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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카트리지의 신세계로부터

Apheta 3 onside 1


아날로그 예찬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는 자리는 책상 위가 대부분이다. 가만히 앉아서 오직 음악에만 집중하는 경우는 리뷰를 할 때나 새로운 엘피 혹은 시디가 도착해 집중해서 들을 때다. 그러다 이내 책상 위로 돌아가서 다른 일을 하다가 혼자서 빙빙 도는 턴테이블 플래터를 보면 뭔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어렸을 때 몇 번 돌려보았던 맷돌도 생각나는데 실제로 콩을 갈아서 어머니와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도 난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턴테이블을 맷돌에 비유한 건 꽤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철이 되면 온몸에 털옷과 털장갑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서는 친구들과 팽이를 돌리면서 놀던 생각이 난다. 팽이 줄을 휙 당겨서 풀어놓은 후 채를 쳐서 계속 돌게 만들어야했는데 해가 기울어 저녁놀이 지는 줄도 모르고 팽이를 돌리면서 놀았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았는데 팽이 돌리기 게임이 없다는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팽이 또한 그저 ‘돌린다’라는 의미에서 턴테이블을 닮았다. 수동이 아닌 모터로 돌리는 턴테이블과 구동 방식이 다르긴 하다만.

만일 팽이 게임이 온라인 게임으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 아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게임들이 모두 온라인 게임으로 변환되면 과연 재미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실제로 게임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오래 가진 못할 것 같다. 화투 또는 바둑 같은 것들이 직접 사람과 하는 것과 비교해 온라인 게임으로 하는 것이 쉬 질리는 건 온라인에선 현실의 모든 것이 빠져버리고 오직 목표와 결과만 지향하기 때문이다. 성과 지향주의적 사고 속에 인간적인 교감은 없다. 그저 공허한 승리와 패배만 있을 뿐이다.

apheta3 3

레가 턴테이블로 엘피를 듣는 일

두서없이 게임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게 아니라 디지털로 절대 변환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엘피로 음악을 듣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건 마치 온라인 게임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서도 부딪치며 경쟁하고 때로 싸우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낑낑대면서 턴테이블을 설치하고 카트리지 바늘이 부러질까 노심초사하면서 카트리지를 장착하다보면 처음엔 진땀이 나기도 한다. 거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엘피를 슬리브에서 꺼내고 듣고 싶은 트랙을 선택한 후 정확한 위치에 카트리지의 스타일러스를 위치시킨 후 턴테이블을 회전, 톤암 리프트를 내려야 비로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레가 턴테이블은 그나마 아주 간단한 구조와 사용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카트리지가 항상 문제였다. 물론 시중엔 다양한 가격대의 다양한 카트리지들이 많다. MM, MC 등 그 방식도 다양하고 캔틸레버와 스타일러스의 소재 또한 다양하다. 내부에 사용하는 마그넷, 코일의 종류도 제각각. 톤암 등 모든 턴테이블의 부품들이 그렇듯 표준화된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제각각이다. 더불어 톤암과 카트리지도 나름대로의 매칭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레가의 오래된 예전 모델부터 사용해오면서 여러 카트리지를 레가 톤암에 장착해보았지만 요즘엔 그냥 마음 편하게 레가 카트리지를 달아서 쓰고 있다. 레가는 그냥 별다른 튜닝이나 고민 없이 편하게 고음질로 엘피를 즐기라고 만든 턴테이블이다. 사실 너무 간단한 디자인 덕분에 별로 튜닝한 만 한 포인트도 없는 게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 하단에 국내 AOA에서 만든 받침대와 슈즈 정도를 추가한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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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가엔 레가

카트리지도 마찬가지로 레가 카트리지를 장착했을 때 가장 편리하고 음질 또한 훌륭하다. 카트리지의 성능에 정확한 세팅과 매칭이 시너지로 더해지는 것이다. 일단 카트리지의 오버행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다른 카트리지와 달리 레가 톤암과 3점 접속되는 방식이며 Apheta 시리즈의 경우 거의 공차가 0에 가깝게 제작되어 완벽에 가까운 오버행과 접속력을 보여준다. 그저 카트리지를 조립하고 침압과 안티스케이팅을 조정해주면 끝이다.

레가끼리즤 조합에선 카트리지 오버행이나 얼라인먼트를 맞추기 위해 법석을 떨 필요가 없다. 게다가 레가 톤암의 헤드셀 부분은 짧은 편으로 다른 메이커 중 길이가 긴 카트리지를 조립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고 VTA, 즉 톤암 축의 높이를 조정할 수 없어 별도의 스페이서를 구입해야 하는 등 타사 카트리지 적용이 쉽지 않다. 다이나벡터나 오토폰, 직스 등 많은 선택지가 있었지만 내가 레가엔 레가만 사용하기로 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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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Ania, Ania Pro를 거쳐 Apheta 2 그리고 Apheta 3까지 달려왔다. 상위 모델로 Aphelion이 있지만 언감생심. 지금 사용 중인 RP-10에 Apheta 2 혹은 3라면 더 이상 바랄 나위 없다. 그런데 Apheta 3는 Apheta 2와 또 다르다. 대동소이한 듯 여러 스펙 및 설계가 유사하다. 그건 바로 바늘, 스타일러스의 소재가 누드 다이아몬드인 것은 동일하지만 그 디자인이 이전의 ‘바이탈 프로파일’이 아니라 ‘파인 라인 프로파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지만 그저 MM이냐 MC, 출력 전압과 로딩 임피던스, 커패시턴스 값 정도만 신경 쓰지 카트리지의 구조와 디자인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구조와 디자인에서 오는 특징와 성능 차이가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엘피의 소리 골과 마로 맞닿는 스타일러스 끝의 모양에 따라 성능 차이가 심하다.

Audio Technica Styli

세부적으로 설명하자면 일반적으로 원형(Conical) 타입이 가장 만들기 쉽고 저렴하며 그 다음으로 타원형(Eliptical)이 대중적으로 많이 쓰인다. 이후엔 라인 접촉(Line Contact) 방식이 뛰어나고 더 나아가 마이크로-리지(Micro-ridge)라고 마치 날개를 달아놓은 듯 만들어 접촉 편차를 줄인 방식도 있다. 분명한 것은 후자로 갈수록 주파수 응답 특성이 좋고 왜곡은 낮아진다는 점이다.

레가 카트리지로 돌아가면 Ania Pro나 Apheta 2의 ‘바이탈 프로파일’은 일종의 하이퍼 엘립티컬 방식이다. 하지만 Apheta 3에서 말하는 ‘파인 라인 프로파일’은 말 그대로 라인 접촉 방식으로 가장 이상적인 스타일러스 디자인 중 하나다. Apheta 3부터 ‘점 접촉’이 아니라 소리 골의 정보를 더 잘 읽어낼 수 있는 ‘선 접촉’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곧 Apheta 3의 탄생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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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고 단단하게

radka

예를 들어 라드카 토네프의 ‘The moon is a harsh mistress’를 들어보면 단풍잎사귀에 앉은 새벽이슬처럼 초롱초롱한 피아노 타건이 귀에 걸린다. Apheta 2에 비해 정보량 자체가 올라간 느낌이 확연하다. 아무래도 스타일러스 업그레이드 덕이 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음상도 좀 더 내려와서 좀 더 진한 소릿결을 들려주며 잔향은 여전히 아련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워낙 해상력이 뛰어나서 뭉개지는 느낌은 전혀 없이 상쾌하게 뻗는다. 이것이 과연 레가가 만들어낸 카트리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rob wass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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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역대 디테일은 무적이라고 할만하다. 이 카트리지를 듣기 바로 직전에 Apheta 2를 들었는데 둘 다 모두 뛰어나지만 Apheta 3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예를 들어 아론 네빌의 ‘Stardust’를 들어보면 전면의 아론 네빌과 후방의 코러스가 더욱 선명하게 거리를 두고 노래하는 모습을 정확히 포착해낸다. 후방의 베이스도 정확히 분리되어 들리다보니 상위 대역에서 노래하는 아론 네빌의 보컬이 더 명료하게 묘사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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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역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강도와 깊이도 기존 Apheta 2나 Ania Pro와 차이를 보인다. 더 강력한 펀치력을 구사하므로 청감상 더 낮은 대역까지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좀 더 역동감 넘치게 들리는 것이다.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 또는 폴 챔버스의 [Bass on top] 앨범을 들어봐도 이런 점들은 균일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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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참고 사항이 하나 있다. 하나 확실한 건 게인이 이전 Apheta 2에 비해 높아졌다는 것이다. 0.35mV로 스펙에선 동일하지만 청감상 볼륨 차이를 약간 느낄 수 있다. 이 차이는 매칭한 앰프인 프리마루나 EVO400에선 리모컨으로 조절할 경우 반 스텝에서 한 스텝 차이 정도다. 하지만 동일한 청감상 볼륨에서도 위의 음질적 차이는 동일하게 드러난다. 게인 차이로 인해 생기는 음질적 차이는 아니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게리 카의 더블 베이스의 골격이 더 뚜렷하고 힘 있게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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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반드시 엘피로 듣고 싶은 녹음이 있다. 예를 들어 파우스토 메소렐라의 ‘Sonatina Improvvisata D’inizio Estate’ 같은 곡이다. 리핑한 음원도 가지고 있지만 구태여 턴테이블을 켜고 엘피로 들어야 제 맛이다. 레가 Apheta 3의 경우 이 곡처럼 어쿠스틱 기타는 물론 현악기 재생에 강점이 크다. 냉정하리만큼 중립적 음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본풍의 미음을 구사하지도 않는다. 조미료를 섞지 않은 순수하고 청순한 소릿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곡만 듣고 자려다가 A면을 모두 듣고 톤암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걸 보고서야 오디오의 전원을 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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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요즘 아침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담배 한 개비와 커피 그리고 새로 배달 온 엘피 한 장을 개봉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블루노트 톤 포엣 시리즈와 버브/어쿠스틱 사운즈 엘피들 그리고 비틀즈 [Let It Be]까지 가을이 되자 좋은 엘피들이 자꾸만 발매되어 엘피 구입을 재촉한다. 트랜스로터가 버티고 있긴 하지만 아침엔 레가에 손이 더 자주 간다. 편하게 듣기 좋다는 것 때문이다.

하지만 Apheta 시리즈로 넘어온 이후엔 톤암을 올릴 때의 긴장의 강도부터 귀를 쫑긋 세우는 텐션까지 나를 조금은 더 집중하게 만든다. 레가는 어느새 MC 카트리지의 신세계를 구축해낸 것이다. 레가는 가장 편리하게 좋은 음질로 엘피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턴테이블이다. 그런데 자꾸 이러면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향상된 음질이 편의성을 헤치진 않으니 다행이다. 트렌드와 민감하지 않아 평생 써도 좋을 턴테이블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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