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2R 래더 DAC이란?
R2R 래더 DAC은 1k옴 저항과 2k옴 저항, 또는 2k옴 저항과 4k옴 저항, 이런 식으로 정확히 2배 차이가 나는 2개 저항들의 조합을 통해 입력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출력한다. 위 그림은 4비트 R2R 래더 DAC을 필자가 간략히 그려본 것인데, 저항들이 늘어선 모습이 정말 래더(ladder), 사다리를 닮았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굳이 R과 2R 조합이라는 것. R과 3R 조합이 아닌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정확히 2배가 되어야 1) 저항의 병렬 연결이 되고 그래야 2) 최종 출력 저항값이 언제나 R이 되기 때문이다.
맨 왼쪽 회로부터 보면 2R과 2R이 병렬이니까 R(V0), 그렇게 되면 오른쪽 R과 직렬이라서 2R, 그러면 다시 위에 있는 2R과 병렬이니까 다시 R(V1), 그렇게 되면 오른쪽 R과 직렬이라서 2R, 그러면 다시 위에 있는 2R과 병렬이니까 다시 R(V2), 그렇게 되면 오른쪽 R과 직렬이라서 2R, 그러면 다시 위에 있는 2R과 병렬이니까 다시 R(V3). 결국 최종 출력 저항값은 언제나 R이 된다.
이처럼 최종 출력 저항값이 비트수에 상관없이 R로 일정해야 4비트 입력신호든, 16비트 입력신호든 출력 아날로그 전압을 얻는 공식이 동일해지기 때문에 비로소 이 회로가 DAC으로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011이라는 4비트 디지털 신호가 들어오고, 기본전압값이 5V일 때 최종 출력 아날로그 전압값은 그림 안에 써놓은 Vout = V0/16 + V1/8 + V2/4 + V3/2 공식을 통해 구할 수 있다.
V0 ==> (1 x 5V) / 16 = 0. 3125V
V1 ==> (0 x 5V) / 8 = 0V
V2 ==> (1 x 5V) / 4 = 1.25V
V3 ==> (1 x 5V) / 2 = 2.5V
Vout ===> 0.3125 + 0 + 1.25 + 2.5 = 4.0625V
참고로, 자세히 보면 V0, V1, V2, V3, 얘네한테는 좀 안된 이야기인데 서로 가중치 혹은 기여도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맨 처음 V0은 가중치가 1/16이고 맨 마지막 V3은 1/2이나 된다. 그래서 V0을 흔히 LSB(Least Significant Bit), V3을 MSB(Most Significant Bit)라고 부른다.
반오디오와 R2R 래더 DAC, 그리고 불새
현재 DAC은 R2R 래더 방식과 델타 시그마 방식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다. 1982년 CD플레이어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R2R 칩이 디지털-아날로그 컨버팅을 주도했으나 1980년대 말부터 델타 시그마 DAC이 득세를 하기 시작, 2010년대 중반까지 대세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다 미국의 MSB, 프랑스의 토탈 DAC 등을 중심으로 다시 R2R DAC이 오디오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R2R 래더 DAC을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선보이고 있는 곳이 반오디오(Bann Audio)이고, 그 주인공이 불새라고 불리는 Firebird DAC이다. 오리지널이 2013년 2월에, MKII 초기 버전이 2016년 8월에, MKII 후기 버전이 2017년 1월에, MKIII 현행 버전이 2021년 9월에 나왔다. 오디오 동호인들 온오프 모임에 가보면 불새 DAC에 대한 그들의 충성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반오디오가 R2R 래더 DAC을 고집하는 것은 델타 시그마 DAC에서는 찾을 수 없는 대체불가의 매력이 있기 때문. 이와 관련해 반오디오의 홍진표 대표는 필자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잘 아시는 대로 홍진표 대표는 한때 피씨파이 입문서의 바이블로 통한 ‘PC-Fi 가이드북’의 저자다.
“DA 변환 이후에 원래의 오디오 신호 이외의 일절의 다른 신호가 발생하지 않아야 좋은 DAC이 된다. 그런데 델타 시그마 DAC는 원리상 오디오 대역 내의 신호 해상도를 높이기 위하여 오디오 대역 밖으로 노이즈를 옮겨놓기 때문에, DAC 이후 아날로그 필터 단에서 이 오디오 대역 밖의 노이즈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힘들다. 또는 이 노이즈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오디오 신호가 오염이 되거나, 다단의 액티브 필터인 아날로그 필터 자체로 인한 음질 손상이 발생한다.”
“R2R 방식의 DAC는 델타 시그마 방식과 같은 추가적인 노이즈 제거가 필요하지 않고, 적절한 오버샘플링 필터와 결합할 경우 디지털 이미지 신호도 대단히 넓은 대역까지 제거가 가능하다. 예로 16배 오버샘플링의 경우 최초의 이미지 신호는 685kHz에서 발생한다. 이 정도로 높은 주파수 노이즈는 버퍼 앰프 자체의 1~2차 로우패스 특성만으로도 쉽게 제거가 가능하고, 오디오 대역과 많이 떨어진 신호이기 때문에 그 폐해도 그만큼 작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R2R 래더 DAC들의 소리가 좀 더 생동감이 있고, 진짜 악기 소리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음을 재생하게 된다.”
오리지널 파이어버드는 2013년 2월에 출시됐다. 상용제품으로 나온 국내 유일의 R2R 래더 DAC으로, 미국 아날로그 디바이시스(Analog Devices)의 AD1851RZ 칩을 채널당 2개씩 써서 최대 24비트/192kHz PCM, DSD64 음원을 처리했다. 해당 칩이 R2R DAC의 명줄을 쥐고 있는 만큼 저항오차가 작은 것들만 선별해서 썼다.
파이어버드 MKII는 2016년 8월에 나왔다. R2R DAC칩과 클럭, 컨버팅 스펙은 전작과 동일했지만 FPGA 필터를 변경하고,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OP앰프를 쓴 아날로그 출력단을 새로 튜닝했다. 전작의 에이징 시간이 너무 길다는 지적에 따라 위마(WIMA) 커패시터를 스티롤(Styrol) 커패시터로 바꿨다. 외관상으로는 섀시 디자인과 덩치가 바뀌었다.
파이어버드 MKII는 2017년 1월에 마이너 업그레이드를 단행했다. 말이 ‘마이너 업그레이드’이지 필자가 보기에는 ‘모델 체인저’ 급이다. R2R 칩을 기존 AD1851RZ에서 AD5543 칩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AD1851 칩 단종에 대비했다”는 것이 반오디오의 설명이다.
이번 시청기인 파이어버드 MKIII는 2021년 9월에 나왔다. 후기형 MKII 기준, 4년8개월만의 업그레이드인데 이에 걸맞게 안팎이 크게 바뀌었다. 후면의 인터페이스는 USB-B, AES/EBU, 광, 동축으로 동일하지만, 전에 없던 디스플레이가 전면에 생겼고, 속이 다 시원해질 만큼 섀시 덩치가 커지고 디자인은 심플해졌다.
파이어버드 MKIII의 핵심은 1) R2R 래더 칩을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AD5781BRUZ 칩으로, 2) OP앰프를 JFET 디스크리트 앰프로, 3) USB 수신 칩을 XMOS에서 Amanero로 바꾼 것.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4) 전원부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5) 컨버팅 스펙 역시 24비트/384kHz PCM, DSD512로 크게 좋아졌다. 이 정도 되면 MKIII가 아니라 새 모델명을 붙여도 될 뻔했다.
파이어버드 MKIII 본격 탐구
파이어버드 MKIII는 USB-B, AES/EBU, 동축, 광 입력단자를 갖춘 R2R 래더 DAC이다. 아날로그 출력단자는 밸런스(XLR), 언밸런스(RCA)를 모두 마련했다. 섀시는 알루미늄을 절삭 가공해 만들었고, 새로 생긴 LED 디스플레이에는 붉은색 도트가 입력 소스 및 재생음원의 샘플레이트 등을 알려준다. 크기(WHD)는 440 x 90 x 400mm.
스펙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PCM은 최대 24비트/384kHz까지, DSD는 최대 DSD512까지 컨버팅할 수 있다. 컨버팅 앞단에서 이뤄지는 DSP는 미국 자이링스의 스파르탄 칩을 써서 16배 오버샘플링 등을 수행한다. 이밖에 DAC을 평가하는 유용한 척도 중 하나인 다이내믹 레인지가 전작 120dB에서 130dB로 크게 늘어난 점도 눈길을 끈다.
내부 설계를 보면 크게 4가지가 바뀌었다.
● R2R 래더 DAC 칩 : 아날로그 디바이시스 AD1851RZ(AD5543) ⇒ AD5781 BRUZ
● 아날로그 버퍼단 : 아날로그 디바이시스 OP앰프 ⇒ 디스크리트 JFET 버퍼단
● USB 수신칩 : XMOS ⇒ Amanero
● 전원부 : 국산 R코어 트랜스 ⇒ 탈레마(Talema) 토로이달 트랜스
하나하나 따져보자. 가장 먼저 드는 궁금증은 MKIII가 되면서 왜 AD5781이라는 새로운 R2R 칩을 썼을까 하는 점. 이와 관련해 홍진표 대표는 필자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MKI, MKII에 사용된 AD1851, AD5543까지가 전류 출력 방식의 DAC IC였다면, MKIII에서는 전압 출력 방식의 AD5781을 사용한다. 변경의 가장 큰 사유는 이 칩 제조에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어 성능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20dB 이상의 SNR 개선이 있었다. 또한 AD1851/AD5543이 16비트 해상도에서 +/-1비트의 오차를 보이는 제품이었다면 새 AD5781은 18비트 해상도에서 +/-1비트 오차를 보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THD도 12dB(2비트) 정도 개선이 가능하다.”
파이어버드 DAC이 채널당 2개의 칩을 써서 26비트의 해상도를 구현하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MKII까지는 동일한 16비트 DAC 2개 중 1개의 DAC는 상위 16비트, 나머지 1개의 DAC는 하위 10비트를 담당해 전체 26비트 해상도를 구현했으나, MKIII가 되면서 18비트(AD5781)+8비트(AD5541) 조합으로 바뀌었다. 이는 상위 DAC가 18비트 DAC인 AD5781을 사용한 데 따른 것으로, 16비트 DAC인 AD5541이 투입된 하위 DAC에서는 8비트만을 담당한다.
내친 김에 반오디오가 왜 디스크리트 R2R DAC이 아니라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칩을 이용해 R2R DAC을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반오디오에서는 이미 디스크리트 방식의 DAC 모듈을 직접 제작해서 그 특성을 확인했지만, 투입한 물량과 노력에 비해서 원래 예측했던 것보다 원하는 수준의 품질이 얻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2개의 DAC로 26비트 이상의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기 때문에 굳이 힘들여서 디스크리트로 R2R 래더 DAC을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MKIII에서 구현된 순수 DAC 모듈의 성능만 놓고 보면 SNR 130dB 이상, THD 95~100dB로 현존 세계 최고라는 MSB Select DAC와 측정 상으로는 거의 같은 수준이다.”
“원래 R2R DAC 칩 제조를 위해서는 최첨단 기술이 사용된다. 특히나 지난 수십년간 DAC 제조 기술을 발전시켜온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품질을 앞서기는 힘들다. 물론 더 많은 노력과 자원을 투자하면 이를 능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품 가격이 급격하게 높아지게 되므로 대중적인 사용자 확보를 목표하는 파이어버드 MKIII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결국 더 적은 비용으로 동일한 성능을 얻을 수 있기에 파이어버드 MKIII에서는 디스크리트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디스크리트 R2R 래더 DAC는 저항 부품을 음질이 좋은 제품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스위치는 TTL IC의 CMOS를 사용한다는 한계가 존재하며, 전원도 5V로 낮기 때문에 SNR을 확보가 어렵다. 또한 좀 더 높은 SNR 확보를 위해서는 동일한 DAC 모듈을 2개 사용하는 사인 매그니튜드 방식을 사용하여야 하는데, 2개 모듈의 동질성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히 어렵다. 또한 대체로 MSB와 LSB 간의 거리가 멀어서 글리치(Glitch)의 발생을 피할 수 없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MKIII에서 USB 수신칩이 기존 XMOS에서 Amanero로 변경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아마네로는 작은 CPU에 CPLD(복합 프로그래머블 반도체)를 조합한 USB 수신 방식으로 XMOS에 비하여 CPU의 부하가 훨씬 작아서 소모 전력도 작고 그만큼 노이즈 발생도 적다. 이런 점이 음질에 이득일 것이라는 판단에서 솔루션을 변경했다. 아마네로는 또한 소프트웨어 기술만 라이센싱할 수 있고 다른 부분을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파이어버드 MKIII는 USB 수신단을 메인 DAC 모듈과 완전히 전원 분리하고 갈바닉 아이솔레이터로 최소한의 신호만 연결했다. 또한 CPU 코드만 라이선스한 후 CPLD 부분을 모두 FPGA로 통합하고 회로도 노이즈의 유입을 차단하고 클럭 지터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튜닝되었다. 이로 인해 전작도 그러했지만 USB 입력단의 소리가 SPDIF 입력단보다 더 좋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날로그 버퍼단이 기존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의 OP앰프에서 JFET을 이용한 디스크리트 설계로 바뀐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원하는 부품을 마음껏 투입해서 딱 원하는 음질로 마음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OP앰프는 상당히 정교한 회로로 이루어져 있고 적절한 품질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품질의 균일성과 생산의 편리함은 있지만, 아무래도 작은 다이(Die)에 반도체 소자 뿐만 아니라 저항, 콘덴서 등도 구현되어야 하는데 저항, 콘덴서 등은 오디오에 도움이 되는 구조가 아니다.”
“증폭 소자의 채널도 좁아서 역시 음질에 유리하지 못하다. 또한 OP앰프의 태생 상 오픈 루프 게인(Open Loop Gain)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버퍼로 사용하기에는 피드백 양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이엔드 수준의 음질을 위해서는 디스크리트로 버퍼를 설계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디스크리트 회로의 기본 증폭 소자는 진공관 3극관과 가장 유사한 선형성을 보이는 JFET를 페어 매칭해 사용했다. 디스크리트로 꾸민 덕분에 버퍼 회로 전체에 데일(Dale) 저항을 적용할 수 있었고, 피드백 양도 적절한 수준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인 음질에서는 저역의 힘, 음의 스피드, 투명함, 넓은 무대감, 음의 온기 등을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시청
파이어버드 MKIII 시청에는 솜의 네트워크 트랜스포트 sMS-200 Ultra, 프리마루나의 진공관 프리앰프 EVO 400 프리와 모노블럭 파워앰프 EVO 400, 매지코의 스탠드마운트 스피커 A1을 동원했다. 음원은 룬을 통해 주로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첫인상은 음이 고급스럽고 매끄럽다는 것. 지금까지 여러 차례 파이어버드 MKIII를 여러 네트워크 플레이어, 앰프에 물려들어봤지만 거의 언제나 ‘고급스럽고 매끄럽다’는 느낌이 우선이었다. 바로 이 점이 예전에 리뷰했던 파이어버드 MKII와 가장 다른 점이기도 했다. MKII가 ‘나, R2R DAC이야!’를 과시하는 타입이었고, 이번 MKIII는 매끄러운 음의 감촉을 최우선으로 삼은 듯했다.
이어 필자가 평소 쓰고 있는 델타 시그마 DAC인 마이텍의 Manhattan II DAC과 코드 M Scaler 조합으로 바꿔 들어봤다. 확실히 앞뒤 레이어가 확장되고 음들이 더 많이 들린다. 그런데 파이어버드 MKIII과 그 자리에서 맞비교를 하니 음의 입자감이 미세하게 거칠다. 그만큼 파이어버드 MKIII가 포착해내는 기타 연주음이 독보적이라는 얘기다. 대신 다이내믹스와 콘트라스트는 맨하탄 조합이 조금이나마 앞선다.
다시 파이어버드 MKIII로 바꿔 들어보면 한 음 한 음의 윤곽선이 진하고 또렷하다. 한 음을 분명히 마무리한 다음에 다음 음으로 넘어간다는 인상. 음악을 일관된 템포로 이끄는 매력이 정말 대단하다. 다시 맨하탄 조합으로 들어보면 고음이 보다 청명하게 들린다. 여기에 배음까지 수두룩하게 가세한 맨하탄 조합의 매력도 거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드 베이스의 세세한 연주가 모조리 포착된다. 무대 중앙에 맺힌 베이스의 음상도 명확하게 잡힌다. 아주 똑부러지는 연주다. 이어 맨하탄 조합으로 바꿔 들어보면, 음의 윤곽선은 상대적으로 흐릿하지만 섬세하고 예리한 맛은 더 낫다. 베이스를 비롯한 악기들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크게 맺히는 탓에 무대를 줌인해서 들여다보는 느낌.
다시 파이어버드 MKIII로 들어보면 에너지와 선명함, 이 2가지 팩터가 적절하게 밸런스를 이룬다. 배경이 정숙하고 음 자체가 맑은 것도 특징. 개인적으로는 무대를 약간 줌아웃해서 지켜보는 것 같다. 음악에 피가 돌고 살이 붙은 느낌이 보다 많이 든 것도 파이어버드 MKIII다.
이전 MKII와 가장 달라진 점은 MKII에서 간혹 느꼈던 거칠거나 투박한 구석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 비유컨대, 전작에서는 재생음에서 묘한 광물질 냄새가 났는데 신작에서는 이 것이 크게 휘발되었다. 그러면서도 청자를 편안하게 하는 덕목은 그대로 유지됐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Autumn Leaves’는 피아노, 베이스, 드럼, 세 악기가 펼쳐내는 세세한 연주를 만끽했다. 확실한 것은 전작보다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개선됐다는 사실이다.
묵직하고 강력한 펀치가 난무한다. 무엇보다 음들이 가볍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이러한 양감과 볼륨감, 그리고 무게감이야말로 요즘 델타시그마 DAC이 놓치 소중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마치 청소년기 시절에 줄창 들었던 ‘아날로그’ 카세트 테이프 소리 같다. 유려하고, 기름칠 한 듯 매끄럽다. 렉스 반다이크의 ‘Guantanamera’에서는 청명하고 깨끗한 기타소리가 돋보인다. 묵직하다고 해서 굼뜬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이 곡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이밖에도 여러 곡을 들어봤는데, 맨하탄 조합은 순간순간 다이내믹스가 돋보이고 무대를 넓게 쓴다는 인상을 준 반면, 파이어버드 MKIII는 음의 밀도가 확 늘어난 가운데 저음의 타격감과 전체적인 리듬감이 돋보였다. 파트리샤 바버의 ‘Taste of Honey’에서 기타 소리가 필자의 심장과 뇌를 자를 듯 예리했던 것은 맨하탄 조합, 보컬의 존재가 더 부각된 것은 파이어버드 MKIII였다.
영화 ‘핑크 팬더’ 메인 테마를 맨하탄 조합으로 들어보면, 악기들의 선명한 분해능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하지만 파이어버드 MKIII와 맞비교해서 듣다보니 고음에서 묘한 날카로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파이어버드 MKIII로 바꾸면 음의 강약을 조절하는 모습이 여우 같다. 콘트라스트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음 사이사이의 이음매는 훨씬 매끄럽다.
총평
친한 오디오 동호인이 한 사람 있다. 스피커도 1억원 가까이 되는 대형기를 쓰고, DAC도 난다긴다 하는 것들은 거의 모조리 섭렵한 마니아다. 그런 그가 올 초 들여놓은 것이 다름 아닌 파이어버드 MKIII였고, 지금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R2R 래더 DAC의 매력을 설파한다.
필자 역시 R2R 래더 DAC으로서 파이어버드 MKIII는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들어보면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어서 볼륨을 키우고 싶어진다. 게다가 들리는 음 하나하나의 형태와 결이 모두 다르니 계속해서 음악을 듣게 만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파이어버드 MKIII로 들었던 ‘Taste of Honey’와 ‘Come Together’가 귓전을 마구 때린다.
글 : 오디오 평론가 김편
DAC Technology :
독자 개발 24bit R2R Multi-bit Ladder
내부 연산은 26bit로 처리
DAC Chip
채널당 Analog Device AD5781+ AD5541
DSP
Xilinx Spartan FPGA with x16 oversampling
Linear Oversampling, Apodising Filter
Data rate
PCM 24bit/384kHz
DoP로 DSD128, Native DSD는 DSD512(ASIO Only)
Digital Input
USB Audio Spec 2.0(Asynchronous) x1
Optical Toslink x1
SPDIF Coax(RCA) x1
AES/EBU XLR x1
Analog Output
Un-Balanced RCA 2.0V, Balanced XLR 4.0V
Power Supply
Talema Transformer Linear Power Supply,
Analog와 Digital 전원 분리
Dynamic Range : 125dB
SNR : 125dB (Un-Balanced RCA) / 127dB (Balanced XLR)
THD : 미정
Dimension(WxDxH) : 440x400x90mm(with Foot 115)
Case Material : 100% Aluminum Alloy
Power consumption : 대기시 1W 미만, 동작시 30W 미만
- Dynamic Range는 Audio Precision System 2722로 측정한 값
제조사 : 반오디오 (http://bannaudio.com)
공식 소비자 가격 : 10,8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