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엘피인가?
몇 해 전부터 엘피를 구입해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현재 중, 장년층들 중 일부는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엘피로 음악을 즐겨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는 시디의 출현과 함께 엘피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천덕꾸러기 취급하면서 버리거나 청계천, 음반 숍으로 흘러들어갔다. 한편으로는 MZ 세대로 불리는 일군의 세대들이 엘피를 구입하고 있다. 이 세대는 애초에 엘피로 음악을 듣지 못했던 세대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시디에 치여 엘피는 거의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사라지다시피 했으니까 말이다.
변화는 이 양쪽 세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과거에 들었던 기억을 간직한 중, 장년층 세대는 예전에 듣던 음반들을 다시 엘피로 듣고 싶어졌다. 창고에 썩고 있던 턴테이블을 대충이나마 세팅해 다시 엘피를 들으면서 옛 추억에 빠진다. 음반숍 사이트에 들어가니 정말 좋아했던 엘피들이 재발매로 출시되어 쉽게 구할 수 있다. 국내/외에서 거의 멈추었던 엘피 재발매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유다.
한편으론 새로운 세대의 젊은 청년층들이 엘피를 구입하고 있다. 요즘 발매된 가수들의 신보를 엘피로 구입하는 것은 이제 흔한 현상이다. 그들에게 실제로 엘피로 음악을 듣느냐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에게 자신의 열정과 호응을 표현하고 싶은 일종의 행동이다. 나는 이런 공감대의 중심에 엘피가 등장했다는 것이 놀랍다. 어쨌든 세월을 건너 오늘의 첨단 디지털 시대에 수 만원을 주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엘피를 소환시킨 최근 모습이 즐겁다. 세대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추가되었으니까 말이다.
턴테이블 입문
하지만 엘피를 사놓고 그리 즐겨 듣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애초에 엘피의 구입 이유가 음악적 도구가 아닌 기념품 같은 대상으로 치부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때론 조악한 음질로 발매된 요즘 재발매를 보면 가끔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제작된 엘피를 들어보면 한동안 음원으로 음악 듣는 일을 멈추게 되기도 한다. 특히 아날로그 시절 녹음한 앨범은 그 맛이 너무나 다르다. 음악을 듣는 일이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무척 섬세한 일이다.
과연 그런 아날로그 음질은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앰프나 스테레오 스피커 등 몇 가지 제품들이 필요하지만 일단은 턴테이블이 기본이다. 온라인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입문하기 좋은 턴테이블을 찾아보니 여러 메이커 제품들이 등장한다. 겉모양은 화려하고 빈티지 스타일로 모양만 요란하게 만든 팬시 제품 같은 모델은 일단 제외하자. 가장 좋은 선택 방법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브랜드 제품 중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는 제품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예산에 맞는 제품을 고르면 끝이다.
하지만 30년 넘게 엘피와 턴테이블을 즐겨온 내가 봐도 선택이 만만치 않다. 가격이 맞으면 필요한 기능이 없고 기능이 만족스러운 것은 가격이 비싸다. 어차피 음질은 직접 들어보긴 전까진 알 수가 없고 말이다. 레가, 프로젝트오디오, 티악, 오디오테크니카, 테크닉스, 데논, 마란츠 등 브랜드도 셀 수 없이 많다. 무슨 역사와 전통이 깊은 브랜드가 이리 많은지 수입사가 만들어놓은 홍보 배너를 보면 다들 자신들이 최고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래서 입문에 좋은 턴테이블 요건을 정리해보았다. 일단 박스째 제품이 배달이 왔을 때 최초 세팅이 쉬워야한다. 초심자에겐 외계 어에 가까운 매뉴얼을 읽어보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조립이 가능해야한다. 한편 엘피의 한 면을 모두 재생하고 나며 알아서 턴테이블이 멈추는 자동 정지 기능이 있으면 좋다. 음원 재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종종 엘피를 듣다가 턴테이블을 정지시켜야한다는 사실조차 까먹기 일쑤다. 여기에 더해 엘피 끝 곡까지 다 끝나면 플래터가 멈추는 것은 물론 톤암이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 와주면 더욱 편리하다. 더불어 속도 조정까지 편리하게 노브로 조정 가능하면 최고다.
추가로 포노앰프가 내장되어 있는 기종이면 좋다. 물론 내장 포노단의 성능이 너무 떨어지면 얼마 못가 별도로 포노앰프를 구입해야하기에 이중 투자가 될 수 있지만 꽤 들을만한 포노앰프가 내장되어서 나쁠 이유는 크게 없다. 외장 포노앰프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편 카트리지 교체가 가능해야 하고 그 방법이 쉬운 게 좋다. 초심자의 경우 카트리지를 교체하고 세팅해본 경험이 전무하니 카트리지 교체와 세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때문에 가능하면 카트리지가 매달려 있는 부분, 즉 헤드셸이 톤암과 분리되는 기종이 아무래도 편리하다.
데논 DP-450USB
아마도 이런 조건에 가장 잘 부합하는 턴테이블이 데논 턴테이블들일 것이다. 이는 판매고에서 이미 입증되었다. 국내에서만 수 천대 판매된 DP-400 같은 턴테이블은 이젠 우리 주변에서 국민 턴테이블이 되었다. 종종 SNS를 보면 데논 턴테이블과 올인원 스피커 또는 스테레오 하이파이 시스템 조합이 종종 눈에 띈다. 특히 화이트 색상이 인기가 좋은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런 인기를 누리는 턴테이블도 흔치 않을 것이다.
와중에 데논 DP-450USB가 눈에 들어왔다. 흥미로운 건 이 턴테이블은 하위 모델 DP-400과 달리 녹음 기능이 추가로 탑재되어 있다. 과거엔 USB 출력을 통해 PC와 연결 후 별도의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녹음할 수 있는 턴테이블이 있었지만 불편하다보다 별로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데논 DP-450USB 같은 경우 USB 메모리를 꼽고 버튼만 누르면 WAV, MP3 중 선택해 무척 편리하게 녹음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DP-450USB는 세련되고 예쁜 디자인에 하위 모델 DP-400이 가지고 있는 걸 모두 가졌다. 첫 눈에 군더더기 없이 잘 빠진 디자인에 멋진 디자인의 더스트 커버까지 기본 옵션이다. 이런 입문형 제품들 중 일부는 플래터가 수지나 아크릴 같은 소재가 많은데 이 턴테이블은 묵직한 무게에 진동 특성이 좋은 알루미늄을 사용했다. 더불어 플래터 회전의 경우 자동 속도 조정 센서를 내장해 균질한 속도를 자랑하다. 한편 속도 조정 같은 경우도 편리하다. 일반적인 33RPM 엘피를 듣다가 45RPM 싱글이라도 들으려면 플래터를 드러내고 모터 풀리에 걸려 있는 벨트의 위치를 바꾸어주어야하는 수고가 필요 없이 좌측의 노브를 돌려주면 그만이다.
자동 정지 및 톤암 자동 리프트 업 기능도 마련되어 있다. 엘피 한 면 재생이 다 끝나면 톤암이 바로 올라와 카트리지의 불필요한 마모를 막고 플래터도 자동으로 정지되어 플래터 공회전도 멈춘다. 게다가 포노앰프를 내장했다. MC까진 대응하지 않지만 MM 포노앰프를 내장하고 있어 일단 기본 장착되어 제공되는 MM 카트리지 증폭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마 이 정도 성능의 포노앰프를 별도로 구입하려면 수십만 원이 추가로 들 것 같다. 게다가 인터케이블, 전원케이블을 추가로 구입해야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공산도 있다.
카트리지가 기본 장착되어 있으니 수평 조정 후 2g 침압을 주면 된다. 턴테이블 조립은 정말 직관적이어서 플래터를 올리고 침압 조정용 무게 추를 끼우고 침압 및 안티스케이팅을 맞추면 세팅은 끝난다. 향후 카트리지를 업그레이드한다고 해도 문제없다. 헤드셸이 교체 가능한 톤암이어서 헤드셸을 뺀 후 책상 앞에 앉아서 제법 편하게 교체할 수 있다. 초심자 때 헤드셸 일체형 톤암 앞에 쭈구려 앉아 카트리지를 바꾸다가 리드선 해먹은 일을 생각하면 아찔한데 데논 DP-450USB 같은 턴테이블 보면 사용자에 대한 배려가 정말 철철 넘친다.
데논 DP-450USB는 DP-400과 마치 형제 같은 모델이다. 하지만 DP-400은 온라인에서 더 많이 노출되고 홍보되면서 유명해졌지만 상대적으로 DP-450USB는 주목받지 못했다. 녹음 기능을 더했지만 그것이 가격 상승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데논 공식 쇼핑몰에서 확인해보니 DP-400이 499달러, DP-450USB는 699달러다. 무려 200달러가 더 비싼 모델이다. 하지만 국내 수입되어 있는 제품은 가격 인상 전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어 여전히 매력 넘치는 아이템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내가 입문할 때 이런 턴테이블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가격대 턴테이블 중 DP-450USB는 군계일학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만일 좋아하는 음악을 엘피로 듣고 싶다면 이 가격대에서 더 이상의 대안을 찾기란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