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루나의 파워앰프 EVO 400은 1편에서 살펴봤듯이 채널당 4개씩 장착된 5극관 EL34가 푸시풀 구동해 70W를 내는 스테레오 파워앰프다. 앞단인 전압증폭 및 위상반전/드라이브단에는 쌍3극관 12AU7이 채널당 3개씩 장착돼 전압게인 26.5dB를 확보한다.
EVO 400이 멋진 것은 스위치 변환만으로 출력관을 4극 빔관인 KT150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 이 경우 출력이 88W로 늘어나는데(이상 울트라리니어 모드 기준), 다이내믹스 뿐만 아니라 소릿결, 무대 크기 등이 모조리 바뀐다. 이같은 강력한 튜브 롤링, 이것이 프리마루나 EVO 400 파워앰프의 제일 가는 시그니처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어댑티브 오토 바이어스(Adaptive AutoBias) 기술 덕분. 어댑티드 오토 바이어스는 일종의 고정(fixed) 바이어스 방식으로, 센서가 출력관을 끊임없이 모니터해서 필요한 바이어스 전압을 리얼타임으로 가해주는 점이 남다르다. EL34의 바이어스 전압은 -12.2V, KT150의 바이어스 전압은 -14V다.
그러면 EVO 400 파워앰프에 EL34(프리마루나 기본 장착관)를 꽂았을 때와 KT150(텅솔)을 꽂았을 때 소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을까.
사실 EL34와 KT150 모두 필자가 애정하는 진공관이지만 소리는 완전히 다르다. EL34의 경우 싱글로 쓰면 야들야들하고 매끄러우며 포근한 소리가 나오고, 푸시풀로 쓰면 보다 엄정하고 단단하며 맑은 소리가 나온다. 이에 비해 KT150은 푸시풀 구동시 맑고 투명하면서도 다이내믹스가 돋보인다. KT150을 싱글로 쓴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는 빔관의 내부저항이 높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5극관 EL34도 내부저항이 높지만 이탈리아의 모 제작사가 EL34 싱글 구동 앰프를 과감히 선보인 바 있다.
EL34 vs KT150
본격 청음에 앞서 두 진공관을 스펙상으로 맞비교해봤다. 비교대상은 출력의 척도라 할 플레이트 손실 수치와 진공관 3대 정수(전압증폭률, 전류증폭률, 내부저항). 이들을 살펴보면 해당 진공관의 예상 출력 및 소리성향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전압증폭률 : amplification factor. 뮤(u)
전류증폭률 : transconductance. gm
내부저항 : plate resistance. Rp
플레이트 손실 : plate dissipation
전류증폭률은 진공관 그리드에 들어온 음악신호의 전압(입력)이 1V 늘어났을 때 플레이트에 흐르는 전류(출력)가 몇 mA 늘어나는지를 나타낸다. 1000mA가 늘어나면 1000mA/V로 표기하고 ‘gm이 1000’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전압증폭률은 그리드에 들어온 1V(입력)의 음악신호가 플레이트에서는 몇 V로 늘어나는지(출력)를 나타낸다. 30V로 늘어나면 ‘뮤가 30’이라고 말한다. 단위는 ‘V 나누기 V’이므로 따로 없다. 다만 5극관이나 빔관은 전압증폭률이 언제나 높기 때문에 데이터시트에서 통상 생략한다.
내부저항은 플레이트 전류 변화에 따라 플레이트 전압이 얼마나 변하는지를 나타내는데(R = V/I), 내부저항을 플레이트 저항(Rp. Resistance of plate)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진공관 내부저항은 5극관과 빔관이 언제나 3극관보다 높다.
흥미로운 것은 전압증폭률(V)은 전류증폭률(I)에 내부저항(R)을 곱하면 알 수 있다는 사실. 여기서도 그 유명한 옴의 법칙, 즉 V = I x R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리마루나에서 애지중지하는 쌍3극관 12AU7은 전압증폭률이 17인데, 이는 전류증폭률 2.2mA/V와 내부저항 7.7k옴을 곱한 값이다.
이제 EL34와 KT150의 3대 상수와 플레이트 손실을 비교해보자. EL34는 전류증폭률이 11.0mA/V, 내부저항이 15k옴, 플레이트 손실이 25W를 보인다. 이에 비해 KT150은 전류증폭률이 12.6mA/V, 내부저항이 3k옴, 플레이트 손실이 70W를 보인다.
한마디로 KT150은 출력을 많이 낼 수 있으면서도 내부저항이 상대적으로 낮은 빔관인 셈. 이에 비해 구형 빔관이라 할 KT88은 전류증폭률은 11.5mA/V로 큰 차이가 없지만 내부저항이 12k옴으로 높고 플레이트 손실은 42W에 그친다.
참고로 직열 3극관인 300B는 전류증폭률이 5.5mA/V, 내부저항이 700옴을 보인다. 무엇보다 내부저항이 상당히 낮은데, 5극관이나 빔관을 트라이오드 모드로 접속하는 이유도 바로 내부저항을 3극관처럼 낮추기 위해서다. 내부저항이 높으면 저음이 잘 나오지 않는다.
울트라리니어 vs 트라이오드
튜브 롤링 외에 EVO 400에서 짚고 넘어갈 만한 것은 울트라리니어(ultra-linear) 모드와 트라이오드(triode) 모드를 리얼타임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모컨을 보면 맨 상단에 ‘TR/UL’ 버튼이 있는데 이 버튼을 눌러 전면 패널 가운데 LED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울트라리니어, 녹색 불이 들어오면 트라이오드 모드가 된다.
트라이오드 모드, 즉 3극관 모드는 말 그대로 5극관이나 빔관의 내부 결선을 3결 접속하는 것. 5극관의 스크린 그리드(제2그리드)를 플레이트에, 서프레스 그리드(제3그리드)를 캐소드에 접속시켜 마치 3극관처럼 작동케 하는 것이다.
울트라리니어 모드 역시 3결 접속이긴 하지만, 스크린 그리드(제2그리드)를 플레이트에 연결할 때 출력 트랜스의 1차 권선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3결 접속의 장점(낮은 내부저항)을 유지하면서도 더 높은 출력, 더 낮은 출력 임피던스를 얻을 수 있다. 시청은 울트라리니어 모드로 진행했다.
시청
프리마루나 EVO 400 프리, 파워 앰프 시청에는 솜의 네트워크 렌더러 sMS-200 Ultra, 반오디오의 R2R DAC Firebird MK3, 드보어 피델리티의 2웨이 스피커 Orangutan O/96을 동원했다. 먼저 EL34 기본 장착관이 꽂혀진 상태에서 들어본 후 텅솔 KT150으로 교체해 비청했다.
따뜻하고 촉촉하며 소프트한 음이다. EL34에서 기대하던 바로 그 음색과 소릿결이 은은하게 펼쳐진다. 기타 연주음의 배음은 풍성하고 안네 소피 폰 오터의 입김에서는 따뜻한 입술향이 느껴진다. 보컬의 음상은 손에 잡힐 듯 또렷하다. KT150으로 바꿔 들어보면 보다 투명하고 군더더기 없는 음으로 변하며 음의 밀도 역시 보다 단단해진다. 통상 출력에 비례하는 에너지감 역시 상승했다. 그러나 기타 연주음의 영롱한 배음은 다소 줄었다.
이같은 차이는 다른 보컬곡에서도 비슷하게 포착됐다. EL34로 들은 파트리샤 바버의 ‘A Taste of Honey’(Cafe Blue)는 편안하면서도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있어서 볼륨을 키우고 싶어졌다. 이에 비해 KT150으로 들은 에바 캐시디의 ‘Cheet To Cheek’(Live at Blues Alley)는 보컬이 보다 생생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가운데, 무대가 보다 잘 보이는데 이는 투명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먼저 EL34로 들어보면 박수소리가 현장에서 듯는 듯 매우 리얼하게 들린다. 무엇보다 음수가 정말 풍성한데 이는 솔리드 파워앰프, 그중에서도 진공관과 특성이 유사한 것으로 평가받는 MOSFET 파워앰프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음이 깨끗한 것은 다른 EL34 앰프보다 돋보이는 EVO 400만의 시그니처다.
이어 KT150으로 바꿔 들어보면 진공관 매력이나 기본은 놓치지 않으면서도 음끝이 멀리가고 고음에서 롤오프가 없는 점이 두드러진다. 보다 솔리드 앰프 특성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남성적이고 강건하며 기타 연주음에 힘이 배어있다. 출력이 늘어난 이유도 클 것이다. 대신 EL34가 들려주던 그 오묘한 맛은 줄어들었다.
EL34가 여성스럽고 온화하며 야들야들하다는 인상은 싱글 구동 때 이야기다. 푸시풀, 그것도 4개 병렬 푸시풀이면 처음부터 단전의 기를 모아 ‘빡’ 이런 느낌으로 바뀐다. 일렉 베이스의 저음은 시청실 바닥을 기고 무대의 공간감은 더 바랄 바가 없을 정도다. 물론 이같은 공간감과 저음의 두께는 EVO 400 프리앰프의 역할도 클 것이다. 맞다. EL34, 여럿이 함께 하면 결코 약하지 않다.
KT150은 여기서 몇걸음 더 나아간다. 처음부터 바닥에서 음들을 끌어모아 무대 중간에서 폭발시켜 보린다. 사운드스테이지가 보다 명확히 잡히는데, 역시 이 센 곡에서는 KT150 푸시풀 구동이 정답이다. 한 치의 불만이나 부족함이 없다. 보컬의 딕션은 분명하고 다른 반주음도 보다 많이 들린다. 맞다. KT150, 파워가 결국 메시지다.
오케스트라 대편성곡 역시 두 출력관 대비가 두드러졌다. EL34로 들으면 오케스트라가 약간 미니어처로 그려지지만 피아니시모 파트로의 전환 대목은 침이 꼴깍 삼켜질 만큼 매혹적.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적막한 배경이 압권이다. KT150은 예상했던 대로 팀파니의 타격감이 늘고 무대 앞이 보다 투명해진다. EL34에 비해 음이 살짝 무기질로 변한 것 같지만 총주 파트에서 터프하게 내달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총평
프리마루나 자체가 필자가 애정하는 브랜드이긴 하지만 이번 EVO 400 프리와 파워앰프는 플래그십 분리형 앰프라는 점에서 남달랐다. 특히 EL34와 KT150이 채널당 4개씩 투입돼 펼쳐내는 음의 순도와 무대의 밀도는 어느 경우에나 톱 클래스였다. 확실히, 예전 롱텀 리뷰로 3개월 가량 ‘동거’를 했던 EVO 400 인티앰프에 비해 확실히 무대 크기라든가 악기 이미지의 정교함, SN비에서 차이가 났다.
강력한 튜브 롤링은 거의 연말정산 환급금 수준의 보너스. EL34는 따뜻하고 강력했고, KT150은 단단하고 투명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울트라리니어 모드로만 들었지만 보다 미시적이고 아기자기한 음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트라이오드 모드도 언제든 출격 대기중이다.
EVO 400 파워앰프는 또한 여차하면 한 대를 더 추가해 모노블럭이라는 큰 성을 쌓을 수도 있다. 과연 스테레오 EVO 400과 모노블럭 EVO 400은 어느 정도로 다른 소리와 무대를 펼쳐보일까. 이에 대한 리포트는 3편에서 이어진다.
글 : 오디오 평론가 김편
(3편에 계속)
1편 : 진공관 앰프만의 특권이 가득
2편 : ‘온기’ EL34 vs ‘단단’ KT150
3편 : 스테레오 앰프의 화려한 모노 변신
Specifications
Model EVO 400 for EL34 / KT88 / KT120 / KT150
Power
UL Stereo: 70 / 72 / 85 / 89 Watts per channel
Mono: 140 / 145 / 175 / 188 Watts
Power
TR Stereo: 38 / 43 / 45 / 51 Watts per channel
Mono: 82 / 88 / 94 / 109 Watts
Frequency Response
9 Hz – 60 kHz +/- 1 dB
8 Hz – 70 kHz +/- 3 dB
THD with AABB
Stereo / Mono: < 0.1% @ 1W; less than 2% at rated power
S/N Ratio : 95 dB (105dB A-Weighted)
Input Impedance : 100 kOhm
Input Sensitivity : 1100 mV (for rated power at maximum volume setting)
Maximum Gain
UL: 26.5 dB (Stereo); 30 dB (Mono)
TR: 24 dB (Stereo); 27 dB (Mono)
Power Consumption : 470 Watts / 480 Watts / 540 Watts / 550 Watts
Weight
Net : 68.2 lbs / 31 kg
Shipping : 79.2 lbs / 36 kg
Dimensions : 405 mm x 385 mm x 205 mm (L x W x H)
Inputs : 1 pair Stereo RCA & XLR , 1 piece Mono RCA & XLR
Outputs
Stereo: 4, 8 & 16 Ohm Speaker Taps
Mono: 2, 4 & 8 Ohm Speaker Taps
Tube Complement : 8 x EL34, 6 x 12AU7
Damping Coefficient : 7 KD (1 kHz)
공식 수입원 : 웅진음향 (www.wjsound.com)
공식 소비자 가격
EVO400 프리앰프 : 7,000,000원
EVO400 파워앰프 : 7,0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