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덴헐 Colibri XGW Grand Cru Elite
술을 좋아하다 보니 지인들끼리 오디오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술에 비유하곤 한다. 좋은 음식이 있으면 소주든 맥주든 와인이 생각난다. 나이가 들면서 와인이 좀 더 좋아진다. 그리고 종종 집에서 원고를 다 쓰고 나면 나에게 주는 위로처럼 싱글몰트 위스키를 두세 잔 마시고 숙면에 들곤 한다. 화려한 술자리보다는 둘 혹은 서너 명 정도가 오순도순, 조금은 깊이 있게 이야기하며 마시는 자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중 와인은 알게 모르게 많이 마시게 된다. 지인이 와인 가게를 해서 추천을 받아 사놓곤 하는데, 다른 술에 비해 정말 너무나 다양한 종류가 있어 마실 때마다 새롭다. 최근 카트리지 하나를 리뷰하려는데 ‘Grand Cru’라는 접미사가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이 말은 최고 등급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에 붙는 말이라고 한다. 종종 와인을 마실 때 라벨 사진을 찍어 와인 관련 앱에 올려 와이너리와 가격 등을 알아보곤 하는데, 이게 왜 카트리지 이름에 붙었을까?

문제의 카트리지는 반덴헐 제품이다. ‘Colibri XGW Grand Cru Elite’라는 다소 긴 모델명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반덴헐의 모든 기술력이 집약된 최상위 모델이다. 반덴헐은 참 우직하고 고집스럽게 카트리지를 만들어낸다. 제품 박스를 보면 이게 고가 카트리지 박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남루하다. 그냥 평범한 박스 안에 카트리지와 수평계 하나가 달랑 보일 뿐이다. 그리고 뚜껑 안쪽에 악필로 카트리지 스펙을 대충 적어놓았다.

카트리지 만듦새 또한 가히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정말 집에서 수공예로 만든 제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부 설계를 들여다보면 단순하면서도 비범하다. VDH-1S라는 다이아몬드 스타일러스를 사용한다. 한편 캔틸레버는 보론(Boron), 즉 붕소를 사용한다. 하이엔드 카트리지들이 많이 사용해온 소재로, 워낙 단단하면서 질량은 작아서 톤암 소재로도 쓰이곤 한다. 사실 오토폰 등 고가 카트리지 중에는 스타일러스와 캔틸레버를 모두 다이아몬드로 사용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다이아몬드가 더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보론은 밀도가 낮고 더 가볍기 때문에 소릿골의 미세한 모양에 따라 민첩하고 변화무쌍하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가 워낙 단단해 약간 분석적일 수 있다면, 보론은 전 대역에 걸쳐 해상도도 좋으면서 트랜지언트(Transient) 특성은 더 우수할 수 있다. 확실히 유연하고 자연스럽다. 처음 들어보면 스타일러스가 사뿐사뿐 소릿골을 구석구석 샅샅이 훑고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

여기에 자연에서 온 고강성의 초경량 목재 바디를 입혀놓았는데, 문제는 바디를 완전히 노출한 설계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세팅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캔틸레버가 꽤 길게 뻗어 있어 겨울에 스웨터 같은 옷을 입고 청소하다가 걸릴 수 있다. 한편 코일 소재는 XGW의 ‘G’라는 이니셜에서 알 수 있듯 금을 사용했다. 금은 은이나 구리보다 전도도는 낮지만, 코일로 사용할 경우 해상도가 좋으면서도 거칠지 않아 오래 들어도 피곤하지 않다. 용도는 다르지만 실텍의 실버/골드 케이블과 유사한 측면도 있다. 더불어 산화되지 않아 오래 사용해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튼 간만에 반덴헐 카트리지를 테스트해보았는데, 정말 좋은 소리를 내주어 리뷰하는 과정이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힘이 났다. 물론 ‘조은전자’라는 숍에서 진행해 그곳에 세팅된 골드문트 위주의 시스템에 한정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기존에 스텐하임 등을 테스트할 때 들어보았고 골드문트의 성향을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시스템에서도 들어보고 싶다. 아예 나의 시스템에 적용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반납을 못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