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리뷰를 위해 테스트해야하는 제품들이 쌓아가는 상황에서 엘피는 틈틈이 구입해서 들었다. 하지만 시간에 쫒기다보니 요즘엔 자꾸만 구입해놓고 못듣고 있는 엘피가 쌓여갔다. 음반 뿐만 아니다. 약 한 달 전에 구입해놓고 구경만 하고 있는 카트리지도 있다. 바로 하나 ML 저출력 MC 카트리지. 와중에 린 LP12를 구해서 집에 세팅했다. 집에서 들을만한 턴테이블이 없다보니 아쉬워서다.
LP12 세팅하면서 카트리지를 바꿀까 생각했는데 막상 LP12에 세팅되어 있는 Adikt MM 카트리지가 생각보다 좋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찾아보니 백만원대에 제법 레퍼런스급 MM 카트리지로 만든 카트리지다. 중역과 저역대가 두툼해 전체 밸런스가 낮은 편이고 특히 중, 고역이 MM 진하다. 확실히 MM 카트리지만의 매력이 있어 팝이나 록, 간단히 재즈 듣기엔 상당히 맛깔난다. 건조하지 않고 존득한 중역이 잘 살아난다. 물론 그라함 LS5/9의 영향도 있다. 한편 마란츠 모델 40n의 MM 포노단이 카트리지를 충실하게 서포트해주기도 했다.
얼마 전 구해놓았던 하나 ML 카트리지는 여전히 행로가 묘연해졌다. 결국 시청실로 가지고 가서 트랜스로터 ZET-3MKII 턴테이블에 세팅했다. 아무래도 트랜스로터에 장착하는 게 맞다 싶었다. 고출력 MC 카트리지 다이나벡터 DV20X2는 뒤쪽 톤암에 설치하고 앞에 메인 톤암에 하나 ML 저출력 MC 카트리지를 달았다. 헤드셀을 분리한 후 리드선을 연결하고 오버행 및 아지무스 확인하고 오버행만 조정했다. 이후 침압은 2g 정도로 맞추었다. 안티도 비슷한 수준에서 아크릴판 중간 즈음에서 미동이 없었다.
일단 서덜랜드 PhD 포노앰프에서 세팅을 조정했다. 게인은 별도의 하이 게인 카드를 사용해 최대 출력 68dB로 맞추었고 로딩 임피던스는 하나 카트리지의 추천대로 100옴에 맞추었다.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를 켜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카트리지를 엘피 위에 놓는 순간. 이 순간이 가장 짜릿하다. 뮤트를 풀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트 페퍼, 정미조, 다이어 스트레이츠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확실히 다이나벡터에 비해 여유 있고 입자가 고운 소리다. 더 섬세하고 고급스럽다. 생긴 것처럼 소리가 나는 게 참 재미있다. 다이나벡터가 스포츠 카라면 하나 카트리지는 중형 세단 같은 느낌의 소리를 내준다.
마치 오랫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끝낸 느낌이다. 최근에 구입한 에릭 클랩트의 ‘Lady in the balcony’, 스틸리 댄의 ‘Aja’, 그리고 더 밴드의 초창기 엘피들과 제리 가르시아, 톰 웨이츠 등 듣고 싶은 엘피가 한 무더기다. 게다가 2XHD 신보들도 있고 아네트 아스크빅 LP도 있고 음반사에서 검청해 달라고 건네준 테스트 LP도 이걸로 다시 들어봐야겠다. 엘피는 정말 귀찮지만 디지털에 비해 세팅 이후의 보람이 크다. 모두 하나하나 아날로그 방식으로 세팅하고 체크해야하니까. 음악은 소리로만 듣는 게 아니다. 과정이 주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 결과는 아무리 큰돈을 쓰더라도 그리 값지진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