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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민낯을 보다

제네렉 8381A

genelec 8381a 5

녹음 현장과 하이파이 사이

20대와 30대를 거치며 다양한 스튜디오, 공연장을 경험했었다. 음악 관련 일을 하다보면 경험하기 싫어도 하게 되는 일이다. 사실 음향보단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음향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곤 했다. 신문이나 잡지에 등장하는 유명 엔지니어들의 스튜디오는 좀 더 나중에 알게 되었고 그 당시엔 그저 조그만 로컬 스튜디오들이 대다수였다. 기본에 충실하게 녹음 원본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거나 플랫한 주파수 특성을 기반으로 후반 작업을 하는데 최적화되었다는 장비들이지만 내 귀엔 내 조그만 하이파이 시스템보다 못한 소리로 음악 작업을 하고 있었다.

207A1237

나는 물론 당시 입문형을 갓 벗어난 시스템을 이리 세팅하고 저리 세팅하고 또 바꾸는 등 열정적으로 오디오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유명한 뮤지션으로 성장한 동생들이 스튜디오를 놔두고 나중에 내 집으로 음악을 들으러 오기도 했다. 당시 막 후반 작업을 마친 마스터 레코드를 가지고 와서 새벽까지 한참을 듣다가 가서 다시 음원을 수정하곤 했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것이 최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악을 즐기며 돈을 지불해 그들이 음악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건 소비자이며 따라서 그들이 듣기 좋게 만드는 것도 그들의 의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The new mastering setup in Studio 2 edit

스튜디오 모니터의 세계

모니터 시스템에 대해선 가끔 경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 바워스&윌킨스를 중심으로 하는 사운드미러 스튜디오의 시스템이 아마도 가장 좋았던 것 같다. 황감독님 외엔 국악 전문 레이블 악당이반의 스튜디오가 정말 좋았었고. 그 중 액티브 모니터 스피커 중엔 제네렉이 꽤 괜찮았다. 대개 올망졸망한 사이즈의 스피커를 종종 접했는데 하이엔드 오디오의 개성 넘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스튜디오 마스터의 민낯을 정직하게 들려주는 아이들이었다.

최근 나의 시청실 튜닝을 어느 정도 마치고 음악도 즐기고 제품 테스트도 하고 있을 정도는 꾸려진 상태였다. 종종 유튜브 촬영을 하기도 하는데 요즘들어 부쩍 측정이 필요한 제품들의 의뢰가 들어온다. 최근엔 링돌프 오디오에서 만든 TDAI-3400 스트리밍 앰프와 SDA-2400 파워앰프가 정말 재미있었다. 자체적으로 만든 룸퍼펙트의 성능은 이제까지 홈 오디오에서 봐왔던 공간 음향 보정 중 최고였다.

genelec 8381a 1

그리고 또 하나는 제네렉이다. 사실 유튜브 영상 촬영도 촬영이지만 필자의 청음실에서 프라이빗 쇼케이스가 있었다. 이를 위해 제네렉의 플래그십 신제품 8381A를 설치하자는 제안. 가장 최신의 스튜디오 액티브 모니터 스피커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들의 GLM이라는 보정 프로그램도 궁금했다. 이 스피커는 기존에 보던 작고 앙증맞은 제네렉이 아니다. 1미터 50cm 정도 키에 동축 유닛 하나 그리고 네 개의 미드레인지와 총 세 발의 15인치 우퍼를 채용한 대형 액티브 스피커였다. MSB Analog DAC 및 웨이버사 Wcore 룬 서버 그리고 Wstreamer를 추가해 들어본 8381A는 평소 사용하던 스피커와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는 지극히 평탄했으며 음악 소스는 물론 소스 기기의 성격, 케이블 하나의 차이도 미묘하게 구분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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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 현장의 상상을 현실로

이후 두 번째 청음 기회가 있었다. 신반포대로에 위치한 하이탑AV에서였다. 신제품 런칭 쇼케이스를 빌미삼아 다시 한번 8381A를 다른 장소에서 테스트해볼 기회가 있었다. 이번 테스트에선 앞단의 소스 기기를 모두 제거하고 별도의 프리앰프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8381A에 포함된 RAM-81 앰프 모듈에 내장된 DAC와 함께 함께 제공되는 제네렉 네트워크 컨트롤로의 볼륨을 사용했다. 물론 DAC를 따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제네렉이 의도한대로 내장된 회로를 그대로 사용해보기로 했다. 참고로 프리앰프를 따로 사용할 경우 RAM-81의 볼륨을 디폴트로 설정해야한다. 또한 볼륨이 내장된 DAC나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따로 사용할 경우에도 해당 기기의 볼륨은 바이패스시켜 고정 출력으로 세팅하고 볼륨은 RAM-81 혹은 별도의 프리앰프 중 하나에서만 컨트롤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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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15인치 우퍼를 담은 인클로저는 분리형이고 앰프도 분리형이다. 가정용 오디오에서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스피콘 단자로 연결되어 총 네 개의 파워앰프 모듈이 동원되어야만 작동한다. 모든 유닛을 바이앰핑 방식으로 구동하는 설계다. 결국 이런 대형 시스템의 완벽한 사운드 구현을 위해선 바이앰핑이 답일 수밖에 없다. 앰프는 클래스 D 증폭으로 5926와트. 전체 주파수 응답은 20Hz에서 35kHz에 이르며 최대 SPL 응답이 무려 129dB. 대부분의 중대형 하이엔드 스피커들이 그렇듯 이 스피커도 가정에선 제대로 된 운영이 어렵다. 단독 대형 평수 가옥이나 지하 전용 청음실 정도 되어야 충분한 실력을 끌어낼 수 있을 듯하다.

GLM을 활용한 세팅 4 horz
GLM을 활용한 세팅 6 horz

흥미로운 건 아무래도 GLM 소프트웨어를 통한 공간 음향 보정 작업이었다. 이건 수입사의 테크니컬 엔지니어 팀원들이 직접 진행했고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면서 의문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과정은 대개 비슷해서 마이크로 측정하고 그 측정 데이터를 저장 후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당 공간의 음향 특성에 스피커 작동을 최적화시키는 방식이다. 하지만 NAD 등의 기기에서 사용해보았던 디락 라이브(Dirac Live)나 링돌프 오디오의 룸 퍼펙트(Room Perfect)보다는 그 운용 측면에서 난이도가 좀 있는 편이다. 세부적인 데이터를 더욱 상세히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그레이드 리포트를 통해 공간 음향 특성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제네렉 본사로부터 제공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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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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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크롤
I’ll see you in my dreams

커다란 몸체의 8381A를 마주하면 거의 사람을 앞에 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실제로 음악을 재생하면 보컬 같은 경우 거의 실사이즈에 가까운 바디와 입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이는 축소시켜 일부 타협한 소형 스피커와 전혀 다른 차원의 감흥을 이끌어낸다. 좌/우 채널 분리도는 매우 정확하게 펼쳐져 어떤 악기가 중앙에서 어느 정도 좌/우로 치우쳐져 있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전체적인 음상은 일반적인 하이파이 스피커보다 더 크게 잡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 놀라운 건 매우 큰 대형기들이 빅마우스에 더해 음상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은데 동축 드라이버의 완성도 덕분에 전혀 흔들림 없이 핀 포인트로 맺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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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 돔네러스
Nobody knows the trouble I`ve seen

음색 면에서 이 스피커는 전혀 착색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체로 모니터 스피커로 회사가 시작되었거나 엔지니어들이 선호하는 스피커들의 공통점이다. 한편 아르네 돔네러스 같은 색소폰 악기들에선 음색의 표현 패턴을 읽어낼 수 있다. 사실 평탄한 주파수 특성과 시간축 특성을 견고히 유지하는 모니터 스피커는 일반 하이파이 오디오 마니아들에겐 반대로 밋밋하고 심심하게 들릴 소지도 분명 있다. 그러나 뛰어난 해상력과 SN비를 가진 스피커라면 건조하거나 거칠지 않고 매우 싱싱한 소리를 들려준다. 절대 심심하게 느낄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또한 색소폰 및 여타 악기와 음색 구분이 명료하고 겹치는 주파수 구간에서도 뚜렷한 옥타브, 음색 구분 덕분에 마치 녹음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일쑤다.

제프 카스텔루치
Sixteen tons

낮은 저역은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느끼는 대역이다. 대체로 바닥을 통해 발끝부터 전해져오는데 일반 가정에선 매우 불쾌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제네렉 8381A는 인간의 가정 한계 영역까지 뻗어가는 저역 움직임이 일사분란하다. 하이엔드 스피커 중 매우 평탄하다고 평가되곤 하는 스피커도 이렇게 힘있고 탄탄한 저역을 내주는 스피커는 단연코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다. 아마도 GLM 소프트웨어가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추축되는데 나의 시청실에선 GLM을 적용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질 좋은 저역을 들을 수 있었다. 굉장한 임팩트와 펀치력 넘치는 저역이지만 절대 과장하지 않고 응축되어 있어 무척 깨끗한 SN비와 해상력을 보여준다. 뒷맛이 개운하면서도 이처럼 폭발력이 있는 저역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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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 스트레이츠
Money for nothing

우리는 두 개의 귀를 가지고 공간에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위치를 알아낸다. 좌/우 채널의 소리 크기 및 그 차이, 변화를 감지, 추론해내는 것이다. 어느 음향 학자는 스피커 패널의 서로 다른 곳에 서로 다른 주파수를 재생하는 드라이버가 있을 경우 이를 추론해 이미징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뇌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8381A는 수많은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들어낸 동축 드라이버를 통해 이를 해결했다. 더불어 우퍼들의 응답을 서로 분석해 우퍼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작동하면서 중고역과 함께 무척 자연스러운 주파수 특성 및 시간축 특성을 완성해내고 있는 모습이다. 평탄한 주파수 응답에 더해 시간축 반응 속도에서도 어떤 뒤틀림도 없으므로 압도적인 디자인과 달리 무척 편안하게 음악에 몰입하게 된다. 동축과 우퍼는 GLM 소프트웨어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그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1812
에리히 쿤젤/신시내티 팝스 오케스트라
차이코프스키 : 1812 Overture

참고로 저역에 대해선 Complementary 모드와 Continued Directivity 모드 등을 적용해 비교해보면서 GLM 소프트웨어의 영민한 알고리즘에 감탄하기도 했다. 혹시나 해서 차이코프스키 ‘1812 서곡’을 재생해보았는데 말미의 대포 소리가 정말 청음 위치에서 발끝까지 전해오는 쾌감이 대단했다. 유유히 퍼져나가는 저역이 아니라 윤곽이 뚜렷하며 펀치력이 최고조로 끌어올려진, 단단한 저역으로 실제 초저역을 이렇게 리얼하게 내주는 스피커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GLM으로 보정 전/후 차이 사운드도 상당히 컸지만 나의 청음실에서 보정 전 주파수 특성도 그리 나쁘진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하나를 고르라면 보정한 후의 소리를 고르겠다. 소리의 민낯을 보았고 주변 기기의 특성을 낱낱이 분석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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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8381A라는 대형 액티브 모니터 시스템으로 듣는 사운드는 상상 이상이었다. 대체로 주파수 특성이나 시간축 반응이나 지향 측면은 모니터 스피커가 좋지만 하이파이 측면에서 보면 건조하고 답답한 구석이 있는 스피커들도 많이 봐왔다. 8381A 같은 경우도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에서 보면 음악에 빠져들게 만들기 보단 검열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경험해왔던 스튜디오 액티브 모니터와 차원이 다른 사운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거대한 파도와 같은 저역은 그러나, 단단하면서 동시에 커다란 SPL 음압으로 시청자를 압도했다. 동축 드라이버와 미드레인지 드라이버는 마치 하나의 유닛처럼 인간의 가청 영역 중 가장 민감한 대역에서 이물감 없는 사운드를 선보였다. 마치 녹음 현장을 눈 앞에서 선보이는 마법 같은 순간 순간이었다. 이 스피커 시스템의 소리는 상당히 오래 뇌리에 기억될 것 같다. 이 시대 최고의 액티브 모니터의 가늠자로서 소리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Technical Specifications

SPL
126 dB

Amplifier Power
Total amplifier power 5926 W (Class D)

Frequency Response
20 Hz – 35 kHz (“-6 dB”)

Accuracy of Frequency Response
± 1.5 dB

Driver Dimensions
2 x ⌀ 381 mm Bass + ⌀ 381 mm Bass + 4 x ⌀ 127 mm Midrange + ⌀ 127 mm Coaxial Midrange + ⌀ 25 mm Coaxial Tweeter (view in inches)

Dimensions
H 1458 x W 500 x D 694 mm

Weight
235 kg

Connections
2 x XLR Analog Input
2 x XLR Analog Output
2 x XLR AES/EBU Input
2 x XLR AES/EBU Output
4 x RJ45 Control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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