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창 승압 트랜스를 여럿 구입해 비교해보던 때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피어리스, 룬달, 오토폰 같은 트랜스들이다. 기본적으로 솔리드 스테이트 헤드 앰프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승압 트랜스만의 매력도 있기 때문이다. S/N비 측면에선 헤드 앰프가 월등히 좋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대 하이엔드 카트리지의 깨끗하고 명료한 맛을 내는 데는 헤드앰프 쪽이 우세한 것도 사실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렇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취향의 세계에는 주관이 개입된다. 승압 트랜스는 그런 주관의 정점 중 하나다. 왜냐하면 턴테이블을 위시한 아날로그 시스템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카트리지와 직접 연결되어 증폭시키는 장비이기 때문이다. 특히 진공관 포노앰프를 사용할 경우 승압 트랜스는 거의 필수적이다. 요즘엔 승압 트랜스를 내장하거나 혹은 내부에 헤드앰프를 설계해놓은 진공관 앰프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진공관 포노앰프는 MM 전용인 경우가 많다.

턴테이블 시스템에 변화를 좀 주어볼까 하는 생각에 짐을 정리하다가 룬달 트랜스를 발견했다. 모델명은 9226XL. 상위 모델로 가면 더 좋은 것들도 많지만 이 모델만 해도 범용적으로 사용하긴 좋은 편이다. 아몰퍼스 코어를 사용한 중임피던스용 트랜스다. 입력 임피던스를 117옴에 놓으면 20배 승압, 470옴에 놓으면 10배 승압을 해준다. 많이 사용하는 데논 DL103 계열에 꽤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카트리지는 하나 카트리지도 있고 추가로 요즘엔 고에츠도 끌린다. 나이 들수록 저출력에 음색이 개성 있는 녀석들이 당기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조만간 시스템을 하나 새로 꾸려야겠다. 룬달에 두포 포노의 MM단 매칭이라면 기초공사는 괜찮게 마무리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