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 대한 고민
누군가 오디오는 진동과 전기에서 시작해서 진동과 전기에서 끝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예전엔 몰랐지만, 언제부턴가 나도 몰래 자꾸 되뇌게 된다. 그사이 나는 무수히 많은 기기와 또 그 기기들과의 상관관계에서 문제점을 발견했고 그 많은 문제가 사실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진동과 전기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중 전기는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면 일종의 혈류와 같아서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거나 그 속에 노폐물이 함유되었을 경우 제법 커다란 문제로 번지곤 한다.
올해 나의 시청실을 열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보다 전기 공사를 진행한 것이다. 한전에서 설치한 전봇대에서 빌딩 배전반으로 전기가 인입되고 이를 시청실, 집무실, 탕비실 등으로 나누어준다. 배전반의 누전차단기부터 각 기기 또는 멀티탭을 통해 전기를 공급하는데 필요한 멀티탭 그리고 배전반에서 멀티탭까지 연결하는 케이블도 신경을 썼다. 그리고 마치 피가 돌 듯 전원이 인가되고 각 오디오 기기에 전원을 올렸다. 이윽고 음악을 재생했을 때의 첫 음은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전기 공사 전후에 단순 계측기로 파악되는 것 이상의 음향적 향상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전원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전기의 저수지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원의 저수지 같은 전원장치가 필요해졌다. 전원장치만 해도 무척 다양해서 단순히 전원을 분배해주는 멀티탭 같은 기기부터 시작해 때론 파워앰프만 한 거구의 전원장치도 있다. 산업용으로는 대체로 커다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데 필요한 전원장치를 별도로 특주를 통해 공급받기도 한다. 때론 의료 기기에 전원을 공급하는 기기의 경우 웬만한 하이엔드 기기들에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정밀하게 제작된 것들 투성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기기를 만들다가 하이엔드 기기 제작으로 눈을 돌린 오디오넷 같은 메이커도 있을 법한 일이다.
그중 트랜스를 활용한 전원장치도 있다. 트랜스는 대표적으로 교류의 전압을 변환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이 때문에 전압을 높이는 용도의 트랜스는 승압 트랜스, 그 반대는 다운 트랜스라고 불린다. 때론 직류를 차단하고 교류 신호만 흘려보내주는 역할로도 활용된다. 이 외에 트랜스는 임피던스를 바꾸어준다. 비근한 예로 진공고나 앰프의 출력 트랜스가 대표적이다. 앰프의 입력, 출력 그리고 매칭트랜스,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승압 트랜스까지 그 용도는 오디오 안에서도 대단히 다채롭다.
그럼 차폐트랜스는 어떤 역할을 하면 왜 오디오에서 사용되곤 할까? 차폐 트랜스는 1차 코일에 의해 들어온 교류 전류가 전자 유도에 의해 2차 코일에 교류를 유도시키는 방식으로 제작되어 입력과 출력을 절연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입력 쪽에서 전기적 잡음이 유입되더라도 자연스럽게 차단이 된다. 하지만 오디오는 잡음 유도 외에 실제 음질적 이득이 있어야 한다는 난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런 차폐트랜스는 과연 존재할까? 실제로 과거 필자가 사용해본 차페트랜스는 깨끗하고 차분한 재생음을 선사해주었지만, 종종 다이내믹스가 깎인 듯한 소리를 내는 등 결점이 있었다.
IT-3000S
최근 파워텍은 설립 30주년을 맞이하면서 의욕적으로 여러 제품군을 내놓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IT-3000S다. 이 제품이 눈에 띈 것은 나의 시청실에서 전원장치의 성능을 테스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히 시청실에 대여를 받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제품의 외관이다. 마치 필자가 사용하고 있는 패스랩스 파워앰프와 마치 한 쌍처럼 어울린다는 것. 게다가 두 개의 푸른 계기판까지 마련되어 있어 심미적인 부분 또한 중요한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에 무척 잘 어울렸다.
기본적인 개념은 위에서 설명한 차폐 트랜스의 원리를 따르고 있지만 수십년 동안 전원장치를 만들어온 파워텍의 독보적인 기술은 물론 최적화된 소자들로 꽉 들어차있다. 일단 이런 제품군의 경우 겉으로 보기엔 묵직해 보이지만 실제 사용해보면 소음, 즉 트랜스 험이 들려 황당한 때도 있다. 노이즈를 없애주는 기기가 노이즈를 낸다면 기본적인 소임을 못하는 것. IT-3000S는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조용해 음악 감상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더불어 일정 이상 온도가 상승하지 않는 등 안전 기능까지 내장하고 있어 필자처럼 노이즈, 안전에 강박증이 있는 사람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한편 후면을 보면 우선 입력단이 하나 마련되어 있고 출력단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좌/우 공히 아날로그와 디지털 부문에 사용할 수 있도록 나누어 놓았다. 개인적으로 멀티탭 같은 경우라도 최대한 분리해서 사용하는 편이다. 실제로 일부 전원장치 전문 해외 메이커의 경우도 적어도 앰프, 소스 기기의 출력 소켓을 나누어 놓은 설계를 보이곤 하는데 소비 전력도 다르지만 서로 전기적 간섭을 회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파워텍도 IT-3000S에서 디지털 소스 기기와 아날로그 관련 기기를 완벽히 나누어 설계해놓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117V 등 해외 전용 기기들도 별도의 트랜스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기능은 출력 소켓의 전압 중 220V 뿐 아니라 230V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국내에선 220V/60Hz가 정격 전압 및 주파수다. 하지만 국내 가옥들에 들어오는 전압이 정확히 220V인 경우는 흔치 않다. 약간이라도 오차가 있으며 특히 구옥의 경우 매우 낮게 떨어지기도 한다. 구축의 경우 210V 가깝게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되레 230V 이상으로 치솟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편차를 보정해 정격 전압을 공급하기 위해 두 가지 선택지를 사용자에게 부여한 것. 때론 유럽에서 수입된 오디오 기기의 경우 국내 정식 수입인 제품인 경우에도 전원 인렛 후면 스티커를 보면 230V가 정격 전압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220V가 정격인 제품도 종종 230V 전압을 공급받았을 때 더 나은 성능을 내주기도 한다.
참고로 이번 IT-3000S에 대해 파워텍에서는 새롭게 설계된 트랜스포머 차폐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즉 1차 측과 2차 측에 특수 차폐를 적용하여 순수한 교류 성분을 추출하고 노이즈느 ㄴ제거하기 위해 자속 밀도는 물론 인덕터와 차폐 등 관련 설계를 특화해 적용했고 유도 발생시 소음도 거의 없다고 한다. 아래는 파워텍에서 전달해온 IT-3000S의 설계 특징들이다.
- 인덕터에 99.99999% 순도 적용
- 1차, 2차 차폐 특수설계
- 자속밀도 향상
- 당사의 함침 기술 노하우로 제작된 트랜스포머
- 엄선된 노이즈 필터 사용으로 일정 주파수 구현
청음평
테스트는 필자가 평소 사용하는 레퍼런스 시스템에서 진행했다. 소스 기기는 ROON 코어로 웨이버사 Wcore, 그리고 네트워크 플레이어는 Wstreamer를 사용했다. 이 외에 MSB 테크놀로지의 Analog DAC를 사용했고 프리앰프는 클라세 델타 CP800MKII, 파워앰프는 패스랩스 XA-60.5 모노블럭 파워앰프를 매칭했다. 스피커는 윌슨오디오 Sasha 및 락포트 테크놀로지 Atria 등을 활용했음을 밝히다. IT3000S의 성능을 살피기 위한 테스트 방식은 벽체에서 직접 파워앰프 및 소스 기기 등에 연결했을 때와 중간에 IT3000S를 적용했을 때를 비교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우선 보컬 등 단출한 편성의 음악부터 반복, 교차 재생해보았다. 제니퍼 원스의 ‘Somewhere somebody’를 재생하면 첫 도입부부터 소리가 우렁차다. 베이스 기타 굵기가 더 두텁고 힘차게 전진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보컬 음상의 크기는 그대로지만 외곽이 분명하며 후반 남성 보컬과 제니퍼의 보컬이 더욱 선명하게 분리되어 들린다.
소편성에서 각 악기의 음색에 집중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했다. 올라퍼 아르날즈와 앨리스 사라 오트가 연주한 쇼팽의 ‘녹턴’을 재생해보면 이 곡에서도 변화는 분명한데 좀 더 미세한 부분들에 걸쳐 차이점들이 보인다. 피아노 타건이 좀 더 타이트하고 힘 있게 들리는 편이다. 한편 바이올린은 그 선도가 높아진다. 깨끗하게 정리된 인상으로 잡티가 그 사이 사라진 듯해 더 현대적인 악기처럼 들린다.
이번엔 강력한 리듬, 어택과 중, 저역 에너지가 높은 곡들을 재생해보았다. 특히 닐스 로프그렌의 ‘Bass & drum intro’에서 그 차이가 확연했다. 스트링을 운지하는 힘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어떤 음악도 더 분명하고 힘 있게 느껴지는데 특히 저역 쪽 변화가 크다. 벽체 연결시보다 묵직한 힘과 추진력을 얻었으며 마치 드럼 스틱을 꼭 움켜쥔 듯한 그립감의 상승이 돋보인다.
다중 악기가 출몰하면서 넓은 무대를 입체적으로 표현해야하는 대편성에선 과연 어떤 차이를 들려줄까? 안드리스 넬슨스 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2악장을 들어보자. 실제 다이내믹스 상승 여부와 관계없이 청감상 확실히 더 박력 있는 소리는 맞다. 10번, 2악장에서도 마치 녹음 전체 게인이 상승한 듯 시원한 소리가 쏟아진다. 총주 부분에서도 뭉개지는 부분 없이 빠른 속도감 위에서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획득했다.
총평
과거 필자가 경험했던 차폐 트랜스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다. 다양한 출력에 더해 노이즈 유입을 막고 특히 겨울철 트랜스 소음이 있는 앰프의 험을 없애주었다. 더불어 220V, 230V, 100V, 117V 등 출력은 다양한 기기를 즐기는 오디오 마니아에게 여러 가지 전원 장치를 하나로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해결사였다. 이번에 만난 IT-3000S는 기존 차폐 트랜스의 장점은 모두 가지고 있다. 한편 다이내믹스 저하라는 단점은 최소화한 모습이다. 여유가 된다면 필자 또한 청음실에 들여놓고 싶은 전원장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원
크기 : 460 X 380 X160mm
무게 : 33KG
용량 : 3.5KVA
제조사 : 파워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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