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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그린과 빽판의 전성시대

문화중독자의 플레이리스트 – 29부

petergreen thumb

바야흐로 1980년대는 빽판의 시대였다. 고가의 수입LP나 제한적으로 출시하는 라이선스LP의 한계를 메워준 고마운 LP가 빽판이었다. 색깔도 다양해서 초록, 파랑, 빨강, 연두색의 빽판과 만날 수 있었다. 자장면의 반값에 팔리던 빽판은 음지에서 살며 양지를 꿈꾸는 국민레코드였다.

음질은 어땠을까. 그야말로 빽판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운칠기삼의 심정으로 껍데기의 상태를 보고 판에 스크래치가 적으면 지갑을 열었다. 제1기 빽판은 비닐포장이 없어서 주인이 눈치만 주지 않으면 판상태를 미리 확인해볼 수 있었다. 싸게 구입하다보니 눈에 잘 안띄는 레코드장의 맨 아래칸을 차지했다.

빽판1

판에도 서열이 있었다. 수입LP는 성골, 라이선스LP는 진골, 빽판은 마당쇠의 취급을 받는 일이 흔했다. 레코드장을 가득 채운 빽판 더미를 보며 ‘요놈들이 내일 싸그리 수입LP로 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백일몽을 꾸곤 했다. 빽판을 모을 적에는 고마움보다 아쉬움이 더 많았다. 판에 대한 끝도 없는 욕심이 원인이었다.

수집한 빽판이 1,000장을 가볍게 넘을 무렵에 수집을 중단했다. 2,000원이 넘는 속칭 ’칼라빽판‘이 등장한 것이다. 제법 판스럽게 생긴 칼라 빽판이 나오면서 빽판은 점차 음반시장에서 자취를 감춘다. 칼라 빽판의 위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에는 CD(Compact Disk)가 레코드 시장의 강자로 등장한다.

sony cd

빽판은 라이선스LP의 넘사벽인 금지곡의 문제를 해소해줬다. 출시가 금지된 핑크 프로이드(Pink Floyd)의 ((The Wall)),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Live Dead)), AC/DC의 ((Back In Black)) 등의 음반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1장에 15,000원에 이르던 ECM 원판을 1/30 가격인 500원에 장만했다.

직장 일을 시작하면서 빽판 수집을 중단했다. 월급이 나오면 양질의 LP나 CD를 구했다. 빽판으로 소장한 음반을 다시 CD로 재구매하는 일도 흔했다. 돌이켜보니 빽판의 대접이 너무 소흘했다. 만지면 손이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로 투덜대는 일도 많았다. 늦었지만 미스터 빽판에게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theendofthegame

브리티쉬 블루스록의 명반 ((The End Of The Game))의 시간이다. 이 레코드 역시 빽판으로 먼저 구했다가 CD로 재구매했다. 그룹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과 블루스 브레이커스(Blues Breakers)에서 발군의 기타실력을 보여준 피터 그린은 1집 솔로 음반 ((The End Of The Game))로 화이트 블루스의 계보를 이어간다. 최애곡은 9분에 이르는 연주곡 (Bottoms Up)이다.

형에게 11살 무렵부터 기타 코드를 배우는 피터 그린은 15세부터 베이시스트로 밴드 활동을 시작한다. 그로부터 4년 후 존 메이욜 & 블루스 브레이커스(John Mayall & The Bluesbreakers)라는, 브리티쉬 블루스의 상징과도 같은 유명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합류한다. 여기서 만나는 인물이 믹 플리트우드인데 이는 또 다른 블루스 밴드인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탄생을 의미한다.

fleetwood

피터 그린은 블루스 브레이커스의 또 다른 기타리스트였던 에릭 클립턴에 필적하는 연주력을 보여준다. 문제는 약물중독을 포함한 자기관리에 철저하지 못한 여타 블루스맨의 사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부분이다. 안타깝게도 피터 그린은 3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1970년 순회공연 도중에 플리트우드 맥을 탈퇴한다. 피터 그린에게 1970년대는 음악적 암흑기이자 휴지기였다.

그의 능력을 아쉬워 한 밴드 멤버의 요청으로 1971년 플리트우드 맥에 잠시 합류한다. 1970년대 후반에 가서야 병세가 호전되어 음악 활동을 조금씩 시작한다. 물론 건강의 회복은 더딘 상태였다. 그는 영국 에식스의 섬마을에 터를 잡고 평생을 그곳에서 보낸다. 묵직한 블루스기타의 향연을 즐기며 이제는 희귀음반 대접을 받는 빽판님에게도 시원한 생맥주 Bottoms Up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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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이 봉호

대중문화 강의와 글쓰기를 사랑합니다. 때문에 문화콘텐츠 석박사 과정을 수학했습니다. 저서로는 '음악을 읽다'를 포함 10권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악과 관련한 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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