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악 전성시대
2004년 미국의 저명한 하이엔드 오디오 매거진 스테레오파일(stereophile)에서 평론가 잭 잉글리시가 집필한 프로악의 Response 4 리뷰가 게재되었다. 그는 프로악이 딕 하이먼의 피아노 솔로와 같은 심플한 연주부터 셰에라자드 같은 풀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장르에 걸쳐 언제나 자연스럽고 음악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하이엔드 오디오 역사에서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역설 중 하나라면 실제 음악 연주와의 융합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만일 하이엔드 오디오 설계자들이 원하는 소리라는 것이 객관적 수치, 즉 스펙과 측정치에 의거하고 있다면 초고가 제품들이 갈수록 더 비슷하게 들려야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프로악 Response 4가 나왔을 때만 해도 윌슨 와트/퍼피, 아발론 Ascent, 소너스 파베르 Extrema, 헤일스 System One 외에 틸, 밴더스틴, 인피니티, 제네시스, 아포지 같은 스피커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지만, 각기 완전히 다른 설계,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프로악이 여전히 전 세계 오디오 마니아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음악과 기술의 융합으로 인한 독특한 사운드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없는 디자인과 각진 인클로저, 유닛 진동판은 그저 진보했을 뿐 기조, 즉 밑바탕은 동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악이 오디오 마니아, 음악 마니아들의 뇌리 속에 뿌리내린 이미지는 많은 부분이 유사하고 아주 작은 부분이 다르다. 곧게 뻗은 인클로저와 둥그런 트위터 주변 플레이트, 예쁘게 웅크리고 있는 듯한 투명 미드 베이스 우퍼들은 언제나 친구 같은 편안함을 선사한다.
필자 또한 프로악이라고 하면 1S 혹은 1SC, 그리고 2S 같은 모델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2.5라는 초유의 2웨이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가 자연스레 머릿속을 파고든다. 모두 Response 시리즈들이다. 이후 파고를 겪은 프로악은 실로 오랜만에 새로운 Response 라인업을 발표하면서 심기일전했다. 당시 나의 친한 지인은 Response 신형 플로어 스탠딩, 아마도 D20을 들이면서 들뜬 마음에 전화를 걸어왔던 것 같다. 여타 브랜드의 둥글둥글한 인클로저와 얇은 중역에 자극적인 고역을 가진 최신 하이엔드 스피커라면 진저리를 치던 그분. 사실 생각보다 매칭이 힘들어 고생도 했지만 프로악에 대한 사랑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Response D2
프로악의 Response 시리즈는 여전히 건재하다. 프로악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고 그 존재에 대한 거시적 좌표를 인지한 후, 그리고 실제 사운드로서 프로악의 매력에 빠진 이후에도 여전히 핵심은 Response 시리즈다. 아마도 프로악의 창립자 스튜어트 타일러(Stewart Tyler)도 이를 잘 알고 있고, 섣불리 파격적인 설계 변경을 진행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우선 이 모델은 프로악의 레퍼런스급 북쉘프 스피커다. 북쉘프 스피커로선 꽤 큰 크기로 2~30평대 아파트 거실 정도는 채울만한 스케일을 갖는다. 물론 스피커에 꼭 맞는 스탠드로 진동을 제어해 줄 것을 권한다.
우선 이 스피커를 마주하면 인클로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치 고급 가구를 보는 듯 원목 인클로저를 사용하고 있다. 무게가 약 11kg 정도 나가는 것에 이 인클로저 무게가 한몫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유닛의 후면으로 쏟아지는 주파수 에너지 흡음에 있어선 일종의 역청(Bitumen)을 사용하고 있다. 아스팔트의 그 끈적한 소재를 떠올리면 맞다. 반고체 형태로 내부 공진을 억제하고 후면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들어 인클로저 내부의 복잡다단한 소음을 흡음하기 위해 여러 설계 구조 및 소재가 연구, 적용되고 있지만 프로악은 여전히 역청을 고집하고 있다.
드라이브 유닛은 1인치 실크 돔 트위터와 6.5인치 미드 베이스 우퍼를 사용하고 있다. 스피커를 광대역에 이르는 북쉘프 스피커로 설계하면서 저역은 30Hz, 고역은 30kHz까지 주파수 재생폭을 얻고 있는데, 그만큼 드라이브 유닛은 가장 진화한 형태의 것을 사용하되 금속 소재 진동판 대신 수지 계열을 사용한 유닛을 제작했다. 한편 트위터가 한 쪽으로 몰려 있는 형태로 일종의 ‘미러 이미지’를 구현해놓았다. 넓게 벌려 놓을 땐 트위터를 안쪽으로, 좁은 곳에선 트위터를 바깥쪽으로 배치해 음장 규모를 조절할 수 있다.
우퍼의 경우 유리 섬유를 사용한 진동판을 사용하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매우 고운 입자, 텍스처를 볼 수 있는데, 실제로 탄탄하면서 탄력적인 중, 저역을 느끼게 된다. 이 유닛은 노르웨이의 고성능 유닛 제조사 시어스에서 만든 것으로 추측되는데, 사실 프로악과 시어스의 협력 관계는 수십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다. 특히, 이 드라이뷰 유닛은 특주 형태로서 중앙에 위치한 페이즈 플러그가 눈에 띈다. 과거 프로악의 포근하면서 약간 느린 저역과 달리 재빠른 응답 특성과 섬세한 중, 저역 해상도를 기대하게 만든다.
후면으로 시선을 옮기면 역시 고전적인 형태의 바인딩 포스트와 플레이트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스피커 터미널은 말굽 및 바나나 단자에 모두 대응한다. 더불어 싱글 와이어링은 물론 바이와이어링에 모두 대응하고, 싱글 와이어링으로 접속할 경우 기본 제공되는 점퍼핀을 사용하면 된다. 터미널은 모두 로듐으로 도금된 것으로 한눈에 봐도 단단하며 고급스럽고, 단자 접속력 역시 좋은 편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러한 부분들이 그냥 구경할 땐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도 실제 사용하면서 다뤄보면 꽤 중요한 부분들이다.
Response D2의 스펙을 간단히 알아보면, 일단 공칭 임피던스는 보편적인 8Ω이다. 참고로 감도는 88.5dB로 최근 출시되는 일반적인 북쉘프 또는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의 표준에 가까운 편이다. 주파수 응답 구간은 30Hz에서 30kHz. 실제 청음 시 저역이 초저역까지 특별한 딥이나 피크 없이 선형적으로 내려가는지는 의문이지만, 묵직한 인클로저와 충분한 감도로 상당히 큰 스케일의 저역 응답을 보여준 건 사실이다.
청음
이번 테스트는 T+A의 MP3100 HV를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DAC로 사용했고, 앰프는 올닉의 T-1800 MK2를 사용했다. 최근 들어 진공관 앰프로 음악을 듣고 싶었던 개인적 욕심이 작용했다. 그러던 와중에 프로악이라는 전통적인 박스형 영국 스피커를 테스트하는 데 진공관 앰프가 생각난 건 어쩌면 당연했다. 성급히 청담동 소리샵 매장에 부탁해 올닉 진공관 앰프를 설치했다. 이 앰프는 EL34를 채널당 두 발씩 투입해 푸쉬풀 구동 채널당 40W 출력을 내주는 앰프다. 스피커의 사이즈를 고려한다면 시청 공간은 좀 더 작은 제2 청음실에서 진행하는 것이 맞지만, 사정상 제1 청음실에서 진행했음을 밝힌다.
프로악을 진공관 앰프로 매칭해 듣는 것도 오랜만이다. 곡의 초입 피아노 타건부터 충분한 잔향으로 따뜻한 느낌이다. 그러나 온도감에 따른 해상력 저하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사라 맥라클란의 Angel을 들어보면 그렇다. 특히 음악, 보컬과 거리가 더욱 가까워진 느낌으로 근거리에서 듣는다면 음악 안으로 몰입도가 상당히 높을 듯하다. 그만큼 음악적이다.
Response D2는 앰프 매칭에 따라 극과 극의 표정을 보인다. 너무 강하면 튕겨나가고 너무 약하면 무표정하다. 올닉과의 매칭에선 서로에게 매료된 듯 적절한 균형과 음색의 조화를 이뤄낸다. 귀가 시릴 정도의 쾌감은 아니나, 충분히 뻗어나가면서 낭만적으로 너울대는 색소폰과 경건한 남성 사중창단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녹음 장소의 앰비언스를 극대화한다.
프로악 Response D2는 북쉘프이지만 제법 큰 사이즈이다 보니 규모 면에선 20평대 거실까진 충분한 음압으로 채울 수 있다. 더블 베이스와 드럼 등 리듬 섹션이 제법 묵직한 무게감이 실려 힘 있게 꿈틀거린다. 약간의 통울림이 되레 음악을 맛깔나게 만들어준다. 대체로 이런 박스형 인클로저를 가진 전통적인 설계의 스피커의 경우 저역이 쳐지는 인상이 있어 리듬감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현상 없이 탄력감 있게 재생된다.
인간의 육성은 가장 인간적인 울림을 가지며, 세부적으로는 중역을 중심으로 분포도가 가장 넓다. 합창에서 프로악은 은은하고 안온한 음색으로 청취자를 중심으로 에워싸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다분하다. 냉정하게 멀리서 조망하기보단 가까이에서 호흡을 나누며 무대 안에 들어간 듯한 느낌. 음악적 포만감이 밀려온다. 투명하고 정확하다. 약간 잔향이 길어 흐릿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고혹적인 느낌이 녹음의 매력을 몇 배고 배가시킨다.
총평
프로악은 브리티시 사운드의 거장 중에서도 맨 앞에 우뚝 서 있는 존재다. BBC 모니터 시절을 경험했으며, 이후 레전드 스튜어트 타일러의 손길 아래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하면서 모든 제품들이 정확하게 설계되고 브랜드의 철학 역시 굳건히 지켜왔다. 어찌 보면 매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접근법을 현재까지 유지해오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되레 요즘 들어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다. 소너스 파베르, JBL 등 너 나 할 것 없이 다시 레트로 디자인의 스피커를 줄줄이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프로악은 거의 한 번도 트렌드에 무임승차하는 등 한 눈을 팔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다시 듣는 Response D2는 그러한 프로악의 뚝심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Response D2는 브리티시 사운드의 품격을 지켜낸 이정표 같은 스피커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Nominal Impedance: 8 ohms
Recommended Amplifiers: 30 to 150 watts
Frequency Response: 30hz to 30Khz
Sensitivity: 88.5db linear for 1 watt at 1 metre
Bass Driver: New 61/2″ (165mm) ProAc unit with Excel Magnet system, glass fibre weave cone and copper phase plug.
Tweeter: ProAc 1″ (25mm) silk dome air cooled and inner damping.
Crossover: HQ network using the finest components with option for bi-wiring/bi-amping using oxygen cable.
Dimensions: 17″ (430mm) high, 8″ (203mm) wide, 101/4″ (260mm) deep
Weight: 24 lbs (11kg) /cabinet
Mode: Stand mounted on rigid high mass.
Grille: Acoustically transparent crimplene
Finish: Standard Finishes:
Black Ash, Mahogany, Cherry, Maple.
Premium Finishes: Rosewood, Eb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