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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태풍의 눈에 서다

어쿠스틱 시그니처 Hurricane NEO

acoustic signature turntable hurricane neo thumb

물리의 법칙

세상의 모든 것을 디지털 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현실이다. AI가 미래 산업으로 떠올랐고 이를 통해 다양한 부문에서 이미 적용되어 상당한 높은 효율 증대와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음악이나 영상 관련 창작은 물론 편집 등에서도 여러 시도들이 있다. 특히 소프웨어 프로그램 같은 경우 앞으로 꽤 많은 진화가 이러한 디지털 기술로 인해 이뤄질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서 디지털과 소프트웨어는 도구로서 기능할 뿐 여전히 물리 법칙을 벗어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자고 먹고 숨 쉬고 앉아 있고 때론 운동을 하며 여러 물리적 형태를 갖춘 도구와 기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직업 특성상 굉장히 많은 물리적 형태의 물건들과 씨름한다. 버튼을 누르고 노브를 돌리며 케이블을 접속하기 위해 조인다. 때론 물건을 들어 올린 후 바닥에 무언가를 깔기도 하며 하다못해 LP를 턴테이블 위에 얹고, CD를 트레이 안에 얹고 버튼을 눌러 삽입시킨다.

IMG 2021

이 모든 행위에서 진동, 잡음 등 전기적, 물리적 노이즈가 영향을 주기도 하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종종 흥미로운 경험은 작은 액세서리에서도 경험한다. 몇 년 전 LP를 턴테이블 플래터 위에 얹은 후 위에 얹어놓는 이른바 ‘클램프’를 몇 개 테스트해본 적이 있다. 그냥 아무런 구조랄 것 없이 무게로 누를 것과 내부에 베어링을 넣은 것 혹은 무게로 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스핀들에 꼭 맞게 들어가 조이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것들도 있다. 각 클램프에 따라 소리는 천차만별이었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확실히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물리의 법칙은 재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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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약 5년 정도 전에 구입해본 클램프가 있었다. 이 물건은 상당히 흥미로운 구조를 띄고 있었다. 일종의 하모닉 밸런서(harmonic balance)라는 자동차용 진동 제어 부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댐퍼에서 출발한 것. 이는 회전시 발생하는 비틀림 진동(torsional vibration)을 억제해주는 기능을 한다. 턴테이블 회전시 발생하는 비틀림 진동은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를 확실히 제거해줄 기술이 턴테이블 분야에 도입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플래터 두 개를 회전시켜, 이른바 역회전 플래터를 개발했던 크로노스 오디오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다.

바로 그 원리를 이용해 만든 클램프는 단순한 클램프가 아니라 레조네이터며 동시에 스테빌라이저가 되었다. 그 구조는 무척 흥미롭다. 겉으로 보기엔 해외 제조사에서 만든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내부는 전에 본 적 없는 구조로서 상부 뚜껑을 걷어내면 그 안에 이른바 총알을 돌려 박아 넣을 수 있다. 이 총알의 개수를 턴테이블마다 다르게 적용해 무게를 변경할 수 있게 만든 것. 개수에 따라 주파수 변화 양상이 다르긴 하지만 확실한 건 회전시 진동을 드라마틱하게 줄여줄 수 있다는 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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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ricane NEO에서 발견한 총알

최근 어쿠스틱 시그니처의 턴테이블에서 바로 이런 총알을 발견했다. 기존 Tornado NEO에서부터 적용된 이런 설계는 Hurricane NEO라는 상위 모델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바뀌었다. 네 개에서 여덟 개로 두 배 분량이다. 일단 어쿠스틱 시그니처에선 이를 두고 CLD라고 명명하면서 그 설계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풀어서 말하면 ‘Constraint Layer Damping’이다. 간단히 이야기해서 이는 진동 저감을 위해서다. 댐핑 기능이 없는 재질 사이에 댐핑 기능이 있는 물질을 두고 샌드위치 형태로 배치하면 진동을 대폭 감쇄시킬 수 있다는 물리 법칙을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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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mm platter without Silencers
platter 8 silencer frequency 0900
50 mm platter with Silencers

이 개념은 여러 방식으로 응용되고 있으나 공유하고 있는 기본 개념은 동일하다. 예를 들어 턴테이블 바디, 그러니까 플린스에도 이런 방식의 설계를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스피커 인클로저 설계다. 현존하는 대표적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 매지코 대표 알론 울프가 내한했을 때 자신들의 설계 개념 중 하나를 설명하면서 바로 CLD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과학적인 설계를 통해 낮은 가격대에서도 상당히 높은 성능을 보여주고 있는 케프 LS50 시리즈 같은 경우도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캐비닛을 만들어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기도 하다.

acoustic signature DTD

다음은 DTD라는 기술이다. ‘Dura Turn Diamond’ 베어링을 뜻하는 이 기술은 스핀들은 물론 턴테이블 구동 계에서 발행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진동 원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기본적으로 스핀들의 초정밀도 가공이 기반이 되며 스핀들은 진공 강화 스테인리스 강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정교한 연삭 이후 플라즈마 코팅을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하면서도 마찰 계수를 60%까지 줄일 수 있는 표면을 완성했다. 표면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기계적 소음, 진동을 극단적으로 낮추게 된 것. 또한 스핀들 오일을 상당 부분 저장할 수 있어 오일을 보충할 필요가 없다. 턴테이블 설계시 모터 다음으로 많은 진동을 발생시킬 수 있는 스핀들로부터의 진동을 자체적인 정밀 공학과 기술로서 해결한 모습이다.

acoustic signature AVC

다음은 AVC. 다름 아닌 ‘Auto Vibration Control’ 기술도 눈에 띈다. 이는 어쩌면 어쿠스틱 시그니처 턴테이블의 가장 독보적인 기술이다. 모터 회전시 발생할 수 있는 속도 오차의 원인으로 위상 오차를 지목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보정하는 기술이다. 이로써 와우, 플러터 등을 극단적으로 낮추었다. 게다가 이번 Hurricane NEO 턴테이블은 하위 모델과 달리 두 개의 모터를 사용하고 있다. 최소의 진동을 위해 토크가 낮은 모터를 사용하되 두 개로 늘려 회전력도 더 높인 것. 플래터를 걷어내면 모터가 보일 줄 알았는데 플래터를 제거하면 내부에 내부 플래터가 또 하나 있고 그 위로 스핀들이 솟아 있다. 그리고 이를 회전시키는 모터는 그 아래에 존재하며 나사로 조여 밀봉해놓은 모습이다.

acoustic signature turntable hurricane neo control panel sq 01 1000 1

모터 작동 정확도에 대한 어쿠스틱 시그니처의 편집증적인 집착은 전원부 및 컨트롤 유닛에서도 발견된다. 기본적으로 동그란 컨트롤 유닛을 독립적으로 만들고 전원부도 분리형으로 설계했다. DMC-20이라는 전원부에서 전원을 공급하며 컨트롤은 별도의 유닛에서 버튼을 눌러 조작하게 되어 있다. 참고로 ON/OFF 및 속도 변경(33 1/3RPM, 45RPM) 모두 가능하다. 이 외에 톤암은 2중 구조의 카본 소재 암튜브를 기반으로 하는 SKF 볼 베어링을 사용한다.

TA 2000 NEO 톤암 1

참고로 5핀 오디오퀘스트 포노 케이블을 기본 장착하고 있다. 톤암 베이스가 슬라이딩 방식으로 SME, 레가 톤암도 적용한 점이 강점이다. 이 외에 VTA, 아지무스 등 세부 세팅도 모두 가능하다. 턴테이블만 만드는 브랜드의 경우 대체로 톤암의 성능은 약간 떨어져 SME나 그라함, 레가, REED 등 톤암 전문 메이커 제품을 사용하곤 하지만 Hurricane NEO에 기본 장착되는 TA2000NEO 톤암의 성능은 무척 뛰어나다고 판단된다.

MCX2 카트리지

청음

이번 청음엔 카트리지로 어쿠스틱 시그니처의 MCX2라는 저출력 MC 카트리지를 사용했으며 이를 서포트해줄 포노앰프로 서덜랜드 PhD를 활용했다. 한편 프리앰프는 클라세 CP-800MK2, 패스랩스 XA60.5 모노블럭 파워앰프, 그리고 스피커는 필자의 레퍼런스 중 하나인 락포트 테크놀로지스 Atria를 사용했다. 평소 트랜스로터 ZET-3MKII 턴테이블 외에 최근엔 클라우디오 등 여러 턴테이블을 테스트해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쿠스틱 시그니처는 유독 그 존재감이 빛났다.

acoustic signature tornado neo 5

※ 테스트 시스템

턴테이블 : 어쿠스틱 시그니처 Hurricane NEO
카트리지 : 어쿠스틱 시그니처 MCX2
포노앰프 : 서덜랜드 PhD
프리앰프 : 클라세 CP-800MKII
파워앰프 : 패스랩스 XA60.5
스피커 : 락포트 테크놀로지스 Atria

※ 테스트

fausto mesolella live ad alcatraz

파우스토 메소렐라 / Sonatina Improvvisata D’inizio Estate

Hurricane NEO를 작동하기 위해선 컨트롤 유닛의 ON 버튼을 길게 눌러야한다. 그러면 33 1/3RPM의 빨간 불빛이 점등한다. 몇 초 기다리면 불빛이 깜빡임을 멈춘다. 정상 속도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파우스토 메소렐라의 기타는 극도로 섬세하다. 또한 어떤 음정 변이도 없어 이물감 같은 건 한 톨도 발견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밸런스는 내려와 있어 포근하고 젠틀한 느낌이며 매우 안정적이며 편안하다. 그 어떤 잡티도 느껴지지 않은 순결한 사운드라고 해야할까? 엘피 사운드가 이렇게 높은 SN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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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신타 – Here’s to life

진동이 극도로 제어된 턴테이블은 들뜨거나 소란스러운 느낌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때 마치 DSD 등 고해상도 녹음을 듣고 있는 듯한 소리가 난다. 엘피 특유의 바닥 잡음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전체 음악에서 피아노와 보컬이 깨끗하게 분리되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매우 정숙하고 정밀한 소리다. 특히 약음 포착 능력이 뛰어나 아주 작은 기척임도 소리로 모두 표현해낸다. 물론 MCX2 카트리지의 영향도 크지만 확실히 Maximus나 Tornado 등 하위 모델보다 좀 더 섬세하고 정숙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사일런서의 역할이 가장 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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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 돔네러스 –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아마도 수천 개의 시스템에서 이 곡을 들어본 듯하다. 디지털 그리고 아날로그 소스를 통해서. 색소폰의 해상도는 물론 표면 질감, 블로윙의 힘의 강, 약 조절 등 여러 부분에서 다양한 음향적 특징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번 청음에선 무엇보다 음색적인 강점이 드러난다. 물론 무대의 크기, 홀 톤도 잘 펼쳐지지만 바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정확한 색소폰 사운드가 여기 있다. 뭔가 과장된 몸짓이나 호쾌한 쾌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원본에 충실한 음색을 들려준다. 마치 방금 래커 커팅을 끝낸 듯한 아나로그 마스터 원본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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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세르메 – Introduction/Part 1. afternoon

Hurricane NEO는 음원에 기록된 모든 정보를 낱낱이 긁어낸다. 하지만 실제 청자가 느끼는 것은 거칠거나 투박하거나 일부 다이내믹이 강조된 소리가 아니다. 매우 넓은 다이내믹스 폭 안에서 매우 세세한 강, 약 세기 표현이 이뤄지기 때문에 부드럽고 온건하며 사려 깊은 소리로 다가온다.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강점이라는 이야기다. 한편 음장 표현은 놀라울 만큼 입체적이다. 초기 스테레오 녹음(1961)이라고 말하기 전엔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메조 소프라노 테레사의 목소리가 정 중앙 깊은 곳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acoustic signature turntable hurricane neo tonearm sq 01 1000

총평

이제 어쿠스틱 시그니처 아날로그에 대한 탐험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Maximus NEO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왜 이제야 이 턴테이블을 테스트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웠다. 해외에서 명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어쿠스틱 시그니처의 성능은 기대 이상이었다. 대체로 턴테이블은 디지털과 달리 튜닝, 트윅 등 사용자가 개입할 여지가 꽤 많은 아날로그 장비다. 특히 발을 교체하거나 랙 또한 따로 둔다. 카트리지 교체를 말할 필요도 없으며 톤암 진동 등 진동이 일어날 수 있는 여러 부위에 진동 억제를 위한 액세서리를 투입하곤 한다.

하지만 이 턴테이블은 조용한 랙 이외엔 개입할 여지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고려해 설계해놓았기 때문이다. 일면 복잡해보이지만 사용자가 뭔가 보완할 부분이 없이 그저 엘피를 즐기면 그만이다. 특히 Hurricane NEO는 이들이 펼쳐놓은 어쿠스틱 시그니처 유니버스의 정점에 올라 있다. 더 상위 턴테이블이 있으나 이 즈음에서 멈추어도 좋을 듯하다. 수년 간 만난 턴테이블 중 으뜸이다. 요컨대 아날로그 태풍의 눈에 다다른 느낌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AC-motors: 2
Drive system: RPM-regulated double belt drive with speed fine adjustment for the subplatter
AVC: Level 1
Speed range: 33 1/3 RPM and 45 RPM
Power adapter: External digital motor controller DMC-20 with super stable power supply (100 – 260 V AC, 50 / 60Hz.)
(WxDxH: 24 x 22 x 6cm; 2.6 kg)

Control panel: External with flexible placement
Bearing: High-precision Dura Turn Diamond® bearing
Tone arm base: Up to 3 adjustable armboards
1 x designed to fit to customers tonearm
2 more armbases mountable (sold separately)
Tone arm compati­bility: 9 to 12 inch
Maximum number of tone arms: 3
Platter: Aluminum anodized (Ø 310 x 50 mm / 11 kg), with Silen­cer modules
Silencer: 8
Chassis: 50 mm aluminum alloy
Feet: 3 height-adjustable gel-damped aluminum feet
Dimen­sions (WxDxH): 450 x 460 x 175 mm
Weight: 30 kg

제조사 : 어쿠스틱 시그니처 (독일)
공식 수입원 : ㈜ODE
공식 소비자 가격
Tornado NEO : 13.900.000원
TA2000 NEO : 4,900,000원
MCX-2 : 1,390,000원

제품 문의 : 02-512-4091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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