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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쿤, 꿈의 앰프를 완성하다

바쿤 AMP-8510A

bakoon 8510a thumb

클래스 A 증폭

음질은 소자보다 설계가 우선인 경우가 많다. 많은 메이커들이 사용한 부품의 퀄리티와 섀시 가공 퀄리티를 자랑하지만 사실 비범한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저 그런 제품들 중 하나로 생명은 끝나고 만다. 앰프 분야에서는 아무리 클래스 AB나 클래스 D 같은 증폭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고 해도 나는 잘 만든 클래스 A가 음색 면에선 가장 좋다고 믿는다. 입력 신호의 전체 위상 주기 동안 트랜지스터가 항상 작동하며 높은 바이어스 전압을 유지하는 클래스 A. 이런 방식은 당연히 많은 전력을 소비해 에너지 효율은 매우 낮다. 또한 전원부와 출력 트랜지스터의 발열 덕분에 뜨거울 수밖에 없다.

aleph2

필자의 오디오 인생에서 아마도 가장 뛰어난 음색의 앰프를 꼽는다면 그 중 절반 이상은 클래스 A 증폭일 것이다. 예를 들어 넬슨 패스의 스레숄드 시절 파워앰프들이 생각난다. 여기에 더해 오디오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했던, 이른바 ‘가난한 자의 패스’라고 불리운 애드컴 GFA-5802 파워앰프나 포르테 1A 파워앰프는 또 어떤가? 지금도 가끔은 나카미치의 PA-5 같은 앰프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후 본격적인 넬슨 패스 사운드는 Aleph 시리즈에서 불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이후 XA 시리즈에서 거의 완성을 보았다. 지금도 필자의 시청실엔 XA-60.5이라는 클래스 A 증폭, 모노블럭 파워앰프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passlabs xa60 1

이 외에도 클래스 A 증폭은 몇몇 파이오니어들에 의해 하이엔드 앰프의 신기원을 열어젖혔다. 마크 레빈슨의 초창기 파워앰프들이 그렇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양질의 앰프를 만들어내고 있는 댄 다고스티노가 크렐 시절 만들어낸 클래스 A 파워앰프들 중 지금도 앰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작들이 수두룩하다. 저출력 클래스 A 증폭 방식으로 수백 와트급 파워앰프를 만들어 당시 제어가 어렵다는 스피커 운용자들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기도 했다. 아마도 당시 아포지 같은 리본 스피커나 저 능률 스피커는 크렐이 아니면 안 되는 공식이 생기기도 했다.

1. 전면 디자인 3

바쿤의 클래스 A

최근 다시 클래스 A 증폭 앰프를 만났다. 바로 바쿤이다. 바쿤이라면 아키라 나가이가 이끄는 일본 브랜드로서 오직 순수한 음질 하나로 승부하는 메이커다. 네거티브 피드백이 음질을 왜곡, 저하시킨다는 생각에 자체적으로 전류 증폭 회로 SATRI를 개발해 파란을 일으킨 브랜드. 이들은 동경 오디오 쇼에서 그 회로를 처음 도입한 SCA-7511을 출품하면서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오직 음질 중심의 회로를 연구하면서 회사 이름이 심지어 ‘SCL(Satri Circuit Laboratory)’인 메이커가 바로 바쿤이다.

1. 전면 디자인 2

필자에게 배달되어 온 박스를 풀자 처음엔 눈을 의심했다. 대체로 클래스 A 증폭 앰프라면 거대한 섀시를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증폭 회로 특성상 대용량 전원부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바쿤의 클래스 A 증폭 신제품은 가로 32cm, 깊이 32cm, 높이 13cm 정도로 DAC-9740보다 약간 큰 사이즈에 머물고 있다. 또한 무게도 9.7kg으로 그리 무겁다고 볼 수 없었다. 모델명은 AMP-8510A. 과연 바쿤은 어떤 방식으로 설계했기에 이렇게 가볍고 작은 사이즈로 클래스 A 증폭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1. 전면 디자인 7

싱글 엔디드, 클래스 A의 세계로

결론적으로 해외에서 발견한 스펙과 간단한 설명을 통해 설계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이 앰프는 클래스 A 증폭 앰프가 맞다. 그러나 8옴 기준 채널당 단 10와트만 내주는 소출력이다. 궁금한 마음에 상판을 열어보니 증폭 소자는 채널당 MOS-FET을 단 한 개씩만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처럼 저능률에 드라이빙이 어려운 수지 계열 진동판을 사용하는 드라이브 유닛이 트렌드인 시절에 겨우 10와트라니. 왜 이런 식으로 설계한 것일까?

4. 내부 설계 3
4. 내부 설계 4

바쿤은 오로지 순수한 음악 시그널을 왜곡 없이 싱싱하게 뽑아내기 위해 클래스 A 증폭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와 –신호를 별도의 트랜지스터로 증폭해 합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 트랜지스터가 전체 파형을 모두 일괄 증폭하는 방식을 택했다. 클래스 A 증폭으로 디스토션을 최소화한 것도 모잘라 푸시풀(Push-Pull)이 아닌 싱글 엔디드(Single-Ended)로 설계했다. +와 –신호를 따로 증폭하는 푸시풀 증폭에 비해 크로스오버 왜곡이 낮아 매우 자연스럽고 섬세한 사운드를 만들 수 있는 설계 방식이다.

3. 후면 입력 및 출력 2

이러한 설계 방식은 작은 출력에서 매우 순도 높은 사운드를 얻기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고출력으로 설계하기 어렵고 당연히 감도가 낮은 스피커의 드라이빙 능력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짝수차 하모닉스가 많아 배음 측면에서 푸시풀보다 강점이 있다. 말 그대로 매우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사운드를 재생한다. 고능률의 풀레인지나 혼 스피커에 300B 싱글 앰프를 주로 매칭해 사용하는 빈티지 마니아가 많은 이유가 있다. 필자 또한 좀 더 나이가 들면 그런 시스템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

8. 5440 프리앰프 8510A 파워앰프 3

셋업

AMP-8510A를 세팅하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여러 디지털 관련 기능 등 다양한 인터페이스를 하나의 섀시 안에 넣어 출시하는 게 요즈 트렌드지만 바쿤은 그런 유행에 관심이 없다. 이 앰프 또한 오직 앰프 기능에만 충실하다. 전면엔 입력 선택 및 전원 ON/OFF 기능을 맡은 토글 스위치가 위치하면 중앙엔 이제 바쿤의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오렌지 빛 게인 노브가 영롱한 느낌을 준다. 한편 중앙에 디스플레이 창을 통해 볼륨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게인은 19.4dB로 파워앰프치곤 낮은 편이며 입력 임피던스는 100K옴으로 충분하다. 입력은 RCA단자로 일반적이 전압 입력을 받을 수 있으며 BNC 단자로 전류 입력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를 바쿤에서는 SATRI-LINK라고 부르는데 같은 바쿤 제품을 가지고 있다면 사용해보길 권한다.

8. 5440 프리앰프 8510A 파워앰프 7

이번 테스트에 사용한 제품들을 살펴보면 일단 소스 기기로는 오렌더 A-1000을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사용하고 DAC는 반오디오 제품을 사용했다. 필자가 오랜 시간 사용 중인 R2R DAC Firebird MK3 Final Evo 버전이다. 프리앰프는 같은 바쿤 제품을 사용했다. PRE-5440이라는 제품이다. DAC에선 XLR 출력을 사용해 프리앰프와 연결했고 프리, 파워앰프 사이엔 RCA 케이블을 연결해 셋업했다. 한편 스피커는 최근 필자의 또 다른 레퍼런스 스피커로 영입한 스텐하임 Alumine Two.Five를 사용했다. 사실 이 스피커와 바쿤 앰프가 필자의 시청실로 들어오기로 예정되었을 꽤 좋은 매칭이 될 것으로 상상했었다. 그 이유는 첫재, 93dB의 고감도로 10와트 앰프로도 충분히 드라이빙 가능하다는 것. 둘째, 셀룰로스 파이버 우퍼로 음악적인 표현력이 굉장히 좋은데 이런 특성을 8510A 같은 소출력 싱글 엔디드, 클래스 A 증폭 앰프가 극대화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청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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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테일러 – Colour to the moon

한여름 마시는 냉수처럼 목을 타고 시원한 느낌이 느껴진다. 싱싱하고 너무나 생생한 소리. 이런 소리는 들어온 바 있다. 바로 300B나 지금도 시스템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845 싱글, 클래스 A 진공관 앰프의 소리와 유시하다. 뭔가 이물질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소릿결로서 일반적인 클래스 AB 앰프 소리에서 단단한 껍질을 한 꺼풀 벗겨낸 듯한 소리다. 참고로 8510A의 게인은 2시 방향을 넘지 않게 고정하고 프리앰프에서 볼륨을 조절할 때 가장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arne

아르네 돔네러스 – Sometimes

혹자는 클래스 A 소리를 따스하고 질감이 좋다곤 이야기한다. 그러나 단순히 몇 마디로 압축하기 어렵다. 되레 무척 깨끗하고 싱싱해 서늘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무대를 가로막고 있던 붉은 커튼이 열리고 뮤지션의 연주소리를 바로 앞에서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지배적이다. 화장기가 걷힌 민낯이란 이런 것이다. 소리의 실체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소리에선 실체감이 더욱 증폭되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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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 Perfect darkness

소리의 두께는 얇아서 흩날리지도, 그렇다고 너무 굵어 둔중하며 굼뜬 느낌도 아니다. 중간 정도의 두께와 묵직한 동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중고역만 아름답고 저역은 느리며 왜소한 싱글 에디드, 클래스 A 앰프를 상상하면 곤란하다. 선도를 최고조로 올려서 표현하면서도 핵이 뚜렷하다. 저역은 우렁차다기보단 옹골차다. 리듬 악기가 마치 맥박 소리처럼 가슴 깊은 곳을 툭툭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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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타로 – 라흐마미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1악장

단독으로 사용할 때도 훌륭하지만 볼륨 조정이 가능한 네크워크 플레이어와 사용할 때 더 나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가장 확실한 매칭은 바쿤 프리앰프를 사용하는 것이다. 작은 볼륨에서도 디테일, 다이내믹스 표현이 뛰어나며 무대의 깊이를 넘어 레이어링 표현이 더 잘 살아난다. 작은 사이즈의 바쿤과 달리 넓은 공간에서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를 마음껏 울려도 좋을 만큼 힘과 질감을 양립한 앰프다.

2. 전면 입력 선택 및 게인 노브 2

총평

이제 단 몇몇 하이엔드 브랜드만 고집하고 있는 클래스 A 증폭, 그리고 싱글 엔디드 설계를 2025년에 보란 듯 재현한 바쿤의 8510A의 가치는 남다르다. 열이 펄펄 끓는 클래스 A, 게다가 작은 출력은 스피커 제어력이 부족할거라는 선입견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좋은 음질에 대한 천착은 이런 선입견과 정면 승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보란 듯 바쿤은 순도와 힘을 양립하는 결과로 얻어냈다.

모든 음악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 또한 스피커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바쿤 8510A는 입력된 음악 신호가 가진 가장 깊은 내면의 목소리까지 길어 올려 생생하게 뿌려준다. 스피커는 그저 바쿤 8510A가 완성한 소리의 통로일 뿐이라는 듯 바쿤의 소릿결이 스피커를 통해 짙은 그림자처럼 묻어났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주파수 특성(0dB, 1W) : 100kHz
1% 왜곡 최대출력 : 10.7W
1mW 왜곡 : 0.03%
1W 왜곡 : 0.05%
9W 왜곡 : 0.26%
1W 댐핑팩터 : 89.8 게인 : 19.4dB
입력 환산 노이즈 : 95.8
입력 임피던스 : 100k
입력 : 2개(RCA1, SATRI-LINK1)
출력 : 10W+10W(8옴)
사이즈 : 32cm * 32cm * 13cm
(앞 뒤 돌출부 제외한 수치)
무게 : 9.7kg

제조사 : 바쿤 프로덕츠 (일본)
공식 수입원 : 바쿤 매니아 (https://cafe.naver.com/bakoonmania)
공식 소비자 가격 : 5,994,000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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