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에 더 가까이
최근 해외에서 엘피를 구입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동안 끊고 살았던 이베이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 이베이를 돌아다니면 끝없이 구입하고 싶은 음반들이 올라오고 경매에 부쳐지며 어느샌가 사라진다. 경매로 올라온 것은 내가 생각하는 적정가를 입력하고 잠이 들곤 하는데 일어나 낙찰된 결과를 보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바로 구매 버튼을 눌러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대체로 오래 전에 발매되었던 오리지널 엘피들이 나의 사냥대상이다. 어렸을 때 즐겨 듣던 에릭 클랩튼, 밴 모리슨, 닐 영에서부터 핑크 플로이드, 제스로 툴, 킹 크림슨, 이엘피 등. 더불어 1960~70년대 미국이나 영국의 포크, 록 들로 주요 레퍼토리다. 재즈 쪽은 우리가 익히 아는 명반들의 경우 천정부지로 오른 경우가 많아 놀라곤 한다.
너무 많은 가격 상승이 부담되는 경우엔 재발매 중 솜씨 좋은 레코드 레이블에서 역시 빼어난 커팅 엔지니어에 맡겨 커팅한 엘피를 구입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가장 중요한 건 오리지널이냐 재발매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이 기획해서 최대한 오리지널 원본 마스터를 가지고 커팅하고 프레싱했느냐다. 대체로 오리지널이 좋지만 때론 재발매 중에도 보석 같은 엘피들이 종종 보인다. 뚜렷하게 한 가지 기준만으로 정답을 가를 수 없어 더 재미있는 게 엘피 컬렉션이다.
새로 구입한 엘피들이 바다를 건너 집 앞에 당도하는 날. 휭 하니 바람 부는 어느 날 택배 기사가 문 앞에 커다란 박스 하나는 놓고 간다. 저녁에 도착하면 그 날은 새벽까지 잠을 뒤로 미루고 엘피를 닦고 듣고 다시 박스를 열어 다음 엘피를 닦고 듣는 일로 여념이 없다. 그러다가 턴테이블 플래터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엘피를 보고 있자면 또 다시 뭔가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요즘에 구입 목록에 올린 건 포노앰프다. 쓸만한 포노앰프는 모두 사무실에 가져다놓다보니 집에서 사용할 포노앰프가 영 시원치 않다. 포노앰프를 또 구해야 하다니. 아날로그에 가까이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골드노트 PH-10
이 글은 리뷰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사실 회고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몇 년 전 포노앰프를 고르고 고르다가 흙 속에 진주 같은 모델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이번에 다시 만만 골드노트 포노앰프이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찾던 포노앰프의 조건이 몇 가지 있었다. 너무 작은 사이즈에 어댑터를 사용하는 건 제외. 다른 말로 내부에 리니어 전원부가 제대로 설계되어 있을 것. 한편 두 개의 톤암에 각각 MC, MM 카트리지를 달아서 사용 중이었기에 입력이 두 개일 것. 당연히 MM, MC 공히 게인 조정이 가능해야겠고 특히 MC 같은 경우엔 게인 뿐 아니라 미세한 로딩 임피던스 조절도 가능해야했다. 물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야했다.
내가 내건 조건에 꼭 맞는 포노앰프를 발견했는데 그게 바로 골노트 PH-10 포노앰프였다. 일단 이 포노앰프는 MM 게인이 기본 45dB로 설정되어 있고 여기에 -3dB, +3dB, +6dB 등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물론 MC도 마찬가지여서 기본 게인 65dB에서 추가로 세 종류 게인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MM은 42dB, 45dB, 48dB, 51dB, MC는 62dB, 65dB, 68dB, 71dB 등으로 설정 가능하다. 시중에 웬만한 카트리지를 거의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게인 폭을 자랑한다. 만일 MM 카트리지와 MC 카트리지를 동시에 여러 조 사용하고 있다면 이 포노앰프 한 대면 그만 포노앰프 방황을 끝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 로딩 임피던스도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MM 카트리지엔 47K옴 고정이지만 MC 카트리지는 저마다 내부 임피던스가 다르니 포노앰프에 걸리는 임피던스 적정값이 다르다. MC 카트리지 스펙을 보면 로딩 임피던스를 추천하고 있는데 이게 천차만별이다. 대체로 최근 카트리지의 경우 100옴이 많은 편이긴 하다. 이 포노앰프는 10Ω, 22Ω, 47Ω, 100Ω, 220Ω, 470Ω, 1000Ω, 22KΩ, 47KΩ 등 총 아홉 가지 로딩 임피던스를 지원하다. 특히 100옴 이하 저임피던스까지 다양하게 지원하니 이처럼 반가울 때가 없다.
미드 센추리, 전설의 노래
하지만 PH-10의 마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익히 듣고 있는 엘피들은 대체로 1950년대에서 현재까지 굉장히 폭넓은 시대에 걸쳐 있다. 그 긴 시간동안 엘피의 규격은 꽤 다양했고 그 중 커브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엘피는 애초에 물리적 한계로 인해 기록할 수 있는 다이내믹레인지가 디지털 소스에 비해 좁다. 특히 이는 저역에서 문제가 되는데 이 때문에 저역은 작게, 고역은 크게 기록한 후 포노앰프에 반대로 이퀄라이징하는 방식으로 협의로 보았다. 즉, 다시 저역은 크게, 고역은 작게 되돌리는 것이다.
RIAA, 즉 미국 음반 산업 협회는 1954년 이 이퀄라이징 규정을 정해 발표했지만 이전엔 각 음반사마다 서로 다른 이퀄라이징 규정을 기반으로 엘피를 커팅해 제작했다. 데카, 컬럼비아, RCA 등 전 세계 수십 개의 레이블들이 저마다의 EQ 기준을 가지고 엘피를 만들었던 것. 1954년 이후라고 해서 RIAA EQ 표준을 모든 음반사가 준수한 것은 아니어서 종종 이것이 과연 오리지널 녹음 원본의 소리가 맞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을 때도 있다.
다행히도 골드노트는 이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골드노트는 여기에 대해 최소한의 방편을 마련해놓은 것. RIAA 외에 가장 대표적으로 자사의 EQ 커브를 주장했던 데카, 컬럼비아/CBS의 EQ 커브를 내장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다. 골드노트는 RIAA, 데카, 컬럼비아/CBS 각 EQ 커브에 대해 Enhanced 모드를 적용할 수 있는 옵션을 마련해두었다. 이 음질 향상 모드는 기특하게도 20kHz 고역 한계를 벗어나 50kHz까지 비교적 선형적인 주파수 반응을 만들어낸다. 초고역 이상의 대역이지만 배음 영역을 더 살리고 가청 영역대 선형성까지 확대시키려는 설계다.
설치
이번 골드노트 PH-10은 두 번째지만 첫 번째와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독립 전원부를 포함한 진정한 풀 세트 구성이다. 몇 년 전 사용했던 건 독립 전원부 없이 본체만 사용했었다. 당시에도 만족스럽게 한동안 사용했지만 여전히 옵션 전원부에 대한 미련은 조금 남아 있었다. 해외에서도 옵션 전원부를 적용하기 이전과 이후가 상당한 격차로 음질 차이를 만들어냈다는 리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총 세 개의 전원부로 이뤄진 PSU-10은 특히 ‘Super Inductive Dual Choke’로 불리는 기술을 통해 AC 전원에서 인입되는 노이즈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아주 작은 신호를 수천배 증폭하는 포노앰프 특성상 노이즈 제어는 굉장히 중요하므로 스펙을 넘어 청감 상으로도 차이를 유발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번 테스트는 나의 레퍼런스 시스템에서 진행했다. 턴테이블은 트랜스로터 ZET-3MKII, 카트리지는 하나 ML 저출력(0.4mV) 카트리지를 사용했으며 모두 RCA 커넥터를 사용했다. 참고로 PH-10은 RCA 입력 두 조는 물론 출력도 RCA 및 XLR까지 지원해 활용도가 상당히 높다. 한편 프리앰프는 클라세 CP-800MKII, 파워는 패스랩스 XA60.5, 그리고 스피커는 락포트 테크놀로지스의 Atria를 활용했음을 밝힌다.
청음
PH-10을 처음 들어보면 마치 진공관 앰프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이단 전체적인 밸런스가 착 가라앉아 무척 편안하게 엘피 사운드로 이끈다. 제니퍼 원스의 ‘Rock you gently’ 같은 곡을 들어보면 안정적인 대역 밸런스 위에서 보컬이 무척 차분하면서 뚜렷하게 노래한다. 음상은 핀 포인트로 정확히 맺히면서 진공관이 아닌 솔리드스테이트 방식임을 방증한다. 어디에서도 서두르는 법이 없이 안정적이고 너무 바짝 조인 소리가 아니라 편안하면서도 조밀하게 소리를 풀어내주므로 긴장감에서 오는 스트레스 없이 오랫동안 음악을 즐기게 해준다.
골드노트의 사운드를 처음 접했을 땐 차분하면서도 고운 소릿결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신 디지털 소스 기기나 하이엔드 앰프들의 그 반짝이며 견고한 소리 표면 텍스처와는 다른 종류다. 악기들의 표면 텍스처를 일부러 미음으로 매끈하게 다듬기보단 그저 원래 소리에 충실하다. 거칠 땐 거칠게, 매끈할 땐 매끈하게, 정직하게 표현해준다. 소릿결의 온도감을 궂이 나누자면 온건한 편이어서 매정하지 않고 따스하게 음결을 뿌린다.
이런 특성 덕분인지 어떤 음악을 들어도 너무 냉정하게 거리를 두게 하지 않고 음악 속에 더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색소폰이나 트럼펫 등 관악기들의 화사하면서도 그 밝기, 즉 컨트라스트가 너무 부각되어 들뜨는 현상이 없다. 적절한 컨트라스트를 통해 약간 옛스러운 느낌을 주는 사진을 보는 듯하다. 소릿결 자체가 아날로그적인 느낌으로 충만하다. 하지만 속도감은 훌륭한 편이어서 리듬 파트의 움직임은 무척 리드미컬하며 순발력이 잘 느껴진다.
PH-10 본체만 구입해 사용했을 때는 미처 몰랐다. 이 포노앰프가 이 정도로 깨끗한 배경을 선서하는지를. 비교해보면 PSU-10 전원부를 별도로 매칭해 결합했을 때 PH-10의 최대 성능이 표현된다. 사실 PH-10 내부에 기본적으로 전원부가 설계되어 있으므로 PSU-10을 추가하는 것은 이중 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편성이나 피아노 독주, 성악 등 여러 장르의 다양한 녹음을 들어보면 SN비가 확실히 높아지는 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무대는 전면으로 쏟아지면서 호소하지 않고 대신 깊게 무대를 그리며 충분한 심도를 표현해주어 재즈, 록은 물론 클래시컬 녹음도 듣기 좋은 전망을 마련해준다.
총평
포노앰프가 아날로그 전체 시스템에 기여하는 바는 필수적이며 음질적으로 그 등급에 따른 성능 차이도 대단히 크다. 때로 훌륭한 턴테이블과 카트리지에 모든 예산을 쏟아 붓고 정작 포노앰프는 엔트리 급에 머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는 마치 스피커에 모든 예산을 할애하고 스피커의 능력의 절반밖에 끌어내지 못하는 앰프를 매칭한 것과 같다. 그래서 항상 포노앰프는 나의 시스템에서도 마치 캐스팅보트 같은 역할을 해왔다. 게다가 성능은 물론 두 개의 입력단과 XLR 출력 지원, 그리고 RIAA, 데카, 컬럼비아/CBS 등 다양한 EQ 커브에 더해 Enhanced 모드 등 과거엔 이 가격대에 상상도 못했던 편의 기능으로 가득하다. 여러 기능을 조정해 마침내 듣는 아날로그 사운드는 고색창연한 미드 센츄리의 어느 콘서트 홀로 청자를 데려가는 듯하다. 포노앰프로 재탄생한 전설의 노래들은 턴테이블을 멈추지 않게 만든다. 이 가격대 포노앰프를 고려한다면 최고의 선택 중 하나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Four rail audio grade power supply
Four ultra-low-noise voltage regulators
MAXIMUM VARIATION OF OUTPUT VOLTAGE : 0,05 %
LINE NOISE REJECTION : >80dB
COMMON MODE NOISE REJECTION >80dB
FULL POWER RESPONSE TIME <2,5µsec
전원
POWER SUPPLY : 100-120V / 220-240V with auto sense, 50/60Hz
POWER CONSUMPTION : 25W
DYNAMIC POWER >50W
STAND BY POWER <1W
FUSE : 0,5A T
크기
DIMENSIONS : 200mm W | 80mm H | 260mm D
무게
WEIGHT : Kg. 4 – net, Kg. 5 – boxed
제조사 : Gold Note (Italy)
공식 수입원 : ㈜ 웅진음향
공식 소비자 가격 : 4,55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