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파워케이블의 선봉장
오래 전 이야기다. 사실 국내에서 쓸 만한 케이블을 찾기 힘들던 시절이다. 해외 케이블은 우후죽순 수입되기 시작했고 그만큼 국내에서도 케이블에 대한 음향적 변이 등에 대해 왈가왈부하던 시절이었다. 중, 저가 제품을 사용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이제 막 카나레, 벨덴 등 프로용 저가 케이블에서 갓 벗어나기 시작해 해외 킴버나 오디오퀘스트, 국내에선 리버맨, 오디오플러스, 김치호 같은 케이블이 이름을 알려가던 시절이었다. 케이블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접근은 하이엔드 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서 이뤄졌다. 아무래도 케이블로 인한 시스템 음색, 음향 변화는 좀 더 예민한 하이엔드 시스템에서 별견하기 쉽기 때문이다. XLO, NBS, 실텍, 킴버, 카다스 등 일부는 현재도 여전히 레전드로 취급받으면 롱런하고 있기도 하다.
당시 위에 언급한 미국이나 유럽 케이블은 대단히 높은 가격대였고 그 사이를 치고 들어온 케이블은 상대적으로 가격 대비 성능이 좋았던 일본 케이블이었다. 후루가와, 오야이데 같은 케이블이 대표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후루가와, 지금의 후루텍 케이블을 좋아해 여러 케이블을 섭렵했던 기억이 있다. 오야이데도 케이블을 아름아름 구해 적당한 단자로 단말 처리해 쓰던 시절이었다. 둘 모두 지금은 그 당시에 상상할 수 없는 가격대에 판매되고 있지만 당시엔 정말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나 사용했다. 이 외에 네오텍까지 가세하면서 장벽이 높은 하이엔드 케이블 대신 마른 목을 축이곤 했다.
와중에 국내에서 외산 하이엔드 케이블에 도전장을 내민 케이블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 리뷰의 도마에 오른 상투스다. 상투스는 일반적인 오디오 케이블 메이커와 그 태생부터 달랐다. 다름 아닌 실제 전기 관련 회사인 신화전기의 대표가 론칭한 케이블 메이커였기 때문이다. 1991년 설립된 이후 전기전자 코일 생산 등을 통해 당시 연간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던 신화전기의 창업주 2세 염기영 대표는 왜 그 황금알을 낳는 시장을 놔두고 이 작은 하이엔드 케이블 시장에 뛰어들었을까? 지독한 오디오 마니아의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작부터 이 케이블은 기존 국내 케이블을 압도하는 소재와 만듦새를 자랑하면서 동호인 사이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 모았다. 말 그대로 구렁이급 두께와 멋진 단자 처리 그리고 은과 마그네슘 합금과 동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상투스만의 독보적인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0여 년 전 이야기다. 이른바 ‘백사’라고 불리면서 선풍적인 인기와 명성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상투스는 이후로 계속해서 여러 전원 케이블 및 스피커케이블을 발표했다. 더불어 전기 관련 회사 출신답게 전원 쪽에 특화된 제품들, 예를 들어 멀티탭 및 벽체 콘센트 등에서 탁월한 성능을 입증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F5 케이블 혹은 전원 장치?
최근 오랜만에 상투스 제품을 테스트할 기회를 얻었다. 다름아닌 전원케이블이다. 하지만 전원케이블만 있는 게 아니라 중간에 알루미늄 박스를 거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MIT나 트랜스페어런트 케이블을 연상시킬 수 있다. 일종의 필터를 넣어 주파수 응답 특성에 변화를 주는 튜닝 방식을 떠올릴 수도 있다. 커패시터, 코일, 저항 등을 통해 튜닝(?)하는 것인데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이런 방식을 상상했다면 틀렸다. 상투스가 제작한 이 알루미늄 박스 안에 트랜스가 내장되어 있다고 한다.
제작자인 상투스 오디오 대표의 주장에 의하면 내부엔 토로이달 트랜스와 커패시터 그리고 일정 수량의 엄선된 광물질을 내장했다고 한다. 액티브 필터 같은 개념과 전혀 다른 것으로 내부에 어떤 필터도 내장하지 않고 앰프가 필요로 하는 전기를 항상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편 광물을 투입해 접지노이즈를 걸러주는 역할을 맡겼다. 이 부분에서는 스웨덴의 엔트레크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다. 고가의 접지 박스를 생각하면 이런 일체화된 형식이 더 효율적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F5 케이블은 단순히 케이블이라기보다는 케이블 시스템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듯하다. 일단 중앙에 일종의 네트워크 박스를 두고 양쪽에 케이블을 연결할 수 있도록 별도의 연결 커넥터를 설치해놓았다. 상투스에선 이 단자에 연결 가능한 단자로 단말 처리된 케이블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하지만 만일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방식의 전원 케이블을 연결할 수도 있다. 상투스는 총 세 가지 옵션의 파워 박스를 설계해 보편적인 파워케이블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우선 이번에 대여 받은 케이블은 오직 상투스 파워케이블과 세트로 구성된 제품이다. 파워케이블은 상투스가 기존에 발매한 F4 Plus 케이블이다. 이 케이블은 총 열 한 가닥의 고순도 동선을 사용하며 여기에 전기 이온 은도금을 입힌 것이다. 절연은 공기 다음으로 절연율이 낮은 테프론을 사용해 케이블 각각의 전자기장으로부터 간섭을 최소화하고 있다. 한편 가운데에 공기 파이프를 설치해 진동, 노이즈 유입을 극단적으로 낮추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론적으로도 전기적인 절연, 진동 측면에서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케이블은 핫, 콜드, 그라운드 모두 분리해 제작해 간섭을 극단적으로 낮춘 하이엔드 케이블이다. 더불어 단자 또한 카본 단자로 케이블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단자에서의 성능 하락을 최소화한 모습이다.
청음
상투스 F5 테스트를 위해 나는 일단 파워앰프를 선택했다. 모노블럭이기 때문에 미리 두 조를 대여 받아 설치했다. 무척 무거운 파워 네트워크 박스를 앰프 후방에 설치했고 케이블을 벽체 및 파워에 각각 연결했다. 다행히 케이블의 경우 유연하고 탄성이 크지 않아서 설치는 편리한 편이었다. 테스트에 사용한 파워앰프는 평소 레퍼런스로 사용하는 패스랩스 XA60.5 모노블럭이며 프리앰프는 클라세 델타, 소스 기기는 웨이버사 Wcore 및 Wstreamer를 사용해 ROON으로 선곡, 재생했다. 마지막으로 DAC는 반오디오 Firebirds MKIII 파이널 버전을 세팅했다.
레베카 피존 – ‘Spanish harlem’
전체 밸런스의 변화는 없다. 그러나 보컬의 음상이 더욱 또렷하게 잡힌다. 피아노 쪽 또한 보컬처럼 맑고 선명한 울림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들으면서 보니 더블 베이스가 낮은 음계에서 에지가 또렷하다. 양감이 는 것이 아니라 해상력의 향상이다. 중반부를 넘어서 타악의 울림이 매우 섬세해 악기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 한곡만으로 이렇게 많은 변화들이 도출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제프 카스텔류치 – ‘The sound of silence’
저역에 대한 궁금증이 끝없이 밀려왔다. 사실 파워케이블에서 저역 해상도, 다이내믹스 향상은 누구나 첫 번째로 바라는 바일 것이다. 실제로 저역은 무시무시한 해상도로 나의 예상을 넘어섰다. 볼륨을 높여도 소란하지 않지만 깊이가 심연을 파고든다. 흥미로운 건 중저역의 품질 향상이 중고역의 품질도 더 향상시켜 전체적인 균형, 펀치력, 몰입도를 높인다는 점이다.
드레이크 – ‘One dance’
필터를 사용한 전원장치에서 보이는 다이내믹스 저하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번인 기간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첫 사용부터 파워케이블의 진가는 드러난다. 특히 일부 하이엔드 케이블의 경우 해상력, 다이내믹스는 높지만 스피드, 리듬감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는데 이 퍼워케이블의 경우 아주 가뿐하고 힘 있게 치고 나가는 추진력이 일품이다.
파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 ‘베토벤 : 교향곡 3번, 1악장’
재생하자마자 치고 나오는 타악의 펀치력이 굉장히 높다. 파열시키며 볼륨만 키우는 그런 힘이 아니라 부드럽게 손에 쥔 듯한 그립감이 느껴지는 질 좋은 사운드다. 워낙 임팩트가 강하게 느껴져 다소 투박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말끔히 잊어버려도 좋을 듯하다. 세부적인 묘사와 미시적 다이내믹스를 충분히 확보한 사운드로서 대편성에서 그 성능이 낱낱이 밝혀졌다.
총평
누군가 묻는다. 벽체에서 기기까지 고작 1미터, 길어야 3~5미터 되는 길이의 전원 케이블을 바꾸어서 음질 향상이 있다면 그 전에 배전반, 그리고 그 전에 건물 내부 배선 등에서의 손실은 어떻게 설명할거냐고. 그래서 필자 같은 경우 배전반부터 벽체까지도 모두 고순도 동선으로 바꾸었다. 작년에 시청실을 내기 위해 처음으로 결심한 것이 바로 건물 내부 배선 교체였다. 꽤 많은 비용이 지출되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로 인한 음질 향상은 그 어떤 하이엔드 케이블 교체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더 많은 번민을 안겨주었다. 벽체에서 멀티탭, 혹은 멀티탭에서 기기까지 케이블에 대한 성능 차이를 더 큰 폭으로 벌려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트랜지스터 앰프나 진공관 앰프를 가리지 않고 드러나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장점은 물론 단점도 여실하게 발가벗겨졌다. 상투스 F5 시스템을 매칭해 나가면서 이런 큰 폭의 변화는 다행히 고무적이었다. 전원은 어떤 착색도 만들어내지 않았고 다이내믹스 축소의 경험도 없었다. 음향 정보가 흩어지지 않고 모두 쏟아져 나오면서 힘 있게 묘사되었지만 다행히 소란스러운 면은 전혀 없었다. 배경은 매우 깨끗했으며 정돈된 톤으로 음악을 음악답게 그려나갔다. 개인적으로 파워케이블에 한해선 최근 몇 년 간 경험한 것 중 가장 드라마틱한 케이블이다. 살아있는 전설 상투스의 2막 1장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조사 : 상투스케이블
홈페이지 : https://sanctuscab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