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디네의 서막
아마도 10년도 더 지난 일인 것 같다. 오렌더 등 뮤직 서버 혹은 네트워크 플레이어도 출시되고 있었지만 PC를 사용하는 오디오 마니아들이 많았다. 하지만 PC를 사용할 경우 여러 음질적 단점이 많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를 위해 케이블을 좀 더 좋은 것으로 바꾸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USB DAC는 이제 거의 비동기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PC의 클럭을 따르지 않고 USB DAC 내장 클록 정밀도에 정렬된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PC에서 걸러지지 않고 흘러들어오는 전원 노이즈는 그대로 USB DAC로 흘러 들어온다.
USB 전송 방식은 사실 여러 면에서 순수한 오디오 시그널을 전송하는 데 좋은 인터페이스라고 할 수 없다. 노이즈 인입이 쉬운 편이며 클럭 오차로 인한 지터 노이즈 발생에도 취약하다. 하지만 전송 용량, 속도, 비동기 설계 등 여러 면에서 강점도 있어 디지털 오디오에선 여전히 가장 많이 쓰이는 인터페이스다. 그렇다면 USB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면서도 단점인 노이즈, 지터 등으로 인한 단점을 해소할 수는 없을까?

이 때 등장한 것이 반오디오의 운디네라는, 일종의 허브였다. 당시 운디네는 USB를 통해 이동하는 신호의 왜곡으로 인한 음질적 훼손을 줄이기 위해 여러 혁신적인 설계를 해냈다. USB단자를 밀리터리 그레이드로 사용했고 USB 신호 경로엔 모두 저전력, 저잡음 부품을 사용했다. 전원은 배터리 전원을 사용했다. 더불어 배터리 방전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리플 제거 기능을 갖춘 Ultra Low Noise Linear 전압 강하 IC를 사용한 것도 눈에 띄는 점이었다. 여기에 클럭은 833펨토초의 고정밀 MEMS 클럭을 사용해 지터 노이즈를 막아냈다.
뛰어난 설계는 음질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오디오파일들은 이런 진보적인 설계와 그 설계 철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오디오가 어쩌면 국내 오디오파일의 수준을 너무 높게 판단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후 해외에서 유사한 용도의 USB 허브가 종종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USB 허브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그런 해외 제품들은 국내/외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USB 그리고 허브
운디네는 편의상 USB 허브라고 표현해도 되지만 기본적으로 허브라는 의미로 축약하기엔 그 기능과 성능이 조금 다르다. 허브라는 건 입력된 하나의 신호를 여러 장치에 나누어준다는 뜻이다. 하지만 운디네는 USB 입력으로 신호를 받아 USB 출력을 한다. 다양한 인터페이스 출력을 지원하지 않는다. 또한 일반적으로 기능성만 충족시키기 위해, 즉, USB 입력을 다양한 기기에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USB 허브의 경우 부실한 전원 및 클럭으로 인해 음질은 오히려 더 떨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도착 지연으로 인해 음악 감상에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운디네의 경우 이 단순히 기능적으로 만든 허브가 아니다. 무엇보다 진지한 오디오파일을 위해 음질을 높이는데 최적화된 허브다. 그렇다면 어떤 설계로 USB로 받은 신호를 보완해 음질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한 걸까? 기본적으로 USB 케이블은 Vbus(전원) 한 가닥과 데이터 전송용 +, – 한 가닥, 그리고 접지 한 가닥으로 구성되어 있다. 케이블 메이커들은 전원 케이블을 분리해 설계하고 내부 신호선간 절연, 그리고 차폐에 신경을 써 제작한다. 하지만 케이블은 여기까지다. 더 심도 깊은 솔루션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즉, 전원 노이즈, 지터 노이즈 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케이블만으로는 요원하다는 의미다. 반오디오가 내린 결론은 결국 USB 허브라는 제품으로 모아졌다.

운디네 MK2
반오디오가 오른 언덕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맑은 음악적 시야를 확보했지만 운디네는 아쉽게도 일찍 단종 되었다. 그리고 약 10년간의 절취부심 끝에 귀신처럼 부활했다. 앰프나 스피커 등 다양한 오디오를 만드는 종합 오디오 메이커가 아니라 오직 디지털 기기에 집중해온 반오디오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운디네 MK2 버전이다. 운디네는 USB 2.0 표준 속도 480Mbps에서 고속 작동하는 아이솔레이터 칩셋을 찾아냈다. 아날로그 디바이스 그리고 TI의 소자였다. 그리고 이를 모두 면밀히 테스트해본 이후 TI 제품을 사용해 운디네 MK2를 설계하기에 이르렀다. 소자의 진화가 운디네 MK2 기획을 이끈 것이다.
일단 USB 허브는 신호의 전기적 잡음과 지터 노이즈 제거에 중점을 둔다. 이 두 가지 요인이 USB 인터페이스의 최대 약점이기 때문이다. 운디네 MK2에선 일단 전기적 잡음의 유입을 막기 위해 TI 칩셋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아이솔레이터, 그러니까 노이즈를 격리시키는 칩셋은 갈바닉 아이솔레이션 기능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나 신호 전달시 반대 급부로 지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를 위해 반오디오에선 ‘Signal Regen’ 설계를 도입했다. 앞에선 USB 아이솔레이터로 전기적인 잡음이 USB로 출력되지 않도록 막아버리고 이후 신호에서 만들어진 지터 노이즈는 ‘Signal Regen’ 회로를 통해 깨끗하게 회생시키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선 당연히 클럭을 사용한다. 이번엔 오리지널 운디네보다 더 높은 등급의, 초정밀 클럭 OCXO를 사용했다. 참고로 OCXO 클럭은 ‘오븐 제어 크리스털 오실레이터’의 준말로서 온도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형 오븐을 사용해 수정 발진자가 외부 온도 변화로 인해 주파수가 변동되는 현상을 최소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TCXO에 비해서도 약 열 배 높은 안정성을 보여주어 클럭 중에서는 루비듐, 세슘 같은 것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클럭이다.

USB 허브 같은 일종의 액세서리는 케이블도 마찬가지지만 필요악 같은 요소가 있다. 필요하지만 반대급부로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아이솔레이터가 전기적 잡음의 유입을 막아주지만 반대로 지터 노이즈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편 USB 허브도 액티브 장치이기 때문에 전원부의 성능에 따라서 내부 회로의 안정성이 떨어지면 회로 자체가 노이즈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원부는 노이즈의 주된 발원지가 되기 십상이다. 이를 위해 반오디오 운디네 MK2에 초저잡음 전원부를 설계해 탑재했다. 다름 아닌 배터리 전원으로 리튬 이온 배터리백 두 개를 사용하며 리니어 레귤레이터 열 개를 투입했다.

셋업 및 청음
이번 운디네 2는 평소 필자가 시청실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에서 테스트했다. 일단 소스 기기는 룬 서버로 웨이버사 Wcore를 사용했고 오렌더 A1000을 네트워크 렌더러로 사용해 USB 출력했다. 이후 DAC는 반오디오 Firebird MK3 Final Evo 버전을 활용했는데 A1000과 DAC 사이에 운디네 2를 적용했다. 프리앰프는 클라세 CP-800MK2, 파워앰프는 패스랩스 XA60.5를 사용했음을 밝힌다. 테스트는 운디네 2를 적용해 청취한 후 빼고 청취, 그리고 다시 적용해 청취하는 등 ABA 비교 청음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참고로 USB 케이블은 테스트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베르테르 어쿠스틱스의 레퍼런스급 모델 Pulse HB 두 벌을 사용했다.

정미조 – 귀로
이런 류의 USB 허브가 가끔 앞부분이 짤린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런 현상은 없다. 음질 부분에선 깨끗한 청량감이 밀려온다. Firebird MK3 Final Evo USB 입력단 성능이 상당한데 불구하고 한결 깨끗해져 더욱 싱싱한 사운드로 들려준다. 마치 때를 벗긴 느낌이랄까. 이러면 곤란한데 하면서 계속 음질적 변화에 놀라 운디네를 바라보게 된다.

프렌드 앤 팰로우
음색 부분에서 더 투명해지면서도 소리를 뭉개지는 않는다. 배음 영역에서 노이즈를 제거하면서 배음까지 함께 잘려나가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이런 투명하고 깨끗하게 걸러진 소리는 포커싱을 더욱 또렷하게 만든다. 보컬의 음상이 더 뚜렷하고 명징하다. 더불어 기타와 보컬 사이에 충분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 소리와 소리 사이에 더 고용한 침묵이 흐른다.

앨리스 사라 오트 – 녹턴
음량의 변화는 없다. 약음은 약음대로 강음은 강음대로 종전과 변함이 없다. 그러나 디테일은 달라졌다. 강음은 비슷하지만 약음의 디테일이 상승해서 더욱 세밀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바이올린의 아주 미세한 잔향까지도 생생하게 포척해낸다. 배경에 잡음까지도 더 또렷하게 들리다보니 마치 유령처럼 연주자가 내 앞에 서 있는 듯 공포가 몰려오기도 했다.

임윤찬 – 베토벤
깨질 듯한 피아노는 마치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현장음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 운디네를 투입하지 않았을 때도 충분히 휼륭하지만 운디네를 도입하면 악기들 사이 공간이 더 뚜렷해지면서 악기들 구분이 더 확실해진다. 물론 이런 현상 덕분에 정위감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불어 전후 뎁스, 레이어링이 더 촘촘하게 형성된다. 대체로 중고역에 많은 변화를 주는 모습이다.

총평
종종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본다. 해외 클래식 음악이 우리 음악보다 고상하다고 여기며 우리 언어의 우수성을 설파하지만 외국어 공부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송충이는 솔잎이라며 우리 음식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양식에 길들여진 사이 우리 음식은 남의 나라 것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것이 최고’라 외치지만 해외의 그것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더 크다. 운디네 1은 틀리지 않았고 운디네 2가 출시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되었다.
운디네 1의 진면모를 아는 몇 명의 지각 있는 오디오파일이 운디네 2의 개발을 추동했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반오디오가 내놓은 운디네 2는 10년만의 축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술은 진화하고 디지털에 대한 해답도 바뀐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지만 각운은 맞춘다고 방법론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운디네 2와 같은 결말을 낳았다. 운디네 2는 내가 경험해본 USB 허브 중 가장 진보적이며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제품 사양
Technology : Isolated and OCXO Signal Regen USB 2.0 HUB
USB Isolation : Galvanic Isolation(480Mbps)
USB HUB Clock : Low phase noise OCXO
Case Material : 100% Aluminum Alloy
Case Size : 330x250x65(WDH, 80mm with foot)
제조사 : 반오디오 (http://bannaudio.com)
공식 소비자 가격 : 2,970,000원
사용하신 dac가 불새3인데 오타 내신것 같아요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