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타인의 세상이다. 나만의 세상에 갇혀 답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는 와중에 타인의 세상에서 되레 답을 찾고 해방감을 맛보기도 한다. 소리 또한 마찬가지인데 내가 애써 찾으려 했던 것. 혹은 내가 어렴풋이 상상했던 걸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 걸 발견하곤 무릎을 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그저 구경만 하고 발길을 돌리곤 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상용품이 아닌 diy, 혹은 특주 제품들로 꿈을 이룬 경우가 그렇다. 오디오의 경우 대체로 기성품에서 답을 찾는 게 힘든 지경이 오곤 한다. 기성품들은 일단 일반 다수의 취향과 기준에 부합하게끔 설계하고 사운드를 튜닝하기 때문. 아무리 특정 개인 혹은 설계한 사람이 좋다고 해도 혹독한 제도권의 통과 기준이 있고 더군다나 판매를 위해선 대중들의 기호와 기능적 소구에 맞춰야한다. 타협이란 관문을 비껴가는 초하이엔드 제품도 완벽히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최근 자신의 아이디어와 구성을 특주를 통해 만들어진 시스템을 경험했다. 모두 특주 제품은 아니지만 절반 이상이 일반적인 사용 모델이 아닌 시스템은 처음 본다. 일단 전면에 메인 스피커로 활약하고 있는 스피커는 우퍼에 스카닝, 그리고 미드레인지와 트위터는 틸&파트너의 아큐톤 세라믹과 아큐톤 다이아몬드, 다인오디오 에소타 등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에 위치한 중, 고역 담당 유닛은 동시에 작동하는 게 아니라 절반을 나누어서 좌, 우 스피커를 선택, 재생할 수 있게 설계했다고 한다. 제작비에 수억 원이 들었다고..계속해서 업그레이드를 해나가고 있는 스피커라고 한다.
후방으로 가면 목재로 만든 거대한 혼 스피커가 보인다. 어디선가 많이 보던 스피커. 해외 매거진이나 포럼에서 화제가 되었던 스피커인데 바로 넬슨 패스가 설계한 스피커다. 지금도 넬슨 패스의 diy 사이트에 가면 자료가 남아 있는데 회로도를 공개해 누구나 마음먹으면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열정이 있는 건 아니다. 국내에서 이 스피커를 보다니 정말 신기했다. 이 스피커는 이번에 들어보지 못했지만 다음엔 꼭 한번 들어봤으면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아티클을 참조하시길…
https://www.passdiy.com/project/speakers/the-kleinhorn-part-1
이번 방문에선 거의 모두 엘피로 음악을 들었다. 주인장이 워낙 음악 마니아이기도 한데 엘피가 메인 소스인 듯했다. 물론 벽을 가득 메운 CD와 SACDP 그리고 하이파이로즈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볼 때 디지털 음원도 소홀히 하진 않는 듯하다. 한편 상용품을 사용한 디지털 시스템과 달리 아날로그 시스템은 역시 애정이 많은 듯 나름대로 튜닝이 많이 들어간 모습이다.
턴테이블 같은 경우 테크닉스 SP-10MKII 본체를 기반으로 하되 몸체는 큐브 디자인의 색다른 디자인을 하고 있다. 과거 초창기 에이프릴뮤직이나 아스텔&컨 디자인을 맡았던 MSD의 그것이다. 그리고 톤암은 얼마 전 내가 리뷰하면서 감탄했던 클라우디오의 톤암이다. 이걸 직접 사용하는 분들 주변에서 세 분 정보 보았는데 한 분 더 있었다. 확실히 명품은 아는 분들이 알아서 쓰고 계신 듯. 제조사 대표님의 이야기로는 일본에서 상당히 많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카트리지다. 일본 DS 오디오의 광 카트리지다. 예전에 국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대여 받아 리뷰를 하면서 한동안 두어 개 모델을 사용해본 적이 있다. 구입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뭔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음악적으로 뭔가 허전한 구석 때문이었던 듯하다. 이래서 이론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청감상 좋은 게 가장 좋은 거 아닌가 한다. 하지만 이번엔 그 부족했던 음악성이 채워져 있는 소리였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다음 아닌 포노앰프다. 광 카트리지의 경우 일반적인 포노앰프가 아니라 전용 포노앰프가 필요한데 DS 오디오 제작 포노앰프 외엔 국내에선 거의 선택지가 없다. 그런데 진공관 앰프나 트랜스로 유명한 일본의 우에스기에서 광 카트리지용 포노앰프를 만든 것. 다음에 더 들어봐야겠지만 이 정도라면 광 카트리지를 구입해서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공간이다. 나 또한 집을 놔두고 별도의 시청실로 오디오를 모두 옮긴 건 공간 때문이다. 청음 공간은 스피커로 따지면 하나의 인클로저와 같다. 많은 오디오를 놓을 공간의 물리적 체적도 중요하지만 어쿠스틱 룸 환경은 소리의 질적 확장에 있어 핵심이다. 같은 드라이브 유닛을 어떤 사이즈, 어떤 구조의 인클로저에 담느냐에 따라 소리는 천차만별이며 지옥과 천당을 오갈 수도 있다.
방음, 차음이 안 되는 공동주택에서 커다란 하이엔드 스피커를 구입해 볼륨 아홉시도 올리기 힘들게 듣는 것보단 아얘 소형 플로어스탠딩이나 북셀프로 듣는 시스템이 낫다. 그리고 대형 하이엔드 스피커로 큰 사운드를 만들고 싶다면 전용 공간이 답이다. 쉽지 않은 일을 현실화한 이런 공간을 만든 열정이 대단하다. 참고로 이 공간은 총 5층에 달하는, 그것도 직접 구상해 직접 지은 집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 간만에 각성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고 오디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