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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의 음악적 시선 속에 침잠하다

바쿤 SCA-7511M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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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어필드 리스닝

‘본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시각, 시력을 가지고 눈앞에 놓인 물체나 사람을 본다는, 사전적 의미 이상을 가질 때가 있다. 대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게 할 때도 있어 그것은 종종 보도를 위한 사진이나 혹은 사진작가의 사진전에서도 발견된다. 대상에 대한 본질을 과연 어떤 시각으로 꿰뚫어보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진도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본질은 찍힌 사물이나 사람이 아닌 찍은 자의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본다는 것은 그래서 피사체가 아닌 관찰자 시점의 시각, 시선을 어쩔 수 없이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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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이나 그림을 볼 때 피사체의 객관적 형체가 아닌 이를 찍거나 그린 사람의 시선을 발견하는 일은 그래서 즐겁다. 육체를 찍은 사진에서 그 작가의 시선을 뺀다면 대개의 인물 사진은 그저 뼈와 근육과 머리카락 정도로 조합된 평범한 동물적 인간 군상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단 한 장의 사진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작가의 의도를 추적해냈을 때 그 사진은 병원 진료실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해부도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음악을 듣는 일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들을 땐 그저 화창한 봄날의 풍경을 연상시키던 음악이 세밀하게 뜯어보면서 작곡가의 의미를 되새겨볼 때 그것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가끔 오디오에서도 그런 경험을 한다. 멀리 떨어져 음악을 들을 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감흥이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만지면서 들을 땐 살아난다. 과장하자면 기기의 본질에 더 가까이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기기가 생물은 아니지만 디테일은 그 내면을 더 자세히 드러낸다. 니어필드 리스닝은 어쩌면 제작자의 음악, 음향에 대한 시선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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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더 가까이

바쿤의 DAC와 포노앰프를 들어보면서 나는 한층 제작자와 가까워진 느낌을 가진다. 유명 메이커의 크고 아름다운 섀시, 멀리서도 빛나는 크고 우람한 것이 아니더라도 음악은 맛있다. 스위스나 미국의 비싸 보이는 섀시와 브랜드가 나를 고양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론 나를 그런 럭셔리와 동일시하는 위약효과는 있지만 허상이고 착각임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유명 브랜드의 유명 제품에 열광하면서 지갑을 열지만 나는 어쩐지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고집 센 제작자의 마인드가 깊게 아로 새겨진 제품이 좋다.

바쿤은 아마 그런 브랜드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특히 바쿤을 들어보면서 니어필드 리스닝의 재미를 새삼 깨닫고 있는 나날이다. 그 흔한 디스플레이 하나도 없는 SCA-7511MK4를 마주하면 이것이 과연 21세기 오디오 제품인지 의문 부호를 떠올린다. 그러나 음악을 틀고 토글스위치를 톡 하고 작동시키고 오렌지 빛 볼륨 노브를 돌리는 순간 제작자와 손끝이 맞닿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세상에…요즘 같은 시대에 리모컨이 없는 오디오라니. 그러나 니어필드 리스닝이라면 아무런 불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볼륨의 감촉을 통해 공감의 기쁨이 추가되기도 한다. 마치 눈앞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때 카메라를 꼭 쥐고 촬영하듯 바쿤은 음악을 내 손 안에 꼭 쥐고 있는 듯 실체감을 높여주었다. 결국 음악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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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7511MK4

그 음악의 드넓은 풍경을 바라보는 망원경은 SCA-7511MK4였다. 이 앰프는 구마모토 현에서 탄생의 깃발을 올린 바쿤 프로덕츠의 알파와 오메가다. 아키라 나가이씨가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해 처음 만들었던 사트리(SATRI) 회로의 시작에 7511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다름 아닌 네거티브 피드백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반기를 들고 완전히 다른 시선에서 회로를 구상하게 된 것이 사트리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동경 오디오 박람회에서 이 앰프의 초창기 모델 SCA-7511의 프로토 타입 앰프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앰프의 볼륨에 있다. 일반적으로 소리의 크기를 앰프 입장에서 조정할 때 게인과 볼륨을 나누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게인은 입력단의 크기를 조정하는 것이고 볼륨은 출력의 크기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볼륨을 다른 말로 어테뉴에이터, 즉 감쇄기라고 부른다. 바쿤의 경우 입력 신호를 저항(R1)에 의해 전류로 변환시킨 후 출력단의 저항(R2)에 의해 전압으로 변환된다. 그리고 입/출력단 두 개의 저항의 비에 의해 증폭도를 조정한다. 네거티브 회로를 내부에 탑재하지 않고 오로지 저항만으로 증폭도만 조정, 바로 출력하기 때문에 신호 순도의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볼륨 노브처럼 보이는 곳에 게인이라고 써놓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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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인을 조정해 소리 크기를 조정하는 앰프는 SN비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게인 자체를 조정하면 출력 전압과 관계없이 항상 일정한 SN비를 가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볼륨 감쇄기를 사용할 경우 볼륨을 내릴수록 노이즈의 상대적 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볼륨을 낮출수록 SN비가 계속해서 나빠지지만 바쿤은 그럴 걱정이 없다. 뿐만 아니라 과거 앰프 회로 설계에서 필요악으로 일컬어지곤 했던 네거티브 패드백을 적용하지 않음으로 해서 시간축 왜곡으로 인한 생동감 결여 등의 문제도 일거에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바쿤은 위의 기본적인 회로에서 거듭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번에 출시된 앰프는 무려 MK4 버전이다. 같은 형번의 모델을 네 번이나 업그레이드해서 내놓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제작사 입장에선 오히려 새로운 디자인에 업그레이드된 PCB 설계를 통해 더 높은 소비자 가격을 제시하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여지없이 이번에도 7511이라는 숫자를 유지하는 고집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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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MK4에선 사트리 IC에 출력단에 HIBIKI-IC를 더해 소리의 두께, 정보량, 리얼리티를 증가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MK4 버전에선 입력단에 임피던스를 조정하는 회로 HBFBC를 무려 네 개나 탑재하고 있다. ‘HyBrid FET input Buffer Circuit’라는 이름처럼 일종의 버퍼 회로를 모듈화해 만든 것. 이로써 정보량 등 여러 측면에서 압도적인 여유를 가지고 스피커를 드라이빙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페이스 측면에선 입력단에 전압 입력 및 전류 입력(사트리-링크) 각 한 조가 마련되어 있고 스피커 출력도 좌/우 한 조씩 지원하고 있다. 더불어 스테레오 모드 또는 앰프 한 조를 더 추가해 BTL 모드로 작동시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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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채우는 바쿤의 섬세한 미음

테스트는 자택의 리스닝 룸에서 이뤄졌다. 메인 스피커로 락포트 Atria를 쓰고 있지만 케프 LS50Meta와 리바이벌 오디오의 Atalante 그리고 PSB, Q 어쿠스틱스 북셀프 그리고 풀레인지 스피커 등 다양한 북셀프들이 즐비하다. 이번엔 케프와 리바이벌 오디오 스피커를 통해 바쿤 SCA-7511MK4의 성능을 체크해보았다. 소스기기는 한상 그렇듯 웨이버사 Wcore/Wstreamer 콤비에 MSB Analog DAC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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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SCA-7511MK4 앰프를 시스템에 연결하면 사뿐히 자신의 자리를 꿰차고 들어서 그만의 영역을 차지해버린다. 그러나 억세거나 부자연스럽게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예를 들어 도미닉 밀러의 ‘Fields of gold’를 들어보면 먼저 온화한 소릿결이 방 안의 공기를 데운다. 정갈하면서도 깍쟁이처럼 자신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스피커의 특성과 친근하게 녹아든다. 마치 사교성 좋은, 그러나 자신만의 개성이 미묘하게 섞인 소리다. 전체적으로 온도감이 좋고 중, 고역의 그 앙증맞은 기타 울림이 절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잔잔한 호수의 파동처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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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이나 관악, 피아노에서도 이런 바쿤 SCA-7511MK4의 잔향은 어김없이 유령처럼 등장해 귀를 잡아 끈다. 단시간의 쾌감보단 장시간의 음악 감상에 어울린다. 그것은 아마도 잔향 뿐 아니라 특유의 엔벨로프 특성 때문 일게다. 예를 들어 야콥 영의 ‘I lost my heart to you’에서 피아노는 빠른 어택으로 가뿐히 정점에 오르지만 릴리즈가 유연하게, 미끄러지듯 빠져나온다.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일부 하이엔드 오디오의 그것과 사뭇 다른 낭만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마치 새벽 맑은 물에 세수를 한 듯 청춘의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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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것은 마치 빈티지 앰프의 리바이벌 같지만 실제 들어보면 전혀 질척거리거나 딜레이되는 경향이 없이 민첩하다. 예를 들어 도널드 페이건의 ‘Morph the cat’을 들어보면 아마도 이를 레퍼런스 트랙을 활용하는 하만 엔지니어들도 놀랄 것이다. 재빠른 스타트, 스탑 그리고 리듬 전환이 민첩하다. 작은 사이즈 때문에 다소 왜소하고 얇은 소리가 날 것 같지만 재생 버튼을 누르자마자 펼쳐지는 당돌한 사운드는 놀랍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으며 제법 무대를 넓게 쓰는 모습으로 무대는 약간 앞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호소한다. 아마도 프리앰프를 넣으면 이런 심도 부분에서 꽤 차이가 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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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 밖으로 편성이 큰 관현악 레코딩에서 바쿤 SCA-7511MK4는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정명훈 지휘로 듣는 피아졸라의 ‘Adios nonino’에서 광속처럼 내리치는 첫 음계부터 강력한 힘과 스피드로 치고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립하기 힘든 스피드와 온기를 동시에 피로한다. 스피드와 힘이 좋은 경우 너무 쌀쌀맞게 들릴 소지가 있지만 피아노의 또랑또랑한 펀치력을 위시로 금빛처럼 번뜩이는 관악기들이 무대를 짙게 물들인다. 물론 더 낮은 감도를 가진 스피커라면 주눅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운영하는 스피커의 매칭 경험을 고려할 때 예상 밖의 선전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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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작은 사이즈를 가진 앰프라서 책상 위에서 들으려고 했지만 그 사이즈와 어울리지 않은 스케일과 다이내믹스 폭은 책상 위에 머물기엔 아까운 재능이었다. 따라서 나중엔 보란 듯 메인 시스템 곁에 설치했다. 흥미로운 건 오후 3시까지도 전혀 화이트 노이즈가 없다는 점이다. 바쿤은 게인 조정을 통한 음량 조절을 통해 일반적인 볼륨이라면 매우 값비싼 앰프에서나 가능할 법한 탁월한 SN비를 쉽게 얻었다. 한편 평소 게인은 아홉시에서 열시 정도를 배회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또 하나의 과제를 남겼다. 다소 얕은 무대 깊이, 즉 심도 표현이며 좀 더 넓은 스테이징에서 더 정돈된, 성숙한 사운드는 약간 아쉬웠다. 하지만 이 가격대에선 이 정도 성능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데스크탑 니어필드 리스닝 혹은 메인 시스템으로도 손색이 없는 바쿤 SCA-7511MK4는 바쿤만의 음악적 시선 속으로 나를 더 깊이, 깊이 침잠하게 만들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출력
스테레오 15W+15W(8Ω/10% distortion), 모노 20W
헤드폰: 200mW(표준 플러그) ×1

입력 : 전압 입력 (RCA) ×1, 전류 입력 (SATRI-LINK / BNC) ×1
입력 임피던스 : 100KΩ
임피던스 : 스테레오 4Ω-8Ω, 모노럴 8Ω, 헤드폰 출력: 4-600Ω
노이즈 레벨 : VR 최대 50μV(A 곡선), VR 최소 1μV(A 곡선)

크기 : 78mm(높이) x 235mm(너비) x 295mm(깊이)
무게 : 2.9Kg

제조사 : 바쿤 프로덕츠 (일본)
공식 수입원 : 바쿤 매니아 (https://cafe.naver.com/bakoonmania)
공식 소비자 가격 : 4,05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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