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80년대 후반의 여름날이었다. 필자는 38번 광화문행 버스에 올라탔다. 후텁지근한 여름 오후에 광화문에 방문한 이유는 중고 레코드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올디스 음반을 주로 취급하는 신문로 거리의 레코드점에는 바닥에 비스듬히 엘피 더미가 세워져 있었다. 도로의 열기와 선풍기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바람과 함께 정신없이 엘피를 넘겼다. 순간 검은색 톤의 멋진 엘피 이미지가 시선을 강탈했다.
그 음반이 바로 오스카 피터슨의 1959년작 [A Jazz Portrait Of Frank Sinatra]였다. 파블로 레이블에서 나온 오스카 피터슨의 속주 연주를 먼저 들었던지라 구입이 꺼려졌다. 하지만 레이블이 달랐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곡을 연주했다는 타이틀에 홀려 고민 끝에 중고레코드를 집어들었다. 결과적으로 [A Jazz Portrait Of Frank Sinatra]는 대만족이었다. 이후 오스카 피터슨이 버브에서 관련 시리즈를 출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스카 피터슨의 고향은 캐나다 퀘벡이다. 1925년생인 그는 오르간, 피아노, 트럼펫 등을 연주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오스카 피터슨의 아버지는 캐나다 퍼시픽 철도의 짐꾼으로 일했으나 음악에 대한 열정 만큼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오스카 피터슨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소년기를 보낸다. 그는 1945년 캐나다 방송공사 주최 음악 경연 대회에서 우승한다. 이후 1950년대부터 정력적인 피아노 트리오 활동을 이어간다.
오스카 피터슨은 유명 재즈 레이블인 버브(Verve)에서 무려 30장이 넘는 음반 제작에 참여한다. 필자는 그가 리메이크한 프랭크 시나트라, 콜 포터, 조지 거슈윈, 해롤드 알랜, 듀크 엘링턴, 리처드 로저스, 제롬 컨 등의 음반전집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라이선스로 소개되었던 [We Get Requests]가 유명한 편이다. 사실 오스카 피터슨은 200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공연과 음반 제작을 함께 했던 연주자다. 캐나다 퀘벡에는 그의 동상과 거리가 존재한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주화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오스카 피터슨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밴드 솔리스트들이 콘서트에서 차례가 왔을 때 방해한 적이 없어요. 그들이 나를 방해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공연에서 같은 방식의 연주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늘 노력합니다.” 필자는 1950년대 중후반에 출시한 오스카 피터슨의 음반들을 즐기는 편이다. 여전히 파블로 레이블에서 나온 연주는 손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을 그의 음악과 함께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