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보다 값진 동
예전에 어느 야구 만화에서 읽은 이야기다. 옛날옛적 황금검을 가진 용사가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검을 사용해 어떤 상대든 물리쳤다. 사람들은 그런 용사에게 환호를 보냈다. 황금검을 가진 용사는 무서울 것이 없었고 누구도 그에게 대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황금검이 구리검으로 변해버리고 말았고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도전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며 패배를 떠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구리검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 기술을 연마했다. 그리고 언제부터 그는 화려하고 멋진 황금검 없이, 구리검만으로도 뛰어난 기량을 뽐내게 되었다. 용사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건 황금검이냐 구리검이냐가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당시 모 투수의 통산 100승을 축하하는 의미로 그린 짤막한 카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종종 야구를 보긴 하지만 그 투수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혹사와 그 여파로 인한 수차례의 수술과 재활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부활하면서 100승을 따낸 그의 투지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황금검이냐 구리검이냐는 사실 투수의 팔과 어깨를 비유한 것이리라. 1년에도 수많은 투수가 프로 무대에 데뷔하고 또 한 편으로는 그 무대를 떠나는 걸 보면서 오랜 시간 엄청난 투지와 노력으로 이를 이겨내게 만든 건 싱싱한 팔 이상의 그 무엇이다.
오디오 마니아는 답이 없다. 이 카툰을 보고 나는 뜬금없이 케이블이 떠올랐던 것이다. 케이블 소재로 많이 쓰이는 건 대표적으로 구리다. 그리고 그보다 더 상위 케이블은 은도금 구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고가의 케이블은 은이다. 전도도가 가장 높아 전류, 신호 전송에 당연히 유리하기 때문이다. 일부 케이블은 여기에 금 또는 팔라듐 등 다양한 소재를 더 투입하곤 하지만 일반적으로 케이블 등급은 이 소재 순서로 나눈다. 하지만 소재가 전부는 아니다. 때론 구리로 만든 케이블이 더 값비싼 소재인 은으로 만든 케이블보다 거의 대부분의 매칭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황금이냐 구리냐가 아닌 것이다. 은보다 혹은 금보다 값진 동이라니? 용처에 따라서 가치는 뒤바뀔 수도 있다.
와이어월드
내게 있어서 그런 케이블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와이어월드 스트라투스라는 파워케이블이다. 아마도 스트라투스 5 버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 사실 얇고 넓게 만들어진 이 케이블에 대해 별다른 호기심이 없었다. 더 굵고 멋진, 화려한 단자로 마감한 케이블에 비하면 사실 볼품없이 생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용해본 결과 이 케이블의 가격 대비 성능은 대단히 높았다. 이후 이 케이블은 거의 항상 나의 케이블 포트폴리오 안에서 떠나지 않았다. 더 상위 파워케이블도 들이고 나가기를 반복했지만 스트라투스는 하다못해 서브 시스템이나 책상 오디오 시스템에서라도 사용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이후 스트라투스는 5.2버전 그리고 7을 거치면서 여전히 나의 시스템에 한, 두 개 정도는 여전히 남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와이어월드에 대한 관심은 이후 호기심이 아니라 신뢰로 자리 잡았다. 일렉트라나 실버 일렉트라 등을 사용하면서 매칭이 힘들 경우 종종 사용하는 믿음의 존재로 기능했다. 이 외에 인터케이블이나 스피커케이블도 와이어월드 제품들을 종종 사용했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시스템을 크게 가지지 않는 성격 때문이다. 너무 자기 개성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말하면 케이블로 인한 심한 왜곡이나 불편한 음색 등 나쁜 버릇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곧 와이어월드 케이블은 착색이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매우 정직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유지하는 데 최상의 선택이 되곤 했다.
와이어월드 10 시리즈
갑자기 찾아온 10 시리즈 파워케이블은 놀라움과 당혹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 이유는 여타 라인업과의 버전 진화 패턴의 차이 때문이다. 여타 라인업은 버전 7을 거쳐 버전 8로 안착한 상태다. 그러나 파워케이블은 기존에 버전 7에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가 중간 숫자를 건너뛰고 곧바로 10 시리즈로 진화했다. 와이어월드 홈페이지에서 확인 결과 2024 업그레이드 신형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테스트를 위해 박스를 개봉해서 확인해보니 10 이라는 숫자가 선명했다. 2024 신형 버전의 이름은 시리즈 10임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테스트 시스템
- 네트워크 플레이어 : 오렌더 A1000
- DAC : 코드 일렉트로닉스 Hugo TT2
- 프리앰프 : 클라세 CP-800MK2
- 파워앰프 : 패스랩스 XA60.5
- 스피커 : 리바이벌오디오 Atalante 3 Ebony
※ 테스트 음원
- 에밀리에 클레어 발로우 – The very thought of you
- 리차드 보나 – Bisso baba
- 트론트하임 솔리스텐 – 브리튼 : Simple symphony, Op 4
- 안드리스 넬슨스/BSO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2악장
스트라투스 10
우선 테스트를 위해 스트라투스 7 파워케이블을 찾아 프리앰프에 장착하고 음악을 재생했다. 그리고 이후 신형 스트라투스 10을 장착해 사운드를 체크했다. 흥미로운 건 스펙에서 볼 때 아주 큰 차이점이 있지 않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일단 OFC 도체를 사용한 점도 동일하며 이 도체의 굵기는 12AWG 사이즈다. 이를 총 20줄 사용해서 만들어진 케이블이다. 구조는 플럭스필드(Fluxfield™)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것으로 일반적인 구형 케이블과 달린 단면이 납작한 형태다. 더불어 절연은 콤포실렉스(COMPOSILEX®)라는 독보적인 소재 기술을 활용했다. 여기서 차이점이 나타난다. 이전 버전이 콤포실렉스 2 절연이었다면 이번엔 단숨에 콤포실렉스 5로 단숨에 올라섰다. 여기에 은도금 구리 단자를 채용한 모습이다.
와이어월드에선 이러한 절연과 플럭스필드 지오메트리가 훨씬 더 값비싼 케이블보다 노이즈 저감에 효과적이며 성능에서 있어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스트라투스 7과 스트라투스 10의 차이는 짐짓 놀라울 정도였다. 우선 기존 스트라투스 7도 평탄한 반응 속도과 적당한 해상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스트라투스 10으로 변경하면 우선 배경이 더 조용해진다. 이런 특성은 반대급부로 SN비를 향상시켜 작은 소리들도 더 정확히 들리게 만들어준다. 보컬의 포커싱은 더욱 또렷하게 들리다. 잘 듣고 있던 스트라투스 7이 다소 무르고 평범한 해상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체감했다.
일렉트라 10
다음은 일렉트라 10 케이블은 12AWG 구경의 케이블 20가닥을 사용하며 절연이나 단자도 동일하다. 하지만 도체 자체가 스트라투스보다 상급이다. 바로 OCC 구리. 게다가 순도를 7N까지 높여 주조한 도체를 사용한다. 일본 치바 공대 오노 교수가 고안한 단방향, 연속 주조 방식을 도입해 도체의 입자를 규칙적으로 배열해 입자 사이 그레인을 최소화하고 고르게 만든 도체다. 이로서 더 원활한 전류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OCC 도체다.
일렉트라 케이블은 이미 바로 직전 버전을 얼마 전까지 사용했었다. DAC와 프리앰프 그리고 파워앰프 등 여러 컴포넌트에서 다른 케이블과 비교 청음하면서 어떤 곳에 적용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국 적용한 곳은 예상을 달리하고 턴테이블 전원부였다. 다른 어떤 지점보다 일렉트라 케이블은 아날로그 장비에서 그 실력이 좋았다. 그리고 DAC에서도 그 역량을 펼쳐보였는데 공통적으로 소스 기기나 프리앰프에서 성능이 극대화되었다. 실제로 오랜 시간 경험에 의하면 소스 기기, 프리앰프에서 파워케이블의 성능이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다.
스트라투스는 버전 10에서도 확실히 기존 버전을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나름대로 예상했던 퍼포먼스 업그레이드 폭을 넘어선 상황이다. 그 다음은 일렉트라 10을 테스트해볼 차례. 스트라투스 10을 빼내고 동일하게 프리앰프에 일렉트라 10을 꼽고 한동안 귀를 기울였다. 여기에선 상당히 다른 측면에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일단 약음 표현의 향상으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향상이 크게 눈에 띠었다. 심벌, 브러시 같은 소리들이 훨씬 더 섬세하게 들린다. 더불어 해상력은 스트라투스 10은 가뿐히 뛰어넘는다. 차갑거나 냉정하지 않고 온건하면서도 음원 내부의 소리 입자를 더욱 상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실버 일렉트라 10
실버 일렉트로로 올라서면 일렉트라 10과 또 다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우선 소재 면에서 다른 하위 케이블과 달리 은도금 동을 사용하고 있다. 정확히는 ‘Silver-clad Copper’로 이야기하는데 구리 표면에 은을 도금하는 형태다. 실제로 시그널 케이블에선 고주파가 도체 표면을 경유해 흐른다는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도체 구조다. 하지만 이런 도체 구조가 전원 흐름에선 과연 어떤 영향을 줄까? 결과적으로 시그널 전송시 은도금 구리의 특성과 일맥상통하는 면들이 발견된다.
우선 해상력이나 SN비는 물론 당연하게도 세 개 케이블 중 최상급이다. 정말 이렇게 등급 차이를 정확히 만들어내는 케이블도 흔치 않을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실버 일렉트라 10은 다이내믹스 표현에서도 상당 부분 앞서 있다. 작은 소리들과 더 작은 소리들의 차이가 부각되면서 한층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재생해준다. 더불어 약동하는 듯한 느낌을 배가시키는 건 아무리도 빠른 반응 속도 덕분인 것으로 추측된다. 하위 모델과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보다 무대 표현력이다. 무대를 더 크게 그리며 그 내부의 악기들도 더 또렷하게 위치한다. 악기 위치들이 잘 표현되며 현장의 입체적인 사운드 스테이징이 더 생생하게 그려진다.
총평
나의 오디오 인생에서 와이어월드는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 같은 케이블이었다. 입문용으로 적합한 루나는 처음 듣고 가격을 의심했고 솔스티스는 여전히 한 구석에서 종종 소환되어 나의 시스템 매칭에 활용되고 있다. 한 때 지인의 집에서 듣고는 마음에 쏙 들어 구입해 사용한 이클립스 스피커 케이블은 당시 인기를 누리고 있던 킴버 3033 같은 케이블과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 특히 파워케이블은 지금도 여러 개 가지고 종종 활용 중이다. 세상에 자기 특성을 주장하며 개성이 강력한 케이블은 많다. 하지만 가감 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음악성을 놓치지 않는 케이블은 흔치 않다. 그래서 장시간 음악을 듣는 내게 와이어월드는 항상 신뢰의 아이콘 중 하나다. 기존 라인업도 훌륭했지만 시리즈 10은 한 단계 더 높은 레퍼런스의 반열에 오른 듯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조사 : 와이어월드 케이블 테크놀로지(미국)
공식 수입원 : ㈜ 샘에너지
공식 소비자가 (1미터 기준)
Stratus™ : 235,000원
Electra™ : 477,000원
Silver Electra™ : 88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