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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는 사라졌고 음악만 남았다

라이라복스 Karlos

KARLOS scenario loft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오디오

하이엔드 오디오라는 기치를 올리고 오디오 분야에서 극단적인 성능을 추구하던 엔지니어들이 전무후무한 물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닻을 올리고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무브먼트의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앰프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전원부와 수십 개의 출력 트랜지스터가 탑재되었고 밥상만한 클래스 A 증폭 앰프들이 나타났다. 지금도 가끔 그 당시 앰프들의 내부 설계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 편에선 스피커를 모듈화해서 여러 개의 캐비닛으로 나누었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탄생했다.

이런 기술적 극단주의는 어느새 유럽의 예술적 토양 위에서 새로운 씨앗으로 기능하면서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선 또 다른 차원의 하이엔드 오디오가 잉태되었다. 스위스의 골드문트와 다즐, 오르페우스, 독일의 버메스터, 에스토니아의 에스텔론, 덴마크의 뱅앤올룹슨 등에 이르기까지 유럽 전역에서 각 나라의 전통과 진보적 음향 기술이 화학 작용했다. 왕성한 시너지가 탄생시킨 것은 단순히 음향적 완성도 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는 디자인까지 갖춘 오디오였다. 라이프스타일과 하이엔드 오디오 엔지니어링의 결합이 만들어낸 오브제다.

karlos lifestyle

축소, 축약의 미덕

빠르게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비해 현대의 대부분의 오디오는 여전히 너무 크거나 비대하며 다양한 컴포넌트들의 조합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오디오는 오디오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가족 구성원들과 간편히 즐길 수 있어야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한편 과거의 가옥 구조가 아닌 현대 가옥, 건축 구조와 맞닿아 있어 어디에 놓아도 이물감 없이 스며들어야 한다. 이런 조형적 조건 중 하나는 축소, 축약이다. 오디오 마니아 외엔 누구도 여러 앰프, 네트워크 플레이어, DAC, 심지어 전원장치와 수많은 케이블이 집 안에서 나뒹구는 모습을 참아내기 힘들어한다.

현재 이런 축소, 축약의 기술은 이미 정점에 다다라 있다. 작은 유닛에서도 광대역, 고해상도가 가능해졌고 클래스 D 앰프의 진화는 이제 손바닥만 한 모듈 하나로 수 천 와트 출력을 얻게 해주었다. CD, LP가 아닌 가상의 온라인 공간엔 수천만곡이 떠다니고 있으니 누구나 매월 통신료처럼 비용만 지불하고 구독하면 그 많은 음악들에 대한 접근 권한이 생긴다. 이미 모든 것은 우리 손 안에 있다.

Jens R. Wietschorke 4

라이프스타일 하이엔드

이즈음에서 최근 만난 하이엔드 스피커 하나가 떠오른다. 성능과 디자인 그리고 축소의 미학까지 포용한 모델이다. 바로 독일 라이라복스라는 브랜드가 만든 Karlos라는 액티브 스피커다. 라이라복스는 스피커 설계 엔지니어와 경제학자 등이 의기투합해 201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설립되었다. 흥미로운 건 현재 이 브랜드 내부의 핵심 인력들 면면이다.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은 SAE 대학 음향학 부교수고 개발자 중 한 명은 20여 년간 스피커 및 홈 시네마 프로젝트 리더, 이 외에 프로듀서,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수다. 단순 하이파이 오디오 메이커가 아닌 음향, 예술, 음악 전반을 다루는 회사의 면모다. 라이프스타일 하이엔드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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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os, 액티브 스피커로 탄생하다

라이라복스가 스피커를 디자인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오디오파일용 스피커와 다르다. 음향 관련 전문가, 하드웨어 설계 그리고 디자인 관련 스페셜리스트가 머리를 맞대어 최상의 조화를 이끌어낸 모양새다. 우선 이 스피커를 처음 보면 마치 걸어서 움직일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하단에 스피커를 지지하면서 스피커의 전면 배플을 청취자를 향해 살짝 올려다보게 디자인했다. 전면으로 향해 지향성을 높이고 시간축을 일치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높이는 스탠드 포함 875mm, 전면 좌우 너비가 400mm, 그리고 깊이가 370mm며 무게는 22kg으로 보기보단 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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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os처럼 후방으로 얕게 그리고 전면은 넓게 설계한 인클로저는 과거 평판 풀레인지 스피커를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도 이러한 디자인을 택한 스피커가 꽤 있다. 예를 들어 드보어 피델리티의 Orangutan 시리즈나 오디오노트 스피커, 스페이셜 오디오의 스피커들이 떠오른다. 전면 배플로 인한 회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들이 전면 에지를 곡선으로 디자인하고 내부 정재파 억제를 위해 평행한 면들을 없애는 것과 대조적이다. 라이라복스도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전면에 커다란 10인치 우퍼를 대동하고 전면으로 방사되는 에너지 손실을 없애 음원에 담긴 정보, 에너지를 최대한 청취자에게 방사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인클로저 소재는 고강도의 HDF를 기반으로 스탠드는 물푸레나무를 사용했으며 스탠드로 인해 공중으로 띄워진 인클로저 하단에 포트르 마련해놓았다. 저음 반사형 스피커인 것이다.

스캔스픽 horz

드라이브 유닛의 진동판 소재 및 구경 선택에서도 이런 설계 철학은 고스란히, 균질하게 드러난다. 우선 독일 틸&파트너의 아큐톤 세라믹 트위터를 장착해 고역 선형성을 극대화했다. 라이라복스는 소프트돔의 고역 롤-오프 특성을 배제하고 28kHz까지 선형적으로 강력하게 뻗어 올라가는 세라믹 트위터를 선택했다. 하드 돔이 그들이 원하는, 현장의 에너지 전달에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더불어 트위터 주변 프레임을 마치 혼처럼 만들어 고역의 지향성을 높이고 정교한 방사 패턴 향상을 도모하고 있는 모습이다.

topfiring AMT

고역을 재생하는 드라이브 유닛의 경우 단 하나만 장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론 두 개의 유닛을 통해 재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 않다. 라이라복스의 경우 Karlos에 또 하나의 트위터를 추가 탑재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인클로저 상단이며 유닛은 AMT 50이라는 것. 평판 트위터 중 리본과 함께 초고역 이상까지 매우 선형적인 주파수 재생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으로 일종의 앰비언스 트위터라고 부른다. 음원에 담긴 초고역 재생을 도와 현장의 앰비언스까지 모두 낱낱이 표현해내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결과다.

한편 하방에 위치한 우퍼의 경우 무려 10인치로 이 정도 사이즈의 인클로저에서 감당 가능한 최대치가 아닐까 한다. 한편 진동판 소재는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있다. 그릴 안으로 진동판을 살펴보면 좌우로 진동판을 보조해 잡아주는 구조물이 보인다. 진동판의 비선형적인 움직임을 막고 댐핑 특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형 미드/베이스 우퍼의 저역 하한은 무려 28Hz. 20Hz에 가까운 가청 하한까지 재생 가능한 풀레인지급 스피커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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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내부에 마련된 앰프다. 이 스피커는 기본적으로 액티브 스피커로서 파워앰프를 내장시켰으며 그 핵심은 하이펙스 Nore 4세대 모델이다. 더불어 고역엔 100와트, 저역엔 400와트급 대출력을 별도로 매칭해 각 유닛의 주파수 재생 대역에 최적화시켰다. 패시브 스피커라면 모노블럭 두 조와 프리앰프를 결합한 대규모 바이앰핑 시스템을 기본적으로 내장한 것이다. 좌/우 마스터, 슬레이브 채널은 완벽히 동일한 파워앰프 및 입/출력단을 갖추어놓고 있어 좌/우 채널의 음향, 성능에 있어 편차가 없다. 전원 케이블도 반드시 각 스피커에 모두 꼽아주어야 하지만 어느 쪽이든 마스터가 될 수 있다.

hfd

한편 내부엔 DSP를 내장해 패시브 크로스오버의 위상, 시간축 오차, 에너지 손실 등의 해악을 거의 대부분 해소하고 있다. 인간이 시간축 오차에 대해 얼마나 예민하며 이것이 음악 재생에 있어 실체감 구현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라이라복스의 설계 철학이 배어나온다. 참고로 내부엔 AKM DAC 칩셋을 사용해 입력된 디지털 신호를 변환하며 더불어 하이펙스에서 제공하는 필터(HFD) 프로그램을 PC 또는 노트북에 다운로드 후 스피커와 연결하면 대단히 다양한 셋업 메뉴를 확인, 수정할 수 있다. 주파수 특성 설정 등을 통해 사용자 취향 및 해당 공간의 룸 어쿠스틱 특성을 기반으로 이퀄라이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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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스피커의 하이엔드

라이라복스 Karlos로 음악을 듣기 위해선 전원 케이블 두 개 그리고 동축 케이블이 필요했다. AES/EBU, 동축, 광 및 아날로그 RCA, XLR 입력도 있지만 이번엔 동축 케이블도 양 채널을 연결해 신호를 전송했다. 좌측 채널을 마스터로 지정하고 소스 기기는 별도로 필자가 사용하는 웨이버사 Wstreamer를 사용했다. 별도로 웨이버사 Wcore를 룬 코어로 사용했고 스피커와 연결은 동축 케이블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anne

앤 비송/ Little black lake(16.44.1)

포커싱이 매우 선명하고 깨끗하다. 앤 비송의 보컬이 중앙 후방의 디프렉탈 에 또렷히 맺혀 미동도 없다. 전체 대역 밸런스는 매우 인정적이며 어느 특정 주파수 대역으로 몰리는 경향은 발견되지 않는 모습이다. 거의 스튜디오 모니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심심하거나 음악적 색채가 전무한 무덤덤한 느낌이 아니다. 되레 전면으로 깨끗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사운드를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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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론트하임 솔리스텐/모차르트 바이올린 햡주곡(24/96)

PCM 24bit, 192kHz까지 재생 가능한 Karlos는 마스터 음원의 정보를 가감 없이 증폭해 스피커로 내보낸다. 트론트하임 솔리스텐의 24bit 음원을 재생해보니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척 간결하고 말끔한 소리가 번개처럼 쏟아진다. 스피커는 눈을 감으면 어디 있는지 사라지고 음악만 남는다. 이는 시간축 오차 없이 내부적으로 철저히 계산된 드라이빙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로서 크로스오버의 해악이 제거되어 순수하게 음원 정보를 확대, 재생산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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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브롬버그/ The Saga Of Harrison Crabfeathers(16/44.1)

이전에 보컬, 현악 등 주로 중, 고역에 주파수가 치중된 녹음에선 알아챌 수 없었지만 저역은 사실 Karlos에 대해 내가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요컨대 Karlos의 저역은 우렁차고 단단하다. 낮은 저역까지 아무렇지 않게 재생해내며 특히 시간축 오차가 없이 즉답적인 반응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딜레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탄력적이고 깊은 저역을 구사한다. 맑고 청아한 중고역과 달리 저역은 잘 단련된 근육을 보는 듯 텐션, 다이내믹스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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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리스 넬슨스 & 보스턴 심포니/쇼스타코비치 5번, 4악장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핀 포인트 포커싱. 이런 측면을 고려할 때 교향곡 등 대편성 녹음 재생 능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좌우 너비보단 의외로 전후 깊이 표현이 돋보인다. 치고 나오는 현과 그 뒤로 관악 파트 등 치고 나올 때와 들어갈 때가 명확해 눈앞에 입체적인 이미지를 띄워놓는 데 명수다. 이러한 사운드는 아큐톤 세라믹 트위터의 시그니쳐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인클로저 상단에 탑재된 AMT 트위터까지 합세해 한층 더 싱싱한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정됨 Karlos Detail

총평

라이라복스 Karlos가 청음실에 들어온 후 음악 듣는 일이 무척 간단해졌다. 나의 시스템은 소스 기기를 켜고 프리앰프와 파워앰프의 전원을 올리고 그제야 아이패드를 들어 앱을 켜야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시스템이다. 그러나 Karlos는 그저 리모컨을 눌러 스피커를 켠 후 바로 아이패드를 켜고 음악을 들었다. HFD 프로그램을 열어 스피커의 세팅을 만질 수도 있었지만 디폴트 상태로도 바로 들을만한 소리를 내주는 스피커였다. 내가 할 일이란 그저 NAS에 저장한 음악 또는 타이달 등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를 뒤져 나의 음악을 찾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일이었다. 잡다한 일들이 사라졌고 음악만 남았다. Karlos 한 조에 쓸 만한 네트워크 플레이어 한 대만 추가하면 그 곳이 음악의 천국이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수입원 : 오드(ODE)
가격 : 18,900,000원
제품 문의 : 02-512-4091
청음 예약 : https://bitly.ws/366ac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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