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구입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앨범에 대해 최상의 음질과 패키지를 보여주는 포맷으로 소유하고 싶어진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서 뮤지션 또는 해당 앨범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런 심정으로 음반을 구입하다 보면 하나의 앨범에 대해 여러 버전이 음반 랙에 꼽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하고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이미 나의 지나친 열정과 사랑에 대한 흔적인 것을.
하지만 이내 본전이라도 뽑겠다는 심정으로 동일한 곡을 다른 버전으로 들어보면 제각각 그 가치가 있다. 때론 음질 자체로는 다른 버전에 비해 떨어질지라도 그 음반을 구입하게 된 추억 때문에라도 가치가 있고 애착이 가는 경우도 있다. 형태를 가지고 손으로 쥘 수 있는 피지컬 포맷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런 습성이 가장 강한 나라는 일본이 아닐까? 일반 CD부터 시작해 HQCD, HQCDII, XRCD, XRCD24, UHQCD 등등 정말 포맷의 변주는 어디까지인지 예상이 안된다. 올해 봄 일본에 갔을 때도 유명 메가 스토어에서 마주친 다양한 포맷의 신보과 백 카달로그 CD들은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긴 아직도 팩스와 플로피 디스크를 애용하는 나라이니 그럴만하고 생각되지만 한편으론 새것이 나오면 오래된 것은 가차 없이 버리는 우리의 습성에 비추어보면 배울 만한 점도 있다.
최근 XRCD를 다시 들어보았다. XRCD24 라는 포맷은 JVC에서 개발한 포맷으로 오디오파일 사이에서 한 때 굉장히 큰 인기를 끌었다. 예전부터 LP는 물론 CD 시대에도 고음질 음반에 진심이었던 JVC는 자체 개발한 K2 24비트 디지털 변환을 거친 후 소니의 PCM-9000 옵티컬 디스크를 통해 CD로 제작한다고 한다. 변환, 제작 과정에서 지터를 없애고 24비트 코딩을 거쳐 본래 아날로그 마스터의 음질을 최대한 왜곡 없이 CD에 담는다는 내용.
이 과정에서 스튜더 A820 릴덱을 사용해 오리지널 마스터를 재생 및 녹음하고 K2 마스터링 콘속 및 A/D 컨버터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외에 전기 노이즈 유입을 막기 위해 AC 전원 레귤레이션 장치를 사용, 클록은 루비듐 클록을 사용하는 등 녹음 관련 장치에도 극성스러운 하이엔드 오디오 마니아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XRCD24는 로버트 밴츠(현재 elusivedisc 대표)라는 사람과 XRCD의 공동 개발자 중 한 명인 앨런 요시다가 협력해 만들었다. 그리고 이 사이엔 조 할리라는 조력자가 등장하다. 뮤직매터스 재즈부터 시작해 최근 몇 년간 톤 포엣 엘피 재발매의 주역을 활동 중인 바로 그 조 할리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CD 부문에서 뮤직매터스재즈 같은 레이블을 만들고 싶었던 듯하다. 멤버도 겹치는가 하면 모두 블루노트 백 카달로그 재발매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최근 또 XRCD24와 일반 RVG 에디션을 비교해봤다. 이런 비교는 때론 귀찮기도 한데 한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비교 타이틀은 프레디 허바드의 ‘Open Sesame’ 중 타이틀 트랙. RVG보다 일단 게인이 작은 편인데 아마도 전체 다이내믹레인지를 최대한 높게 담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JVC K2 리마스터링 앨범으로 약 20여 년 전 거의 전작을 사모은 적이 있었고 그 때 들었던 소리와 약간 유사한 점들도 보인다. 예를 들어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약간 내려와 차분해서 들뜬 현장감보단 스튜디오 레코딩의 섬세하고 단정한 사운드로 재생된다. 한편 프레디 허바드의 트럼펫과 티나 브룩스의 색소폰은 좀 더 진하고 밀도 있게 재생되며 후방의 리듬 세션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잡힌다.
이번에도 흥미로운 비교가 되었는데 과연 XRCD는 XRCD다. 개인적으로 XRCD와 UHQCD 등 여러 장을 가지고 있지만 각 포맷마다 음질적인 특징이 달라서 같은 앨범도 다른 뉘앙스로 다가오곤 한다. 마치 비슷한 가격대 케이블을 여러 조 가지고 종종 바꿔 듣는 것 같은 맛이랄까? 오늘도 음반 도락은 멈추질 않는다.