 노틸러스라는 전무후무한 플래그십 스피커를 내놓으면서 미래를 예견했다. 사실 이 스피커을 통해 B&W는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 설계의 전형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노틸러스 800을 지나 다이아몬드 시리즈로 명맥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는 현실이다. 노틸러스 시절부터는 크렐 외에 마크 레빈슨 20.5나 20.6 같은 앰프에서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특히 오디오 리서치나 BAT 같은 하이브리드 진공관 프리앰프와 훌륭한 상성을 보여준 기억이 있다.
한편으론 준수한 밸런스와 스피드, 광대역 특성을 지닌, 당시로선 최신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도 B&W와 훌륭한 커플을 이루었다. 하나는 클라세(Classe) 앰프들로서 CA 시리즈와 이후 델타 시리즈가 그 좋은 예였다. 한 때 B&W가 클라세를 소유하면서 B&W 그룹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 시절이기도 해서 애비로드(Abbey Road) 등의 스튜디오에 B&W가 클라세와 함께 사용된 영향도 있으리다. 당시 린, 클라세 그리고 B&W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총 동원된 패밀리 그룹은 어떤 표준 같은 소리를 내주었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 마니아들 사이에서 레퍼런스가 된 조합은 B&W와 코드 일렉트로닉스 앰프의 매칭이었다. 당시 노틸러스나 800 다이아몬드까지 코드의 앰프들은 B&W 스피커들의 저역을 좀 더 스피디하고 정밀하게 제어했다. 게다가 어정쩡한 모습 없이 매우 선명한 외곽을 그려내면서 약간 심심할 수 있는 B&W 사운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DAC64 같은 DAC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던 시절이지만 코드 일렉트로닉스 앰프들의 B&W에 대한 적응력과 광범위한 커버리지는 B&W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무너뜨리는 계기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Bowers & Wilkins 800 D3
그러나 B&W 800 시리즈의 가장 최신 버전 D3에 대해선 코드 일렉트로닉스(Chord Electronics)와 매칭에 대한 경험이 필자조차도 전무했다. D3에 꽤 다양한 앰프들을 매칭 해보았고 이를 토대로 소스기기나 케이블 등 다양한 제품들을 리뷰했지만 유독 코드 앰프들과 매칭은 기회가 없었던 것.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의외인데 최근 코드 일렉트로닉스 앰프군의 대대적인 모델 체인지를 통해 B&W와 매칭을 되새겨볼 기회가 생겼다.
우선 B&W 800 D3를 그 표본으로 삼았다. 이미 알고 있듯 800 D3 시리즈는 모두 유사한 특질을 지니고 있다. 일단 싱글 피스로 제작한 분리형 트위터 챔버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알루미늄 하우징 안에 초고역까지 재생 가능한 신형 다이아몬드 돔 트위터를 탑재하고 있다. 미드레인지 또한 기존 버전에서 완전히 일신했다. 터빈 헤드는 더욱 작아졌지만 강도와 공진의 영향으로부터 더욱 멀어졌다. 결정적으로 컨티늄 진동판을 채용한 미드레인지 유닛은 더욱 선명하고 정교한 중역을 실현했다.
저역을 담당하는 유닛도 진동판을 에어로포일 진동판으로 바꾸면서 질량은 더욱 낮추면서 강도는 높여 더 빠르게 낮은 저역까지 재생 가능해졌다. 전 세계 유수의 스튜디오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면서 스피커 설계에 참조하는 B&W는 D3에서 800 시리즈의 새로운 단계로 전이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복잡한 건축물의 설계도를 보는 듯한 매트릭스 구조의 인클로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면과 후면의 알루미늄 패널 또한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에서 추구하는 캐비닛 진동을 드라마틱하게 낮추어 드라이브 유닛의 사운드에서 캐비닛의 악영향을 말끔하게 제거해냈다.
B&W 800 D3 with Chord Electronics ULTIMA
먼저 코드 울티마(ULTIMA)의 경우 기존 라인업 전체를 대체하면서 나온 제품이다. 그 이전에 SPM-14000 파워앰프와 CPA-8000 프리앰프를 생각하면 디자인부터 내부 설계까지 전체적으로 다양한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기존의 고속 스위칭 전원부 및 MOSFET 출력단 설계 기조는 동일하게 가지고 나갔다. 이 외에 대용량 커패시터가 아닌 소용량 커패시터를 다량으로 탑재해 충, 방전 속도를 높이고 있는 모습. ULTIMA 혁신의 하이라이트 ‘듀얼 피드 포워드’라는 회로는 에식스 대학의 말콤 혹스포드 박사의 논문을 바탕으로 벨 연구소의 밥 코델이 학술적으로 더 구체화한 것. 이후 이를 오랜 시간 연구한 코드 일렉트로닉스가 울티마 시리즈에서 제품화했다.
결과적으로 코드 울티마는 채널당 780W(8Ω)라는 대출력 하에서도 광대역에 여유 있는 구동력을 갖추었음은 물론이다. 더불어 듀얼 피드 포워드 회로를 통해 크로스오버 에러를 최소화해 다이내믹스, 타이밍 표현 등 다양한 음질적 향상을 이룩했다. 실제로 이런 성능은 이미 울티마 테스트에서 경험한 바 있는데 문제는 B&W 800 D3와 어떤 매칭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한편 800 D3는 공칭 임피던스 8Ω에 90dB 능률을 가진 스피커로 일면 제어가 쉬워 보이지만 802 D3보다 체급 차이 이상으로 앰프의 성능을 요구하는 스피커다. 추천 앰프 출력도 8Ω 기준 1,000W까지인데 어떻게 하면 초고역부터 20Hz 이하의 저역까지 재생해주면서도 밸런스와 다이내믹레인지를 살려주는지가 관건이 되겠다.
청음
테스트는 린 클라이막스 DSM(Klimax DSM)을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활용해 NAS에 저장한 음원을 재생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재생 관련 앱은 린 카주(Kazoo)를 사용해 동일한 곡을 반복 청취하면서 진행했다. 참고로 코드 울티마 프리앰프의 EQ는 디폴트 상태로 테스트했다. 전용 시청실의 사이즈도 적당했고 B&W 800 D3도 충분히 번인이 되어 있는 상태로 확인이 되어 코드 울티마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B&W와 코드 일렉트로닉스에 대한 필자의 경험은 신형에서도 유사한 패턴으로 나타났다. 켈리 스윗의 ‘Nella fantasia’에서 맑고 고우면서 밝은 사운드를 내주지만 전/후 심도가 알렉시아 2(Alexia 2)보다 좀 더 깊게 형성되어 공격적이진 않았다. 초고역까지 울려 퍼지는 대역 확장 능력은 다이아몬드 트위터가 맡고 있지만 높은 고역 에너지를 코드 울티마가 선형적이면서 곧게 붙들어준다. 확실히 예쁜 고역에 단정한 중역 덕분에 알렉시아 2보다 무대는 작아졌지만 손에 잡힐 듯한 그립감을 만들어냈다.
“초고역까지 울려 퍼지는 대역 확장 능력은 다이아몬드 트위터가 맡고 있지만
높은 고역 에너지를 코드 울티마가 선형적이면서 곧게 붙들어준다.”
확실히 코드 울티마는 전체 대역폭을 선형적으로 확장 시켜주면서 더욱 더 자신만이 가진 사운드 스펙트럼을 B&W에 투사하고 있다. 한편 B&W 800 D3에선 윌슨 알렉시아 2에서보다 더 확실히 움켜쥐고 흔드는 듯한 인상이다. 다행히 너무 심하게 쪼는 정도는 아니다. 올리비에 포르탱의 앙상블 마스크가 연주한 바이클라인의 ‘엔카에니아 무지체스’ 같은 곡을 들어보면 정밀하게 직조한 사운드가 짜릿한 쾌감을 급조한다. 여타 파워앰프로 들었던 B&W 800 D3 사운드보다 전방과 후방에 있는 악기들의 거리가 더 넓어졌고 악기가 치고 나올 때나 사그라들 때 더 분명한 대비를 보여주어 현실보다 더 드라마틱한 표현을 보여준다.
“전방과 후방에 있는 악기들의 거리가 더 넓어졌고 악기가 치고 나올 때나 사그라들 때
더 분명한 대비를 보여주어 현실보다 더 드라마틱한 표현을 보여준다.”
기존에 코드 울티마와 들어보았던 PMC 페네스트리아(Fenestria)와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확실히 알렉스 2에 비교하면 볼륨을 약 10레벨 정도 낮춘 상태에서 유사한 소리 크기를 얻을 수 있었다. B&W 800 D3의 좀 더 높은 능률과 공칭 임피던스 덕분인데 스피드는 확실히 코드 울티마의 영향이 짙게 느껴질 만큼 빠르며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뿐거린다. 이 때문에 리듬감, 타이밍 측면의 매력이 잘 살아난다. 물론 악기들의 강, 약 세기 표현으로 인한 아주 미묘한 역동성도 빼어난 편이다. 녹음 엔지니어인 키스 존슨 박사의 연출한 악기의 생동감을 잘 살려내는데 코드 울티마는 투명도는 물론 그 밝기도 극대화하면서 절대 탈색시키지 않는 노련미가 돋보였다.
“악기의 생동감을 잘 살려내는데 코드 울티마는 투명도는 물론 그 밝기도 극대화하면서
절대 탈색시키지 않는 노련미가 돋보였다.”
이반 피셔 지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의 ‘Infernal dance’를 들어보면 무척 단단하면서 텐션이 높은 저역을 들려준다. 알렉시아 2에서 평균에 수렵하는 저역 제어력을 펼쳐 보였다면 800 D3에서 코드 울티마는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다. 악기들이 마치 물속을 빠르게 쏘다니는 송어처럼 날렵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악기들도 면밀히 증폭해 눈앞에 선명하게 포착해낸다. 전체적으로 B&W 800 D3의 특성을 더욱 더 부추겨 그 매력을 극대화하는 사운드 패턴을 보여주었다.
“악기들이 마치 물속을 빠르게 쏘다니는 송어처럼 날렵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악기들도 면밀히 증폭해 눈앞에 선명하게 포착해낸다.”
총평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필자가 느낀 B&W의 전통적 매칭은 상호 보완적인 경우가 많았고 일부는 B&W의 특징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경향 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전자가 크렐(Krell)이나 혹은 단다고스티노(Dan D’Agostino)라면 후자는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이나 클라세(Classe)였다. 그리고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전장 해당하는 브랜드였다. 그 중 이번에 마주한 코드 울티마와 B&W 800 D3와 조합은 기존에 경험했던 B&W 800 다이아몬드에 대한 매칭의 선입견을 다시 한번 날려주는 계기로 작용했다.
요약하자면 기존에 B&W와 코드의 조합은 이전 B&W 800 시리즈의 조금은 약한 골격과 컨트라스트 부족으로 인한 심심함에 코드가 스피드와 에지를 더하는 패턴이었다. 800 D3는 이미 그 이전의 약점을 거의 대부분 극복했다. 따라서 이번 코드 울티마와 800 D3의 매칭에선 한걸음 더 나아간 트랜지언트 특성과 트랜스페어런시 등 음색적 영향까지 지평을 넓혀 나간 모습이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사진 : 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