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 어쿠스틱스의 변신
2천년대 초반 YG 어쿠스틱스는 풀 알루미늄 바디에 자체적으로 설계한 드라이브 유닛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스피커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낫 레퍼런스로 저역을 별도의 캐비닛에 담아 액티브 방식으로 설계했다. 여타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처럼 드라이브 유닛 외엔 어떤 울림도 내뿜지 않고 오직 전달받은 신호를 왜곡없이 재생해야한다는 철학은 극단적인 설계를 낳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21세기 하이엔드 스피커의 표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아무래도 카멜, 소냐, 헤일리처럼 대표 요아브 게바의 가족 이름을 내건 모델을 통해서다.
스피커 디자인에 대한 완벽주의는 독보적인 기술을 제반으로 가능했다. FocusedElimination (2007), ToroAir (2010), BilletCore (2011), ViseCoil (2015), BilletDome (2016) 등 여러 혁신적인 테놀로지를 개발해 스피커에 적용해왔고 이는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경지로 재생 음향의 수준을 혁신했다. 이를 통해 카멜, 헤일리, 소냐 등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시켜왔다. YG 어쿠스틱스를 통해 요아브 게바는 가정용 스피커의 한계를 혁파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설립한 YG 어쿠스틱스를 떠났다. 향후 전망에 대한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YG 어쿠스틱스는 거짓말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존 모델에 대한 개선 버전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소냐 XVi 시리즈 그리고 소냐 2i 라인업 등이 그 증거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요아브 게바의 빈 자리를 메운 매튜 웹스터 덕분이었다. 바로 캠브리지 어쿠스틱 사이언스의 대표 엔지니어가 합류한 것이다. 캠브리지 어쿠스틱 사이언스라는 회사는는 오디오 메이커에 측정, 설계 및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첨단 엔지니어링, 모델링, 측정 전문가 집단이다. 캠브리지 대학의 천체 물리학 박사 두 명이 설립한 회사로서 매튜 웹스터의 YG 어쿠스틱스 합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변신이 시작되었다.
PEAKS 시리즈 출범
그의 합류 이후 내놓은 완전한 신제품은 다름 아닌 픽스(Peaks) 시리즈다. YG 어쿠스틱스 초유의 하이엔드 액티브 스트리밍 스피커 밴티지 라이브(Vantage Live)도 있지만 차후 다루기로 하자. 이번엔 피크 시리즈의 국내 출시를 알리는 쇼케이스를 통해 신세대 YG 어쿠스틱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피크 시리즈는 총 여섯 가지 모델로 구성되어 있다. 케인(Carin), 토르(Tor), 탈루스(Talus), 어센트(Ascent), 서밋(Summit), 디센트(Descent) 등이 그 주인공, 케인과 토르는 스탠드마운트 타입이고 탈루스와 어센트, 서밋은 플로어스탠딩 타입 스피커 그리고 디센트는 서브 우퍼다.
기존에 헤일리, 소냐, 카멜은 창립자 요아브 게바의 가족 이름이었기에 픽스 시리즈도 나름 작명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은 했지만 그 의미를 알긴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 런칭 쇼케이스를 위해 내한한 마케팅 이사 딕 다이아몬드가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케인부터 시작해 돌탑, 바위 산, 돌더미, 상승, 정상, 하강 등 산을 오를 때부터 내려올 때까지 일련의 과정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왜 하필 등산일까? 다름 아니라 YG 어쿠스틱스의 본사가 위치한 곳은 콜로라도 덴버. 콜로라도 자체가 로키 마운틴을 중심으로 북미 대륙의 등뼈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며 이 때문에 고산들이 수십 개 솟아 있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덴버 또한 고원 도시 중 하나니까.
쇼케이스의 주인공 TOR
딕 다이아몬드는 각 모델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고 특히 이번에 국내 도착한 TOR를 중심으로 디자인, 소재, 설계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했다. 딕 다이아몬드는 국내 내한할 때마다 만나곤 했는데 여타 메이커가 대개 제작과 전혀 관련 없는 영업맨들을 보내는 반면 YG 어쿠스틱스는 딕 같은 전문가가 직접 방문해 쇼케이스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딕 다이아몬드는 일반적인 세일즈 관련 직원들이 교육받은 매뉴얼 정도만 이야기하는 반면 제품 설계 등 에니지니어링 부문은 물론 미국 하이엔드 오디오 전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스피커는 스탠드마운트 타입 설계로 2웨이, 2스피커 형태를 취하고 있다. 트위터는 포지코어를 사용했으며 7인치 빌렛코어 미드 베이스 유닛을 장착하고 있다. 모두 자체 설계를 통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인클로저는 여타 YG 어쿠스틱스 제품들이 모두 그렇듯 밀폐형으로 만든 모습. 하지만 인클로저가 이전과 다른데 알루미늄에 더해 HDF를 사용한 모습이다. 예를 들어 전면과 하단은 이전처럼 알루미늄을 사용해 공진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레퍼런스급과 차등을 두면서 HDF와 레진 그리고 하단 안쪽엔 델린(Derlin)을 사용하는 그 소재를 복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기존 레퍼런스 모델은 내부 케이블로 킴버를 사용한 반면 픽스에선 카다스로 바꾸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윌슨과 락포트가 트렌스페어런트를 사용하는 것과 대비되기도 하는데 케이블이 전체 음색에 미치는 영향을 꽤 많이 경험해본 바 카다스 음색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이 외에도 여러 부분들이 눈에 띄는데 스피커를 받치고 있는 스탠드는 독특한 디자인을 하고 있고 특히 두 개의 기둥 안쪽에 물결 무늬로 파여져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스피커 자체는 스탠드 위에 자체 제작한 슈즈, 일종의 아이솔레이터로 보이는 액세서리로 받치는 구조다.
픽스 시리즈 설계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딕 다이아몬드가 잠시 설계자 매튜 웹스터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천체 물리학자로서 캠브리지 대학 박사 출신으로서 스피커 설계에서 여러 첨단 기술을 응용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픽스 시리즈를 설계할 때도 슈퍼 컴퓨터를 통해 약 300여 개 가상 공간을 만든 후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설계에 응용한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매튜 박사는 YG 어쿠스틱스 합류 이전부터 그들의 스피커를 사용해올 정도로 애착이 많았다. 그는 다름 아닌 최상위 모델 소냐 XV 사용자다.
음질에 대해
이번 시청에서 등장한 스피커는 픽스 시리즈 중 TOR로서 아쉽게도 다른 모델은 접할 수 없었다. 전 세계에서 들어온 주문량을 감당하기 어렵고 제작 기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TOR는 쇼케이스 당일 며칠 전에 들어와 아직 완전히 에이징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TOR가 내주는 음질을 귀를 번쩍 뜨이게 만들만큼 매력적이고 개성이 넘쳤다.
예를 들어 랄로 시프린이 맡은 영화 음악 중 ‘Bullitt’ 사운드트랙을 들어보면 매우 큰 사운드 스테이지가 펼쳐진다. YG 어쿠스틱스 공식 디스트리뷰터이자 하이엔드 오디오파일의 성지라고 할만한 GLV의 메인 시청실에서 이 정도 스테이징을 북셀프가 펼쳐낸다는 것이 놀라웠다. 더불어 매우 맑고 명료한 고역은 역시 YG 어쿠스틱스의 전매특허답다. 한편 중, 저역 쪽은 기존 레퍼런스 시리즈와 결이 다른데 에지 있고 촘촘하게 다듬어진 소리에서 좀 더 울림이 크고 풍부한 소리로 변모했다. 하지만 투명도는 훼손되지 않는 모습. 매튜 박사가 유닛 빼곤 거의 모든 부분을 바꾸었다고 하는데 수긍이 가는 소리 변화다.
비토리오 쿠쿠로 쿼텟이 연주한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같은 곡에선 확실히 레퍼런스 시리즈보다 드라이빙이 쉬워진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관악기들의 표면 질감에서 약간 더 온도감도 감지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음색으로 어필하는 스피커는 절대 아니다. 특히 재즈 레코딩의 관악 블로윙 세션에선 매우 넓고 높게 탁 트인 현장감이 일품이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이 정도 사이즈에서 이런 거대한 규모의 무대를 그리면서도 저역 쪽에서 타협이 별로 없어보이는 스탠드마운트 스피커는 오랜만이다.
참고로 TOR는 37Hz, 즉 초저역 상단 부근에서 40kHz 초고역까지 재생하는 광대역 스피커다. 한편 임피던스는 평균 7옴에 최소 3.5옴까지 내려가고 감도는 88dB를 기록하고 있다. 보편적인 현대 하이파이 스피커의 평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TOR가 내뿜는 사운드는 대체로 이 정도 사이즈의 북셀프 스피커의 평균 수준을 한참 웃도는 수준이었다. 출시가가 미국 기준 10,500달러라고 볼 때 이 가격대 스탠드마운트 타입 레퍼런스라고 할 수 있는 스피커들은 긴장해야할 듯하다.
쇼케이스를 마치며
항상 그렇듯 쇼케이스에서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대체로 본사 세일즈, 마케팅 직원이 앵무새처럼 본사 매뉴얼을 읽는 수준이다. 게다가 음향적으로 전혀 고려되지 않은 장소에서 진행해 그냥 맛보기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GLV라면 조금 다르다. 평소 음향적으로 섬세하게 다듬어진 공간인데다 오렌더 W20SE, MSB 레퍼런스 DAC 그리고 MSB 205 모노블럭 파워앰프 등 수준급 주변기기와 세팅해 최상의 퍼포먼스로 끌어올린 모습이었다. 딕 다이아몬드의 상세하고 객관적인 설명도 한 몫 했고. 앞으로 TOR 외에 다른 픽스 라인업도 경험해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