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럭이 몰고 온 나비효과
GIGO
스튜디오든 홈 오디오든 소리는 기기 자체의 성능은 물론 이를 다루는 사람의 취향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저 아무런 맛이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다면 자판기 커피만으로 괜찮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그 원리를 이해하고 직접 그 과정에 뛰어들어야한다. 균질하게 하향 평준화되어버린 자판기 커피나 스틱 커피로는 자신만의 맛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핸드 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원두를 고르고 드리퍼와 그라인더를 준비하고 필터와 커피잔을 선택하는 일은 마치 스피커, 앰프, 소스기기 그리고 케이블 등 액세서리를 고르고 조합하는 일과 유사하다.
그 중 재생음을 즐기는 일반적인 음악 애호가에 있어서 음원의 출발점이 되는 소스기기의 중요성은 수없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른바 ‘GIGO(Garbage In, Garbage Out)’라는 말은 우연히 나온 말이 아니다. 아날로그 엘피가 그 속도에 따라 피치가 바뀌듯, 또는 와우&플러터의 정확도에 따라 음악의 뉘앙스가 바뀌듯 디지털에서도 기본이라는 것이 있다. 바로 클럭이라는 것. 우리가 듣는 모든 음원들은 스튜디오와 콘서트 현장의 시간을 옮겨온 것이다. 이 때 시간과 위상은 그 음악을 되돌리는 데 필요한 기준이자 베이직이 되어준다.
시간축 위에서 명멸하는 음악은 디지털 도메인에서 시간을 정해주는 클럭이 종종 에러를 일으키면 음악은 죽은 듯 밋밋해지고 거칠어진다. 때로 스튜디오에서 믹싱 작업의 클럭 동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때 디지털은 정신을 잃고 파괴되어버린다. DAC나 ADC에서 내부 클럭의 정밀도가 중요한 이유지만 종종 자판기 커피 같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이를 간과하고 있다.
그림오디오
최근 그림오디오에서 만든 클럭의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운드트리 스튜디오의 마스터링 룸에 방문했다. 하지만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림오디오의 클럭 이전에 LS1 BE 액티브 스피커의 최신 버전이었다. 그림오디오는 이전에도 상당히 궁금했던 스피커를 만드는 회사였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엔지니어 네 명이 설립한 그림오디오는 필립스의 본고장이다. 그만큼 유능한 엔지니어를 꾸준히 배출하는 곳으로서 현재 그림오디오는 사운드 엔지니어 엘코 그림이 주재하고 있다. 특히 그림오디오의 공동 설립자 브루노 푸제이는 디지털 분야에서 눈에 띄는 천재 엔지니어다.
대학 졸업 후 필립스에 취직한 후 UcD라는 클래스 D앰프를 개발했고 이후 하이펙스로 자리를 옮겨 현재 하이엔드 오디오에도 다수 채용하는 Ncore 증폭 모듈을 개발한 것도 그였다. 최근 환상적인 성능의 Puri-Fi 증폭 모듈 개발은 물론이고 몰라-몰라 브랜드의 창업까지 그가 이어온 길은 최신 디지털 기술의 핵심 지점들이었다. 바로 그가 공동 설립자로 이름을 올린 브랜드가 바로 그림오디오다. 그의 이력을 알고 있었던 내게 LS1 BE와의 조우가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클럭의 신세계
그림오디오가 클럭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음질, 광범위하게 음악에 끼치는 지터의 영향에 대한 치명적인 오류와 그로 인한 진지한 고민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지터의 원흉이 되는 클럭에 관심을 돌려 가장 안정적인 클럭 제너레이터를 개발하시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히 컨슈머용 클럭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입/출력, 위상, 호환성까지 총괄하는 클럭 개발 프로젝트였다.
그림오디오 개발진은 CC1 클럭을 출시 후 V2까 진화시켜왔다. 기본적으로 CC1 V2는 마스터 클럭 제너레이터면서 발생시킨 클럭 신호를 여러 디지털 장비들과 동기화시킬 수 있는 다재다능한 기기다. 기본적으로 고정밀 클럭 오실레이터로서 10Hz 이상의 모듈레이션 주파수에서 1ps(1조분의 1초) 이하의 정밀도를 갖는다. 10Hz 주파수에서 무려 90dB 지터 억제가 가능한 뛰어난 PLL 리클럭킹이 가능하므로 다양한 기기와 연계시켜 고정밀 클럭 신호로 동기화가 가능하다.
완성도를 위해 그림오디오는 오실레이터, 즉 클럭 발진기는 물론이며 전원부 등 모든 서킷 설계를 디스크리트 방식으로 진행했다. 클럭뿐만 아니라 전원부가 지터에 끼치는 영향도 모두 고려한 것으로 무척 얇고 단순한 외관에 비해 매우 치밀하게 설계한 제품이다. 예를 들어 이 얇은 섀시 안에 무려 700개 이상의 부품들이 가득하며 125개의 개별 소자들은 하나하나 그림오디오가 까다로운 테스트 과정을 거쳐 탑재한다.
제품을 처음 접하면 의외로 천연의 느낌을 품은 전면 플레이트와 마주하게 된다. 디지털 기기들, 더군다나 스튜디오에서도 사용할 것을 전제로 제작한 제품치고는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꽤 고급스러운 소재의 아바치 원목을 정교하게 커팅한 것으로 스튜디오용은 랙 마운트 형이며 하이엔드 오디오 사용자를 위해서는 랙마운트 손잡이를 제거한 형태로 제작된다. 전면의 조작 버튼은 아주 간결하다. 일단 마스터/슬레이브 전환 버튼이 있고 기준 클럭을 44.1kHz 및 48kHz 두 개로 나누어놓은 후 우측에서 1배, 2배, 4배 승수를 눌러 선택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최대 176.4kHz 또는 192kHz까지 대응 가능하다는 의미다.
후방을 보며 이 제품이 얼마나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있는 화려한 입/출력 인터페이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선 BNC가 기본 단자로 채택되어 있는데 그룹 1/2로 나누어 각각 12조, 4조의 BNC 커넥터를 배열해놓고 있는 모습이다. 총 16개의 워드 클럭을 출력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워드 클럭 입력이 가능한 BNC 입력단은 물론 AES3 규격의 단자를 통해 워드클럭 입/출력도 가능하도록 배려해놓았다.
시청
이번 테스트는 사운드트리의 마스터링 룸에서 진행했다. 그림오디오의 LS1 BE라는 베릴륨 버전 액티브 스피커를 중심으로 스위스 바이스의 오디오 인터페이스 AFI1을 활용해 아주 간결하지만 순도 높은 모니터링 사운드를 구현했다. 그리고 아이맥 Pro에서 Vox 뮤직 플레이어를 통해 음원을 재생했다. 그림오디오 CC1 V2 클럭 제너레이터는 75옴 규격 BNC 디지털 케이블을 활용해 AFI1에 적용해 테스트했다. 준비해간 USB 메모리에 담긴 각 음원에 대해 CC1 V2를 적용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를 비효해가면서 이 클럭 제너레이터의 성능을 가늠해보았다.
대개 디지털 기기의 내장 클럭보다 더 뛰어난 외장 클럭을 연결할 경우 배경 정숙도의 상승을 이야기하곤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이 부분은 일관적이었고 CC1 V2에서도 정숙도의 향상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라 맥라클란의 ‘Angel’(16/44.1, flac)에서도 칠흑 같은 배경 정숙도는 음악을 수면 아래에서 오롯이 끌어올려 피아노 타건, 보컬의 음상을 더욱 명료하게 들려준다.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만큼, 마치 안개가 걷힌 듯 또렷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배경 정숙도가 향상되면서도 잔향이 억제되지 않아 앰비언스는 더욱 잘 살아난다.
부시 트리오의 드보르작 피아노 삼중주 ‘Dumky’(24/96, flac)에 CC1 V2를 적용할 경우 역시 배경은 적막강산처럼 조용해지면서 음악에 몰입도를 높여준다. 특히 도입부의 현악 사운드는 쉽게 탈색되어 끝단이 거칠게 엉키는 경우가 많은데 CC1 V2 적용시 세밀하게 가닥을 정돈해준다. 따라서 각 악기들의 움직임이 더욱 또렷하게 관찰되며 청감상 강, 약 대비를 통한 다이내믹스 향상도 눈에 띈다. 클럭 정밀도가 높아질 경우 음색적인 부분에선 마치 옷에 생긴 얼룩이 지워진 듯한 느낌을 준다. CC1 V2를 인한 음색의 변화는 번져버린 음의 알갱이들이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성능이 좋지 않은 외장 클럭의 경우 배경은 정숙해지지만 배음, 다이내믹스를 깎아내며 모든 음악의 생동감까지 약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CC1 V2는 싱싱한 생동감을 오히려 배가시켜주었다. 예를 들어 라드카 토네프의 ‘Than moon is harsh mistress’(16/44.1, flac)’를 들어보면 피아노와 보컬 등 아주 간략한 악기 구성이어서 이런 특성을 무척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오래된 엘피의 먼지를 털어내고 소릿골의 먼지를 닦아 재생하는 듯한 느낌이며 소리를 한층 상쾌하게 변모한다.
시간축 변화는 소리의 어택, 위상 등 디지털 기기의 성능에서 대단히 광범위한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것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 클럭이다. 특히 다양한 악기가 복잡다단한 악곡 속에 층층이 중첩되면서 녹음된 대편성 교향곡을 들어보면 어택부터 릴리즈에 이르기까지 엔벨로프 특성 등의 표현이 대폭 향상된다. 예를 들어 맨프레드 호넥 지휘,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3번 1악장(24/192, flac)에서 다양한 아티큘레이션이 보다 선명하게 표현되어 박진감 넘치며 역동적인 표현을 배가시킨다. 더불어 무대의 정위감과 심도의 향상도 돋보인다.
총평
여러 하이엔드 오디오용 클럭도 출시중이며 스튜디오에선 훨씬 더 많은 클럭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클럭 동기화가 아닌 음질 자체의 상승에 대해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클럭에 대한 기본 이론엔 모두 동의하지만 엔지니어마다 외부 클럭의 음질 상승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로컬 클럭과 외장 클럭 사이의 성능 차이 그리고 상호 연결 인터페이스로 인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모든 면에서 CC1 V2는 숨겨져 있던 음원의 디테일, 해상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다방면에 걸친 음질 향상을 이끌어 내주고 있다.
디지털에서 외장 클럭까지 투입하는 것은 커피로 치자면 적당한 원두를 사용해 핸드 드립한 커피가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원료가 되는 생두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생두의 종류와 로스팅 방식 그리고 물의 온도 및 그 양, 추출 시간까지 고려해주는 세밀하고 예민한 작업이다. 요컨대 아무리 뛰어난 칩셋과 회로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기반이 되는 시간축이 흔들릴 때 그것은 마치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무주공산이 될 것이다. 그림오디오 CC1 V2는 그 기준을 되살리는, 아주 근본적인 부문에서 드라마틱한 사운드 차이를 몰고 왔다. 마치 나비의 날갯짓 몇 번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몰고 온 것처럼.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Specifications
Word clock input impedance 75 Ohm.
Word clock input sensitivity better than 1Vpp.
Word clock output impedance 75 Ohm or 25 Ohm (‘low’) on selected channels.
Word clock output voltage, terminated 2.7 Vpp, unterminated 5.5 Vpp. DC coupled.
Latency word clock in – word clock out: adjusted to less than 50 ns, but may be
larger due to input clock jitter.
Internal intrinsic clock jitter 2,1 ps RMS (above 10 Hz).
Clock frequency master mode: 1, 2 or 4 times 44.1 or 48 kHz ± 10 PPM, 5 – 50 °C.
PLL performance (slave mode):
90 dB attenuation @ 10 Hz, improving at 60 dB/dec above that.
Pullability of clock frequency: ± 50 PPM (conform AES11 Grade 2).
Maximum ambient temperature for operation: 50 °C.
Life expectancy power supply electrolytics > 45.000 hours.
Power supply voltage range +/- 20%
Fuses:
120V (USA): fuse 500mA
100V (Japan): fuse 500mA
230V (EU): fuse 250mA
Weight: 4 kg
Dimensions: 430 x 200 x 44 mm.
Power consumption: 15W.
Wood type of front: Abachi.
제조사 : 그림오디오 (네덜란드)
공식 수입원 : 사운드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