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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골드 야금술의 결정체

실텍 880i

Siltech Classic Legend thumb

전설의 서막

‘광석이나 또는 기타 원료에서 유용한 금속을 채취, 정련, 가공 과정을 거쳐 실용적인 금속재료나 합금을 제조, 각 공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과 그에 관한 학문’을 일컬어 야금학이라고 이른다. 국내/외에서 역사적으로 이 야금학은 다양한 기술적 발전을 거쳐 왔으나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주 작은 하이엔드 오디오 분야에서의 야금학이다. 시작의 발단은 아무래도 OFC 정도로 잡는 것이 좋을 듯하다. 구리에서 산소를 제거해 순도를 높이고 내식성을 높인 것부터 시작했지만 하이엔드 오디오는 그 이상의 것을 원했다.

GOLD GAPS DE

이후 다양한 야금술이 연구, 개발되어 제품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순동은 물론 전도도가 더 높은 은을 동선의 표면에 도금한 은도금도 그 중 하나였다. 고역 주파수 성분은 도체의 표면을 통해 흐르므로 표면만 은을 사용해도 전도도는 물론 음질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산이 충분할 경우엔 순은을 사용해 전도도를 최대화했다. 하지만 케이블은 도체의 지오메트리와 순도도 중요하지만 절연 및 차폐의 방식 및 소재도 더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음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현재는 어떨까? 대단히 다양한 오디오용 케이블이 개발되어 판매 중이다. 도체는 더욱 다양해져 각 메이커마다 구리와 은은 물론 어떤 메이커의 경우 산소를 제거하지 않은 구리를 사용하기도 하고 아연 등 다양한 금속이 함유된 하이브리드 타입들도 유행하고 있다. 단자의 차이도 상당해 기본적으로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금도금을 기본으로 로듐, 팔라듐, 은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음질이다. 여기 순은, 순동 케이블이 아닌 은과 금을 섞어 하이브리드 타입의 야금술을 펼쳐 보인 전대미문의 케이블 메이커가 있다. 바로 실텍이다. 전설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83년 설립 이후 G1, G2를 거쳐 은과 금을 섞은 G3 버전부터 실텍 사운드는 독보적인 기술과 음질로 커다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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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대 실버/골드 세대교체

아마도 가장 최근까지 실텍 케이블을 사용해왔다면 G7이 익숙할 것이다. 결정 경계면이 거의 없지만 입자 사이의 약간의 크랙이나 공간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개발된 실버/골드 케이블은 G7까지 진화해 온 것. 순은 케이블의 입자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에 금을 주입시켜 그레인을 거의 완전히 없애버린 것이다. 실텍이 1990년대부터 시도한 실버/골드 도체는 가장 최근인 2013년에 발표한 G7까지 쉼 없이 발전해왔다.

그리고 이번엔 무려 8년만에 G9, 즉 9세대 실버/골드 도체를 개발하기 이르렀다.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은 실텍의 개발 철학에 있다. 특별한 기술이나 케이블의 실제 성능 향상이 없다면 새로운 모델을 굳이 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존재하는 여러 라인업도 보면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해온 모델이 많을 정도로 보수적인 편이다. 그래서 이번 G9 세대교체가 상당히 기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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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레전드

무려 8년만의 실버 테크놀로지, 실텍 도체의 세대교체는 의미심장하다. 이는 여러 라인업의 모델 체인지로 번져나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은 가장 기본 라인업이라고 할 수 있는 클래식 애니버서리 시리즈의 세대교체다. 실텍이 명명한 새로운 라인업 이름은 ‘클래식 레전드’. 레전드라는 이름을 붙인 만큼 향후 전설로 남을 정도로 혁신이 이루어졌음을 천명하고 있다.

우선 G9 도체는 이전 세대보다 약 두 배 더 커다란 도체로 제작되었다. 여전히 순은 도체의 입자 사이에 금을 주입하는 실버/골드 하이브리드 타입을 고수하고 있다. 더불어 여러 면에서 상위 플래그십 ‘크라운’ 라인업에 적용되었던 기술을 도입해 그 성능을 2.5배 더 상승시켰다는 것이 실텍의 설명이다. 이번에 출시된 라인업은 인터커넥터에 i 시리즈, 스피커 케이블에 L 시리즈 그리고 파워케이블에 P 시리즈 그리고 디지털 케이블 세 종류 등이다. 각각 380, 680, 880 등의 숫자를 붙여 서열을 구분하고 있는 모습도 과거 330/550/770과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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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i 인터커넥트

이번에 처음 만난 제품은 880i 인터커넥트 케이블이다. G9 도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어닐링 기법을 개선해 더 높은 전도도를 높여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측정치는 물론 실재 청감상 사운드 퀄리티를 대폭 상승시켰다는 것이 실텍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도체뿐만 아니다. 도체를 G9으로 끌어올리면서 절연 및 차폐의 소재, 방시고 대폭 변화를 준 모습이다.

일단 절연에서는 기존 클래식 애니버서리 모델에서 테플론/캡톤 등 두 가지 소재만 활용했던 것에서 변화를 주어 테플론/PEEK/테플론으로 구성된 트리플 레이어 절연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더불어 초저소음 차폐까지 더해져 더 낮은 디스토션 및 다이내믹스 향상을 도모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인터커넥트, 그 중에서도 680i와 880i엔 공진 감쇄 기술인 ‘Signature resonance absorption’ 기법을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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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실텍을 처음 만난 지 약 20여년이 흐른 것 같다. 실버/골드라는 형식의 케이블이 벌써 이런 단계까지 올라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이 진보한 모습. 하지만 G9이라는 도체가 과연 기존 G7보다 어느 정도 발전했고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음질적으로 유의미한 것인지가 관건이다. 스펙과 음질이 항상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테스트는 좀 더 세밀하게 그 특징을 알아보기 위해 자택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워낙 미묘한 차이를 포착해내는 일이니까 말이다. 테스트엔 웨이버사 Wcore/Wstreamer 및 마이트너 MA1 DAC를 소스기기로 사용했고 SAL i5 인티앰프와 베리티오디오 Rienzi 스피커를 활용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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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 가르도의 라이브 실황을 재생하자마자 잠시 놀랐다. 시작하자마자 쏟아지는 관중들의 박수소리에서 해상도가 상당히 높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케이블에 불과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때론 이런 음향적인 차이가 음악적 감동의 차이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Baby I’m a fool’을 들어보면 보컬은 풍부한 감성을 가지며 악기들의 모습도 더욱 더 실체에 가깝다. 기존 실텍의 색상을 꽤 많이 걷어낸 듯한 소리도 고역도 트여있고 개방감이 뛰어나다는 걸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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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아주 말랑말랑한 타건을 보여주며 첼로의 음색도 그 바디감과 음색적인 울림이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녹음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그저 음향적인 느낌만 정확하게 표현하기보단 실텍의 자체적인 온기가 좀 더 곁들여진 소리다. 부시 트리오의 슈베르트 피아노 삼중주를 들어보면 기존 클래식 시리즈에 비해 더 명료하고 해상력은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버/골드 고유의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 게 정상이고 이런 소편성 실내악에서 증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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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적인 부분에서 이 인터케이블이 아주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분명 손에 잡히는 물리적 촉감과 동적인 변화도 어느 정도 포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레너드 코헨의 ‘Banjo’에서 드럼과 베이스는 폭신한 촉감을 보여주며 부드러운 중, 저역을 깔아준다. 밴조의 아주 정갈한 음색을 더욱 맛깔나게 표현해낸다. 중역대 디테일 및 촉감이 아주 살아있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손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특별히 특정 대역을 부풀리거나 음색을 왜곡한다는 느낌을 없어 싱싱하게 다가온다.

jan 1

실텍은 현악에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고 말하지만 갈수록 여러 부분에서 올라운더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레전드 시리즈가 그 증거다. 예를 들어 얀 가바렉의 <Officium>을 들어보면 관악 표현에서도 더 진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테크니컬 부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것은 음질적으로도 증명될 정도로 깨끗한 배경, 디스토션이 완전히 제거된 듯 맑은 색소폰 음색을 들을 수 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듯 얀 가바렉의 소프라노 색소폰이 자유롭고 처연하게 일렁인다. 소리에 형체가 있다면 그것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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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은 어느 정도 이상의 가격대에선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케이블도 마찬가지여서 여타 컴포넌트나 스피커에 비하면 투자 대비 그 음질적 변화가 크진 않다. 하지만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G3에서 G5 그리고 G7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퍼포먼스 차이는 상당했다. 그러나 G9에선 ‘한계 효용 체감’의 영향이 지배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실텍은 이 법칙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실재 들어본 실텍 G9 버전 880i는 다른 차원으로 전이된 듯한 모습으로 이전과 동일 선상에서 보기엔 억울할 수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클래식 시리즈의 후속이 아니라 레전드라는 새로운 라인업이고 보는 것을 옳을 듯하다. 이로써 880i는 실버/골드 야금술의 결정체로 태어난 모습이다. 실버/골드 도체는 아마도 G9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본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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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9 실버/골드, 시스템을 지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