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 꾼 스피커
시원하면서 깨끗하게 뻗어 올라가는 고역과 그 아래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중역,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실감나게 표현해주는 중, 고역대 질감 표현. 어떤 빠르고 급박한 리듬과 변칙적인 즉흥연주의 리듬과 속도감도 실감나게 표현해주는 시간축 특성들. 그리고 아주 가녀린 약음부터 우렁찬 강음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체 무대를 조망하면서 그 무대를 연상할 수 있을만큼 풍부한 스케일과 악기들의 정위감 등….이 모든 스피커의 능력은 과연 어디어서 오는 것일까?
이러한 이상적이 소리를 위해 엔지니어들을 포함한 스피커 제작자들은 자체 제작 설비 및 소프트웨어 그리고 대외 학계 관련자들이나 음향 전문가들과 협력하기도 한다. 소리에 대한 음악 감상자들의 요구는 시간축 특성 및 위상 정렬, 주파수 평탄도 및 횡축 음량 및 지향성 측정 등 다양한 측정 및 실험을 통해 부응한다. 때론 이런 성능에 대한 기준은 각 메이커마다 다단한 특성을 지닌다. 학계나 연구 단체의 기준을 따르기도 하지만 일부 하이엔드 메이커들은 각자의 레퍼런스를 가지고 합리적 기준을 설파하곤 한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완성형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어떤 부분은 마음에 들지만 어떤 부분은 조금 마음에 안들고 그래서 종종 스피커를 교체하면서 또는 주벽 기기, 액세서리, 공간 어쿠스틱 특성을 튜닝해나가며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나간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들이 아닌 우리가 선호하는 소리를 가진 스피커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어떨까? 그런 메이커가 없진 않다. 소규모 공방 같은 곳에선 유닛과 크로스오버, 인클로저 디자인 등을 한 개인의 기호에 의존해 만들어주곤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덴마크 시스템 오디오에서 촉발되었다. 오픈 포럼을 개설한 뒤 현역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그리고 오디오파일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스피커 설계 디자인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Q113이라는 프로젝트엔 백여 명이 넘는 엔지니어들이 참여했고 총 75개의 디자인 시안이 최종적으로 도출되었다. 아이디어를 모은 화이트 페이퍼만 수백 페이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상용화된 모델의 이름은 Pandion 시리즈였다.
Q113 그리고 올레 위트호프
Q113 같은 창의적인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시스템오디오를 1984년부터 이끌고 있는 수장 올레 위트호프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는 이미 SA2K 같은 스피커로 당시 일반적으로 크고 각진 인클로저 안에 유닛을 탑재한 북셀프 설계를 진일보시킨 바 있다. 최근 출시된 윌슨오디오 사샤 V에도 탑재된 스캔스픽의 이른바 팔랑개비 우퍼를 이미 40여 년 전에 북셀프 스피커에 탑재해 작은 사이즈에 커다란 다이내믹스와 당시로선 놀라울 정도의 해상도를 완성한 바 있다.
이런 시도의 근간엔 대표 올레 위트호프의 설계 철학이 있다. 오직 진지한 오디오파일 외에 많은 대중들이 보다 더 좋은 소리로 음악을 즐길 수 있게끔 도울 수 있는 스피커를 만들길 원했다. 이 때문에 그가 이끄는 시스템오디오는 항상 일반적인 가정에서 쉽게 설치할 수 있는 슬림한 사이즈의 스피커가 많았다. 또한 벽에 붙여도 음질적인 왜곡이 크지 않도록 설계했으며 어느 공간에서든 너무 인테리어를 해친다거나 반대로 존재감이 너무 약한 디자인도 아닌, 세련된 덴마크 디자인을 줄곧 유지해왔다.
새로운 전설의 서막 Legend
그리고 그간의 여러 경험과 Q113 같은 참신한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과 더욱 더 가깝게 소통해온 시스템오디오는 새로운 전설을 만들었다. 라인업 이름 자체를 ‘레전드’로 칭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참이다. 실제 마주한 레전드 40.2는 기존 레전드 40 대비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일단 크기는 높이가 95.5cm 로 아담한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로 보이지만 뒤로 26.5cm 깊은 타입이며 전면 배플 너비는 19cm다. 상당히 멋진 비율을 자랑하는 현대 하이파이 스피커의 전형으로 무게는 채널당 19.5kg이다.
트위터는 시스템오디오가 언제부턴가 새롭게 개발해 장착하고 있는 DXT 음향 렌즈를 채용한 유닛이다.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고음의 넓고 고른 확산을 돕게 끔 설계했다. 직접 자세히 보면 트위터 진동판이 전면 배플 대비 움푹 들어가 있고 그 주변 프레임을 마치 혼 개구부처럼 설계해 소리의 확산 특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아래로 미드레인지를 탑재해놓았는데 5.5인치 사이즈로 유닛으로 미드레인지 전용 유닛을 사용할 경우 강점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레전드 40.2는 총 두 개의 우퍼를 채용하고 있다. 이 우퍼는 표면적으로 미드레인지와 동일해보이지만 오직 저역 재생을 위해 작동한다. 레전드 시리즈를 위해 별도로 개발된 것으로 시스템 오디오에 의하면 동일한 구경의 일반적인 우퍼보다 약 40% 정도나 더 많은 공기를 움직인하고 한다. 내부 코일, 마그넷 등 내부 설계를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다. 진동판 표면은 매우 단단해보이며 서라운드 에지 도한 상당히 강력한 피스톤 운동에도 비선형적인 움직임 없이 강력하게 진동판을 잡아줄 듯 보인다.
레전드 40.2는 3웨이 4스피커 타입으로 이 정도 사이즈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에선 다발의 유닛을 통해 본격 3웨이 설계를 보여주고 있다. 대신 우퍼의 사이즈를 줄여 대구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진동을 억제하되 저역의 깊이는 타협하지 않고 있다. 전체 주파수 응답 구간은 최저 30Hz까지 하강하며 고역은 25kHz까지 뻗는다. 최신 하이엔드 스피커의 베릴륨, 다이아몬드, 리본, AMT에 비하면 높진 않지만 가청 범위는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한편 감도는 90dB로 일반적인 현대 하이파이 앰프로 제어하기엔 어떤 어려움도 없어 보인다.
청음
레전드 40.2은 여타 시스템 오디오 스피커처럼 저음 반사형 설계를 보인다. 이를 위해 후방에 하나의 포트를 마련해놓고 있다. 그리고 스피커 바인딩포스트는 한 조만 마련해 싱글 와이어링만 가능한 스피커다. 세팅 측면에서도 대체로 일반적인 가정에서 세팅이 수월한 조건을 갖는다. 후방 포트 구조를 취하고 있으나 시스템 오디오 측에선 벽으로부터 약 15cm에서 35cm만 간격을 띄워놓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사용하는 거실 공간에 세팅할 경우 저역 부밍 때문에 전면으로 끌어내야 하는 경우 눈총을 받기 쉬운데 레전드 40 같은 경우 벽에 가까이 붙여도 좋을 듯하다. 이번 테스트엔 소스 기기로 하이파이로즈 RS130 네트워크 렌더러 외에 사이러스 i7-XR 인티앰프 등을 사용했다.
우선 이 스피커로 음악을 재생하자마자 좌/우로 넓게 펼쳐지는 무대가 인상적이다. 아레니 아그바비엔을 들어보면 보컬 음상이 매우 정확하게 맺히며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지만 보컬 빅마우스 현상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북셀프 스피커처럼 빠르고 선명하게 핀 포인트 포커싱이 눈 앞에 선명하게 맺힌다. 중, 고역은 여전히 시스템 오디오의 전매특허다. 상큼하고 동시에 달콤한 음색이 매력적으로 빛난다. 눅눅하고 진한 맛보단 상쾌하고 섬세한 음색으로 아침에 일어나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음색이다.
레전드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중, 저역 깊이와 에너지다. 이는 이미 시스템오디오의 스피커를 들어본 사람들에게도 약간 놀라울 정도인데 전혀 예상 밖의 사운드 튜닝이 당황스러우면서도 반갑다. 과거 초창기 시스템 오디오의 약간 가늘고 빈약한 저역에 아쉬움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파트리샤 바버의 ‘Straight no chaser’를 들어보면 묵직하고 밀도 넘치는 저역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더블 베이스의 육중한 무게감이 꿈틀대면서도 피아노와 명확히 분리되어 들이고 특히 육감적인 텐션이 매력적이다.
토널 밸런스 같은 경우 중, 고역 사이 밸런스에선 상쾌하고 달콤한 기조가 어떤 음악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예를 들어 트럼페터 틸 브뢰너의 ‘Eleanor rigby’를 들어보면 특히 고역에서 쭉 뻗어 올라가는 구간에서 거침이 없다. 하지만 끝이 지저분해지거나 탈색되는 현상은 보이지 않고 예쁘게 상승한다. 특히 높은 대역에서 표면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무런 착색 없이 정직하게만 표현되는 소리가 아니라 시스템 오디오 특유의 색상이 느껴져 듣는 내내 싱싱하면서도 특색 있는 사운드 스펙트럼이 음악 듣는 맛을 돋운다.
확실히 저역에 강점이 생기면서 커다란 편성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즐기는 횟수가 늘어난다. 청감상 기존 레전드 40보단 약간 저역 양감을 줄인 듯한 인상이지만 여전히 판디온 같은 시리즈보단 돌덩이처럼 무겁고 단단한 저역으로 레전드 시리즈의 개성을 피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드리스 넬슨스 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2악장에서 빠르게 반복되는 악절이 힘있게 추진하며 명확한 에너지 완급으로 쾌감을 증대시킨다. 스피커 용적을 뛰어넘는 매크로 다이내믹스 덕분에 당찬 사운드를 전달하며 역동적이다.
총평
덴마크는 드라이브 유닛 천국이며 스피커 메이커도 다수 활동하고 있는 오디오 선진국 중 하나다. 아마도 유럽에서 덴마크만큼 하이파이 오디오 산업이 활발한 곳도 드물 것이다. 덕분에 상호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데 시스템 오디오도 그 중 하나다. 기존 영, 미권 오디오의 생태계와 질서를 벗어나 그들만의 독보적인 설계 철학과 운영의 묘미를 살리고 있다. 특히 서두에 언급한 Q113 프로젝트롤 통해 시스템 오디오는 몇 단계 향상된 설계와 성능을 보이며 진화 중이다. 그리고 그 트리클 다운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은 라인업이 다름 아닌 레전드 시리즈가 아닐까 한다. 게다가 편리한 셋업, 편의성은 이 스피커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다. 시스템 오디오 레전드 40.2는 우리 일상의 한 공간을 음악으로 채워줄 전설의 서막에 서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