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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하지 않는 소리

베르테르 어쿠스틱스 CALON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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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지를 구원하라

앰프에 내장된 포노단을 사용하던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스펙트랄 오디오 DMC10부터 DMC20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 외에도 크렐의 구형 프리앰프들 그리고 마크 레빈슨 26 계열 중 포노단이 우수했던 프리앰프도 기억한다. 오더블 일루전스 M3A는 지금은 패러사운드 제품을 설계하지만 당시 꽤 유명한 포노 앰프 설계 전문가 존 컬의 작품이었다. 게인이 약간 애매했지만 벤츠 마이크로 Glider 등의 MC 카트리지와 재밌게 사용했었다. 하긴 그의 손이 닿은 것이 그것뿐이겠는가. 마크 레빈슨의 프리앰프 포노단은 물론이며 가장 근작 중 하나라면 컨스텔레이션 포노앰프에도 그의 손길이 진하게 뭍어 있다. 이후 분리형 솔리드 스테이트 포노앰프에 대한 경험은 무수히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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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진공관 포노앰프는 특유의 착색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골고루 소리를 풍성하게 만들어내는 매력이 있다. 파라비치니의 EAR834P부터 디럭스 버전, 그리고 이를 복각한 제품들이나 마란츠 7 계열이 대표적이다. 오디오 리서치나 BAT의 하이브리드 계열은 진공관의 잔향과 솔리드 스테이트의 장점을 결합한 소리로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했었다. 비교적 최근이라면 제스토 포노앰프, 맨리 등이 생각난다. 하지만 최고봉이라면 역시 FM 어쿠스틱스나 볼더, 그리고 댄 다고스티노 포노앰프 그리고 옥타브 포노 모듈 같은 제품들이다. 높은 SN비와 함께 왜곡이 적고 다양한 카트리지에 대응 가능한 것. 지금도 서덜랜드 PhD 같은 포노앰프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포노앰프에 집중하면서 집요했던 이유는 카트리지의 성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다. 스피커 대비 항상 더 상위 앰프나 소스기기를 매칭하는 나의 오랜 습관과 일맥상통한다. 일반적으로 스피커에 모든 예산을 쏟아 붓고 난 뒤 앰프나 소스기기엔 소홀한 오디오파일도 있지만 나는 되레 반대였다. 스피커는 나의 취향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어쨌든 최상의 성능을 뽑아내기 위해 스피커 가격의 몇 배를 더 앞단에 쏟아 부었다. 조그만 북셀프 하나를 놓고 크렐 클래스 A 증폭 3백와트짜리를 매칭하기도 서슴치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트랜스듀서의 능력을 최대치로 뽑았을 때의 쾌감은 마치 그것을 지옥에서 구원해낸 듯 오디오의 재미를 몇 배고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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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카트리지 그리고 CALON

이번 베르테르 CALON이 반가웠던 이유는 필자가 가진 두 개의 카트리지에서 어느 정도의 성능을 뽑아줄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카트리지를 고가의 하이엔드 모델을 사용하면서도 포노앰프는 그 정도 수준 이상을 매칭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카트리지가 요구하는 스펙 및 포노앰프 자체의 완성도에 따라서 같은 카트리지도 천차만별의 소리를 낸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때론 데논 DL-103 계열 같은 입문자급 MC 카트리지도 바디를 바꾸고 상위급 포노앰프를 매칭했을 때 상상 이상의 사운드를 내주었던 걸 기억하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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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카트리지를 두 개를 준비했다. 하나는 하나 ML 카트리지로 0.4mV 출력을 갖는 저출력 MC 카트리지다. 주파수 응답은 12Hz에서 45kHz로 광대역이며 로딩 임피던스 권장감은 >100Ω이다. 또 하나는 다이나벡터 DV20X2H 카트리지로서 출력이 2.8mV에 이르는 고출력 MC 카트리지다. 주파수 응답은 20Hz에서 20kHz로서 역시 광대역을 재생할 수 있는 모델이다. 한편 로딩 임피던스는 >1k옴으로 역시 저출력 MC에 비하면 높은 임피던스 값을 요구한다. 우선 하나 ML 카트리지의 경우 CALON의 최대치인 68dB로 세팅했고 로딩 임피던스는 추천 값대로 100옴으로 세팅했다. 턴테이블은 트랜스로터 ZET-3MKII며 이 외에 앰프는 클라세 델타, 파워앰프는 패스랩스 XA60.5 모노블럭, 그리고 스피커는 락포트 테크놀로지스의 Atria를 활용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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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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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페이스 스윙 트리오 – Dream dancing

엘피 위에 카트리지를 올리고 프리앰프의 뮤트 버튼을 눌러 음 소거를 푼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혹시 뮤트를 풀지 않았나 생각하는 순간 적막 같던 시청실 안에 음악이 폭포수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그만큼 배경이 정적에 가까울 정도로 깨끗하다. 보컬 음상은 흔들림 없이 정교하게 형성되며 피아노, 더블 베이스와 거리까지 가늠이 될 정도로 무대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아무튼 깨끗하다. 배경도 그리고 피아노를 치는 손끝까지도 뭉개지지 않고 카메라 포커싱에 잡힌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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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페퍼 –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

색소폰은 배음 구조가 가장 복잡 미묘한 악기 중 하나다. 따라서 고조파 왜곡이 많이 생길 경우 토널 밸런스가 뒤틀리고 본래 녹음된 악기 소리에서 조금씩 빗나간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베르테르는 온전히 본래 아트 페퍼의 색소폰 사운드를 선명하게 재현해준다. 내가 들었던 그 어떤 포노앰프도 이 정도로 정확한 음색 표현을 해내는 모델을 본 적이 없다. 청감상 왜곡이 사라진 무대 위엔 오디오의 존재는 사라지고 음악만 남는다. 하나 ML은 다이나벡터에 비해 약간 얌전한 듯하지만 대신 단정하고 밀도가 높다. 럭셔리 세단 같은 주행 느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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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 스트레이츠 – Money for nothing

하프 스피드 마스터링 방식으로 커팅한 엘피를 찾다가 친근한 다이어 스트레이츠 엘피를 꺼내들었다. 다름 아닌 베르테르 제품 애호가인 마일스 쇼웰이 작업한 결과물. 매우 절도 있게 리듬을 구사하며 강도 높은 드럼 어택이 밀도가 높고 펀치력이 강하다. 하지만 귀를 찌르는 부분 없이 매우 생생한 사운드여서 자꾸만 볼륨을 높이고 싶어진다. 다이내믹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고 말끔하며 동시에 강력한 쾌감의 한 방도 가지고 있는 포노앰프다. 좁은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만 매몰된 것이 아니라 하이엔드와 스튜디오를 오가는 제작자의 넓은 시야와 커리어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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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스타인버그 – 브람스 : 바이올린 소나타

심지가 뚜렷한 바이올린 사운드가 시청 공간을 깊게 침투한다. 소리의 끝단이 깨끗하면서도 롤-오프 없이 깨끗하게 뻗어 올라가는 모습이다. 확실히 잘 만든 솔리드 스테이트 방식에서 느껴지는 마이크로 다이내믹 그리고 침투력 강한, 섬세한 세부 묘사가 돋보인다. 이렇게 깨끗하고 높은 해상도와 다이내믹은 무대를 마치 녹음 공간의 그것처럼 그려내며 실체감을 고조시킨다. 착색이나 탈색 같은 단어는 베르테르에겐 단 1%도 해당사항이 없다. 결코 타협하지 않는 소리로서 아날로그 사운드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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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ML 카트리지로 듣다가 다이나벡터로 바통을 넘겼다. 사실 다이나벡터는 수년간 사용해와 그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ALON에서 어느 정도 성능을 보여줄지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세팅은 일단 게인의 경우 56dB 정도로 세팅했을 때 적절한 볼륨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 로딩 임피던스는 추천 값대로 1K옴으로 세팅했다. 트랜스로터 턴테이블에 톤암을 두 개 설치해놓은 관계로 서로 바꾸어가면서 비교할 수 있어 편리했다. 포노앰프의 게인 및 임피던스를 전면 노브로 수월하게 변경할 수 있는 건 이런 경우 상당한 이점이 되었다. 다만 입력이 한 조만 더 있었다면 좋았을 듯하다. 이 정도 수준의 포노앰프를 운용하는 사람이라면 톤암이나 턴테이블을 두 조 운용하는 분이 많을 듯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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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리 댄 – Black cow

모든 악기들의 두께는 아주 얇지도 너무 두껍지도 않다. 게다가 전체 대역 밸런스가 차분한 편이므로 들뜨거나 흩날리지 않고 차분하게 음악에 몰입된다. 다이내믹은 ‘Black cow’ 같은 곡에서 넓고 축소가 없다는 걸 증명한다. 리듬을 타는 악곡 중간 중간 딜레이 현상 없이 매우 자연스러운 그루브를 표현해준다. 이어지는 ‘Aja’에서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피아노 타건과 정확한 타이밍은 음악의 흥을 몇 배고 돋운다. 내가 나의 시스템에서 들어본 어떤 포노앰프도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알렉산더 깁슨/뉴 런던 심포니 – 생상스 : Danse macabre

볼륨을 한껏 높여 오케스트라 녹음을 들어보면 자꾸만 볼륨을 높이게 된다. 높은 볼륨에서도 디스토션이 일어 소리가 깨지거나 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되레 충분한 다이내믹과 함께 입체적인 스테이징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RIAA 정밀도가 굉장히 높아서인지 각 악기의 토널 밸런스 왜곡이 적어 음정, 음색 표현에 있어 실체감이 넘실댄다. 하이라이트 부근에선 왜 초반, 적어도 오리지널 아날로그 마스터로 커팅한 엘피로 들어야하는지 그 이유를 소리로서 완벽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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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베르테르 CALON은 카트리지의 특성을 매우 정확히 드러내주는 포노앰프다. 자신의 색상을 음색에 투영해 자신이 주인공인 양 행세하는 타입이 아니다. 철저히 카트리지의 성능을 극도로 끌어내주는데 강점은 물론 단점도 포착해낸다. 커패시턴스 조정으로 고역 쪽 앰비언스 표현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만든 이유가 있다. 다이나벡터는 확실히 섬세함 면에선 하나 ML에 비해 열세지만 훨씬 경쾌하고 힘 있게 치고 빠지는 추진력과 순간적인 어택, 펀치력 등 개성이 밤과 낮처럼 비교되었다. 반대로 하나 ML 카트리지는 아주 부드러운 미립자를 매우 부드럽고 고급스럽게 펼쳐놓아 벨벳 같은 촉감을 선사해주었다. 다이나벡터는 팝, 록, 재즈, 하나 ML은 클래시컬 음악 재생에 좀 더 유리한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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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특성 파악이 수월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베르테르 CALON의 역할이 지대하다. 고가의 포노앰프라서 직접 케이스를 열어 내부를 살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지만 해외에서 살짝 공개된 내부 사진을 볼 때 노이즈 간섭, 채널 간섭 및 차폐 등 전기적, 물리적 소음으로 인한 시그널의 왜곡을 최대한 억제한 설계로 보인다. 분명 더 쉽게,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포노앰프를 설계할 수도 있었지만 베르테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CALON을 통해 아날로그 녹음의 심장 속으로 깊게 진입한 모습이다. CALON보다 더 화려한 기능과 한시적 쾌감을 주었던 포노앰프는 있지만 CALON만큼 오래 곁에 두고 LP를 계속 꺼내들게 만드는 포노앰프는 없었다. 베르테르의 여타 제품들도 마찬가지지만 이들에겐 타협이란 없기 때문이다. 타협하지 않는 소리가 CALON 안에 잠들어 있다.

글/사진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Type : MC/MM Phono Preamplifier Main phono circuit on two separate gold-plated PCBs
Power Supply : Two Linear, Internally Mains voltage switchable, transformers
Gain Settings : 40dB to 68dB In 15 Steps
Input Impedance Settings Resistance : 100R to 47k in 9 Steps
Capacitance : 100pF to 1.0uF – In 9 Steps
Frequency Response : 20Hz – 20kHz +/- 0.2dB
Noise < -83dB – AWD
THD-N : 0.01%
Finish : Front Panel Options Silver or Black
Dimensions : 412 x 290 x 8

제조사 : 베르테르 어쿠스틱스(UK)
공식 수입원 : 반오디오 (http://bannaudio.com)
공식 소비자 가격 : 30,000,000원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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