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오디오의 최전선
약 20여년 전 일련의 유럽 하이엔드 오디오 제품들을 보면서 그 간결하고 세련된 미니멀리즘에 마음을 빼앗겼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노브나 그 이전에 당연히 있어야할 것들을 빠트리고 있었지만 불안하지 않았고 자연스러웠다. 심지어 사용상 불편한 점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음질이 뛰어났다. 이전 세대에서 절대 다가서지 못했던 투명도와 적막한 배경 위에 음악은 재빠른 송어처럼, 쏜살처럼 유영했다.
집 안 어딘가에 놓여야할 운명인 홈 오디오, 그 중에서도 고가의 오디오 기기는 종종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주위를 빼앗길 원하고 때론 자신을 내세우는 용도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기능과 성능으로 사용자를 만족시켜 주어야한다. 그 외에 잡다한 기능들을 전면 디자인에 내세워 놓는 것은 종종 주위를 빼앗고 음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10여 년간 보아온 브랜드 중 CH 프리시전은 개인적인 나의 디자인 기준에 가장 근접하는 오디오를 만들어냈다. 하이엔드 메이커에 애너그램을 제공해왔고 오르페우스를 설립한 장본인이며 그 외 여러 스위스 메이커의 심장을 디자인했던 그들. 사실 이들은 준비된 스타였다. 하이엔드 오디오 분야에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을 만큼 자체적인 기술이 차오르고 완전히 흘러넘치던 어느 순간 이들은 CH 프리시전을 설립했다. 바로 플로리언 코시와 티에리 히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거짓말처럼 스위스 오디오의 최전선에 위치하게 된다.
기술의 집약과 분출
CH 프리시전의 기술은 단순히 한 분야에 특정할 수 없다. 그만큼 방대한 기술적 집약을 이루었다. 디지털 기술은 분명 매력적이며 혁신적이었다. C1이 출시되었을 당시 이 하나의 모델만 가지고도 해당 분야를 평정했을 정도로 내부 디지털 알고리즘은 화려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D1 SACDP는 출시와 함께 dCS, 에소테릭 등과 함께 몇 안 되는 레퍼런스 트랜스포트로서의 입지에 올랐다.
값비싼 가격만큼이나 세계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 스위스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CH 프리시전은 거의 융단폭격을 가하듯 신제품을 쏟아냈다. 그리고 한결같이 기존 하이엔드 오디오의 선입견을 깨트리는 제품들을 선보였다. L1 프리앰프와 M1 파워앰프, A1 파워앰프 및 T1 레퍼런스 클럭 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파워앰프는 물론 L1 프리앰프, C1 DAC 등의 제품들까지 모노로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이엔드 시스템의 끝을 추구하겠다는 것. 절대적인 이상을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제품 여기저기에서 비춰졌다. X1이라는 독립 전원부의 존재는 그들의 이상이 끝 간 데 없이 높다는 걸 방증했다. 약 2년 전 C1 모노 DAC 및 X1 전원부 그리고 T1 클럭과 L1 모노, M1 모노 등을 합체해 총 열대 가 넘는 CH 프리시전 시스템을 리뷰하면서 그 실체를 엿보았다. 당시 디지털 소스 기기만 총 여덟 대를 동원해 셋업한 풀 CH 프리시전 사운드는 실로 놀라웠다.
단 하나의 인티앰프 I1
그러나 마치 꿈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기기를 만들던 CH 프리시전이 현실에서 접할 수 있을 법한 모델을 하나 출시했다. 다름 아닌 인티앰프다. 초하이엔드 기기만 만들던 CH 프리시전이 인티앰프라니, 믿을 수 없어 눈을 씻고 다시 확인했지만 확실히 인티앰프의 모습이다. 후면에 마련된 입/출력단과 스피커 출력단이 인티앰프라는 정체성을 명료하게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꼼꼼히 확인해보니 단순한 인티앰프는 아니었다. 내가 처음 본 것은 마치 거대한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심플한 입구 풍경 같은 것이었다.
우선 I1은 8옴 기준 채널당 단 100와트 출력을 갖는다. 내부를 보면 중앙에 출력을 완전히 커버하고도 한참 남을 만큼 커다란 트랜스포머가 위치해있다. 총 1000VA 용량으로 앰프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더불어 좌/우로 100,000uF 용량의 커패시터 뱅크를 마련해 충분한 정전용량을 저장할 수 있는, 일종의 저수지를 건설해놓고 있는 모습이다. 양 쪽으로는 트랜지스터 등을 포함한 증폭단을 설계해놓은 모습으로 전체적인 구조만 보면 전통적인 인티앰프나 파워앰프의 설계다.
실제로 I1의 앰프 부문 설계와 소자는 CH 프리시전의 A1 파워앰프와 거의 동일하다. 전원부 용량과 출력단 일부 외엔 출력도 동일하다. 지금은 A1.5 파워앰프가 나왔지만 사실 이런 설계는 자사 제품들 사이에 팀킬이 될 수도 있는 형국이었다. 그만큼 I1은 CH 프리시전이 가볍게 설계해 출시한 것이 아니며 CH 프리시전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 자사의 고급 기술을 대거 투입한 승부수였다. 참고로 앰프 증폭단에 CH 프리시전은 피드백을 조정 가능하게 만드는데 글로벌 피드백과 로컬 피드백으로 나눠진다. 이 부분에서도 인티앰프라고 해서 삭제하지 않고 상위 모델과 동일하게 적용해놓고 있다.
앰프 부분만 볼 때 I1은 하위 그레이드로 디자인한 제품이 아니다. 다시 말해 소자와 기술은 상위 모델과 동일하게 적용하되 그 규모만 축소한 모델이다. 디지털 파트르 살펴보면서 이런 심증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기본적으로 이 앰프는 엄청난 옵션들로 가득하다. 기본 옵션이 아니라 별로도 구입해서 장착해야하는 구조. 바로 다질 등 여러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들이 선보이는 모듈식 설계다.
일단 별도로 장착 가능한 옵션은 USB 입력단으로 비동기식으로 설계된 것이다. PCM 24/384, DSD는 DSD128까지 지원한다. 또 하나는 이더넷 입력단으로 네트워크 스트리밍을 위한 보드를 따로 판매하고 있다. PCM 24/192, DSD256까지 지원하는 고성능 스트리밍 보드다. I1 기본 모델에 이더넷 입력단이 설치되어 있어 스트리밍 앰프로 생각할지 모르는데 이는 앱으로 앰프의 셋업, 조작 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스트리밍 옵션을 장착하고 싶다면 이 모듈을 빼고 스트리밍 보드를 장착할 수 있다.
RIAA 외에 데카, 컬럼비아 등 RIAA 포노 EQ 기준이 정립되기 이전 모노 LP의 다양한 커브를 지원하는 포노앰프도 별도로 장착 가능하다. 중요한건 MC 전용으로서 바쿤 등 일부 하이엔드 포노앰프가 추구하는 전류 증폭 설계라는 사실. 로딩 임피던스 등의 조정이 필요 없으며 음질도 무척 뛰어나 LP를 자주 듣는다면 고려해볼만하다.
하지만 이들 옵션은 추가 구매해야하는 옵션일 뿐이다. 그렇다면 기본 장착된 옵션은 뭐가 있다는 것인가? 점점 의혹만 일어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디지털의 다양한 활용도 이전에 그 기반이 되는 그릇, 즉 DAC 보드가 기본 장착되어 있다. 이 디지털 모드는 C1에서 C1HD로 진화한 CH 프리시전의 간판 DAC 회로를 축소해서 만든 것이다. C1HD 사운드를 규정하는 독보적인 FPGA를 활용하고 있는 모습. 기본 입력은 AES/EBU 및 S/PDIF 동축과 TosLink 광 입력 그리고 같은 CH 프리시전 기기와 연결할 경우 가장 이상적인 CH-Link HD를 지원하고 있다. 만일 D1 SACDP나 T1 클럭을 연결하면 그 성능과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청음평
이번 테스트에선 CH I1 인티앰프의 오직 앰프로서의 성능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했다. 따라서 소스기기는 CH C1HD를 사용했고 여기에 X1 전원부를 꾸려 사용했다. C1HD 같은 경우엔 이더넷 스트리밍 HD 옵션 보드가 장착되어 있어 평소 자주 듣는 익숙한 음원을 아이맥에 저장해 들어볼 수 있었다. 스트리밍 HD 보드는 ROON에 대응하기 때문에 ROON을 통해 재생할 수 있었다. 참고로 스피커는 B&W 800D3 그리고 매지코 M6 등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M2를 매칭해 들어본 I1 인티앰프는 매우 날렵하고 훌륭한 대역 밸런스 위에 단정한 음상을 표현해준다. 다이애나 크롤의 ‘I’ll see you in my dream’ 같은 곡을 들어보면 상위 분리형 앰프에 비하면 사운드의 중심축은 약간 중, 고역으로 올라간다. 다만 자극적이거나 얇지 않고 무척 자연스러운 트랜스페어런시를 선보였다. 피아노는 힘 있고 또랑또랑해 타건의 윤곽과 순간적인 이동, 잔향 시간까지도 정확히 계산한 듯 생생하게 연출했다. 저역 또한 섞이지 않고 뚜렷하며 명확한 탄력감이 실려 있다. 단출한 소편성 음악만 들어보면 상위 앰프와 차이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일단 CH I1은 글로벌 피드백과 로컬 피드백을 조정할 수 있는데 여러 테스트 결과 글로벌 패드백 20% 정도 선에서 최적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제조사가 제공하는 컨트롤 앱은 여러 세팅을 수월하게 도와주었다. 존 나카마추의 피아노 그리고 제프 티지크가 지휘하는 로체스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거쉰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어보면 약음 처리 능력 및 디테일이 수준급으로 펼쳐진다. 웬만한 타사 분리형 앰프의 해상력과 세부묘사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강, 약 대비도 매우 뚜렷해 섬세하면서도 짜릿한 소리로 다가온다. 마치 거울 속을 비추는 듯 투명하게 M6의 음색적 특색을 유기적으로 이끌어낸다.
온도감이 높은 소리는 절대 아니다. 대부분 온도감이란 해상도와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트론트하임 솔리스텐이 연주한 브리튼 ‘Simple symphony’에서 악기들의 표면적인 질감을 뛰어넘어 음원 내부의 정보까지 상세하게 끌어내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어떤 악기들도 적당히 뭉개거나 짓눌리지 않는 모습이다. 예전에 처음 들었던 i1의 소리가 B&W나 매지코 양쪽에서도 공히 동일하게 드러난다. 현의 보잉이 빠르고 힘차며 예리한 편인데 다행히 건조하거나 딱딱하지 않아 피로감을 만들어내진 않는 편이다.
CH 프리시전의 외관만 보면 검은 디스플레이 창 뒤에 뭔가 엄청난 신기술을 숨긴 초정밀 장비 같다는 인상. 그래서 차갑고 매우 정적인 사운드를 들려줄 듯하다. 하지만 실제 I1을 들어보면 정교하고 약간 차가운 느낌은 있지만 역동적인 추진력을 내재하고 있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Take the power back’을 들어보면 대충 얼버무리며 훑고 지나가는 구간이 없다. 순간순간 힘 있게 맺고 끊으며 나아간다. 그 와중에서도 정확한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다. 상위 모델에 비하면 아무래도 저역 펀치력은 감소하고 무게 중심은 올라오지만 예리하면서 정제된 사운드 톤과 함께 리듬, 페이스를 잃지 않는 강단이 돋보인다.
여러 음악들을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다양하게 들어보면서 소리만으로도 i1엔 CH 프리시전의 심장이 뛰고 있음을 분명히 확인했다. 오스모 밴스케 지휘, 미네소타 오케스라의 말러 5번 ‘Adagietto’도 좋았고 팝에서 록, 재즈도 모두 수준급 증폭 성능을 자랑했다. 약음들의 세밀한 표현, 진지한 감동, 충분한 다이내믹 헤드룸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소리들은 실체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산만하거나 부유하며 겉도는 느낌 없이 단정하며 항상 예리한 표현력을 보여주었다.
총평
CH 프리시전 i1을 시청하면서 든 생각은 명확히 정리할 수 있다. 요컨대 노력파 모범생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천재 같은 느낌. 한마디로 조각처럼 정교하고 예쁘게 깎아지른 듯 섀시의 디자인이 음질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CH 프리시전의 비범한 특성은 I1에서도 유효했다. 이 가격대에서 가격 대비 성능을 거론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CH 라인업과의 비교라면 무척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Technical Specification
Max analog input level
8V RMS balanced
4V RMS single-ended
Input impedance
94kΩ or 600Ω balanced, 47kΩ or 300Ω single-ended
A/D conversion
DXD 24 bit / 384kHz direct conversion
Phono MC current-sensing input impedance
< 100mΩ, virtual ground
Playback EQ curves accuracy
+/- 0.01dB (software implementation)
Post volume control analog line outputs max level
4V RMS balanced
Loudspeaker outputs
2x 100W RMS/8Ω
2x 175W RMS/4Ω
Dimensions/Weight
440 x 440 x 133mm (W x D x H), 33kg
공식 수입원 : ㈜극동음향
판매처 : 에이브이플라자
www.avplaz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