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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명문 SAEC, 케이블로 거듭나다

SAEC AC-3000 스피커 케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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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암, 그리고 SAEC

종종 빈티지 턴테이블을 보고 사용해볼 기회가 있는데, 내게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 된다. 특히 톤암은 그 시대를 감안하면 정말 어떻게 그렇게 정밀하게 만들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많이 사용하는 SME, 오토폰 구형 톤암들의 그 날렵한 톤암 파이프와 구조는 요즘 톤암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톤암을 조작해보면 언젠간 나도 가라드 같은 본체를 따로 구입하고 톤암도 구형 롱암을 달아 사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베이스는 특주로 따로 맞추어 멋진 나만의 턴테이블을 만드는 것이다. 종종 Artisan Fidelity에서 만든 베이스를 사진으로나마 보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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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톤암은 나의 큰 관심사 중 하나인데 최근 그 유명한 GT-2000L을 사용하는 지인의 시스템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순정 톤암이 달린 걸 사용하지만 지인의 턴테이블엔 SAEC라는 브랜드의 WE-308SX가 달려 있었다. 일본에선 순정 톤암의 성능이 못내 아쉬워 GT-2000L의 톤암을 교체하는 경우가 많고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SAEC의 것이다. 그만큼 오래된 제품들 중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턴테이블과 톤암이라는 방증이다. 특히 SAEC의 톤암은 세팅이 약간 까다로운 편이지만 잘 맞아 떨어지면 순정 톤암과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소리를 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톤암 메이커 중 명문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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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아날로그 강국 중 강국이다. 턴테이블부터 톤암, 카트리지까지 세계 최정상급 제품을 만들어온 이력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그것이 마치 연속극 보느라 공부를 통 못했고 교과서만 봤다면서 전교 1등 하는 유형이라면 일본은 하나부터 열까지 성실 하나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모범생 같다. 예를 들어 카트리지의 스타일러스 같은 경우 유럽 메이커에서도 일본 업체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엔 아예 일본 업체에 OEM를 맡기는 경우도 꽤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톤암 같은 경우 과거 명기로 알려진 피델리티 리서치 톤암을 만들던 분이 이케다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SAEC 또한 일본의 아날로그 저력을 증명해주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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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C 그리고 PC-Triple C

국내에서 SAEC는 빈티지 톤암으로 알려져 있을 뿐 다른 정보가 부족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1970년대 톤암을 시작으로 이후 케이블 등 다양한 제품을 제작해온, 일본 출신 굴지의 메이커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케이블은 SAEC에게 꽤 커다란 도전이었다. 수프라, 라이트하우스 등 여러 브랜드 제품의 수입도 겸하고 있으나 본령은 역시 케이블 제작으로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케이블에 탐닉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그 핵심 도체는 바로 PC-Triple C라는 것이다.

PC-Triple C라는 도체에 대해 생소한 분들도 있을 텐데 이것은 이전 PCOCC의 대체재라고 해도 무방하다. 과거 OFC가 전부였던 시절 일본 치바 공대의 오노 교수는 PCOCC를 개발해냈다. 이는 도체를 구성하는 입자 배열을 단방향으로 규칙적으로 배열해 입자와 입자 사이의 그레인을 최소화시킨 도체였다. 이 이론을 현실화한 것이 후루가와였다. 후루텍이 PCOCC 도체를 사용해 만든 케이블이 전 세계에서 히트를 친 것도 이 도체의 혁신적인 기술 덕분이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으니 바로 PCOCC를 생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정을 가진 후루가와가 PCOCC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PCOCC를 사용해 여러 케이블 완제품을 생산, 판매해온 하이파이 케이블 메이커들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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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것이 PC-Triple C라는 도체다. 나노텍 시스템즈와 SAEC 같은 메이커가 바로 PC-Triple C를 빠르게 채택했는데 물론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장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도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곳은 프로모션웍스라는 회사다. 그러나 이를 제조하는 데 있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탄생시킨 곳은 FMC라는 곳이다. SAEC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개발을 지원했으며 이에 따라 가장 먼저 PC-Triple C 도체를 자사의 케이블에 채택할 수 있었다. 이미지를 보면 단조 처리 후 결정 구조의 방향이 가로로 바뀌고, 최종적으로 매우 규칙적으로 배열되면서 신호의 흐름을 방해하는 그레인, 즉 입자의 경계 면적이 매우 적어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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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C AC-3000

최근 SAEC에서 만든 AC-3000이라는 스피커 케이블을 장오디오에서 전해왔다. 이 케이블은 PC-Triple C 도체를 사용하고 있다. 더 상위 모델로 올라가면 PC-Triple C/EX 같은 동/은 하이브리드 도체가 등장하지만 AC-3000은 순수한 구리 도체를 사용한다. 26mm 구경의 도체를 37개 사용하며 2sq 구경의 2심 구조다. 케이블 외경은 φ8.5mm 정도다.

굵기는 요즘 워낙 구렁이 같은 굵기의 케이블이 많아 그에 비하면 슬림하게 느껴진다. 또한 잘 휘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다루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절연, 피복 때문인지 만져보면 탄성이 꽤 느껴진다. 이번에 전달받은 케이블은 양 쪽 모두 바나나 단자로 마감한 버전. 방향성이 따로 표기되어 있진 않지만 이런 경우 피복에 씌여지는 글자의 방향을 신호의 방향과 일치시켜서 사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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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업

이번 리뷰를 위해 세팅한 시스템에서 일단 스피커로 바워스 앤 윌킨스의 705S3 Signature를 사용했다. 한편 앰프는 아큐페이즈 E-5000을 적용했으며 소스 기기로는 오렌더 A1000을 트랜스포트로 사용하고 DAC는 반오디오 Firebird MKIII Final Evo. 버전을 활용했다. 둘 사이의 연결은 USB를 선택했다. 더불어 스피커 스탠드는 마이너 팩토리 제품을 사용해 셋업해 필자의 전용 시청룸에서 진행했음을 밝힌다.

청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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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아스크빅 – Liberty

차분한 밸런스 덕분에 전반적으로 무게 중심이 잘 잡혀 있는 느낌을 준다. 당연히 안정적이며 치우침이 없다. 보컬 음상은 매우 명료하게 잡아내 스피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모습. 낮은 레벨의 작은 소리들도 상당히 섬세하게 포착해내는데 이런 점 때문인지 실체감이 매우 훌륭하다. 일본 케이블들에서 종종 관찰되는 특유의 착색은 억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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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모렐로 – Autume leaves

볼륨을 높여도 자극적이지 않다. 따라서 자꾸만 볼륨을 조금씩 올리게 된다. 시청실에서 듣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잊고 청음에 몰두했다. 중, 저역은 탄탄한 밸런스 위에 폭신하고 자연스러운 울림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왜곡을 최대한 억제해 본래 음원의 소리를 최대한 정확히 들려주는 케이블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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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사라 오트 – 쇼팽 : Nocturne in C Sharp Minor

이 음악을 재생할 땐 음색도 보지만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그러니까 미시적인 소리 차이의 표현력도 본다. 처음 내리치는 피아노 타건이 아주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게 절묘한 힘을 머금어 표현된다. 한편 음색은 절대 부풀리거나 축소하지 않지만 차갑고 냥정한 톤보다 따스하고 여운이 약간 있는 편이다. 해상도는 이 가격대에서는 매우 훌륭해서 바이올린 편의 움직임도 섬세하게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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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도/베를린 필하모닉 – 베르디 ‘레퀴엠 : Dies irae’

스피커에서 나의 위치까지 3미터, 그리고 그 뒤로 3미터 간격으로 띄어놓은 상태에서 뎁스, 그러니까 무대의 심도는 충분히 깊게 펼쳐놓는다. 딱히 청자를 향해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부담을 주진 않는다. 전체적으로 각 악기는 잘 분해되면서 선명하다. 무언가 자기 성격을 강하게 어필하기보단 잘 제어된 밸런스와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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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필자는 오랜 시간 동안 아날로그 시스템에 천착해왔다. 물론 트렌드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플레이백 시스템에도 항상 주목한다. 그러나 디지털 녹음이 아닌 아날로그 황금기 녹음에 대해선 여전히 아날로그 포맷으로 즐겨야 성미가 풀린다. 디지털로 변환한 것들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디오파일로서 아날로그 시스템의 하드웨어적 즐거움도 크게 작용한다. 디지털보다 액세서리 하나에도 훨씬 더 큰 폭의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포노 케이블을 자주 바꿔보곤 했는데 디지털 케이블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큰 폭의 변화, 업그레이드를 체감할 수 있다.

SAEC는 톤암 전문 브랜드로 출발한 브랜드며 지금도 톤암을 만들어내고 있다. 톤암 케이블로 인한 음질의 변화를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SME는 과거 포노케이블의 레퍼런스 중 하나인 반덴헐 케이블을 기본 케이블로 채택해 제공했으며 최근엔 실텍의 자매 브랜드 크리스탈 케이블을 일부 모델에 사용하곤 한다. VPI 같은 경우 노도스트를 톤암 케이블로 제공하곤 했다. 이 외에도 킴버, XLO 등 포노 케이블의 세계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그 레벨 차이가 크다.

이번 SAEC 케이블을 테스트하면서 왜 이들이 이런 사운드와 구조의 도체에 천착해 케이블을 만들어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악기의 음색에 대한 왜곡 없이 맑고 깨끗하며 토널 밸런스의 과장이나 축소 없는 소리. 아날로그 전문가 집단다운 도체와 지오메트리,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아날로그 마스터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로 쌓은 케이블에 대한 기준이 이런 결과물을 유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조사 : SAEC (JAPAN)
공식 수입원 : 탑오디오
판매 문의 : 장오디오(www.jangaudio.com)
연락처 : 010-4714-1489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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