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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스터가 완성한 궁극의 사운드

부메스터 BC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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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리뷰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2천년이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로 기억한다. 지인에게 연락이 와서 글을 써줄 수 있냐고 물었다. 평소에 워낙 음악과 오디오를 좋아하는 내가 잡지에 오디오 관련 원고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다. 요즘이야 온라인 매거진에서 글을 읽지만 당시만 해도 오디오 잡지 의존도가 좀 더 높았다. 스테레오사운드, 월간 오디오 등등. 하지만 오디오파일이라면 이름 즈음은 들어 익히 알고 있을만한 오디오잡지가 아니라 패션 잡지에 기고 의뢰였다. 하지만 지면을 가릴 필요는 없었다. 되레 패션 잡지의 구독자가 훨씬 많을 테니까.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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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에 관해 공식적인 지면에 처음 글을 기고한 게 그 때였고 해당 모델은 부메스터 스피커였다. 당시만 해도 부메스터 앰프면 몰라도 부메스터 스피커에 대한 경험은 전무했던 당시였다. 부메스터 하면 808 프리앰프와 911 파워앰프가 전가의 보도 아니던가? 때론 유명 오디오 평론가 시스템에도 종종 등장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스테레오 사운드 평론가 중 한 명인 미야시타 히로시의 시스템은 부메스터에 대한 로망에 불을 댕기곤 했다. 트위터와 미드레인지에 우퍼 두 발 그리고 사이드 패널에 추가로 두 발의 우퍼를 장착한 거함 Il Cremonese를 부메스터 077 프리앰프와 216 파워앰프로 드라이빙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부메스터 스피커에 대한 정보는 국내 혹은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사용자나 또는 미야시타 히로시 같은 평론가들 시스템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당시 처음 직접 들어본 부메스터 스피커의 사운드는 낯설기 그지없었다. 대체로 소프트 돔 트위터나 티타늄 등 금속 돔에 다이내믹 우퍼를 채용하고 아무래도 목재 위주 인클로저로 베이스 리플렉스 로딩을 구사하던 보편적인 스피커와 상당히 거리가 먼 곳에 위치한 설계였고 소리였다. 마치 호텔 라운지에서 재즈를 듣는다면 꽤 어울릴 듯한 현대적이고 미려한 사운드였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오디오 리뷰라는 건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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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스터라는 장르

그리고 약 20여년이 지나 다시 부메스터 스피커를 만났다. 앰프 분야는 익숙하지만 다시 만난 부메스터는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고 테스트를 이어가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부메스터라는 일개 브랜드가 아니라 장르로 파악되는 부메스터다. 전면 배플을 좁게 만들고 뒤로 길게 만든 인클로저 하며 전면엔 AMT 평판 트위터를 장착하고 작은 미드레인지를 장착해놓되 우퍼 매우 큰 구경을 선택해 사이드 패널에 배치하는 묘수를 보여주고 있다. 일단 이러한 사이드 우퍼는 최근 모델 중엔 케프 Blade. 예전엔 오디오피직이 많이 구사하던 방식이며 바워스앤윌킨스가 만든,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의 금자탑 Nautilus의 디자이너 로렌스 디키의 비비드오디오도 사이드 우퍼의 애호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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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고역은 돔 타입이 아니라 평판 AMT다. 오스카 헤일 박사가 곤충의 고속 날갯짓을 관찰하다고 빠른 파장으로 높은 고역까지 재생 가능한 트위터를 고안해낸 것이 AMT의 효시. 이후 이를 가장 선도적으로 채용한 브랜드가 바로 부메스터였다. 당시 일반적인 돔 트위터로서는 감당이 되지 않았던 초고역에 있어 리본과 함께 하이엔드 메이커들이 즐겨 쓰면서 유명해졌다. 게다가 반사음이 적을 뿐만 아니라 매우 빠른 반응 속도 덕분에 왜곡되지 않은 선명한 사운드를 얻을 수 있다.

미드레인지

한편 중역대를 맡고 있는 미드레인지는 18cm 구경인데 중앙 페이즈 플러그를 자세히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으로 디자인한 모습이다. 원형으로 만들었을 때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설계했다고 하는데 단지 외곽선만 타원이 아니다. 내부의 보이스코일 또한 타원으로 감아놓았고 내부엔 강력한 마그넷을 장착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스피커를 리뷰하면서 케프나 RCF 등 구형 스피커에서 발견되는 일종의 운동장 트랙 같은 모양의 타원 우퍼는 보았지만 이런 페이즈 플러그/보이스코일 설계는 아마도 처음인 듯하다.

저역으로 시선을 옮기면 무려 32cm 구경의 대형 우퍼가 숨어 있다. 케프나 비비드오디오에서 활용하는 포스 캔슬링 방식이 아니다. 한쪽에 단 한발만 설치해놓고 다른 한 쪽엔 포트를 설계해놓은 모습이다. 최근 하이엔드 스피커들의 추세는 단발의 대형 우퍼보단 다발의 중소형 우퍼를 탑재하는 것이지만 부메스터는 현대 하이엔드 사운드를 추구하지만 방법론에서 정반대다. 물론 다발의 중소형 우퍼는 깊은 저역을 단단하면서도 그룹 딜레이 없이 빠르고 선명하게 재생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절대 대형 우퍼의 에너지, 공간을 압도하는 음압을 확보하진 못한다. 최근 매킨토시가 ML1 MkII 스피커를 내놓으면서 12인치 우퍼를 한 발 채용했는데 그 이유를 12인치 우퍼 한 발이 6인치 두 발이 아닌, 6인치 네 발의 표면적과 비례한다고 했는데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후방 트위터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유닛이 숨어 있다. 그 위치는 스피커의 뒤통수 부근이다. 현존 하이엔드 스피커들의 설계를 유심히 보아온 마니아라면 눈치 챘겠지만 바로 앰비언스 트위터라는 존재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콘서트홀에서 녹음할 때 사용하는 마이크 중 앰비언스 마이크를 생각하면 좋다. 공간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음향 신호 중 고역 쪽의 소리들이다. 이는 악기 뿐 아니라 공간의 소리에 대한 정보, 어쿠스틱 음향 특성의 단서들을 포함하고 있다. 아주 작고 초고역 성분을 담고 있지만 이 마이크를 포함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음악의 뉘앙스는 꽤 차이가 있다. 그리고 부메스터는 이 트위터를 여지없이 AMT 유닛에 맡기고 있다.

후면 디자인 바인딩포스트 앰비언스 레벨

사운드에 있어 절대 타협 없은 극단의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브랜드 중에 이와 유사한 패턴의 설계를 보이는 스피커들이 있다. 주파수의 맨 상단 고역은 일반적인 돔 트위터 이상 초고역까지 재생하는 리본 타입이나 AMT 등 평판을 투입하며 맨 하단 주파수를 담당하는 우퍼는 커다란 단발 우퍼를 투입하는 형태다. 예를 들어 WHT의 PR 시리즈 같은 스피커가 먼저 떠오른다. 리본에 백로드 혼 우퍼지만 그 시원하게 뻗어 나오는 사운드는 청량감이 일품이다. 카이저 어쿠스틱스도 우퍼 구경은 작지만 고역과 저역 모두 순도를 최고조로 올렸다. 스캔스픽의 총알 트위터로 고역 지향성을 최고조로 올리고 대형 우퍼를 내부에 또 하나 숨겨 저역 에너지를 확장시킨 에스칼란테 스피커도 어찌 보면 비슷한 견지에서 맥락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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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그럼 이제 버메스터 BC150의 사운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이번 시청엔 디지털 소스 기기로 T+A의 MP3100HV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사용해 ROON으로 재생했다. 앰프는 부메스터의 레퍼런스 모델을 적용해 막강한 진용을 꾸렸다. 프리앰프는 부메스터 077, 그리고 파워앰프는 218 스테레오 파워앰프르 모노 브리지로 엮어 세팅했다. 참고로 부메스터 BC150은 +/-3dB 기준 최저 34Hz 초저역 구간부터 시작해서 20kHz 초고역까지 주파수 응답 특성을 보인다. 한편 감도는 88.5dB로 보편적인 수준이지만 공칭 임피던스가 3옴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저음 반사형임에도 이 정도 낮은 공칭 임피던스를 보인다면 최저 2옴까지도 너끈히 하강할 것으로 보이므로 최소 2옴에도 충분히 대응 가능한 고성능 파워앰프가 필요하다. 부메스터 218 모노 브리지 조합은 이런 면에서 충분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나윤선

나윤선 –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몇몇 곡을 재생해보면서 처음 느낀 인상은 처음 부메스터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던 20여년 전의 느낌을 소환시켜주었다. 알루미늄, 강철, MDF, 수지 등 여러 소재를 사용한 인클로저 디자인은 얼음처럼 냉정하고 그들의 파워앰프처럼 에지 있고 기골이 뚜렷한 소리를 내줄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청음해보면 앰프에 비해 스피커는 되레 부드롭고 온화한 토널 밸런스를 보여준다. 부메스터의 음색을 가지고는 있고 고급스러운 음색을 공간에 뿌리지만 강철 같은 에지나 순간적인 타격감보단 매우 섬세하고 우아한 음색으로 잠시 긴장했던 필자의 감정을 이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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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스 트루 스토리 – ‘Like a rock’

BC150은 조용하다. 인클로저가 유닛의 진동을 전이시키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본래 마스터 음원의 배음을 왜곡하거나 잔향을 없애 건조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래서 금속을 다수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속성의 음색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Like a rock’에서 베이스 기타의 굵고 역동적인 현의 움직임이 강건하면서 두툼하게 바닥에 깔린다. 역시 12인치가 넘는 베이스 우퍼의 양과 에너지는 상당해서 중후장대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역 옥타브 사이에서 악기들이 마스킹되거나 뭉개지는 모습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웠다. 부드럽지만 맑고 부드러운 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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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와 파보 예르비 지휘의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들어보면 작은 미세 약음들이 꿈틀거리는 소리까지 모두 들린다. 이런 상세한 해상력은 일단 유닛 자체의 성능도 있으며 더불어 크로스어버, 그리고 인클로저가 합세한 결과물이다. 악기들이 있어야할 자리에 그대로 펼쳐지면서 입체적인 스테이징을 형성한다. 더불어 무대의 깊이가 매우 깊고 넓게 펼쳐지면서 마치 콘서트홀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낸다. 매우 견고하고 포커싱이 뚜렷한데 반대로 스피커는 눈을 감으면 그 존재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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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유럽 실내 관현악단 –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0번, 1악장’

이 스피커의 본연의 모습은 거대한 무대와 다수의 악기가 구조적 체계를 갖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대편성 클래시컬 음악에서 드러난다. 섬세하고 투명하고 다소 여성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부드러운 톤의 중, 고역은 악기들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낸다. 말 그대로 동양적인 여백의 미가 있다. 그러나 그 연결이 자로 잰 듯 오래낸 것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낮은 레벨의 소리 성분들이 화학적으로 분해된 듯한 소리다. 아마도 이런 코히어런스의 배경엔 스피커 후방에 위치한 AMT 트위터의 힘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관악기는 눈 앞에서 금빛으로 번뜩이는 듯하고 현은 화사하고 물결친다. 제어된 공진으로 깨끗해진 캔버스 위에 싱싱한 공간의 앰비언스가 추가될 때 음악은 더욱 더 커다란 실체감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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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역사가 깊은 몇몇 해외 브랜드들의 역사를 분석해보고 그들의 활동을 추적해나가도 보면 하나 같은 존경스러운 부분들을 목격할 수 있다. 단순 엔지니어들이 설립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인생을 바쳤거나 음악 애호가로 시작한 사람들이 대표 혹은 중책을 맡고 있는 부분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는 음향에 있어 음악적인 목표가 뚜렷하다. 이를 위해 석학급 엔지니어들이 동원되고 결국 공학과 음악, 음향, 최종적으로 디자인까지 비범한 하이엔드 오디오가 만들어진다. 기타 연주자이자 공학자인 디터 부메스터가 설립한 부메스터가 바로 그런 브랜드 중 대표적이다. BC150은 실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부메스터의 스피커지만 부메스터가 앰프, 소스기기와 함께 추구해온 음악, 음향에 대한 궁국의 이데아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를 주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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