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저물어간다. 몇날 며칠 옥석을 가리며 책을 집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불꽃같던 정열도 조금은 사그라든다. 다음 해엔 또 어떤 열정으로 불타오를 수 있을까? 정명훈의 [Piano] 앨범을 들으며 조금은 상념에 빠져 올 한 해를 추억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올해 낸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2]에 우리나라 뮤지션들의 앨범을 꽤 많이 넣으려고 했다가 나중을 기약하며 뺐다. 정명훈의 [Piano] 앨범을 듣고 있다 보니 그 중 하나가 생각났다. 바로 신예원의 [Lua Ya]라는 앨범. 모든 세상의 어머니 그리고 아이에게 바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앨범은 아론 팍스가 가세하며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며 동요로 채워졌다. 누구나 아이였을 때가 있고 그것은 음악으로 기억할 때 더 뚜렷한 이미지를 얻는다. ‘섬집아이’, ‘과수원길’같은 노래들 말이다.
정명훈의 [Piano] 또한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로 시작하며 이는 ‘달(Lua)’에 관한 노래다. 신예원은 다름 아닌 정명훈의 며느리 그리고 루아는 정명훈의 손주다. 이 외에도 프랑스 민요 ‘Ah! Vous Dirai-Je, Maman(아! 엄마에게 말씀 드릴게요)’의 익숙한 멜로디. 바로 ‘반짝 반짝 작은 별’의 오리지널이다. 쇼팽의 ‘야상곡’ 또는 그가 1974년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차이콥스키의 ‘가을 노래’도 들어가 있다.
손주에 대한 사랑이 담긴 선물 같은 음악들과 자신의 음악 인생 중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는 곡들이 이 앨범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이 앨범은 지휘자로서 그리고 치열한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 짊어져야하는 책임과 형식의 틀로부터 탈출하고 있다. 대신 그의 내면적이며 따뜻하고 행복했던 한 때를 추억하고 있다.
지휘자가 아닌 한 명의 피아니스트로서 그 자신 또는 가족 그리고 드비시, 쇼팽, 베토벤, 슈베르트 등 평생 친구처럼 함께 해왔던 작곡가들과의 내면적 대화가 총 열 곡에 걸쳐 이어진다. 때로는 독백처럼 때로는 대화처럼 기쁨과 열정, 존중과 감사의 감정을 그만의 음악 언어로 담담히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