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광대역 앰프의 충격
나의 오디오 인생에서 충격적인 장면들이 몇 개 스쳐 지나간다. 얼마 전에 한창 오디오 동호회를 함께 했던 지인을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하던 와중에 생각난 추억이다. 하나는 하베스 LS5/12라는 북셀프 스피커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하베스라면 지금까지도 거의 BBC 모니터 스피커의 바운더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피커 제조사다. 모델명만 P3ESR, 컴팩트 7ES, 모니터 30, 40, SHL5 등으로 바꾸어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지만 그 뿌리로 올라가면 BBC 규격의 모니터 스피커로 소실점이 모아진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났다 사라진 모델이 바로 LS5/12라는 모델이다.
이 스피커를 들였을 때 우연치 않게 나의 시스템엔 크렐 FPB300이 들어서 있었다. 하베스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둔 것이 아니라 다른 스피커를 드라이빙하는 데 필요해서였다. 그리고 중간에 스피커 교체가 이뤄지면서 그 공석을 하베스가 일종의 대타 혹은 대주자로 들어왔던 것. 그저 음악이나 듣자는 심산이었지만 궁금했던 하베스는 일전에 알던 그 하베스 사운드가 아니었다. 마치 PMC로 치자면 LB1처럼 그들 라인업 안에서 돌연변이 같은 존재였는데 그만큼 개성이 넘치는 사운드를 선보였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클래스 A 3백 와트짜리 괴물 파워앰프의 역할이 지대했다. 크렐이 아닌 앰프로 매칭했을 때가 아닌 이상 그와 비슷한 소리도 이후엔 듣지 못했다.
또 하나 더 거론하자면 토템 어쿠스틱스의 마니2 스피커를 들이고 약 열 종의 앰프를 매칭해나가던 당시였다. 전투력이 극에 달했던 와중에 그저 호기심에 들였던 앰프가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SPM-600이라는 스테레오 파워앰프였다. 처음 듣고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전통적인 리니어 전원에 클래스 A, AB 혹은 진공관 앰프에 익숙했던 내게 그 앰프는 엄청난 스피드로 몰아붙이는 광대역 앰프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이후 몇 년 전까진 SPM-1400E 모노블럭을 사용했고 그 중간엔 CPM-3350 인티앰프를 사용하면서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사운드에 종종 심취했다. 가끔은 코드 일렉트로닉스 앰프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 온다.
코드 일렉트로닉스만이 가능한 것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당시 비교적 신생 브랜드 축에 끼었지만 데뷔와 동시에 전 세계 오디오파일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앰프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하이엔드 브랜드, 예를 들어 크렐, 마크 레빈슨, 볼더 혹은 그리폰 같은 곳에서 나온 앰프와 비교 대상이 되었다. 주로 클래스 A, AB 증폭에 대출력을 구사하던 당시 트렌드에서 극과 극으로 비교될 만한 음질 경향을 가졌다. 중후하고 단단하며 풍만한 풍채에 마치 스피커를 호령하는 듯한 거대한 몸채. 마치 건축물 디자인을 연상시킬 만큼 우아하고 권위적인 디자인이 대세였던 시절이다. 마치 미국의 최고 경제 호황기 머슬카를 보는 듯한 시대였다.
그 와중에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플래그십 라인을 제외하면 날렵한 몸매에 반짝이는 헤어라인 등 무척 세련되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음질도 그러했다. 당시 대세인 앰프 브랜드가 중대형 세단의 도도하고 중후한 이미지였다면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엑셀을 밟자마자 시속 300km로 돌진해 아우토반을 질주할 것만 같은 이미지였다. 앰프뿐만 아니었다. 그들이 내놓은 DAC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DAC64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음악의 시작, 어택에서 깜짝 놀라 소스라칠 정도였다. 소설 제목 ‘한없이 투명한 블루’처럼 맑으면서도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아 들어가면서 고속으로 회전하는 듯한 기조는 홀로그래픽 음장과 핀 포인트 포커싱으로 드러났다. 결국 인간의 가정 영역에서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시간 간격인 4uS에 근접한 시간축 처리 알고리즘은 코드 일렉트로닉스 사운드를 하나의 장르로 승화시켰다. 코드 일렉트로닉스만이 할 수 있는 분야는 말 그대로 특출했다.
ULTIMA 인티앰프의 출현
ULTIMA 인티앰프는 기존 코드 일렉트로닉스 인티앰프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면 매우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일단 섀시 디자인이 완전히 수정되어 ULTIMA 라인업의 그것을 계승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전에 코드 일렉트로닉스 인티앰프라면 CPM2600, CPM2650, CPM2800, CPM3350을 연상할 테지만 ULTIMA는 이전 세대와 이별하고 ULTIMA의 품에서 새롭게 잉태된 모델이다. 하지만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상징과도 같은 풀 알루미늄 섀시는 더욱 고급스럽고 차분한 톤의 헤어라인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상판에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며 좌/우 늘어선 기둥, 즉 아르젠토 실버 색상의 인테그라 렉 옵션은 여전히 본체를 멋지게 들어 올려 전시하고 있다.
전면을 보면 좌측에 볼륨 노브가 마련되어 있다. 단순히 볼륨 조정 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입력 선택 기능까지 겸하게 설계해놓았다. 돌리면 볼륨 조정이, 누르면 입력 선택을 바꿀 수 있다. 중앙엔 커다란 반구형 버튼이 존재한다. 이는 작동 상황에 따라 색상이 바뀌며 누르면 시스템 ON/OFF가 가능하게 설계해놓았다. 우측으로는 또 하나의 노브가 존재하는데 이는 좌/우 밸런스, 다름 아닌 채널 균형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 한편 입력단을 AV 프로세서나 AV 리시버와 연결해 바이패스로 세팅할 경우에도 활용 가능한 버튼으로 작동한다.
묵직한 리모컨을 기본 제공하므로 특별한 세팅 외엔 손으로 만질 일은 거의 없지만 알프스의 블루벨넷 포텐셔미터를 사용한 볼륨의 손맛이 좋아 자꾸 손으로 조작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게다가 입력 선택에 따른 노브 주변의 색상 변화 또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전원 버튼의 색상 변화가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후면으로 가면 XLR 입력 외에 RCA 입력단 세 조를 지원한다. 한편 AV 바이패스 용도로 XLR 입력 한 조를 별도로 지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파워앰프를 따로 연결할 경우 XLR 출력을 활용해 연결 가능하도록 했다. 후면 중앙엔 전원 인렛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하단으로는 스피커 출력단을 마련해놓은 모습이다. 바나나 또는 말굽 단자 모두 지원하고 있다. 입/출력단 등 좌/우로는 모두 방열판이 빼곡하다. 일반적으로 섀시 좌우로 설계하는 앰프들과 달리 후면으로 방열을 하는 구조로 만들어 전면에서 볼 때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완성했다.
기본적으로 ULTIMA 인티앰프는 8옴 기준에서 채널당 125와트를 내준다. 증폭 방식은 클래스 AB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 코드 일렉트로닉스가 전통적으로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는 설계로서 전원부는 SMPS, 즉 스위칭 방식을 이번에도 투입하고 있다. 일단 증폭 방식에서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MOSFET을 사용하는 것은 이전 인티앰프와 동일하다. 하지만 이전 세대 앰프 설계와 달리 MOSFET의 푸시풀 작동시 발생하는 크로스오버 왜곡을 실시간으로 보정해주는 회로를 도입했다. 이를 ‘듀얼 피드 포워드 에러 보정’ 기술이라고 한다. 과거 영국 에섹스 대학의 헥스포드 박사가 처음 고안한 이후 벨 연구소의 밥 코델 박사가 보다 진화시켜 기초를 다진 이론을 실제로 응용한 회로다. 당연히 일반적인 네거티브 피드백보다 더 우수한 방식으로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청음
이번 테스트는 필자의 시청실에서 진행했다. 테스트에 동원한 소스 기기는 일단 ROON 코어로 웨이버사 Wcore를 사용했고 네트워크 렌더러는 Wstreamer를 활용했다. 이후 DAC는 반오디오 Firebird MK3 파이널 버전 그리고 스피커는 락포트 테크놀로지스의 Atria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이 외에 스피커는 윌슨 Sasha 등을 교차 비교했고 아날로그 소스 기기로 트랜스로터 ZET-3MKII(다이나벡터 DV20X 카트리지)를 사용해 자연스럽게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운드를 참고할 수 있기도 했다.
데이브스 트루 스토리 – ‘Marisa’
마치 아침에 일어나 깨끗이 닦아낸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볼 때의 느낌이다. 소릿결 하나하나가 살아 꿈틀거린다. 전체 대역 밸런스는 정교하게 조율한 듯 특정 대역으로 쏠려 있지 않은 편이다. 굳이 나누자면 어둡고 진한 느낌보다 밝고 상쾌한 스타일이다. 그리폰이나 매킨토시보단 단 다고스티노나 부메스터 같은 부류와 더 가까운 톤이다.
제프 카슽레루치 – ‘Big bad john’
밝고 명쾌하며 탁 트인 고역대에 이어 중저역은 단단하고 타격감, 밀도감이 높은 편이다. 처음 들어보면 보컬이나 피아노 등 가릴 것 없이 내부의 디테일을 모두 끌어올려 분석해낸 듯 섬세하다. 워낙 강단 넘치는 타입으로 음상의 에지가 모두 살아 있어 구획 정리가 선명하다. 뭔가 아련한 뒷맛을 남기는 건 코드의 분야가 아니다.
루카 스트리카뇰리 – ‘Thriller’
평소 레퍼런스로 사용하는 패스랩스와 비교해보면 울티마는 악기의 세기 구분이 더욱 크게 표현되어 힘 있게 들린다. 더 역동감 있게 앞으로 내달리는 추진력이 강력하게 실려 있다. 당김음이나 끊어 치는 연주 모두 평소보다 더 강조되어 시쳇말로 오디오적 쾌감이 극에 달한다. 따라서 타악기들은 마치 농구공이 빠르게 튀어 오르는 듯 탄성이 높으면 동시에 단단하고 타이트하다.
테오도어 쿠렌치스/뮤지카에테르나 – 모차르트 : 레퀴엠 중 ‘Tuba mirium’
아마도 코드 Dave 등 디지털 기기를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입체감, 홀로그래픽으로 펼쳐지는 정위감에 혼을 뺏긴 적이 있을 것이다. 재밌는 건 아날로그 앰프에서도 이런 특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각 성부의 위치가 너무나 또렷해 새하얀 캔버스 위에 점을 찍어놓은 듯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지며 악기들이 손에 잡힐 듯하다.
총평
코드 일렉트로닉스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던 당시를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한다. 이전 세대의 선배 브랜드가 내놓는 앰프들이 거대한 사이즈에 무겁고 많은 열을 동반하던 당시였다. 크렐, 마크 레빈슨, 볼더, 그리폰 등 대부분 그런 머슬카 같은 앰프를 들여놓아야만 뭔가 권위가 서고 오디오는 으레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혜성처럼 등장한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지금으로 치면 퓨리파이 아이겐탁트 같은 앰프가 등장한 느낌이었다. 이후 설계를 보고 클래스 AB에 MOSFET을 사용하면서 전원부는 SMPS로 설계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또 한 번 놀랐다.
지상에서 가장 빠르면서 투명했고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에 작은 저음압의 북셀프나 집채만 한 스피커를 강력하게 제압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음악성이라는 애매모호한 지표에서 점수를 깎아먹곤 했다. ULTIMA는 여전히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전통을 잇고 있다. 하지만 이젠 초스피드, 광대역에 더해 음악성까지 겸비한 모습을 재탄생했다. 코드 일렉트로닉스가 구축한 ULTIMA 유니버스로의 초대를 통해 그 저력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요컨대 코드의 2막 1장 ULTIMA 유니버스의 축약본이라고 칭할만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Frequency response : 10 Hz-200 kHz +/- 3 dB
THD : 0.01 % 20 Hz-20 kHz
Signal-to-noise ratio : 90 dB on all inputs
Input impedance : 100 kΩ
Input maximum voltage : 3 V RMS
Output maximum voltage : 35 V RMS
Gain : 21dB
Channel separation : 100 dB
Operation voltage : 80-250 V AC auto-switching
Power output : 125 W into 8Ω
Power consumption : 200 W
Dimensions with included Integra legs: 13 cm(H) x 48 cm(W) x 38 cm(D)
Dimensions with optional side blocks : 11 cm(H) x 43 cm(W) x 38 cm (D)
Weight: 14.75 kg
제조사 : Chord Electronics Ltd(UK)
공식 수입원 : ㈜ 웅진음향
공식 소비자 가격 : 17,6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