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오디오도 유행이 있다. 과거 세계를 주름잡던 오디오 메이커들 중 많은 메이커가 자본에 팔려가고 있기 때문. 대체로 그런 경우 오리지널 색채를 잃어간다. 투자자들의 입김이 강해지고 매출 압박도 심해지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다. 브랜드는 남아 있긴 하지만 고집스럽게 브랜드의 철학을 이어가던 엔지니어 등 여러 인력들이 회사에서 빠져나가버린다. 원래의 독보적인 개성이 줄어들고 대량 생산 체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한편 다른 곳에선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 사운드 철학을 가진 메이커들이 등장한다. 수요가 있는 한 공급이 끊길 리 없다. 디지털 부문에서는 MSB가 일으킨 바람이 꽤 매서웠고, 한 편에선 램피제이터 같은 메이커가 마니아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앰프 부문에서 최근 들어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메이커는 비투스 같은 메이커다.

신사동엔 자리잡은 더 하이파이는 하이엔드 오디오 부문에서의 새로운 조류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사실 다음 달에 비투스의 대표가 내한하면서 인터뷰 등 행사가 잡혀 있어서 점검 차 들렸다. 나의 시청실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신사동에 위치해있고 청음실의 어쿠스틱 환경도 꽤 좋아서 보는 맛, 듣는 맛이 좋다. 이곳은 중저가 제품은 아예 취급을 하지 않는다. 모두 하이엔드 오디오 일색이다.

일단 비투스의 마스터피스 시리즈 프리앰프와 파워앰프가 가장 눈에 띈다. 프리앰프가 두 덩어리인 것은 이 분야에선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런데 파워앰프가 무려 네 덩어리다. 처음엔 네 대로 바이앰핑을 했는줄 알았다. 알고보니 각 채널을 담당하는 앰프에 각각 앰프 크기만 한 전원부를 연결하는 구조다. 마치 고전압을 다루는 산업용 연결 케이블을 연상시키는 인터페이스가 놀랍다.

소스 기기는 무척 다양하다. 아날로그, 디지털 가리지 않고 이 쪽도 하이엔드 브랜드 일색. 간만에 보는 TW 어쿠스틱스의 Rave AC도 보이고 브링크만도 보인다. 가장 반가운 건 아무래도 와닥스다. 현재 WBF 같은 해외 포럼에서 전 세계 마니아들이 가장 손꼽는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 브랜드다. 더 하이파이엔 Atalantis 서버와 Atalantis DAC가 세팅되어 있었다. 마치 핫셀블라드나 라이카의 과거 아날로그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정말 멋지다. 선을 쓰는 패턴은 마치 스페인의 로에베를 닮았다.

스피커는 이글스톤웍스와 마르텐을 번갈아 가며 들어보았는데 서로 너무 다른 성격을 가진 소리였다. 이글스턴웍스가 호방한 무대를 그려내면서 좀 더 차분한 대역 밸런스를 갖추었다면 마르텐은 입체적인 무대를 그리면서 고역대가 굉장히 화려했다. 분명한 건 와닥스 소스기기, 비투스로 꾸린 전단의 사운드가 최종 사운드에 많이 녹아들어 있었다. 과거의 헤리티지로 버티던 메이커들이 자본에 흡수되고 새로운 브랜드들이 번뜩이는 기술과 디자인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더불어 이제 하이엔드 오디오도 집단상가가 아닌 소형 전문 청음샵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