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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러스 디지털 역사의 이정표

사이러스 Stream-XR

cyrus psu xr thumb

디지털 왕국 영국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현재 하이파이 오디오는 과거의 추억을 소환해 아연실색하기도 한다. 린과 네임오디오, 메리디안, dCS는 이미 하이엔드 오디오로 성장했고 과거의 디자인을 언뜻 떠올리게 하지만 많이 세련된 면모를 보인다. 특히 2천년대 불어닥친 디지털 트랜드의 급격한 변화는 이들을 각성시켜버렸다. 무척 보수적이어 보이는 메리디안과 린이 이러한 음악 감상 패턴의 변화에 의외로 빠르게 대응해나갔고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레이어의 선보에 섰다. 네임오디오도 마찬가지여서 과거의 거뭇거뭇한 도시락 디자인을 일부 버리고 새롭게 단장하면서 네트워크 스트리머를 개발, 새로운 디지털 트렌드의 하드웨어 플랫폼을 진작에 완성했다.

이 모든 메이커들이 이렇게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며 현재를 살 수 있었던 데엔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적응 덕분이다. 어느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과거 도시락 같던 올리브 그린 운운하겠지만 그들 말대로 전통만 지켰다면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브리티시 앰프의 4대 천왕에 올려도 될 법 했던 사이러스는 그 시대에 뒤쳐져 있던 것이 사실이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게속해 몇 번에 걸쳐 네트워크 플레이어 또는 올인원 네트워크 앰프를 개발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cyrus bluos

BluOS 날개를 달다

작년, 그러니까 2022년 새해 벽두 즈음이었다. 해외에서 사이러스에 대한 프레스 릴리즈가 온갖 매체에서 올라왔다. 바로 사이러스가 블루사운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네트워크 플랫폼 BluOS를 채용할 것이라는 기사였다. 네트워크 스트리밍은 사실 사용하긴 쉬워 보이지만 이를 소프트웨어 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와디아, 마크 레빈슨 등 미국 브랜드들 및 dCS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라성 같은 브랜드도 네트워크 스트리밍 시대가 열린 뒤에도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던 이유다.

사이러스도 결국은 자체적인 설계, 엔지니어링의 벽 앞에서 다른 대안을 찾아야했다. 아마도 사이러스가 새로 영입한 매니징 디렉터 닉 클락은 이런 면에서 사이러스에게 구세주 같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던 사이러스의 네트워크 스트리머 개발의 난관을 타계하기 위해 블루사운드와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BluOS를 플랫폼 삼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미 BluOS는 블루사운드는 물론 같은 렌브룩 산하 NAD 등의 제품에 투입되어 M33, M10 등에서 활약하면서 현존 가장 강력한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인정받은 상황이다.

cyrus streamxr 1

Stream-XR

Stream-XR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이러스의 플래그십 라인업 중 하나로 기획된 제품이다. XR 시리즈의 경우 이전에 i9-XR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기존에 경험했던 사이러스 설계 기조와 사운드 골격은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경험해보면 그 외관 마감이나 퍼포먼스 측면에서 상당 부분 진화했다. 확실히 플래그십으로서 오랜 시간동안 발전시켜온 그들만의 노하우를 켜켜이 녹아낸 결과물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Stram-XR을 마주하면 전면에 작은 디스플레이 창이 눈에 들어온다. 간략하게 선택 입력을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요즘 네트워크 플레이어들이 커다란 디스플레이 창에 아티스트, 곡명 등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는 것과 대비적이다. 사실 리모트 앱으로 사용할 경우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그 아래로는 아주 간단한 기능을 조정할 수 있는 버튼이 마련되어 있다. 뒤로 가기, 앞으로 가기 혹은 입력 선택 같은 버튼들이다. 예를 들어 책상 맡에서 사용한다면 종종 사용하게 될 듯한 버튼들이고 손맛도 좋은 편이다.

Cyrus Stream 001

Stream-XR의 너비는 215mm로 예전 사이러스의 그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하위 모델인 Classic STREAM과 외관상 차이점이라면 디스플레이 창과 그 아래 버튼들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제품의 마감 정도다. 그러나 엄연히 Stream-XR이 상위 모델로서 후면으로 가면 기능적인 차이점들도 꽤 보인다. 우선 이더넷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고 USB 메모리 스틱에 음원을 담아 재생할 수 있도록 USB A 타입 입력단도 지원하고 있다. 지원 포맷은 최대 24/192 PCM. DSD는 지원하지 않는다.

Cyrus Stream 002

유선 입/출력단은 매우 간단하다. 우선 디지털 입/출력단을 살펴보면 Classic STREAM이 광, 동축에 대해 오직 출력만 제공했던 것과 달리 이 모델은 광, 동축 입력까지 지원하고 있다. 내장 DAC에 대한 자신감이랄까? 사실 내장 DAC의 경우 사이러스에선 QXR이라고 명명하며 자사의 기술적 특징을 구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ES9038Q2M이라는 상용 칩셋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블루사운드의 Node X 같은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클럭 등 여러 부분에서 사이러스의 독자적인 기술이 투입되었기에 같은 칩셋이라고 해도 그 성능은 다를 걸로 보인다. 따라서 이를 사이러스에선 QXR 2라고 구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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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U-XR 외장 전원부 내부

추가로 흥미로운 단자가 하나 후면에 마련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외장 전원부를 별도로 구입해 합체하면 훨씬 더 향상된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사이러스가 진화시켜온 가장 합리적인 업그레이드 방식 중 하나다. 그리고 이번 XR 시리즈엔 기존 PSX-R보다 더 향상된 성능의 PSU-XR을 적용할 수 있다. 총 15핀으로 구성된 입력단을 통해 본체와 상호 통신하면서 극도로 낮은 노이즈의 전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시스템의 성능을 향상시켜주는 방식이다. 사이러스에 의하면 기존 PSX-R2에 비해 최대 50% 더 효율적이며 60% 더 많은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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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러스에 BluOS를 결합한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다. BluOS 스트리밍 플랫폼 위에 올라선 Stream-XR은 전 세계 약 23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응한다. 뿐만 아니라 국내 벅스뮤직도 BluOS 앱을 통해 바로 진입해 즐길 수 있다. 블루사운드가 인수한 MQA 코덱에 대해선 당연히 풀 디코딩이 가능하고 에어플레이 2도 지원하고 있는 모습. 한편 ROON의 경우 아직 지원 전이지만 조만간 지원할 예정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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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사이러스 Stream-XR은 사이러스가 QXR이라고 명명한 DAC 회로의 2세대 버전이 탑재되어 있다. 단순히 네트워크 렌더러에 탑재된 DAC 수준이 아니라 별도로 독립시켜도 될 만한 DAC로 보인다. 따라서 별도의 DAC를 연결하지 않고 오로지 Stream-XR만 소스기기로 사용하고 앰프와 스피커를 매칭했다. 프리앰프는 패스랩스 XP-12, 파워앰프는 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을 활용했으며 스피커는 바워스&윌킨스 801D4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kelly sweet

소스 기기가 전체 시스템의 음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소스 기기에서 출발한 시그널이 이후 증폭되면서 자기 색을 덧칠할 수는 있지만 전혀 없던 정보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만일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노이즈가 될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Stream-XR은 음원의 정보를 충분히 끌어내 분석, 변환해준다. 켈리 스윗의 ‘We are one’ 같은 곡을 들어보면 중, 고역 해상도나 SN비에서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다. 토널 밸런스 왜곡 없이 탄탄한 해상도, 타이트한 밸런스 위에서 음악은 단정하고 또렷하게 울려 퍼진다.

sarah

이전에 Classic STREAM에서 들었던 곡을 반복 청취하면 또 다른 특성들이 발견된다. 기본적으로 전체 밸런스, 촉감 표현은 유사한 면들이 있지만 좀 더 치밀해졌고 입자가 더욱 곱다. 정보량, 해상력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다. 예를 들어 사라 맥라클란의 ‘Angel’을 비교해보면 Stream-XR은 마치 기본 모델에 클럭 제너레이터를 통해 별도의 더 정밀한 클럭 신호를 공급받은 듯한 음질이다. 배경이 깨끗하고 그 위로 여러 음원들이 싱싱하게 뛰어 노는 듯한 느낌이 다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차갑고 날 선 소리가 아니라 표면이 곱고 특히 중역대 질감 표현이 뛰어나 단정하고 진한 소릿결을 유지한다.

al di meola

중, 고역 표현에서 기타, 바이올린 등 현악기의 표현은 언제나 테스트의 핵심 중 하나다. 특히 여러 연주자의 협연에서 현악기의 중, 고역 표현이 좋지 않은 경우 대단히 산만하고 시끄럽게 재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알 디 메올라, 존 맥러플린, 파코 델 루치아의 연주는 실황 녹음으로서 뛰어난 녹음이지만 반대로 산만하게 재생되기도 쉽다. Stream-XR를 소스 기기로 사용할 경우 각 악기 분리도가 좋은 것은 물론 엉키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말끔하게 잔향을 잘라 밋밋하지도 않다. 선명한 해상력과 분리도에 음악적 잔향도 잘 살려 내준다.

Anne Sophie Mutter

무대를 청취자의 공간 안에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차피 축소된 무대라면 현장보다 되레 더 정밀하고 또렷한 정위감이 음악 감상 측면에선 강점이 될 수 있다. 과거 사이러스에 대한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부분은 소스 기기로서 Stream-XR가 가장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안네 소피 무터, 빈 필하모닉 연주로 ‘카르멘 판타지’를 들어보면 당시 녹음 공간의 앰비언스가 가득 몰려온다. 더불어 바이올린의 경우 워낙 뛰어난 중역 질감을 기반으로 진하고 존득한 사운드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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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과거 CD가 디지털 포맷의 메인 스트림이었을 당시 CDP는 물론 CDT, DAC는 브랜드마다 개성이 굉장히 명확했다. 하지만 현재는 각 브랜드의 개성은 약화된 면이 없지 않고 중, 저가에선 스펙 놀이에 빠져있기도 하다. 단순히 칩셋이 무엇인지, SN 등이 모든 성능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독보적인 DAC 및 FPGA 개발 능력이 있는 브랜드의 제품들은 손이 닿지 않을 곳에 있다. 이런 와중에 브리티시 사운드의 적통 중 하나인 사이러스가 오랜 절취부심 끝에 BluOS와 협력 하에 내놓은 Stream-XR의 그 오소독스 사운드는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브리티시 사운드에 왕조를 이룬 브랜드 중 가장 늦게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랫폼에 올라탔지만 그 결과는 일단 성공적이다. Stream-XR은 사이러스 40년 역사에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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