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오디오에서 전기
오디오 운용을 오래 하다보면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문제에 대해 골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겨울철 무척 건조한 날씨가 계속될 경우 아침에 일어나 오디오를 켜고 볼륨을 만지는데 찌릿~하는 전기를 느꼈을 때다. 혹시나 기기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지도 모를 정도로 놀라기도 하는데 바로 정전기 현상이다. 특히 엘피로 음악을 자주 듣는 경우에도 정전기 때문에 엘피를 자켓에서 꺼낼 때부터 먼지가 주~욱 달라붙어 매우 불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시 스웨터라도 입었다면 온몸에 소름이 돌 정도로 기분 나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음이온 발생기를 집에서 운용하기도 하며 최근엔 DS 오디오라는 곳에서 정전기 제거 전용 이오나이저를 출시하기도 했다.
오디오에 깊이 골몰하기 전까진 이런 현상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지만 한두 푼이 아닌 고가의 오디오를 운용하는 사람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 야구가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면 오디오는 전기와 진동 놀음이라고, 이 때문에 만들어지는 음질적 해악은 이만 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에 있어 기본적으로 충분한 전압이 시간과 관계없이 어느 정도 균질하게 측정되고 접지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가끔씩 유령처럼 등장하는 정전기 정도는 그냥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디오 마니아들은 다양한 오디오 전용 전원 장치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것도 만사형통은 아니어서 제품에 따라서 오히려 음질을 해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과거 차폐 트랜스를 사용하곤 했는데 종종 파워앰프를 벽체에 꼽게 되면 다이내믹스가 확 올라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느 때부턴가 차폐 트랜스 류의 전원 장치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론 전압이 조금 불균질하더라도 벽체 혹은 멀티탭만 사용했는데 때로 AC 리제너레이터를 사용해보면 좋은 경우도 있었다. 그것도 한 때, 어떤 경우엔 AC 리제너레이터 자체가 소음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전기에 있어서도 오디오 마니아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접지다. 예를 들어 기기를 만지만 쓰~윽 하고 항상 기분 나쁜 전기가 감지되는 경우다. 접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꽤 큰 그라운드 전류가 기기와 기기 사이를 계속 뱅뱅 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이는 기기마다 제 소리를 못 내고 쫓겨나기 일쑤였던 시절 깨달은 바가 있어 집 전체 그라운드를 체크하고 문제를 해결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일부 마니아들은 아예 전원 차단기부터 오디오 전용으로 제작해 오직 오디오만을 위한 전력 공급 시스템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액티브 그라운딩 시스템
하지만 일반 우리 대다수의 오디오 마니아는 전기 공사를 따로 하기 쉽지 않다. 비용도 비용이며 솔로가 아닌 이상 가족들의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다른 사람 눈엔 아무렇지도 않을 일이라고 해도 오디오 마니아에게 전원 관련 이슈는 태산보다 더 큰 일처럼 보이기 일쑤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딱히 대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이런 오디오 마니아의 고충을 알아차린 일부 메이커들이 접지 시스템을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접지 상자 안에 구리판이나 구리 막대 혹은 광물 분말 등 전도성이 좋은 소재를 넣고 각 콤포넌트에 접지단을 따서 이 접지 박스와 연결하는 방식이다. 과거 이런 DIY도 가능한 접지 박스를 고가에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광물질이나 전해질의 특성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접지 특성이 변화할 수 있다. 처음엔 높은 효과를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서 체크해보면 별다른 성능을 보이지 않는, 그저 시각효과로 인한 위약 효과만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또 다른 전원 전문가들이 새로운 형태의 접지 장치를 만들어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메이커가 다름 아닌 텔로스라는 브랜드의 Grounding Noise Reducer 같은 것이다. 이는 제품화되어서 이미 판매 중인데 무척 뛰어난 성능과 함께 사용상 편의성도 훌륭하다.
Earth Grounding Monster
텔로스의 GNR은 매우 영민한 설계 방식을 통해 접지 노이즈를 최소화하고 있다. 전원을 공급받아 작동하며 후면에 여러 개의 바인딩포스트를 마련해놓고 있다. 여기에 운용 중인 각 컴포넌트의 접지단, 혹시 접지가 없을 경우 섀시에서 접지를 따서 연결하면 접지 전압을 최소화시켜준다. 이런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데엔 단순한 아날로그 기술이 아닌 텔로스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설계 기술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접지 전압을 낮추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접지 전위를 균질하게 만들어준다. 이는 마치 배들이 떠다니는 바다의 수위를 동일하게 맞추어준 것과 유사하다.
바로 그 텔로스에서 이번엔 GNR을 뛰어넘는 거함을 들고 나왔다. 그 주인공은 이번 리뷰의 주인공인 ‘Earth Grounding Monster’. 이 제품은 텔로스를 이끄는 제프 린이 이제까지 텔로스를 운영해오면서 개발해온 대표적인 기술을 모두 아낌없이 투입한 제품이다. 일단 앞서 말한 ‘Ground Noise Reducer’다. 그리고 또 하나는 ‘Quantum Noise Resonator’다. 이 또한 기존에 제품화한 것으로 입력 전원의 파형을 내부 IC로 측정한 후 위상 왜곡과 노이즈에 대해 보상파를 발생시켜 깨끗한 파형을 만들어낸다는 논리다.
또 하나는 다름 아닌 ‘Quantum Magnetic Tuning’ 기술로서 이는 기존에 필자가 리뷰했던 제품이다. 기본적으로 오디오의 음질을 훼손시키는 요소 중 하나인 전자기장을 제거해주는 기기다. 텔로스는 이를 우리가 사용하는 물리 매체, 즉 CD, SACD, 블루레이 디스크에 적용했는데 표면에 형성되는 자기장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그 메커니즘은 다름 아닌 일종의 하모나이저 신호를 방출하는 것이 골자인데 무려 0Hz에서 100kHz라는, 인간의 가청 범위 한참 밖까지 이르는 광대역에 걸쳐 스캔 후 방출한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GNR처럼 균질한 자기장 유지가 이뤄진다.
청음
이번 테스트는 평소 여러 차례 청음 해보았던 시스템에서 진행했다. 우선 소스 기기는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아하는 홀로오디오의 May dac를 사용했고 음원은 ROON Nucleus에 저장된 음원을 사용해 ROON으로 재생했다. 프리앰프는 몇 년 전 매우 인상 깊게 들었던 블록 오디오의 프리 및 모노블럭 파워앰프를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스피커는 최근 해외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퍼리슨의 S7t 스피커를 활용했다. 테스트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후방에 전원 케이블을 꼽고 좌/우로 위치한 총 열 두 개의 바인딩포스트에 기기들의 접지를 연결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기기에 연결한 후 조금 시간차를 둔 후 동일한 음악을 재생하고 이후에 다시 연결을 해제한 후 들어보고 그리고 다시 접지 케이블을 연결한 후 음악을 들었다. ABA 테스트로 꽤 높은 집중력 유지가 중요한데 음질적 차이가 제법 커서 흥미진진한 테스트가 되었다. 참고로 접지의 경우 DAC, 프리앰프, 파워앰프 두 조에 모두 연결했고 추가로 RCA 단자를 활용해 프리앰프와 May DAC에 추가로 연결을 해보기도 했다.
우선 피아노 소리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앤 비송의 ‘Da unten im tale’를 재생하자 터져 나오는 피아노 타건은 더 맑고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소리 표면의 작은 때 하나까지도 모두 지워낸 듯한 사운드다. 마치 미세 먼지를 차창에서 지워낸 듯한 느낌인데 배경에서 피아노 소리만 떼어낸 듯 레이어링 분리가 분명하다. 아울러 보컬 포커싱이 더 명료해졌고 마치 촛불처럼 일렁이는 자연스러운 음상을 포착할 수 있었다. 대체로 이런 전원 관련 기기들에서 종종 너무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곤 하는데 오히려 아날로그에 가까운 사운드로 변화하는 모습이다.
다음으로 실체감의 증가가 돋보인다. 예를 들어 아르네 돔네러스의 ‘High life’를 들어보면 싱싱한 악기들의 촉감이 각각 모두 분리되어 생생하게 펼쳐진다. 예상했던 것이긴 하지만 더 싱싱하고 실체에 더 가까워진 싱싱한 사운드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런 실체감은 음색, 해상도, 청감상 SN비의 변화만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다름 아닌 다이내믹스 표현의 상승이 관찰된다. 작은 펍에서 녹음한 이 녹음은 원래 배경 잡음 등 아주 낮은 레벨의 약음도 모두 수음되어 있는데 알 수 없는 노이즈 아래 잠자고 있던 소리 알갱이들이 모두 수면 위로 뛰쳐나온 모습이다.
해상도, 디테일, 청감상 SN비 등의 일시적 상승은 약음에 디테일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이는 단편적이 아리라 매우 다면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트론트하임 솔리스텐의 ‘From holberg’s time’을 들어보면 또 한 번 다이내믹스의 상승을 엿볼 수 있다. 매크로 다이내믹스도 마찬가지지만 약음과 더 낮은 레벨의 약음 대비가 상승한다. 그리고 이는 음악에 더 높은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음악에선 낮은 옥타브의 소리 몇 초 연주가 곡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하는데 이번 경우 이를 실감했다.
피에르 불레즈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르라 연주한 스트라빈스키의 ‘Firebird’를 들었다. 대체로 대편성 교향곡의 녹음은 높은 파워를 가진 광대역 파워앰프를 매칭했을 때 그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대출력 파워앰프의 경우 때론 광폭한 중, 저역과 넓고 입체적인 무대 재현의 강점과 함께 그 반대로 너무 딱딱하고 거칠거나 건조한 중, 고역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물론 이번엔 블록오디오의 출중한 클래스 A 증폭 파워앰프가 충분히 강력하면서도 질감 좋은 사운드를 내주었지만 텔로스를 투입했을 때 더 명료하고 응집력이 뛰어나면서도 그 테스처 표현 수준을 높여주었다.
총평
어쿠스틱 악기가 가지고 있는 음색, 잔향, 다이내믹스와 해상도 표현은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넘어야할 산이다. 물론 일렉트릭 악기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어쿠스틱 악기들에서 그 오디오 시스템의 실력이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다. 오디오 마니아 중 클래시컬 음악 애호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제품은 웬만한 파워앰프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엄청난 물량 투입이 이뤄진 기기다. 어찌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인데 실제 적용 전/후를 비교해보면 전원이라는 것이 오디오의 기본 전제이자 본질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만드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Earth Grounding Monster’의 단점이라면 어마어마한 가격 뿐, 오디오 전원 장치의 신대륙이라 할만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조사 : Telos Audio Design
공식 수입원 : 소노리스 (www.sonoris.co.kr)
공식 소비자 가격 : 55,000,000원
ㅎㅎ~~` 전원장치가 5천 5백만원까지 나갔네요~~~
이런 추세라면 1억짜리도 나오겠지요~~~~
제품의 만듬새는 명품이라 불릴 만 한데 역시 가격이 걸림돌이죠~~~
어쨌던 오디오 좋아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멋진 제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