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난감한 USB 케이블
케이블링에 있어서 골칫거리 중 하나가 USB 노이즈다. USB 단자와 케이블 자체가 데이터와 함께 5V 전원을 보내는 구조라서 이 전원에 끼어든 노이즈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하이파이 사운드를 즐길 수가 없다. 다른 케이블은 선재나 절연체, 단자의 커패시턴스와 인덕턴스, 레지스턴스에만 신경 쓰면 되지만, USB 케이블은 여기에 전원 노이즈까지 제거해 데이터 신호의 오염을 막아야 하는 케이블인 것이다.
PC파이 환경이라면 상황은 더욱 안 좋다. PC 자체가 노이즈 덩어리라서 USB 전원선은 물론 2개의 데이터 전송선(D+, D-)에도 오염된 신호가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PC에서 발생한 각종 기계적 진동 노이즈와 공진 노이즈, 전자파 노이즈(RFI, EMI)가 USB 전원선과 데이터 선을 타고 DAC에 고스란히 유입되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데이터 신호가 이 같은 노이즈에 의해 오염되면 시간축 에러(지터)와 패킷 전송 오류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이 같은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제작사들이 트랜스포머나 커패시티브 커플링 등을 이용해 갈바닉 절연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트랜스포머(마그네틱 커플링)는 1차 코일과 2차 코일이 물리적, 전기적으로 절연된 점을 이용, 노이즈는 차단하고 데이터와 전원은 전자기 유도 현상에 의해 뒷단으로 넘긴다. 커패시티브 커플링은 두 절연된 칩이 역시 노이즈는 차단하고 데이터와 전원은 전기장에 의해 뒷단으로 넘긴다.
그러나 이같은 갈바닉 절연은 부작용도 낳았다. 전원과 데이터 신호를 절연시킴으로써 각종 기계적 전기적 노이즈는 차단시켰지만, 데이터 신호까지 절연시킴으로써 디지털 신호의 지터와 패킷 에러를 더욱 키워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노이즈는 잡았지만 전송하려는 데이터의 정밀도는 크게 떨어진, 대략난감한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반오디오의 솔루션
반오디오(Bann Audio)가 이처럼 얽히고설킨 USB 케이블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반오디오? 맞다. Firebird R2R DAC과 Sylphid 네트워크 렌더러로 유명한 바로 그 대한민국 제작사다. Firebird DAC과 Sylphid 네트워크 렌더러 모두 USB 인터페이스를 이용하는 만큼, 반오디오 입장에서 USB 케이블의 음질 저하 요소 제거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반오디오의 솔루션은 투 트랙으로 이뤄졌다. 갈바닉 절연으로 전기 노이즈는 차단하고, 데이터 신호는 아예 새로 만들어 지터나 패킷 에러가 발생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즉, USB 허브(Hub) 컨트롤러 칩과 초정밀 OCXO 클럭을 이용해 입력 신호와 동일한 새 디지털 신호가 출력되도록 했다. 반오디오가 이 과정을 ‘신호 재생성’(Signal Regeneration)이라고 명명한 이유다.

첫 번째 성과는 지난 2013년 11월 출시된 USB 2.0 Audio HUB였다. USB-B 입력단자를 갖춘 오리지널 Firebird DAC이 나온 지 9개월 뒤였다. 그리고 2015년 8월에는 내장 리니어 전원을 배터리 전원으로 바꾼 Undine, 2025년에는 갈바닉 절연 칩을 바꾸고 배터리 팩을 1개에서 2개로 늘려 충, 방전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한 Undine MK2가 나왔다. ‘운디네’는 ‘물의 요정’ ‘정화’라는 뜻이다.

Undine MK2 살펴보기
Undine MK2는 기본적으로 USB-B 입력단자와 USB-A 출력단자 2개를 갖춘 USB 허브다. 12V 전원은 외장 어댑터를 통해 공급받으며, 안에는 리튬 이온 배터리 팩이 2개 들어있다. 한 팩을 사용하는 동안 다른 팩은 충전이 돼 배터리 전원을 중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배터리 전원을 사용한 것 자체가 USB 허브가 초저잡음 상태에서 작동, 또 다른 신호 오염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외관은 심플 그 자체다. 알루미늄 섀시 사이즈는 가로폭 330mm, 높이 65mm, 안길이 250mm이고 전원 스위치는 전면 오른쪽 하단에 마련됐다. 전면 패널 중간에는 살짝 굴곡이 있어 시각적 리듬감을 만족시킨다. 후면은 12V 3A 전원 입력 잭과 USB 2.0 입력단자 1개(B타입), USB 2.0 출력단자 2개(A타입) 구성이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갈바닉 절연이 이뤄지는 USB 아이솔레이션 칩은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칩을 사용했다. USB 아이솔레이션 칩은 USB Audio 2.0 표준인 480Mbps 고속에서 동작돼야 하는데, 반오디오에 따르면 이 후보로 아날로그 디바이시스와 TI 제품을 놓고 직접 비교 테스트를 한 결과 TI 칩을 선택했다. TI USB 아이솔레이션 칩은 물리적으로 떨어진 송신 칩(transmit chip)과 수신 칩(receive chip)이 노이즈는 차단하고 데이터와 전원은 전송시킨다.

디지털 신호를 다시 만드는 회로에는 미국 마이크로칩(Microchip)의 USB Hub 컨트롤러 칩과 고정밀 OCXO 클럭이 투입됐다. USB Hub 칩은 마이크로칩과 TI, 르네사스(Renesas) 제품을 비교 테스트해서 오리지널 Undine에서 사용했던 마이크로칩 제품이 다시 채택됐다. 신호 재생성 과정에서 시간축 기준점을 제공하는 OCXO 클럭은 오리지널 Undine 때보다 더 정밀한 클럭을 사용, 지터 발생을 최소화했다.

정전압 유지를 위한 리니어 레귤레이터도 오리지널 Undine의 4개에서 10개로 늘렸다. 이렇게 레귤레이터 회로를 세분화하면 그만큼 다른 구역으로 노이즈가 넘어가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 이밖에 내부 커패시터는 오리지널 Undine에 비해 전해, 필름, 탄탈, 솔리드 등 서로 다른 종류의 커패시터를 조합, 각 커패시터 재질에 따른 착색을 최소화했다.

Undine MK2 들어보기
반오디오 Undine MK2는 과연 제작사 주장처럼 노이즈 제거 및 지터 에러 제거에 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냥 귀로 들어도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
Undine MK2를 오렌더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A1000과 반오디오의 Firebird MKIII Final EVO DAC 사이에 투입했고, 음원은 룬으로 타이달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앰프는 아큐페이즈의 인티앰프 E-5000, 스피커는 락포트의 Atria를 동원했다.

먼저 Undine MK2를 투입한 상태에서 정미조의 ‘귀로’를 들어봤다. 세상에. 정미조의 노래를 바로 앞에서 듣는 것 같다. 평소 Undine MK2 없이 들었을 때는 이 곡이 앰프나 스피커에 의해 ‘인공 재생’된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그냥 ‘가수가 부른다’는 느낌이다. 이렇게나 또렷하게 들릴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음 하나하나가 깨끗하게 들리는 것이 마치 묵은 때를 쏙 빼낸 속옷을 이제 막 입은 것 같다. 기타 연주 역시 평소보다 더 리얼하게, 그리고 더 맛깔나게 들린다. 그냥 필자를 쑥 끌어당긴다. 액세서리를 통해 각종 노이즈를 제거한 수준이 아니라, 곡 자체를 보다 녹음이 잘 된 버전으로 바꿔 튼 것 같다. 대단한 변화다.

이번에는 보다 확실한 비교를 위해 같은 곡을 그 자리에서 AB 테스트를 했다. 올라퍼 아르날즈와 앨리스 사라 오트의 쇼팽 녹턴을 처음에는 Undine MK2를 투입한 상태로, 다음에는 Undine MK2가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비교한 것이다.
먼저 Undine MK2를 투입한 상태에서 들어보면, 처음부터 피아노 이미지가 아주 선명하게 잡히더니, 이어진 바이올린 연주 때는 그동안 체험하지 못했던 온갖 음들이 바이올린에서 뛰쳐 나온다. 눈 감고 들으면 정말 바이올린이 바로 앞에서 연주를 하는 것 같다.

이어 Undine MK2를 빼버리면 피아노 음이 단번에 지저분해지고 색 번짐이 생긴다. 그냥 음 자체가 두텁고 두꺼워졌다. 바이올린 역시 갑자기 탁하고 뭉뚝하며 거칠어진 모습이 역력하다. 연주하는 바이올린 자체가 좀 더 싼 악기로 바꾼 것 같다.
또 하나 차이는 무대가 좁아지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뭉친 듯 하다는 것. Undine MK2를 투입한 상태에서는 그렇게 탁 트였던 무대가 옹색한 느낌이 들 정도로 좁아졌고, 바이올린 소리는 마치 압축 손실 음원을 듣는 것처럼 볼품없는 음으로 바뀌었다. 속상할 정도의 상실감이 아닐 수 없다.

총평
안 들어봤으면 모를까, 반오디오 Undine MK2의 효과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나오는 음 하나하나가 깨끗하고 또렷했고, 무대에 등장한 보컬이나 악기 이미지 역시 색 번짐이 1도 없었다. 저음은 퍼지지 않고 단단하게, 고음은 야위지 않고 풍성하게 들린 점도 큰 변화다.
이러한 변화가 있게 된 그 메카니즘을 따져보면, 갈바닉 절연으로 고주파 노이즈를 걸러내고, 디지털 신호를 다시 만들어 절연에 따른 지터를 없앤 효과로 짐작된다. 마치 전원 액세서리를 통해 접지 노이즈를 추방하고, 네트워크 플레이어나 DAC의 내장 클럭을 보다 정밀한 녀석으로 업그레이드한 것 같다.
소스기기 쪽에서 USB 케이블을 쓰고 있는 분들이라면 Undine MK2는 최소한 비교 청음은 해볼 만한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자 경험상, 한 번 비교해보시면 며칠은 그 놀라운 차이에 잠 못 드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글 : 오디오 평론가 김편
제품 사양
Technology : Isolated and OCXO Signal Regen USB 2.0 HUB
USB Isolation : Galvanic Isolation(480Mbps)
USB HUB Clock : Low phase noise OCXO
Case Material : 100% Aluminum Alloy
Case Size : 330x250x65(WDH, 80mm with foot)
제조사 : 반오디오 (http://bannaudio.com)
공식 소비자 가격 : 2,97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