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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향의 성역 MBL

mbl 111f thumb

MBL 111F

수 십년간 하이엔드 오디오 엔지니어들은 오직 최고의 사운드를 목표로 다양한 스피커를 만들어왔다. 지금도 세계의 시작과 끝, 그 중간 어디에선가 그들은 무조건 좋은 사운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가장 좋은 소리란 무엇일까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대체로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는 전면 배플에 유닛을 상하로 주르륵 장착해서 만들며 전면이나 후방, 혹은 하단에 포트를 만들어 후방 에너지를 방출한다. 요즘엔 밀폐형 스피커를 내놓는 스피커 메이커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때론 ATL 같은 방식도 있는데, 이처럼 저음 반사형, 밀폐형, ATL 등은 로딩 방식을 기준으로 분류한 여러 형태들이다.

스피커에서 소리를 내는 트랜스듀서, 즉 드라이버의 위치는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다. 여러 실험과 결과 도출, 시장에서의 반응 등을 잣대로 현재 전면 배플이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다이내믹 드라이버가 가장 일반적인 형태지만 이 외에 리본, AMT 같은 평판 드라이버는 물론 정전형과 같은 스피커 종류도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 혼, 동축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드라이버들이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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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지향 방식의 스피커를 처음 듣고 나서 나는 언젠가 이 스피커를 나의 공간에 들여놓게 될 날이 오기는 할까 상상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최근 MBL 111F를 나의 시청실에 설치했다. 약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일을 마치고 퇴근을 미루면서 이 스피커의 소리에 빠져 지냈다. 때론 혼자서, 혹은 지인을 초청해 함께 들었다. 락포트 Atria와 윌슨 Sasha를 듣는 시간이 줄어들고 점점 메인 스피커는 111F가 되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공통된 의견은 자연스럽다는 것과 함께 일반적인 전면 배플 스피커로는 절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무대 재현 능력에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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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본 111F에 대한 시청평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아래는 한 달 정도 시간동안 내가 나의 시스템에서 듣고 테스트해본 결과다. 청음에 동원한 시스템은 평소 자주 사용하는 모델이다.

※ 테스트 시스템

  • 네트워크 플레이어 : 오렌더 N10
  • DAC : 반오디오 Firebird MK3 Final Evolution
  • 턴테이블 : 트랜스로터 ZET-3MKII
  • 카트리지 : 다이나벡터 DV20XH
  • 포노앰프 : 서덜랜드 PhD
  • 앰프 : 아큐페이즈 E-5000
olaffson

올라프손 – 바흐 : Goldberg variations

피아노 녹음은 그 어떤 악기보다 음정과 음색, 그리고 다이내믹스와 무대의 깊이와 넓이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게 해준다. MBL 111F로 듣는 올라프손의 바흐는 타건 하나 하나가 물결처럼 시청실을 넓게 잠식하는 듯하다. 소리의 포커싱이 일반적인 전면 배플 스피커처럼 작지 않고 좀 더 크게 공간에 퍼진다. 인공적으로 매만진 정밀함이 아니라 실제 콘서트 홀에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느낌과 굉장히 유사한 패턴이다. 타건의 울림이 뭉개뭉개, 그러나 탁하지 않고 곱고 진하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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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아스크빅 – liberty

전체 대역 밸런스는 무척 안정감이 넘친다. 흥미로운 건 보컬의 음상이다. 스튜디오 녹음의 건조하게 딱 떨어지는 음상이 아니라 마치 촛불이 일렁이는 듯 자연스러운 음상이 형성된다. 나를 중심으로 오로지 나를 위해 만들어진 공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무대의 깊이, 심도는 대단히 깊어서 나를 압도하면 둘러싼다. 오직 음악에 몰입시키는 쾌감이 대단하다. 보컬이나 배경 음악 등 모두 폭신하고 부드러우며 동시에 사실적인 음장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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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하이먼 – Topsy

어떤 음악을 들어도 작위적이라던가 소리를 면도날로 자른 듯한 느낌이 없다. 인공적인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순수한 사운드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것이 거칠고 메마르지 않다. 피아노 타건은 부드럽고 싱싱하다. 특히 하모닉스 구조가 가장 복잡한 악기 중 하나인 관악 세션을 들어보면 입자가 매우 곱고 동시에 움직임은 유연하다. 기음만 강조한 나머지 딱딱하고 건조하거나 또는 너무 압축한 소리가 아니다. 미세 분진처럼 따뜻하게 펼쳐나가는 잔향 덕분에 음악은 더욱 아름답고 음악적으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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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네 서틴 – Queen Mary

좌우를 오가는 비트가 마치 현실의 그것처럼 뚜렷하다. 전혀 축소된 무대가 아니라 실체의 그것과 유사하다. 대형 우퍼가 채널당 두개씩이지만 느리다는 느낌 없이 빠른 반응 속도를 보여주어 쳐지는 느낌 없이 강력한 타격감을 맛볼 수 있다. 특히 보컬과 악기, 효과음의 위치 및 이동 경로까지고 마치 파노라마를 보듯 눈앞에 펼쳐놓는다. 두 발의 우퍼가 만들어내는 저역은 가공할만한데 금속성의 딱딱한 저역이 아니라 쿠션이 있으면서도 유연하고 깊은 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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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래틀/버밍엄 심포니 – 말러 교향곡 2번, 1악장

교향곡으로 가면 MBL 사운드의 특성이 가장 폭넓게, 그리고 동시에 치열하게 펼쳐진다. 예를 들어 사이먼 래틀과 버밍엄 심포니가 함께 한 말러 교향곡 2번을 들어보면 특히 그렇다. 내가 가지고 있는 윌슨 Sasha나 락포트 Atria로 재생할 때와 달리 오케스트라 총주가 전면 무대 뿐 아니라 좌/우 벽, 심지어 뒤쪽에도 소리 들리다. 당연히 오케스트라 연주는 콘서트 홀에서 들을 때처럼 둥근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내면서 청자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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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향, 성역의 문을 두드리다

무지향 스피커 MBL 111F는 플래그십 101 시리즈 바로 밑에 위치하는 레퍼런스급 모델이다. MBL이 수십 년간 추구해온 무지향 스피커의 이론과 독보적인 기술이 거의 총망라된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처음 약 20여 년 전 MBL을 들었던 때부터 현재까지 그 기술력은 인정했지만 나의 시청실에 들일 고민을 진지하게 해본적은 없었다. 커다란 공간을 필요로 했다는 게 첫 번째다. 내게는 말 그대로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다. 2016년, 2022년 등 수차례에 걸쳐서 MBL 스피커에 대한 공식 리뷰를 진행하면서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MBL 111F를 나의 시청실에서 평소 운영하던 컴포넌트로 테스트한 이후 커다란 마음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전에 MBL에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성역을 건드린 느낌이다.

Written by 코난

코난 이장호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평가하는 평론가다. 고음질 명반 가이드북 1,2,3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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