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 마니아
종종 ‘세대를 빛낸 명기’ 목록에 들어가는 스피커를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하이엔드 오디오라는 기치 아래 전 세계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발표했던 스피커들은 현재 시점에서 기억해봐도 대단한 예술품들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은 B&W(Bowers&Wilkins), 미국은 윌슨 오디오(Wilson Audio), 이탈리아엔 소너스 파베르(Sonus Faber)가 있었다. 그리고 독일 MBL과 스위스 골드문트(Goldmund) 등이 우선 떠오른다. 각국의 음악과 문화가 사운드라는 공통분모 아래 모여들었고 기라성 같은 제품들이 탄생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현재 하이엔드 오디오는 기술적으로 진화했지만 그 당시 빛나는 창의성과 정체성 안에서 털끝만큼도 벗어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지금도 뒤져보면 윌슨 오디오의 스테레오파일 기사가 나온다. 와트/퍼피(Watt/Puppy) 시스템 5가 5.1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소식으로 14,900불에서 16,290불로 가격이 올랐고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기사다. 1990년대 후반임을 감안하면 윌슨 와트/퍼피 5.1은 충격적인 사운드를 내주는 스피커였다. 28hz에서 21kHz까지 광대역을 정확히 재생하기 위해 저역 모듈을 분리형으로 설계했고 유닛이나 인클로저 구조 등 많은 부분들은 향후 하이엔드 스피커 설계의 영감이 되었다.
종종 지인의 시스템을 구경하러 가면 지금도 윌슨 오디오의 구형 스피커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생각나는 건 약 6~7년 전. 지인의 시스템을 구경하러 갔다가 와트/퍼피 5.1을 발견하고 잠시 들어보았다. 포칼 역돔 트위터가 내주는 소리는 여전히 반짝였고 단단한 저역은 출시된 지 20년는 될 법한 시간의 간극을 가뿐히 건너뛰었다. 이후에도 몇 번 들어본 와트퍼피 시리즈 6, 7 그리고 이름을 바꾸어 출시한 사샤(Sasha)는 꽤 많은 음질적 변화가 있었지만 기본 골격은 유사했다. 수십 년간 오랜 윌슨 마니아들 줄곧 끌고 오는 메이커엔 분명 그에 걸맞은 매력이 있다.
멀리 시간 축을 되돌려 다시 현재, 윌슨 오디오는 대단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소피아나 사브리나(Sabrina) 같은 하위 모델들이 생겼고 위로는 알렉산드리아 XLF(Alexandria XLF) 같은 모델이 출시되면서 실질적 레퍼런스로 활약했다. 게다가 몇 년 전엔 드디어 WAMM(Wilson Audio Modular Monitor)의 최신작을 내놓으면서 윌슨 오디오가 주창했던 스피커 설계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창립자 데이빗 윌슨이 세상을 떠났고 다행히 아들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라인업의 변화라면 무엇보다 과거 와트/퍼피와 알렉산드리아 XLF 같은 모델들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모델들이 속속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 중 알렉시아(Alexia)라는 모델은 중요한 탐구 대상이었고 이후 알렉스(Alexx)까지 이어지는 윌슨 패밀리의 중요한 멤버로서 기능해왔다. 그리고 현재 알렉시아2(Alexia 2)가 출시된 상태. 10인치와 8인치 등 두 개의 우퍼와 7인치 미드레인지 그리고 1인치 트위터를 탑재한 이 스피커는 윌슨의 플로어스탠딩치고는 89dB라는 낮은 능률과 4Ω이라는 공칭 임피던스로 여전히 윌슨 중에서도 난공불락의 영역에 있다.
with Chord Electronics ULTIMA
하지만 산은 정복하라고 있다고 했듯 드라이빙하지 못한 스피커는 세상에 없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19Hz~32kHz에 이르는 광대역 스피커로서 과거 와트/퍼피 시절을 생각한다면 현역 윌슨 패밀리가 대체로 그렇듯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중, 고역을 내준다. 더불어 저역도 좀 더 자연스러워졌고 부드러운 슬램, 실제 윌슨 스피커 중 하나인 그랜드 슬램 같은 저역을 구사해준다. 물론 사샤처럼 쉽게 그런 저역을 내기란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스피커다.
그래서 매칭 포인트도 과거 윌슨 제품과는 다르다. 사실 윌슨 하면 떠오르는 앰프 군들이 포트폴리오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가장 대표적으로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의 스테레오, 모노 제품군들 그리고 패스랩스(Pass Labs)도 떠오른다. 말끔하고 정돈된 힘과 질감의 마크 레빈슨 혹은 좀 더 열정적이고 후끈하게 달아오른 패스랩스가 아마도 양 쪽의 취향에서 분수령을 이루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나 더 꼽자면 스펙트랄(Spectral) 정도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더불어 의외로 VTL이나 오디오 리서치(Audio Research) 등 진공관 앰프가 튜닝에 따라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더 매끄럽고 부드러운 톤의 중, 고역과 절제된 저역의 현역 윌슨은 다르다. 조금은 귀가 뜨거운 포칼 트위터의 고역과 엄청난 텐션으로 조여진 저역의 구형과 달리 더 많은 앰프들을 자신의 품으로 데려올 수 있다. 이번에 매칭을 시도한 건 코드 울티마(ULTIMA). 사실 와트/퍼피 시절엔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었던 코드여서 윌슨과 코드와 매칭은 국내/외로 그리 많이 알려진 것이 없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매칭이 될 듯했고 그 결과는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드 울티마는 기존 코드 일렉트로닉스 세대를 진일보한 앰프다. 모노블럭 파워앰프를 기반으로 8Ω 기준 780W, 4Ω에선 1,400W를 출력하며 2Ω에서 2,500W를 내주는 괴물이다. 초고속으로 작동하는 스위칭 전원부에 슬라이딩 방식의 클래스 AB 증폭을 하며 출력단엔 채널당 특주 MOSFET 출력석 64개를 탑재했다. IMD –127dB, S/N 비 –117dB, 고조파 왜곡율 0.002% 수준으로 광대역, 대출력 앰프면서 매우 깨끗한 재생 음을 획득하고 있는 모습.
가장 획기적인 변화라면 ‘듀얼 피드 포워드’라는 새로운 회로의 도입이다. 에식스 대학의 말콤 혹스포드 박사의 논문에서 착안해 벨 연구소의 밥 코델(Bob Cordell) 박사가 진화시킨 기술. 그리고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이를 좀 더 혁신해 울티마에 탑재했다. 이 기술은 밥 코델 박사의 저서에 좀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MOSFET 앰프에서 크로스오버 왜곡을 극단적으로 낮추어 다이내믹스 등 여러 부분에서 음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실제로 제짝 울티마 프리앰프와 함께 이전에 PMC 페네스트리아(Fenestria) 등의 스피커에서 경험한 앰프의 성능은 더 강력하고 더 유연하며 더 깊고 조용했다.
청음
테스트는 린(Linn) 클라이막스 DSM(Klimax DSM)을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활용해 NAS에 저장한 음원을 재생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재생 관련 앱은 린 카주(Kazoo)를 사용해 동일한 곡을 반복 청취하면서 운용해보았는데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지만 윌슨 알렉시아 2를 제어하는 코드 울티마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로 공정한 비교를 위해 코드 울티마 프리앰프의 EQ는 디폴트 상태로 테스트했다.
윌슨 알렉시아 2는 사실 그 이전 버전 이후 처음인데 꽤 밝고 풋웍도 좀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 위상 오차도 거의 드러나지 않아 매우 명료한 포커싱 능력이 기선을 제압했다. 켈리 스윗의 ‘Nella fantasia’ 같은 곡을 들어보면 보컬의 순도가 굉장히 높으면서도 무척 자연스러운 트랜스페어런시가 으뜸이다. 본래 알렉시아 2의 중, 고역 해상력과 디테일도 뛰어나지만 코드 울티마와 매칭에선 음원이 가진 정보량의 바닥까지 긁어낸 듯한 해상력을 보여주었다.
“보컬의 순도가 굉장히 높으면서도 무척 자연스러운 트랜스페어런시가 으뜸이다.
코드 울티마와 매칭에선 음원이 가진 정보량의 바닥까지 긁어낸 듯한 해상력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몇 가지 슈퍼 트위터를 테스트해보았는데 울티마가 이끄는 알렉시아 2의 사운드에선 별도의 슈퍼 트위터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비에 포르탱의 앙상블 마스크가 연주한 바이클라인의 ‘엔카에니아 무지체스’를 들어보면 알렉시아 2가 표현하는 각 악기 소리의 외곽선에 에지를 더해 더 선명하게 포인트를 준다. 한편 아웃포커싱을 높여 동일한 녹음도 훨씬 더 에너지 넘치게 전달해준다. 강, 약 세기의 폭이 더 넓고 정밀해 예리한 사운드를 표현해주는데 해상도와 온도감은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각 악기 소리의 외곽선에 에지를 더해 더 선명하게 포인트를 준다.
한편 아웃포커싱을 높여 동일한 녹음도 훨씬 더 에너지 넘치게 전달해준다.”
이전까지 볼륨을 35 아래에서 재생하다가 딕 하이먼의 ‘Topsy’를 재생하면서 36 정도 레벨로 올렸다. 레퍼런스 레코딩스 녹음의 낮은 게인 값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정은 꽤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본래 다이내믹레인지 폭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녹음인데 피아노의 정확한 옥타브 이동뿐만 아니라 차분하면서도 세밀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표현을 즐길 수 있었다. 무대도 뒤로 더 물러났지만 작고 왜소한 소리들도 틈새에서 반짝이면서 그 존재를 알렸다. 볼륨에 따른 해상력, 다이내믹스 감쇄는 덜한 편이며 대신 음원의 여러 특성들엔 무척 민감한 앰프다.
“피아노의 정확한 옥타브 이동 뿐만 아니라 차분하면서도 세밀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표현을 즐길 수 있었다.
무대도 뒤로 더 물러났지만 작고 왜소한 소리들도 틈새에서 반짝이면서 그 존재를 알렸다.”
그만큼 음원의 정보를 정밀하게 이끌어내 번개처럼 빠르고 역동적이며 소름이 돋을 만큼 타이트한 긴장감을 가진 앰프다. 대편성에선 코드 울티마가 스피커를 지배하는 능력이 상당히 높다는 걸 더욱 더 체감할 수 있었다. 이반 피셔 지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로 듣는 의 ‘Infernal dance’가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이런 대편성 녹음에서 코드 울티마는 소스기기에서 받은 정보를 가장 큰 폭의 다이내믹스 안에서 여유 있게 소화한다. 그리고 극단적인 강, 약 폭 안에서 바위 같은 저역을 이끌어낸다. 확실히 음색 위주의 소편성보단 오케스트라 녹음 등 대편성에서 그 능력과 특질이 명백히 드러났다.
“대편성에선 울티마가 스피커를 지배하는 능력이 높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극단적인 강, 약 폭 안에서 바위 같은 저역을 이끌어낸다.”
총평
윌슨 알렉시아 2는 마치 로키 산맥의 웅장하고 장엄한 풍경을 떠올리며 윌슨의 상위 스피커를 성공적으로 축소해냈다. 전작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충분히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반전은 그것이 코드 울티마를 통해서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모든 음악을 거의 실사이즈로 품어낼 듯했지만 한발자국도 터주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알렉시아 2이기 때문에 울티마의 활약은 더욱 돋보였다.
코드 울티마 앞에서 알렉시아 2는 넓은 사운드 스테이징을 만들어내면서 큰 폭의 풋웍도 빠르고 역동적으로 표현해주었다. 팽팽한 대결 구도나 어떤 짓누르는 불편함 대신 화해와 공존의 분위기로 훌륭한 밸런스가 돋보인 조합이었다. 알렉시아 2와 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이번에 시청한 세 개 스피커 중 매칭 측면에선 가장 뛰어난 사운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사진 : 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