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의 헌정
오디오는 음악을 재생하는 도구다. 하지만 오디오의 하드웨어 부분만 놓고 보자면 전기와 전자, 진동 등 지독히 과학적인 산물이다. 음악을 알지 못하더라도 오디오를 만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공간들, 예를 들어 동네 어귀를 지나다가 마주치는 카페나 음식점에서 대충 흘러나오는 스피커 정도는 충분히 만든다. 오디오 수리점에 가면 거의 스피커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스피커를 모니터로 사용하면서 앰프를 수리하고 있다. 작은 클럽 같은 곳에선 고막이 손상될 듯한 소리를 내는 스피커로 도배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음악 자체를 뮤지션이 의도한 감성과 녹음, 믹싱,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의도한 밸런스로 들려주는 오디오는 과학으로만 만들 수 없다. 얼마 전 YG 어쿠스틱스와 MSB 테크놀로지 등 현존 최고 수준의 하이엔드 오디오를 만드는 곳에 가보았다. 수십억 원대 CNC 머쉰 등이 즐비한 공장을 지나 맨 마지막으로 돌아본 곳은 역시나 청음실이었다. 그곳에서 개발 과정 중간마다 음악을 재생하고 튜닝하며 의견을 나눈다.

파인 튜닝은 마치 와인의 소믈리에나 악기의 조율사가 하는 일과 공통분모를 갖는다. 피아노 조율사 울리히 게르하르츠라는 임윤찬의 경우 따뜻한 음색을 좋아해 그 방향으로 조율해준다고 한다. 엔지니어들이 대체로 그렇듯 데이터와 이론으로 중무장하지만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예술과 관련된 컨텐츠를 다루는 부문에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음악이 그렇고 사진, 영상이 그러하다. 오디오, 카메라 등이 다른 가전과 구분되는 이유다. 과학과 기술은 모두 음악에의 헌정 아래 음악이라는 소실점으로 집결해야 한다.

스위스 하이엔드의 심장 – 스텐하임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만든 스피커와 그렇지 못한 스피커 사이엔 거의 백만 광년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BBC 방송국에서 일했던 에니지어들이 만들었던 스펜더, 하베스, KEF 같은 스피커들, 그리고 적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라함 등은 대표적이다. 또한 명품 피아노 브랜드 스타인웨이와 손잡은 스타인웨이 링돌프, 피아노의 한 축을 대표하는 야마하 등은 음악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했고, 그 바탕에는 진보적인 기술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베리티오디오 그리고 락포트를 꼽고 싶다. 더불어 또 하나를 꼽으라면 스텐하임을 꼽고 싶다.
골드문트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2010년 탄생한 스텐하임은 빼어난 기술력과 튜닝 능력을 가졌지만 자금난 등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장 파스칼 판차드라는 인물. 당시 나그라에 소속되어 있었던 그는 음악 관련 일을 꾸준히 해왔던 인물이다. 음악 프로듀서 혹은 몽마르트 재즈 페스티벌을 기획했던 경험도 있다. 음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우연히 스텐하임 스피커를 듣고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는 결국 스텐하임을 인수하게 된다. 스텐하임의 2막 1장이 열린 순간이다.

Alumine Five SE
스텐하임의 2막은 이후 Alumine 시리즈를 완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이후 Ultime, Statement 같은 초하이엔드 스피커 프로젝트까지 이어지는 서사를 완성한다. 스텐하임의 역사를 열어젖혔던 Alumine Two는 SE 버전으로 탈바꿈되었으며 Alumine 시리즈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Two.Five, Three, Five까지 이어지며 플래그십에서 방점을 찍은 상태다. 음악계에서 활동했던 장 파스칼 판차드는 스위스 출신의 빼어난 엔지니어를 휘하에 두고 스피커 개발에 매진했다. 그러나 단순히 스펙 제일주의로 흐르지 않았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쾌감, 감동은 결국 사람이라는 종착지에 귀결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스텐하임 스피커 개발의 마지막 단계에서 파인 튜닝을 거칠 때 음악가, 프로듀서, 녹음 관련 엔지니어 등 까다로운 입맛의 리스닝 그룹을 운영하는 이유다.

이번에 청음한 스피커는 Alumine Five SE다. 이미 Two.Five 스피커의 소리에 반해 나의 시청실에 Two.Five 스피커를 들인지 약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흘렀고 당연히 Five SE에 대한 궁금증은 자꾸만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피커 수입사인 HMG의 시청실에 당도하자 스피커는 이미 셋업되어 있었고 그 당당한 풍모는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120cm 정도의 키에 무게는 채널당 무려 100KG에 이르는 대형기였다. 드라이브 유닛은 채널당 총 네 개로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각 한 발, 그리고 베이스 우퍼 두 발이 그 주인공이다. 위풍당당한 풍모에 더해 가까이에서 보면 전면 배플을 감싼 고급스러운 가죽과 자수로 뜬 스텐하임 로고가 아름답다. HMG에서 특주한 버전이라고 한다.

우선 드라이버의 경우 트위터는 패브릭 소재의 소프트 돔 트위터를 채용했다. 노르웨이 SEAS에 특주한 것으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트위터다. 소프트 돔 트위터 중에선 고역 직진성, 선형성이 뛰어나면서도 싱싱하며 끝은 약간 달콤한 맛이 나는 트위터다. 미드레인지는 6.5인치 구경으로 펄프 콘을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PHL에 특주한 드라이버로서 이러한 알루미늄 인클로저를 사용한 스피커에선 의외의 선택이다. 대체로 폴리프로필렌, 혹은 카본, 알루미늄 진동판 등 펄프보다 더 강도가 높고 가벼운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베이스 우퍼의 경우 동일한 펄프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구경이 무려 10인치로 스피커의 사이즈를 감안한다고 해도 최근 보기 힘든 대구경이다.

이렇게 총 네 개의 유닛을 사용한 본작의 설계는 3웨이, 4스피커 형식이다. 하지만 스텐하임의 설계 비법은 여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한다. 바로 인클로저와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다. 일단 인클로저는 알루미늄을 고정밀 가공 과정을 통해 생산한다. 마감을 보면 굉장히 고급스럽게 처리했는데 집 안에 들이면 가구, 인테리어와 어울려 무척 럭셔리한 분위기를 자아낼 듯하다. 그러나 매지코, YG 어쿠스틱스 같은 금속 스피커들과 궤를 달리하는 설계다. 일단 전면 배플이 2cm, 측면은 1.5cm 정도 두께로 얇은 편이다. 마치 BBC 엔지니어들의 ‘Thin wall’, 즉 ‘얇은 벽’이론을 연상시키는데 스텐하임은 목재보다 강도는 높이면서도 내부 용적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알루미늄을 사용했다고 한다. 내부 용적을 늘리고 공기의 이동량을 늘려 수월한 드라이빙을 가능하게 가하고 풍부한 저역과 다이내믹 헤드룸을 확보하고 있다.

로딩 구조도 독특하다. 일단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우퍼의 경우 별도의 챔버에 가둔 밀폐형 설계다. 저역의 후방 에너지가 내부에서 섞이면서 인간의 귀에 가장 예민한 대역을 재생하는 트위터와 미드레인지의 소리를 훼손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다. 더불어 저역 쪽은 포트 구조를 취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면 포트가 두 개다. 상단 우퍼 위에 하나, 그리고 하단 우퍼의 아래에 하나 등 두 개로 저음 반사형 타입을 설계했다. 이로서 스텐하임 Alumine Five Se는 최저 28Hz 초저역부터 35kHz에 이르는 초고역까지 재생하는, 저역 제한이 거의 없는 풀레인지급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를 완성했다.

셋업
스텐하임은 고효율, 고감도를 추구한다. 공진을 억제하면서도 유닛 대비 내부 용적을 극대화시키면서 드라이버도 패브릭, 펄프 등 고전적인 소재를 사용했다. 베릴륨, 다이아몬드 트위터가 흔해진 요즘 그들은 되레 이런 고전적인 소재들을 통해 착색 없이 더 순수한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공칭 임피던스는 8옴, 감도는 무려 94dB로 제어가 쉬운 스펙을 보여준다. 스텐하임에서 공개한 스펙에서 추천 앰프의 최소 출력이 무려 20와트 정도로 낮은 것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참고로 이번 테스트에 활용한 제품 목록은 아래와 같다.

※ 테스트 시스템
네트워크플레이어: 오렌더 W20SE
DAC : 브리카스티 M1
허브 : Silent ANGEL Bonn NX
클럭 : SRS PERF10
프리앰프 : 마크레빈슨 No.52
파워앰프 : 마크레빈슨 ML-50 (바이앰핑)
청음

그레고리 포터 – Holding on
패브릭 돔 트위터를 채용한 Alumine Five SE는 음색 면에서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처럼 고운 입자감을 선보인다. 피로감 없이 편안하게 오르내리는 중, 고역 덕분에 음악에 대한 몰입감이 좋은 편. 그러나 해상도 또한 높은 편이어서 절대 악기나 보컬이 특정 대역에서 마스킹되거나 뭉개지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베릴륨이나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고 짜릿한 고역은 아니지만 대신 무척 상쾌하며 특히 뒷맛에 약간 달콤한 맛이 있어 예쁜 사운드를 내준다.

아트 페퍼 –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스텐하임은 소프트 돔 트위터와 펄프 소재 미드, 베이스 우퍼의 조화라는 하나의 레퍼런스를 만들었다. 부드러운 고해상도를 만들어내는 소프트 돔 트위터는 그 바로 아래 대역을 맡은 펄프 콘 미드, 베이스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냉정하게 칼날처럼 배어버린 소리가 아니라 악기의 주변부에 기분 좋은 잔향이 좀 더 이어진다. 이러한 잔향 타임은 음악에 더욱 흥을 돋운다. 특히 색소폰, 더블 베이스 등 모든 악기들의 음색이 매우 개성 넘치게 표현되면서 뚜렷하게 구분된다. 과도한 쾌감보단 포근하고 아름다운 잔향 특성은 마치 실연을 듣는 듯하다.

드림 시어터 – Pull me under
Alumine Five SE는 포트를 우퍼 위, 아래로 두 개씩 마련해 저역 확장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두꺼운 알루미늄으로 단단히 고정하면서도 내부 용적을 극대화시켜 저역 핸들링을 쉽게 하고 자연스러우면서 깊고 웅장한 저역을 구사한다. 매지코나 락포트, YG 어쿠스틱처럼 당겨진 저역의 반대편에 있다. 따라서 20Hz 초저역까지 완벽히 도달하진 않지만 30Hz 후반 정도까진 두텁고 꽤 강력한 저역을 시청실에 채운다. 질감이 좋은 저역으로 실제 콘서트 홀에서 듣는 듯한 싱싱한 느낌이다. 사실 이런 저역은 Two.Five에선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마크 레빈슨 ML-50 네 대를 사용해 바이앰핑 세팅도 크게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에드가 마이어, 벨라 플랙 & 마이크 마샬 – Zigeunerweisen
중역은 Alumine Five SE의 핵심 강점이다. 6.5인치 PHL 펄프 콘 드라이버는 보컬과 현악기의 톤을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재현해준다. 펄프 진동판은 대체로 부드럽게 사각거리는 질감과 포만감 넘치는 질감이 매력적이지만 다소 건조할 수 있는 약점도 있다. 그러나 ‘Zigeunerweisen’를 들어보면 바이올린 등 현악기의 섬세한 질감과 따뜻한 울림이 싱싱하게 울려퍼진다. 약간의 기분 좋은 착색은 있으나 악기의 디테일과 개성은 뚜렷하다. 요컨대 현기증이 날 정도의 입체감보다는 음색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운드다.

총평
스텐하임 Alumine Five SE는 독보적인 드라이버의 투입과 인클로저 디자인을 통해 유럽 하이엔드 스피커의 모든 것을 담았다. 알루미늄 캐비넷과 패브릭 돔, 펄프 콘 드라이버 소재의 조화, 높은 감도, 그리고 비범한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설계는 기술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음악성을 획득하고 있다. 깊고 잘 컨트롤된 저역, 자연스러운 중역, 부드러운 고역으로 균형 잡힌 사운드를 제공하며, 커다란 다이내믹과 음악적 몰입감은 이 스피커의 핵심 매력이다. 서브우퍼 없이도 풍부한 저음을 원하고, 보컬과 악기의 디테일을 중시하며, 피로감 없는, 음악적 사운드를 찾는다면 Alumine Five SE는 탁월한 선택이다. 스텐하임은 기술과 음악의 균형을 통해 하이엔드 사운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시청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Alumine Two.Five와 함께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만한 스피커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Passive 3-way floor-standing speakers
2x 25cm (10”) woofers, 1x 16.5cm (6.5”) medium driver, 1x 2.6cm (1”) soft dome tweeter
Front laminar port bass reflex design
Full aluminium construction
4 independent chambers
Phase coherent crossover employing high grade, audiophile components
Frequency response : 28Hz to 35kHz
Sensitivity : 94dB SPL, half space
Power handling : 200W RMS, 400W Peak
Minimum recommended power: 20W
Nominal impedance: 8 Ohms (minimum 3 Ohms)
Dimensions:
Five and Five SE: Width 28cm (11”) x Depth 38cm (15”) x Height 120cm (47.2”)
Five SX and Five LE with platform: Width 48cm (19”) x Depth 38cm (15”) x Height 127-130cm (50-51.2”)
Weight: Five and Five SE: 100kg (220.5lbs) each Five SX and LE with platform: 139kg (306lbs) each
Available in metallic Light Grey or Dark Grey with black front and rear
Extended Warranty: 5 years (by registration)
제조사 : STENHEIM (스위스)
공식 수입원 : HMG 오디오비주얼(www.hmgav.co.kr)
공식 소비자 가격 : 120,0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