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 음악에서 유재하의 의미는 남다르다. 1987년 발매된 유재하 데뷔작이자 마지막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 의미를 온 몸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이 세상에 내놓은 음악 모음 그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세대와 또 새로운 세대를 가르는, 진보적인 음악의 세계를 열어젖힌 힘을 내재하고 있었다.
최근 이 앨범이 다시 재발매 되었다. 사실 최근 가요 재발매에 대한 나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자료 차원에서라도 종종 구입해왔지만 최근엔 시들해졌고 거의 구입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엘피 르네상스라는 미명 아래 무임승차한 레이블들이 무성의한 품질로 재발매 또는 신보 발매를 이어오는 경우가 꽤 많아서다. 이제 엘피는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직접 음악을 듣는 포맷이 아니라 팬시 상품화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시디의 말로가 오버랩 된다.
하지만 이번 유재하 LP는 기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수년 전부터 재발매 소문이 돌았고 상당히 진지한 재발매 의지가 있었던 듯해서다. 결국 발매된 이 역사적 앨범의 화두는 유재한 탄생 60주년을 타이틀로 내걸고 있었다. 일단 커버 아트웍부터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오리지널 커버, 일명 ‘담배 커버’를 살렸고 이후 발매반 커버도 모두 살려 패키지로 담았다. 내부에 오리지널 인서트 및 라이너노트 등 돈이 아깝지 않은 모습. 커버 후면에 오타 하나(지난날)는 보는 내내 아쉽긴 하다.
그럼 음질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훌륭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오리지널 엘피와 상당히 근접하는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당시 오리지널 엘피(건전가요 제외 버전)와 2014년 씨앤엘뮤직 재발매 그리고 이번 알레스뮤직 재발매 버전을 잠시 비교해보았다. 테스트 시스템은 트랜스로터 ZET-3MKII(다이나벡터 DV-20X2), 서덜랜드 PhD, MSB Analog 및 패스랩스 XA60.5, 윌슨 Sasha 등을 활용했다. 아래는 시청하면서 메모한 내용이다.
씨앤엘 버전
악기들의 분리도가 높아 선명하게 들린다. 특히 후반 드럼, 베이스가 명료하게 들리며 약간 더 얇지만 잘 단련된 근육질처럼 탄력감이 좋다. 음장감 측면에서도 전/후 레이어링이 더 깊고, 선명하게 분리된다. 후방 악기 연주는 물론 코러스 같은 경우 모두 그렇다. 전반적으로 배경이 깨끗하고 악기들도 말끔하게 들리는데 아무래도 잔향 타임이 짧게 느껴지기 때문인 듯하다. DSD로 추출하면서 생긴 현상 같기도 하다. 에지 있고 정확한 사운드로 오디오파일들이 선호할만한 요소가 충분하다.
알레스 버전
오리지널과 유사한 두께감이 느껴지며 잔향도 풍성해서 오리지널 엘피에 더 가깝게 들린다. 각 악기들이 자연스러운 레벨로 어울리면서 조화를 이룬다. 또한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 토널 밸런스도 본래 오리지널에 더 가깝게 들린다. 따라서 디지털 소리의 차가운 느낌이 적고 마치 아날로그 마스터로 직접 커팅한 듯한 느낌이 지배적이다. 음향적 완성도를 차치하고 오리지널의 음색, 밸런스를 거의 유사하게 살렸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한 작업이다.
이번 재발매는 유재하 탄생 60주년으로 갈음하고 있지만 나는 이 앨범이 최초 발매된 1987년을 기준으로 이제 36년이 지났다는 데 집중하고 싶다. 사람도 36살이 되면 본래의 모습이 꽤 많이 변화하고 태생적인 특징 외에 후천적인 성격과 특징이 덧입혀진다. 엘피라는 유형의 음반 포맷도 닳고 해지며 이전에 오리지널 마스터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품질로 재발매된 데는 상당히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물론 디지털 프로세스를 통했지만 거의 디지털 관련 이퀄라이징은 가해지지 않은 듯 보인다. 다이내믹스, 해상도, 전체적인 대역, 토널 밸런스 등이 그렇다. 36년을 횡단해 다시 나타난 ‘사랑하기 때문에’의 유재하는 아직도 청춘의 그 모습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