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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턴테이블을 만나다

트랜스로터 Artus F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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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아날로그의 즐거움

어릴 적 꿈을 안고 들였던 인켈 턴테이블부터 시작해서 다이렉트 드라이브의 성능을 맛보게 해준 테크닉스는 LP에 대해 지금도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 원흉이었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레가와 프로젝트 오디오 등 수동 벨트 드라이브 턴테이블을 주로 썼다. 무척 단순한 만듦새였지만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또다른 매력을 주었다. 토렌스가 방송용으로 만들었던 턴테이블, 데논, 켄우드, 야마하 등 일본의 아날로그 전성기를 수놓았던 다이렉트 드라이브 턴테이블도 이 때 많이 사용해보았다. 자꾸만 눈이 높아져갔다.

큰 마음 먹고 구입했던 VPI의 Scout는 LP에서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소리가 나는지 신기했다. 이어서 VPI의 Scoutmaster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당시 인기가 좋았고 VPI의 톤암과 매칭이 좋았던 벤즈 마이크로, 그리고 지금도 사용하는 다이나벡터의 구형 저출력 MC 카트리지가 두루 거쳐갔다. 미국의 호방하고 정교한, 그러나 조금은 차가운 소리에 살짝 질릴 때쯤 다시 영국 턴테이블의 명가 레가와 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하고 무엇보다 보풀이 일어나는 듯한 중역대 텍스처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코난의 ZET3 MKII 1

이 외에도 여러 턴테이블을 거쳐 갔지만 누구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이 왔다. 가끔 마이크로세이키 등 몇몇 턴테이블이 내 곁을 지나갔지만 시큰둥했다. 그런 와중에 만난 턴테이블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트랜스로터 ZET-3MKII. 당시에 정말 큰 마음 먹고 구입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탄탄한 베이스와 무게 중심, 그리고 전체적으로 안정된 대역 밸런스와 정확한 토널 밸런스 때문이었다. 게다가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의 기본이라고 할만한 진동 제어, 정밀한 속도 덕분에 명료한 음정과 함께 입체적인 음장도 제법 잘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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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T-3MKII는 단숨에 나의 무료함을 깨웠다. 아마 그 이후 나의 LP 구입 속도는 매우 빨라졌던 걸로 기억한다. 음원보다 LP로 듣는 음악이 한결 더 즐겁다는 걸 새삼 일깨웠기 때문이다. 카트리지를 하나 더 달고 싶어 톤암을 하나 더 추가로 설치했다. 하나는 MC, 다른 하나는 MM 카트리지를 달아 사용하면서 즐거웠다. 이후엔 턴테이블의 약점으로 보이는 3점지지 발을 AOA라는 곳에서 만든 걸로 바꾸었다. 우연치 않게 제작자가 ZET-3MKII 사용자라는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터 베이스도 섬세하게 높이 조절이 되면서도 진동 저감에 탁월한 걸 제작해주어 바꾸었다. 한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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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벽, ARTUS의 등장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마주친 게 Rondino Bianco였다. 이 턴테이블이 주는 커다란 교훈은 벨트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이는 턴테이블의 오랜 숙제였으나 플래터를 아예 공중에 띄워 자력으로 회전시키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벨트의 존재는 아무리 높은 관성 모멘트를 확보하기 위해 플래터를 무겁게 만들거나 벨트를 가는 린넨 같은 걸로 만들어도 한계가 있었다. 과거엔 이런 공중 부양 플래터를 가진 턴테이블은 컨티넘랩스 같은 곳에서 만든 수억 원대였다. Rondino Bianco 또한 절대 저렴하지 않지만 훨씬 더 낮은 가격에 FMD, 즉 ‘Free Magnetic Drive’를 실현한 것은 쾌거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랜스로터의 Artus는 나의 아날로그 시스템에 대한 꿈을 실현한 듯했다. 트랜스로터는 회전하는 플래터 위에 LP 소리골 정보를 정확히 읽는 것이 최고의 소임인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설계가 필요한지도 명확히 알고 설계했다. 턴테이블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래와 같다.

  • 플래터 : 최대한 정밀하며 지속적으로 균일한 플래터 회전속도
  • 모터 : 모터회전으로 인한 플래터로 진동 전이 최소화
  • 톤암 : 톤암의 정확하고 안정적인 주행 능력
  • 스핀들 및 톤암 베어링 마찰 최소화
  • 외부 진동의 전이 최소화
FMD

그렇다면 과연 어떤 구동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섀시와 서스펜션 시스템을 설계한 것일까? 일단 턴테이블의 핵심, 모든 시작점인 모터와 모터가 회전시키는 플래터를 살펴보자. 일단 Konstant FMD 전원 공급 장치로부터 전원을 공급받는 총 세 개의 모터가 존재한다. 특히 전원 장치의 경우 극도로 안정적인 전압을 공급한다. 더불어 이 외장 전원부에서 속도 변경이 가능하다. 플래터는 공중 부양되어 자력에 의해 회전하므로 진동, 코깅 등의 원흉인 벨트가 필요 없어진다. 이는 탁월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으로 여느 마그네틱 드라이브 방식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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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트랜스로터는 이를 위해 진동을 완전 차단하는 설계를 완성해냈다.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소재와 설계 구조를 구현했다. 그것이 바로 Artus다. 우선 재료를 보면 섀시 자체는 알루미늄과 아크릴을 샌드위치 구조로 겹쳐 제작해 진동을 드라마틱하게 낮추었다. 높은 강성과 댐핑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공진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구조다. 한편 이 턴테이블은 독자적인 서스펜션 구조를 띠고 있다. 트랜스로터에서는 ‘카르다닉(Cardanic)’ 서스펜션이라고 부르는데 자동차에서 카르단 조인트를 이용해 불규칙한 지형에서도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한 기계적 구조를 의미한다. 원래 어원은 이탈리아 수학자 제로니모 카르다노(Geronimo Cardano, 1501-1576)가 고안한 만능 관절(universal joint) 시스템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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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로터는 바로 이 물리적, 기계적 개념을 Artus에 도입해 전체 턴테이블의 구성 요소들이 짐벌 방식으로 결함되어 모든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진동을 보상하면서도 단일 축에서 확고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한번 세팅한 이후에 플래터는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며 턴테이블 주변에서 웬만한 충격이 가해져도 레코드가 흔들림 없이 재생된다. 여기에 더해 하단으로 기둥을 세워 추가적인 진동 제어를 도모하고 있다. 이 정도면 끝까지 해보겠다는 거다. 전체 무게가 220kg 정도까지 증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톤암

마지막으로 톤암이다. 아무리 뛰어난 구동계와 섀시, 서스펜션 구조를 갖추고 있더라고 톤암이 LP의 소릿골을 정확히 읽어내지 못하면 어느 수준 이상의 음질에 접근하지 못한다. 원래 트랜스로터는 SME 톤암을 적극 권했고 함께 판매하곤 했지만 이젠 직접 만들고 있다. 재료와 구조를 보면 서로 다른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두 튜브를 끼워 맞춘 형태다. 내부 튜브는 테이퍼드 형태로 베어링 블록에 연결되고, 외부 튜브는 헤드셸에 붙는다. 이 구조는 튜브 간 상호 감쇠로 강성과 공진 자유성을 확보한다. 보다 정밀한 가공을 위해 자동차 산업 파트너와 협력해 초정밀 보어 가공을 적용, 최적 댐핑으로 미세 진동을 잡은 것. 이 톤암의 이름은 TRA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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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링은 수평, 수직 별도의 베어링을 사용하는데 수평 쪽은 고정밀 스틸 베어링을 사용하며 수직 운동에는 세라믹 베어링을 사용해 조용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장한다. 구조적으로도 과거 톤암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모나 소음 문제를 회피한 것으로 보인다. 카트리지 운동의 세부적인 디테일까지도 모두 정확히 읽어내기 좋은 구조다. 조정 기능들은 다양하게 지원한다. VTA는 물론이며 아지무스, 안티스케이팅 등 하이엔드 톤암을 많이 다뤄본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구사할 수 있을 듯하다. 한편 내부 배선은 아날로그 시스템에 제격인 반덴헐의 순은 케이블을 사용했으며 외부 배선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 최고급 아니면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데 SME가 톤암의 외부 판매를 중지함에 따라 오랜 시간 SME를 다뤄보면서 축적된 노하우를 듬뿍 적용한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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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

사실 Artus에 대한 리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리뷰를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항상 텍스트로 글을 쓰면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글을 쓸 때 더 비판적인 통찰을 얻는다. 또한 당시 유튜브 리뷰 당시 매칭한 기기도 전혀 달라서 꽤 다른 시청기가 되었다. 참고로 제품 테스트에 사용한 장비는 아래와 같다.

  • 프리앰프 : 패러사운드 JC2BP
  • 파워앰프 : 일렉트로콤파니에 AW800M
  • 포노앰프 : 일렉트로콤파니에 ECP-2MKII
  • 카트리지 : 하나 Umami Red
  • 스피커 : 피에가 Master Line Source 2 Ge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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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로터 턴테이블을 9년째 사용 중인 나는 그 특유의 사운드를 마치 DNA처럼 머리 속에 간직하고 있다. 금속 수지를 섞은 몸체에서 기인하는 명징하고 강단이 넘치는 음색 말이다. 금속이라서 차갑고 거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렇다고 잔향 시간이 너무 길어 흐릿하고 번지는, 흐리멍덩한 사운드는 절대 아니다. 약간의 온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매우 정확하고 골격이 뚜렷하게 잡힌 소리다. 에바 캐시디의 보컬은 스피커 정 중앙에 뚜렷하지만 면도날로 오려낸 듯 인공적인 소리가 아니라 촛불처럼 일렁이는 모습이다. 해상력 높고 엣지 있으며 힘있는 소리다. 군더더기를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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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What a wonderful world’를 이번엔 프렌드 & 펠로우가 부른 버전으로 들어본다. 같은 곡이지만 편곡도 다르고 악기 구성, 녹음 스타일도 매우 다르다. 특히 중, 저역의 무게감, 해상력 차이는 크게 드러난다. 확실히 소리의 윤곽이 뚜렷하며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여백이 매우 깨끗하게 처리되어 악기와 보컬 등 분리도가 높다. 고요한 가운데 보컬과 기타만 영롱하게 떠오르는 모습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뭔가 분절된 느낌으로 인해 악기, 보컬의 동적 움직임이 딱딱하게 느끼질 수도 있지 않냐고 이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컨트라스트가 매우 높고 선명한 사운드지만 그 움직임은 제법 자연스러운 편이다. 물론 플로팅 방식 같은 턴테이블보단 에지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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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는 매우 정확하면 33 1/3RPM 및 45RPM 전환도 빠른 편이다. 정확한 속도는 정밀한 리듬감과 추진력을 부여한다. 스틸리 댄의 ‘Black cow’를 들어보면 일렉트릭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감이 무척 두드러진다. 중역대가 탄탄해 여위거나 얇은 느낌 대신 묵직하고 단단한 사운드를 재생해준다. 특히 하이엔드 턴테이블 중 클래식 음악 위주 재생이 많아 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트랜스로터는 추진력과 함께 묵직한 중량감이 함께 실린다. 음정은 정확한 편으로 특히 남성 보컬과 여성 코러스의 음색 차이가 확연히 분리되어 레이어링을 형성하면서 싱싱한 실체감을 북돋아준다. 이 정도라면 측정을 해보진 않았지만 와우 & 플러터는 최상급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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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피치에서 오는 다채로운 음색의 정확한 표현은 다수의 악기들이 출몰하는 대편성 음악에서도 준수하다. 중저역을 오가는 악기들은 육중하게 꿈틀거리며 옥타브를 명확히 구분해 들려준다. 한편 고역은 날렵하며 약간 선홍빛 음색이 물들어 있다. 이는 Umami Red에 빚진 것이지만 이 또한 턴테이블과 톤암의 단단한 성능 위에서 가능하다. 특히 무대는 깊게 여러 겹으로 펼쳐지는데 LP에서 이런 여러 겹의 세밀한 레이어 표현은 놀랍다. 마지막으로 배경의 정숙도와 투명함은 확실히 Artus 같은 FMD 방식 플래터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트랜스로터 대표

총평

Artus를 리뷰해달라는 연락은 약간 급작스러웠다. 그 이유는 수입원에서 Artus를 며칠 이내에 옮겨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국내에서 Artus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잡힌 리뷰 일정이었지만 Artus를 듣자마자 단번에 매료되었다. 음악을 들어보면서 나의 ZET-3MKII도 FMD로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니면 Rondino Bianco FMD를 구입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들어 시청실에 턴테이블을 하나 더 세팅하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트랜스로터는 언제나 옳았다. Artus는 처음도 그랬지만 두 번째 세팅과 리스닝 테스트에서도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었다. 세상엔 뛰어난 턴테이블은 많지만 이처럼 음악에 몰두하게 만드는 턴테이블은 흔치 않다. 나의 인생 턴테이블을 하나 꼽으라면 Artus를 꼽을 것 같다.

글 : 오디오 평론가 코난

제품 사양

Standard equipment / features:

Cardanic suspension, the turntable can move freely in any direction
FMD bearing, platter is driven via a magnetic field
3 Motors
Acrylic black, Aluminium massiv, hand polished
Rotor Ring NEW IMPROVED VERSION
Konstant FMD
Platter weight Chrome (370 gram)
Quintessence switch (pilot switch)

Size and weight
55 cm W X 55 cm D X 120 cm H, 220 kg

Upgrade and accessories:

Additional Tonearm Arm Board 9 OR 12 INCHES
Rack Stand for Turntable

제조사 : Räke Hifi Vertrieb GmbH(독일)
공식 수입원 : ㈜ 샘에너지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3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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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티아나 보로비오바 – Le Clavecin Poet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