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은 오디오파일 사이에선 오래된 레퍼런스다. 과거엔 이 앨범 구하려고 해도 상태가 좋은 걸 구하기 쉽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재발매가 넘쳐나 이젠 SACD나 LP 모두 구하기 쉬워졌다. 누가 스웨덴의 이 작은 레이블에서 발매한 변방의 재즈 앨범이 오디오파일의 필청 음반이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녹음 당시부터 뭔가 심상찮은 상황이 펼쳐졌다.
이 앨범은 아르네 돔네러스라는 색소폰 주자를 중심으로 피아노, 비브라폰, 드럼, 베이스 주자 등이 연주한 일종의 라이브 실황 앨범이다. 1976년 12월 6일과 7일 사이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펍이면서 종종 재즈 뮤지션들이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곳이다. 공간이 그리 크지도 않고 사람들이 마주 앉아 서로 맥주잔을 부딪치며 음악을 즐기는 공간이니 음악 녹음엔 사실 악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엔지니어 모두 열정만은 최고조였던 것 같다. 리허설도 없이 몇 대의 노이만 마이크를 사용해 나그라 4s에 녹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에서 녹음 엔지니어인 거트 팔르크란츠의 실력은 더욱 빛났다. 마이크 세팅은 일명 ORTF 방식을 따랐는데 음악을 들어보면 마치 현장에 가 있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내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앨범을 참 여러 버전으로 구입하고 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리핑해놓은 음원이 여럿이고 엘피도 있는데 또 하나가 발매되었다. 요즘 재발매 엘피의 경우 화려한 부클릿과 부가 컨텐츠로 팬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막상 음질 자체는 그리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재발매의 경우 몇몇 의식 있는 레이블의 음반만 구입하는 편이다. 그 중 하나가 2xHD 레이블이다. 나그라에 몸담고 있는 르네 라플람이 운영하는 곳이기도 한데 페이스북 팔로잉을 해보면 그의 릴 마스터 테잎과 릴덱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이 엘피는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지털 음원 기반 엘피가 아니다. 녹음 원본부터 모든 과정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진행된 순수 AAA 엘피로서 아날로그 시절 초반과 다를 바 없다. 특히 2xHD는 당시 녹음기로 쓰였던 나그라 장비를 이용해 리마스터링했고 이후 커팅은 버니 그런드만이 진행했다.
아마도 이들이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프레싱이었을 것이다. 마스터링 및 커팅까지야 모두 자신 있었을지 모르지만 프레싱 부분에서 1970년대 벨 에포크 시대의 그것을 재현하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듯. 그런데 실제 엘피를 보면 일단 곡당 차지하는 그루브 넓이가 마치 45RPM에 버금갈 정도로 넓게 만들어 한 면에 두 곡만 기록했다. 그루브 사이 간격을 최대한 넓혀 오리지널 마스터의 다이내믹레인지를 최대한 살리려 한 것. 그러다보니 아쉽게 ‘High life’라는 최애곡이 빠져버린 것은 아쉽다. 하지만 음질은 정말 대단히 뛰어나다.
책에 썼던 앨범이 다시 이렇게 빼어난 품질로 재발매되고 이슈가 되면 기분이 좋다. 특히 최근 발매된 2xHD의 엘피는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지만 그만큼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이 정도 가격대라면 사실 LP에 CD, 블루레이, 책자 등을 합해 푸짐하게 한 상 차린 디럭스 패키지 재발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디오파일에겐 음질 좋은 단 두 장의 엘피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