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파워를 처음 만난 건 아마도 벨칸토나 제프 롤랜드 같은 기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B&O, 그러니까 뱅앤올룹슨에서 개발해낸 아이스 파워는 이름이 아이스 파워여서 아주 차갑고 냉정한 파워앰프가 아닐까 하는 추측뿐이었다. 실제로 당시 나왔던 아이스 파워 적용 모델들은 대체로 내 예상이 맞았다. 뭔가 유연하게 자른 모양이 아니라 무를 숭덩숭덩 썰어놓은 듯한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국내 여러 메이커나 DIY 마니아들도 아이스 파워로 제품을 만들어냈지만 못내 성에 차지 않았다. 상용품 중에서는 그나마 제프 롤랜드가 아이스 파워 특유의 차가운 소리를 없애고 잡내를 빼 고운 입자, 질감에 강력한 힘을 양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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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아이스 파워를 사용해 좋은 소리를 뽑아낸 파워앰프라면 지금은 SAL, 사이몬 오디오랩을 운영하는 이광일 대표가 에이프릴뮤직 시절 만들었던 S1 파워앰프였다. 섀시도 해외 유명 디자인하우스에 의뢰해 제대로 뽑아냈고 버퍼단 등 튜닝에 상당히 공을 들여 아이스 파워지만 작은 체구에 제법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나중엔 AI700 인티, S700 같은 파워앰프로 개발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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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바로 이 다루기 까다로운 아이스 파워를 사용해 국내 메이커가 파워앰프를 만들었다 해서 대여해 들어보고 있다. 사실 요즘 클래스 D 증폭 모듈 중 상용으로 나온 것은 NAD가 많이 사용하는 UcD나 하이펙스 Ncore가 대세다. 이를 개발했던 장본인 브루노 푸제이가 독립해 설립한 퓨리파이에서는 아이겐탁트 모듈을 출시해 이 분야를 거의 제패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다시 아이스 파워를 들고 나왔다. 그것도 국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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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들어보고 있는데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다. 차가운 소리나 약간 들뜬 물리적 부자연스러움은 거의 없다. 사실 클래스 D 앰프 중에 제대로 튜닝을 하지 못한 앰프들은 오래 듣기 힘들고 이 때문에 클래스 D 앰프는 선호하는 브랜드가 나 또한 몇 개 되지 않는다. 과거에 어떤 업체는 입력단에 진공관을 사용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파워앰프를 설계, 제작한 곳은 오스티나토라는 곳이다. 제작자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정말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고 음질, 내구성 등 여러 부분에서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궁금해서 락포트 Atria에 매칭해서 들어본 결과 번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준수한 댐핑 능력과 함께 적당한 두께감, 절대 차갑지 않은 온도감 등 첫 인상이 좋다. 게다가 한 대만 사용할 수도 있고 두 대를 모노 브리지 연결해 사용할 수도 있어 활용도가 높다. 간만에 국내 브랜드에서 신선한 제품이 나왔다. 요즘 유행하는 (볼륨 기능이 있는) 네트워크 플레이어나 DAC와 매칭하면 웬만한 인티앰프 매칭보단 훨씬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