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교배
때론 서로 정말 다른 특성을 가진 것들끼리 얼토당토하지 않게 잘 어울릴 때가 있다. 사람도 물건에서도 그런 장면들은 종종 목격되는데 각각 가진 단점은 희석되고 장점은 합해서 시너지를 내는 현상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내연 엔진과 배터리 엔진을 결합해 연비는 올리고 유해가스 배출랑은 이전 세대 자동차보다 획기적으로 줄였다. 지금 전기 자동차가 나오기 전까지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그 역할을 다했다.
이질적인 특성을 가진 것들끼리의 이종 교배 ‘하이브리드’는 오디오 기기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출시되는 DAC 중 진공관 DAC들을 보면 흥미롭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내가 가장 처음 접했던 진공관 DAC는 오디오노트 DAC였는데 그 때 그 DAC 안엔 아주 가늘어서 이름 붙여진 펜슬 진공관이 들어 있었다. 미국의 진공관 앰프 전문 메이커 VAC에서도 진공관 DAC를 선보인 적이 있는데 꽤 들을만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남아 있다.
가장 정교하고 기계적이며 복잡한 연산과정을 거치는 디지털 기기에 SN비나 THD 등에서 높은 성능을 보이는 트랜지스터가 아닌 진공관이라니. 이런 아이러니는 다른 무엇도 아닌 음질을 최종 목표로 하기 때문 아닐까? SN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풍부한 배음과 잔향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런 욕구는 꽤 많은 대중의 소구로 떠올라 21세기 현재에도 다시 유령처럼 환생했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사랑 받고 있는 폴란드 메이커 램피제이터의 진공관 DAC가 떠오른다. 오디오노트는 여전히 진공관 DAC를 만들어내고 있으면 Aries Cerat도 진공관을 채용한 수천만 원대 DAC가 즐비하다. 노 오버샘플링, 노 필터를 외치면서 최신 트렌드에 역행하고 있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한번 들으면 잊지 못한 음악성을 드러내 내심 혼란을 가중시키도 한다. 자본의 입장에서 채산성, 상업성 부족으로 생산 중단된 멀티비트 래더 DAC 분야도 저항을 일일이 붙여 자족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 것 또한 이런 현상과 맞물리는 일이다.
하이브리드 앰프
그렇다면 이것이 DAC 분야만의 일일까? 사실 소실점을 음질로 모으면 여러 하이파이 기기에서 하이브리드가 가능하며 무한한 경쟁력과 개성을 얻을 수 있는 분야가 하이브리드다. 소프트 돔과 하드 돔을 결합해 만든 유닛이나 또는 종이 소재와 섬유를 섞은 진동판 등 각양각색의 하이브리드 설계가 발견된다. 소재라는 부분으로 포커스를 맞추면 모든 음향 기기들의 발전은 하이브리드에 대한 모험과 실험으로 인해 많은 진화를 이루었다.
앰프도 마찬가지다. 바로 생각나는 것이 하이브리드 앰프의 선봉에 섰던 오디오 리서치와 BAT 같은 브랜드다. 특히 하이브리드 진공관 프리앰프는 이 메이커의 간판 모델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대체 불가능한 음질적 매력 덕분에 그 사용자가 전 세계 오디오파일로부터 사랑받아오고 있다. 물론 이런 설계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과거 카운터포인트 같은 메이커는 단명하기도 했다. 이후 수리할 일이 너무 많아서 대표가 알타비스타오디오라는 카운터포인트 전문 수리 및 업그레이드 관련 회사를 운영한 적도 있을 정도니까. 그래도 마이크 엘리엇의 도전 정신과 시도는 지금 생각해도 충분히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프리마루나의 하이브리드
네덜란드 프리마루나도 하이브리드의 항로 위에 돛대를 올렸다. 사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놀랐지만 그 내막을 알고 나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이해했다.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일단 프리마루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 이름은 Durob이라는 네덜란드 회사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진공관 앰프만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설계의 중심엔 Marcel Croese가 있다. 이 엔지니어는 1990년대 골드문트가 한창 그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을 때 그 곳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그가 이번 하이브리드 디자인에도 진공관 앰프, 정확히는 프리앰프 부문 설계에 참여한다.
하지만 또 한 명의 엔지니어가 하이브리드 앰프의 나머지 부분, 즉 트랜지스터 파워앰프 부문 설계에 참여한다. 그의 이름은 Jan de Groot. 그는 Durob 회사 내부에서 Floyd Design 팀을 꾸려 운영해오고 있고 2002년부터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의 디자인과 모디파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Durob은 지금은 제조사지만 오랫동안 유명 해외 브랜드의 디스트리뷰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앰프 경험은 대단히 넓다. 럭스만, 토렌스, 에어타이트 그리고 스핑크스 등 폭넓은 앰프 설계 및 디자인에 관여되어왔다. 더 나아가면 크렐, 첼로, 다질 등까지 연계될 정도다.
그가 이끌고 있는 팀의 이름은 바로 플로이드 디자인 팀. 이번에 이 팀과 함께 하이브리드 앰프의 핵심 부문인 트랜지스터 파워앰프 부분을 설계했다. 제품명은 EVO300 Hybrid. 기존 프리마루마의 진공관 앰프에서 경험했던 사운드와 설계 그리고 진공관 프리앰프에 트랜지스터 파워앰프를 결합해 하나의 섀시로 만든 인티앰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공관 프리앰프에 트랜지스터 파워앰프의 혼용 매칭을 무척 좋아해왔던 터라 이런 프리마루나의 시도는 무척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국내 수입되어 가장 먼저 테스트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 설계
대표 Herman 그리고 Marcel과 Jan은 이렇게 회사 안에 긴밀하게 하이브리드 인티앰프를 기획부터 설계까지 도맡아 진행했다. 이들은 프리앰프 부문에 12au7 진공관을 총 여섯 발 장착하는 설계로 진행했다. 또한 진공관은 모두 까다롭게 고른 선별관만 사용하고 내부의 부품은 최대한 고품질로 선정했다. 신호 경로와 기능에 걸맞은 특주 커패시터를 사용하고 고용량 트랜스포머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면에서 최고의 하이브리드 진공관 앰프 설계에 들어갔다.
트랜지스터를 기반으로 하는 파워앰프 부문엔 일단 JFET를 사용한다. JFET는 리니어 시스템스로부터 공급받는 걸로 결정했다. N(Negative) 채널과 P(Positive) 증폭을 책임지는 JFET는 모두 캐스케이드(Cascade) 방식으로 작동하며 각 채널엔 각각 두 개의 MOSFET을 추가로 사용해 스피커의 임피던스에 따른 앰프의 부하를 최소화했다고 한다. 참고로 MOSFET은 엑시콘으로부터 공급받는 제품이다. 결국 EVO300 Hybrid의 출력은 8옴 기분 채널 당 100와트며 부하가 절반인 4옴일 경우엔 160와트로 정해졌다.
볼륨은 알프스 볼륨을 사용하고 있으며 내부엔 여타 프리마루나 진공관 앰프처럼 AC 오프셋 킬러를 내장하고 있는 트랜스포머 노이즈를 거의 제로에 가깝게 최소화시키고 있다. 전원부는 500VA 용량의 트랜스포머를 사용하고 있으며 내부를 보면 빈틈이 보이지 않을만큼 꽉 찬 속살을 발견하게 된다. 좌/우 완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일명 ‘듀얼 모노’ 회로를 지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플로이드 디자인 팀이 이러한 하이브리드 진공관 설계를 시작한 지 2년만에 성과를 보게 된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이 외에도 여러 소자들의 적용이 눈에 띄는데 기존 프리마루나 앰프들에서 모두 보아왔던 것들이다. 예를 들어 신호 경로에 쓰이는 저항은 일본 Takman의 제품을 사용한다. 왜곡이 적고 비자성에 허용 오차가 적은 고급 저항으로 알려진 것들이다. 커패시터 같은 경우 DuRoch라는 것을 사용한다. 이는 Tinfoil 타입으로 오디오노트 등 훨씬 비싼 진공관 앰프에서 사용하는 품질의 소자들이다.
PCB만 해도 상당히 공을 들였다. 두께가 2.4mm로 두터운 데다 약 105µm 정도로 구리를 두텁게 입혀 사용하고 있다. 더불어 신호 경로에 따라 마련된 트랙에 추가로 금도금을 해 전도도를 높이고 산화를 방지하고 있다. 하지만 신호경로의 대부분은 가능한 하드와이어링을 고집하고 있는 모습이다. 제작이 힘들지만 소리의 순도는 물론 내구성 측면에서 더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부엔 보호회로가 내장되어 있어 겹겹이 안정성과 고장 원인을 제거하고 있는 모습이다. 평생 사용을 목표로 깐깐하게 제작된 앰프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는 설계다.
- 인터페이스
제품을 랙 위에 올리면서 들어보면 기존 EVO300이나 EVO400과 거의 유사한 무게로 보인다. 하지만 트랜지스터 증폭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 앞 쪽 진공관을 보호하는 그릴은 깊이가 짧아진 모습이다. 흥미로운 건 방열 시스템이다. 상판 위쪽으로 방열을 위한 홀이 마련되어 있고 더불어 양 옆으로 대형 파워앰프에서도 볼만한 방열판이 도열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약 이틀 동안 전원을 계속 켜놓았는데도 열 방출은 수월해보였다. 다만, 방열판에 손을 대면 상당히 뜨거우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입력단은 Aux 입력이 총 다섯 조로 풍부하게 마련해놓았다. 더불어 테이프 및 서브우퍼 출력도 마련해놓은 모습. 하단에 포노앰프 옵션 보드가 있지만 말 그대로 옵션이다. 또한 후면에 스위치가 하나 보이는데 이는 모노/스테레오 전환을 담당한다. 메인 출력이 아니라 서브우퍼를 한 개 혹은 두 개 쓸 경우 전환해주는 기능을 담고 있다. 더불어 전면 우측엔 LS/HP 전환 스위치가 위치한다. LS는 스피커로 출력해주는 것이고 HP는 헤드폰 출력을 의미하니 활용 목적에 따라 꼭 확인하고 사용하길 바란다.
글/사진 : 오디오 평론가 코난
2부로 이어집니다
Specifications
Model EVO 300 Hybrid Integrated Amplifier
Power 8 Ohm >100 Watts per channel (typical 115 Watts)
Power 4 Ohm >150 Watts per channel (typical 170 Watts)
Frequency Response : 10 Hz – 80 kHz +/- 3 dB
THD with AABB < 0.2% 100W @ 8 Ohm
S/N Ratio : -105dB (A-Weighted)
Input Impedance : 34 kOhm
Input Sensitivity : 415 mV
Total Gain (Pre + Power Amp) : 37.2 dB (7dB + 30.2dB)
Inputs : 5 pairs Stereo RCA, 1 pair Home Theater Input
Outputs : Speaker Taps, Tape, Stereo/Mono Sub, Headphone
Tube Complement : 6 x 12AU7
Damping Factor : 160 (1 kHz)
Power Consumption : 99 Watts (no signal in); 645W@4R
Weight :
Net weight: 59.5 lbs / 27kg
Shipping Weight: 68.3 lbs / 31 kg
Dimensions : 15.9″ x 15.2″ x 8.1″ / 405 x 385 x 205 mm (L x W x H)
Shipping Dimensions : 22.7″ x 18.4″ x 12.4″ / 578 x 468 x 316 mm (L x W x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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