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생산하는 사람들
여타 물건처럼 음악 분야에서도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들과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콘서트홀에 가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듣는 청중이 있다. 전자가 생산자고 후자는 소비자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음악이 그저 거리나 홀에서 연주하는 것을 넘어 이를 녹음해 매체에 담거나 온라인에서 음원 형태로 서비스하는 데에는 임가공과 그에 따른 규격이 있다. 그리고 이를 상품화해서 판매하게 되면서 중간에 가공해내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을 우리는 통칭해서 엔지니어라고 부르며 현장에선 녹음, 믹싱, 마스터링 엔지니어, 테크니션, 더 나아가 톤 마이스터 등 다양한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음악이 말 그대로 ‘생산된다’.
이런 입장의 차이와 시선의 다름은 음악을 듣는 기준을 달리하게 만든다. 음악은 음원의 규격이 비트 레이트와 샘플링 레이트로 규정되듯 다이내믹레인지와 주파수 특성으로 나누어지는데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누구나 어디서든 어떤 음향 기기로든 문제없이 들을 수 있게끔 최종 음원을 만들어 내야한다. 더 나아가 원래 뮤지션이 의도했던 그 사운드 특색을 가감 없이 마스터 음원으로 재가공해야만 한다. 따라서 적당한 다이내믹레인지와 마진 폭 그리고 착색 없이 정직한 주파수 응답 특성을 얻어야하고 피크나 딥, 노이즈로부터 해방시켜야한다.
하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음원을 만들어낼 것인가? 엔지니어의 음악적 음향적 지식을 기반으로 모니터 스피커가 그 최종 기준점이 되어준다. 물론 여러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보조 역할을 해준다. 따라서 스피커 메이커들의 라인업만 잘 살펴봐도 스튜디오용 모니터와 가정용 스피커의 차이를 알려준다. B&W, ATC, PMC 같은 브랜드는 가정용 스피커도 만들지만 동시에 스튜디오용 모니터 스피커도 만들어낸다. 그 특징을 보면 크게 모나지 않는 주파수 특성과 폭넓은 다이내믹스, 특별히 취향을 크게 타지 않는 범용적인 특징을 갖는다. 물론 각 브랜드의 모든 라인업이 아닌 일부 라인업에 국한되는 이야기이긴 하다.
해외 스튜디오를 보면 특히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가정용으로 익히 유명한 메이커들의 스피커를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영국의 애비로드 스튜디오나 미국의 사운드미러 스튜디오는 B&W 스피커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돌비에서 애트모스 마스터링용으로 인증한 PMC를 사용하는 스튜디오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오히려 스튜디오와 가정을 넘나드는 스피커 메이커보다 오히려 스튜디오 모니터 전용으로 만들어진 스피커들이 스튜디오를 지배한다. 예를 들어 제네렉 같은 액티브 스피커가 대표적이다.
팔콘 랩
팔콘 랩이라면 스튜디오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무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이파이 오디오 마니아라면 알 수도 있다. 다름 아닌 일본의 무지향 스피커 전문 메이커인데 몇 년 전 이 회사의 대표가 내한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 회사의 대표 우라노 마사오를 2018년 가을 즈음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오랜 연륜을 가진 제작자로서 그는 특히 무지향 스피커 전문가로 이름이 높다. 우리나라 말로는 무지향이라고 하지만 원어로는 ‘Omni-Directional’로서 전방향 지향 스피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확하다.
이러한 스피커는 말 그대로 음향을 일반적인 다이내믹 드라이버처럼 전면으로만 방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방향으로 방사한다. 수평축에서 360도로 방사시키는 것. 뮤지션이 연주할 때 그 소리를 뮤지션 바로 앞뿐만 아니라 뒤에서도 비슷한 음압으로 느낄 수 있듯 음악을 재생하는 스피커도 그래야한다는 생각에서 고안한 스피커 트랜스듀서 형태다. 이를 위해 직접 전지향 스피커 유닛을 개발하는 MBL 같은 메이커도 있지만 팔콘 랩은 반사판을 만들어 360도로 반사시키는 방식을 고안해 제작하고 있다. 사실 삼성, LG 등 대기업이나 라이프스타일 올인원 스피커에서도 이런 전지향 방사 타입 스피커는 종종 활용되고 있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이론적인 근거는 모두 젊은 시절 현지에서 직접 기술과 노하우를 익힌 우라노 마사오 대표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MIT 출신으로 보스라는 혁신적인 스피커를 개발한 아마르 보스의 제자라고 자처하고 있다. 1977년부터 약 3년간 보스 스피커 개발에 참여해 음향의 지향성에 대한 연구를 함께 했다고 한다. 우리가 가정에서 듣는 음악의 절반 이상이 직접음이 아니라 반사음이라는 사실로부터 출발한 보스는 무지향 스피커 연구에도 지대한 영향과 도움을 주었다.
PM62 액티브 모니터 스피커
최근 이 팔콘 랩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국내 사운드 트리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왔고 대뜸 액티브 모니터 스피커를 리뷰해달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팔콘 랩과 협력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혹시 무지향 타입의 액티브 스피커인가? 스튜디오에서 이런 타입의 스피커를 모니터 스피커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어쨌든 궁금한 마음에 샘플을 의뢰해 나의 방에 도착했다.
크기는 너비가 205mm, 깊이가 230mm, 높이가 335mm로 미들급 정도로 보이는 사이즈다. 인클로저는 꽤 단단해 보이며 코팅 덕분에 금속인 줄 알았지만 고강도 목재로 보인다. 전면엔 트위터 하나와 미드/베이스 우퍼 한 발이 멋지게 박혀 있는 모습. 2웨이 2스피커 타입으로 후방에 포트를 설치한 저음 반사형(위상 반전형) 스피커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스피커는 앰프를 내장한 액티브 스피커로서 내부에 클래스 D 증폭 파워앰프를 내장했다. 트위터와 미드/베이스 우퍼에 각각 15와트 및 25와트 출력 앰프를 사용했는데 호주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액티브 스피커의 내장 앰프 출력치곤 작은 편인데 어느 정도 드라이빙 능력을 갖추었는지는 청음 편에서 이어나가도록 하자.
우선 가장 핵심이 되는 드라이브 유닛은 겉으로 볼 땐 팔콘 랩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구성이다. 트위터는 혼 타입 인클로저 개구부의 중심 안쪽에 위치해 있다. 혼 타입 설계는 고역을 더 멀리 넓고 빠르게 방사시키려는 의도로 적용한 것으로 보이이만 일반적인 혼보단 좌우 방사각을 넓게 설계해 음파가 최대한 넓은 각도로 뻗어나가도록 했다. 혼과 지향성 측면에서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무지향 음향을 이상으로 추구하는 팔콘 랩의 노련한 한 수다. 한편 트위터 자체가 독특한 모양인데 이 부분에서 아마도 팔콘 랩의 흔적이 느껴진다. 팔콘 랩 스피커에 채용한 PATR(Olyalloy Tangential Ring Tweeter)로 보인다. 중앙에 일종의 페이즈 플러그를 길게 달아 음파를 부드럽고 균질하게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편 미드/베이스 우퍼는 6인치로 펄프, 그러니까 페이퍼 진동판을 채용하고 있는 모습. 마치 과거 JBL 스피커의 그것을 연상시키는데 여러 개의 주름이 잡혀 있고 서라운드 에지는 섬유 소재로 보인다.
셋업 & 청음
PM62는 액티브 스피커로서 후면에 각 채널당 모두 AC 전원을 입력해야 작동한다. 음원을 받아 변환해주는 DAC 등 소스 기기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 매운 간단한 인터페이스를 보인다. XLR 및 TRS 입력단이 보이면 아래로 RCA 입력단도 마련해놓은 모습이다. 한편 공간 사이즈나 매칭 기기 혹은 사용자 취향에 맞게 트위터와 미드/베이스 우퍼의 게인(dB)을 조정할 수 있다. 조정 폭은 0, -1, +3 등 세 종류다. 셋업은 매우 간단했다. 참고로 볼륨이 뒤에 있고 리모컨이 지원되지 않는 점은 조금 불편할 수 있어 보인다. 아무튼 각 채널 스피커에 전원 케이블을 꼽고 필자가 사용 중인 MSB Analog DAC의 XLR 출력단을 스피커와 연결해 셋업하고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테스트해보았다.
PM62는 고역과 중, 저역 주파수 속도차 일치를 통한 위상 정렬을 위해 트위터를 깊게 위치시켰다. 실제로 이런 설계는 작지만 또렷한 음상을 만들어내준다. 앤 비선의 ‘Dan unten im tale’를 들어보면 또랑또랑한 피아노 타건 위로 바이올린이 분리되어 얹혀지면서 분명한 레이어링을 형성한다. 더불어 보컬 발성이 명료하게 중앙에서 들려온다. 예상보다 심도가 높고 계산해 지정한 위치에서 그려낸 듯한 보컬 음상이다.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는 모니터라는 설계 취지에 정확히 부합한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중역에 좀 더 살집이 붙었으면 좋겠지만 음원을 검청해야 하는 이 스피커의 의무에서 볼 때 PM62의 주파수 대역 균형감은 훌륭하다. 존 메이어의 ‘Clarity’를 들어보면 빈틈 없은 밸런스 속에서 기타, 타악 등이 경쾌하고 뚜렷하게 다가온다. 뭔가 자신만의 토널 밸런스를 통한 색깔을 덧입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호쾌하게 쏟아낸다. 혼 타입 트위터의 개방감은 속이 시원한 쾌감을 동반하다. 마치 JBL 모니터의 환생을 보는 듯 호방한 기개가 음악 듣는 맛을 배가시킨다.
반응 속도 측면에서 매우 날렵한 타입이어서 지지부진 딜레이가 걸리거나 잔향이 겹쳐 뿌옇게 잔상이 남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최근 하이엔드 패시브 스피커에 비해 너무 차갑고 냉정한 느낌은 아니다. 드라이브 유닛, 인클로저 영향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다프트 펑크의 ‘Doin’ it right’을 들어보면 리듬 악기군의 순간 타격감이 매우 높고 그 속이 밀도 높게 들어차 있다. 한편 이 곡은 높은 저역대 부스트가 좀 있는 편이지만 그로 인한 부밍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 칼칼하고 경쾌한 중, 고역에 비해 저역은 단단하고 다부진 사운드다.
음색 면에서 온도감은 낮지도 높지도 않다. 한편 그 촉감에선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드러내는 스타일이며 넓은 공간감을 표현해준다. 내가 운용하는 락포트나 리바이벌오디오에 비하면 덜 예쁘지만 반대로 어떤 화장도 하지 않은 맨얼굴에 비유할 수 있다. 모니터 타입인 케프 LS50Meta마저도 예쁘게 들릴 정도다. 부쉬 트리오가 연주한 드보르작 피아노 삼중주 ‘Dumky’를 들어보면 현장의 기저 노이즈와 함께 앰비언스 자체를 방 안에 생생하게 옮겨놓는 모습이다.
앨리스 사라 오트와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함께 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에선 이 스피커가 공간에 형성시키는 입체감의 표정을 알 수 있다. 무지향 스피커처럼 360도로 음향을 고루 흩뿌리는 설계는 아지만 혼 타입 개구부 속에 트위터를 위치시켜 지향성을 높이고 페이즈플러그를 추가로 설치해 고역의 고른 분산 특성을 양립하고 있다. 무지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넓게 채워주는 이유다. 스튜디오 마스터 음원을 들어도 마치 현장 음을 듣는 듯한 실체감, 앰비언스가 잘 살아나는 이유라고 판단된다.
총평
이번 시청에선 오직 DAC만 사용했지만 RCA 입력에 또다른 소스기기를 연결해 사용할 수도 있어 스튜디오는 물론 가정용으로도 사용할만한 스피커다. 참고로 MSB Analog는 프리앰프 옵션이 내장되어 있어 볼륨 조정이 가능이 가능하지만 유니티 게인 100으로 설정해 프리 부문을 바이패스시켜 테스트했다. 한편 청감 볼륨은 PM62에서 조정했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경우가 더 나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이 때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으며 니어필드 모니터 스피커로만 사용하기에 아까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팔콘 랩은 보스, 인피니티 등을 만든 레전드들과 젊은 날을 함께 했던 우라노 대표가 운영하면서 현재 무지향 스피커의 숨은 고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번 스피커는 무지향 설계는 아니지만 팔콘 랩과 사운드트리의 협력을 통해 탄탄한 밸런스와 입체감, 현장감이 제대로 살아나는 액티브 모니터 스피커를 개발해냈다. 더 높은 가격대에 더 높은 성능과 편의성을 지닌 스피커는 많다. 하지만 가격대를 고려하면 바겐 세일에 가깝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조사 : 팔콘 랩 (일본), 사운드트리 (한국)
제품 정보 : https://cafe.naver.com/tree4sound
공식 소비자 가격 : 1,89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