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주말에 외출을 삼가고 거의 칩거하고 있다. 주중엔 어쩔 수 없이 시청실에 나가 제품도 테스트하고 이런 저런 사람들과 미팅도 잡혀 있어서 나가지만 주말엔 조용히 보내고 싶다. 연말이지만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물든 도시 같다. 종종 술을 마셔도 밤에 집에서 OTT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혼술을 하는 편이다. 최근엔 맥주가 속에 부담드러워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시는 재미에 들렸다. 한편 밀린 원고 작성이나 해외에서 주문한 LP 감상은 거의 주말에 이뤄진다. 주말이 조용히 그러나 꽤 알차게 흘러간다.
최근엔 린 LP12에 새로운 포노앰프를 매칭해보았다. 팔콘이라는 브랜드의 DuPho, 일반적으로 두포라고 불리는 포노앰프다. 팔콘 브랜드는 생소한데 영국의 팔콘 어쿠스틱이 아니라 국내에서 만든 브랜드로 알고 있다. 이전에 제작한 제품들을 보면 JC 모리슨의 회로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실바톤 어쿠스틱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두포, 반킬 같은 포노앰프는 이를 설계한 분들이 국내 커뮤니티에서 공동 제작 형태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검증받은 뛰어난 회로를 바탕으로 무척 합리적인 가격대에 제작한다면 두 손 들어 반길 일이다.
요즘 출시되는 메이커 제품들은 마음에 드는 제품들 가격이 너무 높아져서 구입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저가 제품들은 소리가 성에 차지 않고. 예전부터 포노앰프 같은 경우는 국산 제품이 워낙 가격 대비 성능이 좋아 많이 사서 쓰곤 했다. 꼼방공제 시절 함승민씨가 EAR834P를 복각해 만들었던 REAR 포노앰프,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오로라 사운드 제품.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부산의 크리스탈오디오에서 제작했던 일련의 진공관 포노앰프가 생각난다. 덴마크 LC오디오 모듈을 가지고 국내에서 제작했던 솔리드스테이트 방식 포노도 생각나고. 올닉오디오는 물론 그 전신인 실바웰드 포노앰프도 생각난다.
최근 두포 포노앰프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회로나 그 음질 경향이 꽤 특이하기도 하고 음악 듣는 또 다른 재미를 상기시켜서 재미있다. 사실 공동 제작 제품의 품질에 대해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는 편이다. 오디오라는 게 단지 품질로만 그 목적이 귀결되진 않는다. 가끔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같은 제품을 사용하면서 그 성능, 운용 방식이나 활용 팁을 공유하는 재미가 더 크기도 하다. 두포는 일단 MM, MC 모두 지원하며 입력 단자를 따로 마련해놓고 있다. 그리고 전면에 MM/MC 전환 버튼을 마련해놓고 있다. 전면에 모노 전환 버튼도 마련해놓아 더블 톤암 혹은 턴테이블 두 대 운용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편리할 듯하다.
마침 며칠 전 도착한 소니 롤린스의 ‘Way Out West’를 틀었다. 첫 곡 ‘I’m and old cowhand’를 틀자마자 묵직한 리듬 섹션이 둥둥 울린다. 레이 브라운과 셜리 맨의 리듬 파트가 무척 역동적이어서 힘차게 몰고 나간다. 포크나 록 음악도 들어보면 요즘 출시되는 포노앰프보다 좀 더 중, 저역에 에너지가 좋아 무게감이 좋다. 고역 상한이나 해상도는 요즘 포노앰프보단 좀 얌전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심하지도 않고 나올 소린 다 나온다.
흥미로운 건 매우 조용한 배경이다. 그라함 LS5/9 스피커가 감도나 낮은 스피커도 아닌데 정말 귀를 대도 기저 잡음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이런 공동 제작 형태 혹은 DIY 제품들이 가장 염려되는 것들이 험과 노이즈인데 적막강산 수준이다. 확실히 만만한 엔지니어가 만든 제품은 아닌 듯. 아마도 유명 브랜드에서 만들어 내놓았으면 상당히 비쌌을 듯한 성능이다. 현재는 린 Adikt MM 카트리지만 사용 중인데 MC 입력단이 놀고 있으니 턴테이블을 한 대 더 연결해주고 싶은 생각이…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