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앰프는 이퀄라이저다
현재 우리가 듣고 있는 스테레오 LP는 대체로 RIAA 커브를 적용해 제작된다. 커브라는 것은 LP라는 포맷 특성상 생겨난 규격에 다름 아니다. 어찌 보면 아날로그라는 포맷을 담는 물리적 그릇으로 개발된 LP의 근원적 한계 때문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통상적으로 LP 표면 위에 새겨 넣을 수 있는 저역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록할 당시 저역은 작게 기록하고 반대로 고역은 크게 기록한다. 소릿골의 좌우 새김과 상하 깊이의 새김을 통해 음악 신호를 저장하는데 매우 깊은 저역을 크게 재생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를 카트리지로 읽은 후엔 포노앰프에서 이를 정확한 비율로 다시 복구해 오리지널 마스터에 담긴 주파수 특성으로 반전시켜야한다. 이를 위해 레코드사에서 마스터 커팅할 때 적용하는 커브 특성을 PECC(Pre-Emphasis Cutting Curve)라 한다. 그리고 이를 포노앰프에서 복구시킬 때 사용하는 기준을 RIAA, 즉 미국 음반 산업 협회에서 규정한 RIAA 커브라고 한다. 일종의 이퀄라이저다.
흥미로운 것은 이 PECC 가 1950년대 중반까지 모두 제각각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데카, 컬럼비아, RCA 등 대형 메이저 레코드사는 물론 군소 레이블도 모두 조금씩 다른 PECC 규격으로 LP를 찍어내면서 음향 표준이 없었던 시절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RIAA가 나서 1954년 RIAA PECC 표준을 만들고 전 세계 레코드 산업계에 기준을 세웠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아닌 아날로그 시대에 이 표준이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64년 정도가 되어서야 어느 정도 자리 잡았고 어떤 레이블은 이미 스테레오 녹음과 기록, 재생이 한창이던 시절까지도 RIAA 표준을 지키지 않았다.
어쨌든 RIAA 커브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그 기준은 저역이 500c(turnover) 고역이 –13.7dB(rolloff)다. 예를 들어 데카 ffrr 의 커브에서 저역과 고역 기준은 500c/-10dB로 고역에서 롤-오프, 즉 감쇄가 적다. 그래서 데카 ffrr 모노 엘피를 RIAA 기준 커브로 세팅된 포노 EQ로 재생하다가 데카 ffrr 커브를 갖춘 포노 EQ로 재생하면 고역이 살아나면서 훨씬 싱싱하고 생생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커브에 대응하는 있는 포노 EQ가 아닌 이상 RIAA 기준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일부 하이엔드 포노 EQ에선 RIAA 정밀도, 그러니까 이퀄라이저의 정밀도를 스펙 시트에 표기해놓곤 한다.
포노 EQ에 대한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답변
코드 일렉트로닉스가 포노 EQ를 만들었다고?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다. Qutest, Hugo TT2, DAVE 그리고 Mscaler로 이어지는 일련의 디지털 관련 기기들은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시그니처다. 그런데 난데 없이 아날로그 관련 기기라니 생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앰프들에서 그 설계를 살펴본 사람이라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클래스 D 혹은 디지털 앰프 같은 분위기를 풍길지 모르지만 최신 ULTIMA 파워앰프는 물론 가장 작은 사이즈의 헤드폰앰프 Anni마저도 클래스 AB 증폭이다. 게다가 ULTIMA의 증촉 소자는 MOSFET이다. 뮤지컬 피델리티 및 수많은 역대 하이엔드 파워앰프 등 음악성 좋기로 유명한 기기들에서 애용했던 바로 그 MOSFET이 맞다.
하지만 코르 일렉트로닉스는 포노앰프, 즉 포노 EQ에 대해 조금 특별한 답변을 내놓았다. 과거 DAC64 시절 DAC와 유사한 디자인으로 출시했던 심포닉(Symphonic) 포노 앰프에서 이미 그 실력을 알아본 적이 있지만 이번엔 초소형 포노 EQ Huei를 내놓으면서 디지털이 아니 아날로그 애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우선 항공 등급의 고급 알루미늄 빌렛을 통으로 절삭해 만든 섀시는 마감부터 절삭부에 이르기까지 무척 심플하면서 고급스럽다. Qutest DAC와 거의 유사한 디자인도 무척 정겹다. 상단에 내부 회로가 비치는 투명 창도 그대로다.
한편 전면엔 좌측으로 두 개, 그리고 우측으로 두 개의 구형 버튼을 마련해놓고 있다. 역시 코드 일렉트로닉스의 색깔 놀이는 여기에서도 그치지 않는다. 일단 좌측으로는 MM 및 MC 카트리지에 대응할 수 있는 MM/MC 선택 버튼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럼블 버튼이 마련되어 있다. 이는 턴테이블에서 기계적 노이즈로 인한 초저역 울림 현상인데 럼블 버튼을 눌러 버튼이 흰색으로 바뀌면 럼블 필터가 작동하는 것이다. 가끔 일어나는 이런 럼블 현상은 원인을 찾기 상당히 힘드니 럼블 필터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합리적이다.
한편 우측으로 넘어가면 게인 버튼이 보인다. 이 정도 가격대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더 상세한 게인 조정 기능을 갖추어놓고 있다. 일단 MM 카트리지의 경우 최소 21dB부터 시작해 22, 23, 25, 30, 32, 37, 42dB까지 8개 게인 중 선택이 가능하다. 한편 MC의 경우도 49dB부터 시작해 50, 51, 52, 58, 60, 64, 70dB까지 총 8개 게인 조정이 가능하다. 여러 카트리지를 경험해보면 알겠지만 이런 세부적인 설정을 지원하지 않을 경우 상당히 불편하다. 참고로 XLR 출력을 사용할 경우 MM, MC 모두 6dB씩 높은 게인을 갖게 된다.
코드 일렉트로닉스는 Huei를 그저 LP 입문자들이 간단히, 그럭저럭 음악을 듣는데 사용하는 엔트리급으로 개발하지 않았다. 다양한 게인 조정은 물론 로딩 임피던스 또는 다양하게 지원하다. 기본적으로 MM 카트리지를 선택하면 MM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47K옴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MC 카트리지를 사용할 경우 무려 12 종류의 임피던스 변환이 가능하다. 최소 100옴부터 시작해, 150, 320, 470, 1000, 3700 옴 등이다. 여기에 더해 각 임피던스에 2.2uF를 더한 값도 마련해놓아 좀 더 정밀한 세팅을 진행할 수 있다. 무척 섬세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어쨌든 기존 보편적인 포노앰프에서 게인과 로딩 임피던스 조정을 위해 여러 개의 딥 스위치를 조정해야하는 불편함이 깨끗이 사라졌다.
세부 세팅 및 그에 따른 조정 버튼의 색상 변환 및 인터페이스가 가능한 것은 Huei 내부에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통해 제어되기 때문이다. 모두 아날로그 방식으로 설계하기보단 일부 디지털 프로세스를 통해 편의성을 향상시킨 것. 한편 전원은 외부의 SMPS 전원부를 통해 12V DC를 공급받는 형태로 이 사이즈에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참고로 입력은 RCA 한 조지만 출력은 RCA는 물론 이 사이즈의 포노앰프에선 이례적으로 XLR 출력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 스펙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서두에 이야기한 RIAA 커브에 대해 정밀도를 ±0.1dB로 공개하고 있는데 준수한 수준이다. 더불어 주파수 응답 구간은 최저 12Hz에서 25kHz로서 포노앰프 치곤 광대역을 커버하고 있다.
청음
코드 Huei 테스트를 위해 간만에 나의 아날로그 시스템 연결을 변경했다. 평소 사용하던 서덜랜드 PhD 포노앰프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Huei를 안착시켰다. 크기 차이가 상당했지만 과연 크기 차이만큼 음질 차이도 날지는 모르는 일이다. 일단 편리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 지긋지긋한 딥 스위치 조작을 하지 않고 구형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말이다. 카트리지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다이나벡터의 고출력 MC 카트리지 DV20X2H를 그대로 사용했다. 출력이 2.8mV 정도로 일반적인 MM 카트리지보단 작지만 Huei에서 MM으로 세팅하고 시청에 들어갔다.
수산 웡 – ‘You’ve got a friend’
첫 음부터 상당히 골격이 뚜렷하고 강건한 사운드가 재생된다. 마치 그들의 dac에서 듣던 그런 사운드의 골격을 갖추고 있다. 보컬은 정 중앙에 또렷히 맺히며 작은 미동도 없이 선명하다. 전체적인 대역 밸런스는 약간 중고역 쪽으로 올라와 있는 편이다. 따라서 저역 무게감은 덜하지만 대신 중고역의 상쾌하고 선명한 토널 밸런스는 잘 살아난다. 니어필드 리스닝에서 상당히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상황을 염두에 둔 튜닝으로 판단된다.
버디 테이트 – ‘Stardust’
고출력 MC 카트리지이므로 MM으로 세팅해서 청취했다. 이 때 게인이 약간 작은데 일반 MM 카트리지라면 충분한 볼륨이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관악기들의 소리는 기음이 매우 또렷하며 불필요한 잔향을 따로 포노앰프에서 만들어내지 않는 소리다. 정교하고 에지 있는 사운드로 일관하며 때로 무척 정갈하다는 느낌을 준다. 너무 깨끗하고 깔끔한 소리라서 가끔은 디지털 음원이 아닌가 할 정도로 맑고 군더더기 없는 소리다.
맥코이 타이너 – ‘Recorda me’
피아노 컴핑이 매우 간결하며 날렵하게 이어진다. 빠른 어택 뒤에 짧은 서스테인을 지나 바람처럼 스르륵 릴리즈되는 말끔한 엔벨로프 특성을 보인다. 덕분에 리듬감은 매우 튀어난데 오버 슛이나 불필요한 링잉 현상도 전혀 포착할 수 없다. 일단 카트리지가 가진 트래킹 능력 및 그 음질과 성능을 정직하게 반영해주는 포노앰프로 판단된다. 묘한 착색이나 지나치게 조탁된 미음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어떤 음악도 빛바랜 느낌 없이 명료하고 정교하게 재생된다.
메탈리카 – ‘Enter sandman’
이 앨범은 플레밍 라스무센과 결별하고 밥 록이 프로듀싱을 맏은 작품. 그루브 넘치는 드럼 어택과 일렉트릭 베이스가 충분히 받쳐주면서 역동적이면서도 살집이 충만하다. 하지만 종종 너무 묽고 번지는 느낌이 드는 시스템도 있는데 확실히 코드는 각 악기를 확실히 분리해주며 깔끔하고 절도 있게 재생해준다. 펀치력이 뛰어나고 반응 속도가 빨라 이런 록이나 빠른 패시지 표현이 필요한 음악애서 강점이 드러난다. 패스 파워앰프를 사용하고 있는데 파워앰프를 코드 Ultima로 바꾼 듯한 느낌이라면 과장일까?
총평
코드 일렉트로닉스를 디지털 브랜드로만 인식하고 있는 마니아라면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 그들의 시작은 앰프였고 여전히 앰프가 그들의 메인 카테고리에 위치해 있다. 스위칭 전원부와 출력단 설계 등 모든 사운드의 기반엔 대표이자 설립자 존 프랭스의 앰프 설계로부터 출발했다. 그 기반은 DNA처럼 뼛속 깊이 새겨져 있어 절대 바뀌지 않으면 모든 코드 일렉트로닉스제품군에 강물처럼 흐른다. Huei 포노앰프도 그 DNA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매끄럽고 단단하지만 딱딱하고 건조하게 흐르진 않는다. 따라서 무척 세련되고 도회적으로 들린다. 간만에 나의 오랜 친구 다이나벡터 카트리지에게 재미있는 짝을 소개해준 것 같아 뿌듯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입력 임피던스
MM (무빙 마그넷) 카트리지 : 47,000Ω 고정
MC (무빙 코일) 카트리지 : 100Ω – 3,700Ω (12단계 조정 가능)
게인 조정
MM (무빙 마그넷) 카트리지 : 21dB – 42dB (8단계 조정 가능)
MC (무빙 코일) 카트리지 : 49dB – 68dB (8단계 조정 가능)
입력 노이즈 : 1.1nV/Hz
최대 출력 전압(RMS) : 20v RMS
EQ 응답 : RIAA 커브
EQ 정밀도 : +/- 0.1dB
주파수 응답 : RIAA 커브 = 12Hz to 25kHz
럼블 필터 : 라우쉬 슬로프 –24dB/옥타브(50Hz 이하)
출력 임피던스 : 520Ω (resistive)
사용 전원 : 12v – 100v to 240v 50/60Hz PSU
크기 : 4.5cm (높이) 16cm (너비) 8.8cm (깊이)
무게 : 657g
제조사 : Chord Electronics Ltd(UK)
공식 수입원 : ㈜ 웅진음향
공식 소비자 가격 : 2,10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